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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37

        

       [ 어, 오래비? ]

         

       전화 너머 이아린이 밝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랬다가 갑자기 뭔가가 떠오른 듯 말을 멈추더니, 목소리를 낮춰서 진성에게 질문을 던졌다.

         

       [ 암호. 보이스피싱이 아니라는 증거를 대라. ]

         

       이아린은 도적 길드의 수상한 길드원이 암시장에 가기 위한 암호를 말하라고 하듯이 진성에게 암호를 말하기를 요구했다. 게다가 아주 작은 소리로 ‘째깍째깍’ 소리까지 내는 것이, 시간 내에 답하지 못하면 바로 전화를 끊어버리고 스팸으로 지정해버리겠다고 무언으로 협박하는 듯했다.

         

       “허허허. 그런 암호는 애초에 정하지도 않지 않았느냐.”

         

       [ 나를 떠보려고 하는 것이라면 소용없다고 말하겠다. ]

         

       “내 카피바라도 맛있게 구워줬거늘….”

         

       [ 아, 믿겠다. 오래비가 맞군. ]

         

       진성이 카피바라 이야기를 꺼내자 이아린은 바로 이해했다.

       그녀는 다시 목소리를 원래대로 돌리고는, 무언가를 먹으면서 진성에게 물었다.

         

       [ 근데 왜 갑자기? ]

         

       씹는 소리를 들으니 과일 종류인 듯 보였다.

         

       “왜냐니. 애초에 내가 있는 빌딩에 먼저 온 것은 네가 아니더냐.”

         

       [ 아, 그랬지. ]

         

       아삭.

       쩝쩝.

         

       스마트폰 너머에서 동물이 과일을 먹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가 어찌나 선명한지 ASMR 영상이 아닌가 생각이 될 정도였다.

         

       당연하게도 이는 매너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이양훈이 본다면 당장 혼이 날 만한 짓이기도 했고.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남에게 혼이 날 만한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한다는 것은 이아린이 박진성에게 느끼는 내적 친밀감을 설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어지간히 편안한 사람이 아니라면 이러한 행동은 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아무리 반쯤 본능에 맡긴 채 살아가는 것 같은 이아린이라고 해도.

         

       [ 들어갔다가 괜히 보안용으로 설치해 놓은 것에 걸리면 귀찮아질 것 같기도 했고~ CCTV 같은 곳에 찍혀도 뭔가 느낌이 이상할 것 같기도 했고~ 블랙박스에 내가 찍히면 잘못한 게 아니어도 묘한 느낌을 느끼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있어서? 그래서 안 들어갔지~ ]

         

       게다가 그 편안함을 느끼는 듯한 행동에 이은 것은 늘어지는 듯한 목소리.

       맹수가 늘어진 채 길게 소리를 내는 듯한, 혹은 누운 채 나른함을 가득 담아서 말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이 역시 친밀감을 느끼지 않으면 보여주지 않는 이아린의 일면이었다.

         

       [ 그리고 딱 느낌이 들었단 말이지? 응? 이 건물 안에는 오라비가 없다. 그러니 괜히 들어가봤자 뭐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겠다고 내 본능적인 본능의 야수적인 뭔가가 그렇게 속삭인 거야. 그래, 흑염룡보다도 흉포한 내 마음속의 야수가…!]

         

       “본능이?”

         

       [ 그렇지 뭐. 내 본능은 좀 잘 맞는 편이잖아? 그래서 그냥 돌아갔지. 오라비 없는 건물에서 내가 뭘 하겠어? 게다가 뭐 대단한 거 있는 것도 아니고…. 저번에 보니까 아주 텅텅 비어있던데. 누가 보면 노숙자가 철물점에서 반쯤 망가진 가전제품 훔쳐다가 흉가에 대충대충 놓아둔 것처럼 보일 정도라고. 휑하고, 필요한 것들만 있고. 귀신 나오겠어 귀신! 응? ]

         

       “흐음.”

         

       [ 내가 이렇게 막 잔소리를 하는 비혈연 메이트가 아니야. 어? 딱 할 것만, 여동생 스타일 알잖아? 할 거 다 하면 터치도 잔소리도 안 한단 말이야. 어둠의 자식들처럼 커튼 치지 말고! 쉴 때도 절도있게, 부지런하게! 청소도 좀 하고. 먼지 보이면 쓸고, 얼룩 보이면 좀 닦고! 그리고 침구류 일광 건조도 딱 하고! ]

         

       “또 이상한 것을 보았구나.”

         

       [ 어? 오래비도 그거 알아?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아서 본 영상인데 재미있더라. 근데 군 전역자들은 PTSD에 시달리던데? 댓글로 막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더라고. ]

         

       이아린은 히힛 하고 웃더니 팡-팡- 하는 소리를 내었다.

       소리를 듣자 하니 침대를 후려친 듯했는데, 분명히 엎드리거나 누운 채 발을 움직여서 침대를 때린 것이겠지.

         

       [ 그래서. 진짜로 CCTV 같은 걸로 나 확인하고 전화한 거야? 왜 온 건지 알려고? 오라비 지금 건물에 없을텐….]

         

       이아린은 거기까지 말하다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곤 날카롭게 세워진 감이 자신에게 속삭이는 것을 언어로 옮겼다.

         

       [ 아니. 건물에 들어왔구나? ]

         

       그녀의 본능이 말한다.

       건물 안에 박진성이 있다고.

         

       아까는 없었지만, 전화를 걸고 있는 지금은 건물 안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그러하다.”

         

       그리고 진성은 이아린의 추측에 긍정을 표했다.

         

       “그러하니 다시 이곳으로 오거라. 너에게 줄 선물이 있으니….”

         

       [ 선물? 선물은 항상 환영이지! ]

         

       그런데.

         

       [ 근데 음. 거기 다시 가는 건 조금? 그러네? ]

         

       이아린은 선물이라는 말에 혹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가 이내 거부의 의사를 표했다.

         

       [ 밤도 늦었고~ 괜히 이 시간에 나가려고 하면 엄마들이 잔소리할 게 뻔하고~ 우리 집 꼰대도 뭐라고 할 게 뻔하고~ 당장 뭐라고 안 해도 식사 때 또 한 소리 할 게 뻔하고~ 응.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가는 건 아닌 것 같은데. ]

         

       그녀가 말한 것은 정말로 타당한 이유였다.

       분명 그녀가 나간 것을 들키게 된다면 그녀의 엄마들이 늦은 시간에 돌아다니면 어디 밤길 무서운 줄 모르고 오밤중에 쏘다니냐면서 온갖 잔소리를 퍼붓겠지.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회초리를 들려고 한다거나, 예절 선생을 구해서 매너와 적절한 몸가짐에 대해서 교육하겠다고 엄포를 놓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어느 쪽이든 이아린으로서는 귀찮기 짝이 없는 일일 것이다.

         

       게다가 그녀가 ‘꼰대’라고 표현하는 이양훈 역시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최악의 상황에는 용돈을 끊어버릴 수도 있겠지.

       그렇게 된다면 이아린은 괴로워질 것이다.

       너무 괴로워져서…같이 한 배에서 나온 혈연 메이트 이세린에게 달라붙어서 찾아낸 보물을 자신에게 달라면서 끈질기게 구걸할지도 모른다!

         

       마치 문어가 먹잇감을 휘감듯 이세린의 몸에 찰싹 달라붙고, 이세린이 자신에게 자애와 자비를 베푸사 용돈을 하사하시지 아니한다면 절대로 떨어지지 않겠지. 이세린이 권능을 사용해서 도망을 간다고 할지라도 끈덕지게 따라붙을 것이고, 그녀의 사랑에 감동한 이세린이 성은이 망극하게도 하사품을 내리게 된다면 그제야 떨어져 그녀가 자신의 혈연 메이트임은 정말로 큰 행운이었음을 말한 뒤 그것을 아껴 쓰게 될 것이다….

         

       분명히 그렇게 되리라!

         

       그러니 이아린은 나갈 수 없었다.

       그런 끔찍한 가능성을 처음부터 없애버리기 위해서 말이다!

         

       [ 그러니 지금 안 갈래. 선물은 택배로 보내줬으면 좋겠어. 오래비도 그게 좋다고 생각하지? 어? 대답해. ]

         

       이아린은 강매라도 하듯 진성에게 택배로 부치라고 강권했다.

       그리고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무언가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 가사가….

         

       진성 택배~ 진성 택배~ 모두를 위한 하나의 택배~ 한 명을 위한 소중한 택배~ 진성 진성 진성 택배~

         

       실제 존재하는 택배 광고 노래를 살짝 바꾼, 진성이 직접 저택에 찾아오라는 의도가 숨김없이 듬뿍 들어가 있는 가사였다.

         

       그 노래를 들은 진성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그래. 기다리고 있거라.”

         

         

         

        * * *

         

         

         

       새가 펄럭이는 소리 없이 날개를 펼쳐 밤의 어둠을 가르며 나아가는 것처럼.

       몸에 날개가 있으니 어찌 거리낌이 있으랴?

         

       어깻죽지에 날개가 없다고 한들 몸을 구성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으니.

         

       진성의 몸은 분해가 되어 벌레의 떼가 되었다.

       그리고 벌레의 떼는 검은 안개가 되어 밤의 어둠에 손쉽게 녹아들었고, 그 어떠한 위협도 없이 허공을 날아서 최단 거리로 저택에까지 손쉽게 도달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저택에 도달한 진성은 CCTV가 없는 좁은 골목길에서 몸을 다시 조립하여 사람의 형상으로 만들었고, 적법한 절차를 통해 문을 통과하여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오, 왔네?”

         

       저택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난간에 있는 이아린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절묘하게 균형을 잡으며 난간에 누워 있었는데,

       편안하게 다리를 쭉 펴고,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바라보는 그 모습이 마치 와불(臥佛)을 보는 것 같았다.

       게다가 와불과 일치율을 높이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별생각 없이 그러했는지는 몰라도 와불이 입고 있는 옷과 비슷한 헐렁한 원피스 형태의 잠옷을 입고 있기까지 했다.

         

       “이봐 산타클로스. 선물은 들고 왔겠지? 뒤져서 나오면 선물 한 개에 원 인치 펀치 한 방씩 맞을 줄 알아.”

         

       이아린은 껄렁한 말투로 그렇게 말하더니, 한 손으로 난간을 잡고 몸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리곤 그 상태로 손을 놓으면서 몸을 튕겨 1층을 향해 떨어졌다.

       그녀는 체조 선수라도 되는 것처럼 멋지게 착지하더니, 보법을 사용해 순식간에 진성의 앞까지 거리를 좁혔다.

         

       그러고는 아까 했던 것과 연계되는 장난을 치려고 했으나….

         

       “음?”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장난을 치는 것을 그만두고 이상하다는 듯 진성을 살펴보았다.

         

       위화감.

       자신이 아는 박진성인 것 같은데, 자신이 아는 박진성이 아닌 것 같은 느낌.

         

       이아린은 위화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이내 뭔가를 깨닫고는 오~ 하는 감탄사를 뱉었다.

         

       “오~ 블루투스 주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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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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