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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37

    <637 – 오크노디의 테마파크(12)>

     

    디스트로이어는 문득 생각했다.

    오크노디도 꽤 무리하고 있는 건 아닐까, 라고.

    그의 입장에선 당연한 추정이다.

    실패를 모르는 아이.

    그런 아이가 하는 일에 묘한 삐걱거림이 보인다.

    귀신같이 교수들을 피해다니던 아이가 사다코 교수의 해골교관에게 덜미를 붙잡힌 것도 그렇다.

     

    ‘나 때문에 동요한 건가?’

     

    오크노디가 자신을 살리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온 것이 그녀의 ‘계획’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유언장을 들고 달려온 오크노디의 모습은 정말로 간절하고 절박해 보였지.

    무엇보다도 자신은 다 죽어가던 몸이다.

    세상에 곧 죽을 자를 계획에 포함할 사람은 없다.

    오크노디는 그럴 사람이… 아닌가?

    하여튼 죽어버리면 끝인데 계획을 세운들 얼마나 거창한 계획을 세우겠는가.

     

    ‘북부대공 유다. 오크노디의 스승으로 추정되는 자. 그를 테마파크에 불러들이고 북부군을 강화한 것은… 재단 상층부와의 내전이 임박해서 급하게 전력을 증강했다고 보아도 무방하겠지.’

     

    그는 <전장에서 지휘관으로 살아남기>강의를 가르치던 레어그릴스 교수가 지휘관 사이에 섞여서 평범한 장교 행세를 하고 있던 것도 알아차렸다.

    레어그릴스 교수는 은퇴한 북부군 지휘관이며 북부대공 유다를 학생들의 시험 일정에 맞추어서 심사관으로 아카데미에 한 차례 초청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모든 고리가 다 맞았다. 이번 반란군과 마왕군을 저지한 것은 사실상 오크노디의 의지. 세상에 혼란을 부르는 재단의 의지에 정면으로 반했지.’

     

    이미 이 아이는 악의 길을 벗어났다.

    나쁜 아이, 무서운 아이.

    그런 사악한 길을 벗어난 아이다.

    애초에 그는 기억하고 있다.

    오크노디가 레어그릴스 교수를 통해 자신의 스승 북부대공 유다를 기프트 아카데미에 불러들였던 타이밍이 어떤 타이밍이었는지.

     

    -죽일 거다. 널 죽인 뒤에는… 제국도, 마법협회도, 아카데미도. 반드시 언젠가 내 손으로 전부 무너뜨릴 거다.

     

    <은퇴한 전직용사와 세계의 거악들>.

    디스트로이어 본인이 직접 가르쳤던 강의.

    용사행에 대한 경험담과 거악에 대한 기억들.

    잊을 수 없는 상실.

    돌이킬 수 없었던 하비.

    그 끝에 다짐했던 복수의 결의.

    그 결의에 이끌린 오크노디가 교수님의 꿈을 지원하겠다며 벌인 짓이다.

     

    그때, 오크노디는 분명 북부대공 유다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었지.

     

    -나중에 용사를 북부에 보낼 때 도와주세요!

    -…용사? 네가 아니라?

    -용사한테 지원을 해주기로 약속했거든요. 그럼 앞으로도 아이린이랑은 사이좋게 지낼 수 있어요!

     

    도적의 잔재주로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오크노디는 용사를 북부로 파견하는 일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북부의 환란을 한 차례 극복한 지금, 북부에서 용사가 취할 수 있는 업적은 단 하나밖에 없다.

     

    마계원정.

     

    와이히엠하이 재단의 숨은 협력자이자 암흑마나를 이용하는 공생관계인 마왕군을 지도상에서 지워버리거나 그 세력권을 크게 후퇴시키기로 작정했다.

    이를 뒷받침할 증거로 재단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마왕군의 대감옥 습격 사건을 미리 간파하여 저지, 마왕군 사천왕 엘니뇨를 참살하기도 했다.

    어째서인지 엘니뇨가 비키니를 입은 채로 휴가를 만끽하다 나타난 것처럼 묘한 행세를 했다는 사후보고가 있기는 했지만…

     

    ‘오크노디와 놀아주는 조직에는 <뾰이>라 불리는 테러조직 비키니아머단의 비키니전사가 있지.’

     

    분명 상대에게 비키니아머를 강제로 입히는 괴짜스러운 테러 조직원을 이용해서 마왕군 사천왕의 장비를 강제로 해제하고 비키니를 입힌 걸 거다.

     

    “사다코. 오크노디를 둘러싼 큰 흐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크노디가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당연한 결과지만 이제 곧 결전의 장소가 열린다.”

    “재단의 <간부회의> 말이지?”

    “해골교관의 폭주도 간부회의에 앞서 오크노디를 담그려는 재단의 술책이었나?”

     

    사다코 교수가 단호하게 부정했다.

     

    “그건 아니야. 내가 다루는 음차원의 마법은 부정한 감정을 매개체로 하는 감정마법. 산 자를 해골로 만들고 싶다는 원한을 힘으로 다루는 해골교관 17호에게는 언젠가 벌어질 수 있는 사고였어.”

    “잘도 그런 위험한 녀석을 수하로 다뤄왔군.”

    “분명 수집품을 구매하고 힘도 늘었겠다, 내가 도착하기 전에 일을 저지르고 용서를 구할 작정이었겠지. 늑대해골 18호의 감정마법은 그런 불길한 원한이 아니니 걱정할 필요 없어.”

    “어떤 감정이지?”

    “이 세상 모든 뱀파이어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싶다는 원한이지. 늑대인간과 뱀파이어는 오랜 앙숙이었으니까. 늑대해골교관의 원한은 내게만 향할 거야.”

    “…”

     

    디스트로이어가 굉장히 찝찝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오크노디가 요 근래 뱀피라고 불린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뱀피? 어린 뱀파이어를 가리키는 말을 디스트로이어 당신이 어떻게 알고 있지. 용사행의 도중에 지상을 배회하는 뱀파이어, 데이워커라도 발견했어?”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오크노디를 감시하는 도적길드 길드원의 보고에 따르면, 통신실에서 오크노디가 매스각키 황녀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뱀피를 언급한 적이 있다고 했어. <뱀피도시락>은 잘 받았다는 감상도 전해달라고 했었지.”

    “암호네.”

    “그렇겠지.”

    “거기까진 신경 쓸 필요 없어. 오크노디에게 주어진 패가 하나라도 더 많다면 그 아이를 도우려는 우리에게야 좋은 일이니. 하필이면 뱀파이어라는 점이 영 내키진 않지만…”

     

    사다코 교수의 어정쩡한 반응이 디스트로이어는 의아했다. 그녀라면 오히려 이 소식을 듣고 좋아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좋은 일 아닌가?”

    “좋지 않아. 뱀파이어에겐 혈족의 저주가 있어. 모든 축복은 저주가 있기에 성립되지.”

    “축복과 저주가 표리일체라고?”

    “가령 늑대인간은 강력한 재생력을 얻었어. 그 대가로 끊임없이 분열하고 샘솟는 세포와 늘어나는 힘을 적절히 해소하지 못하면 <광화>에 사로잡혀 마구 날뛰다가 죽어.”

    “…!”

    “뱀파이어는 피를 매개체로 각종 혈마법을 자유자재로 펼칠 수 있어. 대신, 그만큼 많은 피가 필요해. 적절히 피를 수급하지 못하면…”

     

    늑대인간의 광화처럼 이지를 상실하고 사고를 쳐서 몬스터 취급을 당하겠군.

    자연스럽게 그리 결론을 내리던 디스트로이어의 뇌리에 문득 먼 과거의 감시 결과가 떠올랐다.

    저 아이를 아직 믿지 못하고, 재단의 후계자가 무슨 속셈으로 자신의 강의를 들으러 왔는지 그 진의를 의심하던 무렵의 기억이었다.

     

    -오크노디가 이슈타르의 성검에 공격받은 날, <상급반 탑승물 보관소>에 침투한 흔적이 있었음.

    -사라진 것은 탑승물들의 사료. 돌, 꽃잎, 곡물, 그리고 피까지 훔친 것으로 추정됨.

    -목적은 불문. 추후 추가 조사 필요.

     

    당시에는 조사만 하고 말았지만, 시간이 지나 지금 그 이야기가 다시금 떠올랐다.

    이유는 명백했다.

    축복이 있기에 저주가 존재하는 상위종족.

    피에 집착하는 뱀파이어.

    상습적으로 드나들던 탑승물 보관소.

    탑승물 보관소에서 피를 훔친 오크노디.

    이제야 알겠다.

    저 아이는 뱀파이어, 그것도 뱀피가 맞았다.

    아직 지금만큼의 강함을 얻지 못했던 시절.

    자신의 본능을 온전히 통제하지 못해 피를 훔쳐먹은 수치스러운 흑역사가 있었던 것이다!

    최근에 배달받은 <뱀피도시락> 또한 뱀파이어들의 본능을 억누르는 비전치료제 비슷한 무언가겠지.

     

    ‘갈릭 후라이드치킨의 비전요리 마늘치킨에는 뱀파이어의 약점이 마늘이며 오크노디에게 뱀파이어의 약점이 통한다는 서기의 정식기록도 남아있고.’

     

    오크노디가 뱀피라는 사실은 기정사실이다.

    이쯤 되자 디스트로이어도 더는 모르는 척 할 수 없어졌다.

     

    “사다코. 불편한 화제임은 알지만 이제는 물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말해.”

    “오크노디가 뱀피라는 사실을 너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나? 그래서 학생들을 받지 않고 매년 쫓아내던 짓을 그만두고 그녀를 제자로 받아들인 건가?”

     

    사다코 교수는 어이가 없었다.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어도 학생들이 무섭다면서 죄다 도망쳤을 뿐인데, 다른 사람이 보기엔 그게 내가 쫓아낸 것처럼 보였다니.

    그래서야 마치 일하기 싫어서 어린 학생들을 괴롭히는 영 글러 먹은 괴물처럼 보이지 않는가.

     

    “그런 거 아니야.”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나?”

    “아니래도.”

    “알겠다. 사정이 있다면 이해해야겠지. 하지만 언제든 마음의 준비가 되면 말해도 좋다. 나는 편견 없이 들어줄 수 있으니.”

    “너 좀 짜증나네.”

    “훗. 내실한 속마음을 억지로 털어내려고 하면 거부감이 드는 것도 당연하지. 언젠가 자연스럽게, 그 마음에 한 줌의 거리낌도 없어진다면 그때 털어놓아도 된다. 운이 좋게도 지금의 내게는 시간이 많으니까.”

     

    이 녀석 한 대만 세게 때리고 싶네.

    그 스승에 그 제자 아니랄까 봐 매를 버는 습관마저 똑같은 오크노디와 디스트로이어였다.

     

     

    * * *

     

     

    같은 시각, 언더월드.

    진짜 <뱀피노디>가 된 다크노디가 개운한 얼굴로 기지개를 켰다.

     

    “종족값 개조 작업이 드디어 다 끝났어.”

    “수고했다. 과연 짐의 새로운 양녀다운 수완이구나. 오크노디의 분신이여.”

     

    다크노디가 새침하게 눈을 뜨며 선황을 째려봤다.

     

    “오크노디의 분신이 아니야. 다크노디. 나를 부를 땐 명칭에 주의하라고 했잖아, 파파.”

    “크하하하. 이거 미안하구나. 오크노디의 존재감이 원체 강한 탓에 그 이름이 먼저 떠올라버리지 뭐냐.”

    “…”

     

    다크노디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언더월드의 생명체를 이렇게나 잔뜩 개조했는데.

    내 유능함과 실행력을 증명했는데.

    그런데도 선황의 눈에도 차지 않을 정도라면.

    조나를 빼앗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불안해한들 이미 늦었어.’

     

    대작전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럼 슬슬 출발하자꾸나. 재단의 간부회의에 맞추어서 지상으로 진출하는 계획을.”

     

    언더월드의 생명체를 저지하는 다양한 군단 중 하나, 오크노디의 키메라 군단.

    그 키메라 군단과 하등 다를 바 없이 마개조된 언더월드의 생명체들.

     

    그렇다.

     

    다크노디는 또 하나의 키메라 군단을 만들었다.

    기존의 키메라 군단 행세를 하며 지상으로 당당히 벗어나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군단을.

     

    선황과 다크노디, 언더월드의 군세들.

    그들이 언더월드 토벌군의 사이를 유유히 지나치며 지상으로 올라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원본을 질투하는 뱀피다크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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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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