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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4

       내가 기억하는 나이트 오브 나이츠는, 그야말로 인생을 갈아 넣을 정도로 최고의 갓겜이었지만-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이룬 게임은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상업적 성공을 오래 이어나간 게임이 아니었다.

         

        베타부터 시즌 1 까지는, 하나의 센세이션이었으니까.

         

        AOS 특유의 재미에 더해, 자신의 손으로 직접 중세 공성전에 참여하는 쾌감.

        캐릭터와 특성의 조합에 따라 일견 무궁무진해보이는 전략.

        그리고 약간의 랜덤성이 가미된 덕분에, 패배해도 운빨망겜을 외칠 수 있는 구조.

         

        나오나는 중세 분위기 게임이라면 바닥까지 핥아먹는 유저들이 즐비한 미국과 유럽에서 먼저 대히트를 쳤고-

         

        시즌 1 종료 기념 세계대회에서 유저도 별로 없던 한국이 뜬금없이 준우승한 것을 계기로, 한국에서도 가장 인기있는 게임으로 자리잡았다.

         

        슬며시 끼얹어진 국뽕 한 사발은 생각보다 효력이 강했다. 때마침, 적절한 이스포츠용 게임이 없기도 했고.

         

        그렇게 나오나는 빠르게 성장했고- 나를 비롯한 프로게이머 지망생들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그러나 그 영광은 길지 않았다.

         

        당장 재밌는 게임도, 플레이 기간이 길어지고 프로들에 의해 분석되면 단점과 문제들이 더 부각되는 법이니까.

         

        정말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지만……일단, 수호병 너프 패치가 너무 늦었다.

         

        사람들은 전장을 휩쓰는 기사, 마법사, 궁수, 도적이 되고 싶었지, 전장에 휩쓸리는 보병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닌데.

         

        가장 인기있는 직업군이었던 성기사는 수호병에 쓸려 나가거나, 수호병 뒤에 숨은 궁수와 법사에게 쓸려 나가고…….

         

        그 와중에 성기사는 이미 인기 있다는 이유 만으로 버프조차 되지 않았고, 가장 재미없는 사제는 무한한 버프를 받았다.

         

        그 결과, 당시 사제는 힐과 버프마저 첨탑에서 원거리로 줬다.

         

        양심이 있어야지 진짜.

         

        그런 모든 게 조합되어 빌드도 전략도 고착화되며, 나오나의 인기는 시즌 3 초장부터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저물기 시작하였고-

         

        시즌 5가 마무리될 무렵에는, 동네 피시방에서도 한 두 자리 정도나 찾아볼 수 있는, 흔한 망해가는 게임이 되었다.

         

        과거 누렸던 영광의 편린만 남아있는, 그런 게임. 커뮤니티에 ‘ㅇㅇ게임 근황’이란 제목으로 글이 올라오면, ‘캬~ 그거 그 때 재밌었는데’ 아니면 ‘아직 섭종 안 함?’ 따위의 댓글들이 달리는, 그런 게임.

         

       요약하자면, 그 때부터 시즌 8까지- 약 3년의 기간 동안에도 내가 계속해서 사랑했던 나오나는, 망겜 특유의 모든 요소를 갖춘 게임이 되었다.

         

        밸런스 패치? 신규 특성 추가? 당연히 없었다. 새로 도입되는 건 각종 유료 치장 아이템뿐.

         

        심지어 시즌 8 시작을 앞두고는, 이제 시즌패스를 사야만 온라인 플레이가 가능하게 하겠다는 공지도 있었다.

        

       전세계의 나오나 유저 – 라고 해봐야 그 무렵엔 한 줌이었지만 – 가 모두 합심해서 온갖 커뮤니티의 게시판을 불태운 끝에 결국 그 패치를 막아낸 일은, 지금도 그럭저럭 괜찮은 추억이다.

         

        돈을 내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그 지경이 된 나오나를 하는 고인물들은, 치장템에만 어마어마한 돈을 박은 망령들이었으니.

        

       다들, 안 그래도 부족한 유저가 더 줄어드는 것이 싫었을 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이미 꼬우니 접을게를 시전한 유저가 한 트럭이었다.

         

        그 결과로 남은 시즌 8의 나오나는, 처절한 게임이었다.

         

        인외마경에 가까웠다고 해야하나.

         

        고일대로 고인 랭크 게임에 지쳐서 양학이나 하자고 부캐를 만든 나약한 다이아 유저는, 수상할 정도로 어제 랭크에서 만난 마스터 유저와 비슷한 놈을 뉴비존에서 만난다.

         

        레벨업 따위 없이 바로 랭크에 참여할 수 있어, 부캐를 키우고 만들기 매우 용이한 시스템의 폐해였다.

         

        그 틈바구니에 가끔 등장하는, 어쩌다가 온 건지 모를 뉴비는 영혼까지 갈아 먹히고 쌍욕을 하며 접었으니, 남은 건 정말 꼬장꼬장한 고인물들 뿐이었다.

       

        컨텐츠?

       

        추가될 리가 있나.

       

        제일 인기있는 컨텐츠는 부캐로 [하와와 순진한 뉴비장이에오] 거리다가 갑자기 본색을 드러내서 모두를 도륙내는 거였고,

       

        제일 재미있는 컨텐츠는 그런 놈들을 역으로 잡아낸 뒤, 뉴비 행세하다 털린 놈을 만천하에 박제하는 거였다.

       

        나는 후자 취향이었고.

       

        그러니까,

         

        그 막바지 랭크 게임에서 티어 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판수도 아무 의미가 없었고.

         

        그 시절 랭크 게임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오로지 상대를 알아보는 능력 뿐이었다.

         

        갑옷과 무기의 조합. 스텝을 밟는 방향. 공격을 하는 순서. 상대방을 추격할 때 사용하는 이동기. 스태미너 관리 정도. 공격의 템포. 선호하는 방어나 회피 방향. 상대 병사, 혹은 중립 몬스터를 사냥하는 순서.

         

        사람인 이상 모두 숨기고 고칠 수는 없는 그 습관들은, 사실상 하나의 지문이나 다름없었다.

         

        이걸 다 조합해서 ‘어? 모르겠는데?’ 싶으면 귀하디 귀한 뉴비니 적절히 접대하고, ‘저 놈 걔네’ 싶으면 그 때부터 그에 맞춰 작전을 짜는게 정석적인 플레이였으며-

       

        승리를 쟁취한 다음엔, 어떤 한심한 놈이 감히 뉴비 행세를 하며 뉴비존을 어지럽혔는지 갤러리에 박제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니,

       

        무려 네 번째로 만나는 사람을. 그것도, 움직임만 봐도 최소 마스터 급임이 느껴지는 실력을 가진 사람을 못 알아보면, 나오나 고인물 간판 떼야 한다.

         

        게다가, 지금의 나오나는 VR게임이 된 탓에, 더욱 알아보기 쉬웠다.

         

        무기를 고쳐 잡는 습관이나, 선호하는 손과 발을 비롯해서, 본래는 주어지지 않던 정보들이 무더기로 주어졌으니까.

         

        “맞는 거 같은데.”

         

        다시 말해, 이건 자존심의 문제다.

         

        나오나는 질 수도 있지만, 사람을 못 알아볼 순 없어.

         

        ……저 사람도 스트리머니까, 혹시나 방송 송출이 부담스러울까봐 화면이랑 목소리도 꺼줬는데.

         

        “빌드깎는노인님, 맞죠? 방송 안 나가니까 대답해요.”

        

       배려해줄 때, 현명한 판단을 하길 바랄 뿐이다.

        

       광전사에게 허락할 배려는 많지 않고, 그 주구를 위한 내 인내심도 그리 깊지 않으니.

         

        * * * *

         

        《대답, 안 하나요?》

         

        ‘이렇게, 노골적으로 바로 물어본다고? 그것도 방송 중에?’

         

        당혹감을 애써 삼키며 이예나의 방송에 다시 접속한 레반이 마주한 것은, 까만 대기화면. 그리고 미쳐 날뛰는 채팅창이었다.

         

        『???방송 꺼짐?』

        『눈나…여기 너무 추워ㅠㅠ 눈나…여기 너무 추워ㅠㅠ 눈나…여기 너무 추워ㅠㅠ 눈나…여기 너무 추워ㅠㅠ 눈나…여기 너무 추워ㅠㅠ 』

        『문 열어!! 문 열어!! 문 열어!! 문 열어!! 문 열어!! 문 열어!! 문 열어!!』

       『레반이랑무슨얘기하고있어지금레반만난거반가워서일부러방송끄고게임하려는거지다알아내가좋아했는데내가제일먼저좋아했는데』

       

        게임은 진행 중이었지만- 인게임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아따먹(도적): REVAN님, 보이스 안 켰어요?]

        [아따먹(도적): 대답, 마지막 기회.]

       

        이예나는, 방송 송출을 실질적으로 중단한 상태였다.

       

        이걸 배려라고 봐야할까.

       

        아니면, 나는 네가 당장 대답하지 않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미친놈이라는 협박이라고 봐야할까.

       

        그 혼란 속에서, 레반은 눈을 질끈 감고 입을 열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고심 끝에 그가 내린 선택은, 오리발이었다.

       

        지금 가장 화제인 여성 나오나 스트리머 방송을 부계정으로 보다가, 단 둘이 커스텀방으로 결투했다는 사실을 5,000명 앞에서 공개하라고?

       

        그것도, 저……팬덤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악질 시청자 덩어리를 진두지휘하는 스트리머를?

       

        메일함이 터져나갈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도저히 고를 수 없는 선택지였다.

        

       《아. 그러시구나.》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게임 보이스에서만 들려오고, 정작 방송에선 송출되지 않는 목소리.

       

        《일단 알겠습니다. 방송도 다시 킬게요.》

       

        《생각 바뀌면 말해요.》

       

        .

        .

        .

       

       

       

       《무기를 왼손, 오른손, 왼손 순으로 고쳐잡고 터시네요. 빌깎노님도 그러시던데.》

       

        2번째로 탑을 찌른 직후,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던 이예나가 남긴 말이었다.

       

        빌깎노가 대체 누구냐고 난리났을 채팅창이 눈에 선했다.

       

        《스텝 밟고 돌진하기 전에 왼발로 자리를 잡으시네요. 빌깎노님도 그러시던데.》

       

        3번째로 탑을 찌른 후에도, 잠시 레반을 빤히 응시하다가 한 마디를 툭 던지고 떠나간 이예나는,

       

        《대치 상황에서 견제기를 참으면서 거리를 재는 스타일이시네요. 빌깎노님도 그러시던데.》

       

        중앙 한타가 끝난 후에도, 몇 초를 할애해서 그의 앞에 서더니 속삭여왔다. 

       

        《싸움 끝나면, 무기수납부터 하시네요. 빌깎노님도 그러실 것 같던데.》

       

        ‘아니, 그러실 것 같은 건 뭔데……!’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도저히 참지 못하고 이예나의 방송에 접속해본 결과- 예상했던 대로, 채팅창에 모인 5,000여명의 사람들은 난리가 나다 못해 폭주 중이었다.

       

        레반에게 빨대를 꽂으려 드는 행태가 역겹다는 부류부터,

       빌깎노가 대체 누구냐는 사람들,

       레반과 뒷결 아니냐는 억지의혹을 굴리는 분탕들과,

       빌깎노가 둘만의 비밀 애칭이라고 날뛰는 미친놈들에,

       둘이 원래 아는 사이였는지, 친했는지 의문을 표하는 시청자들까지.

       

        모든 것이 조합된 결과는- 그야말로 악몽과도 같은 채팅창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대체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까.

       

        지금 자신이 그 때 일대일을 했던 빌드깎는노인이 맞다고 인정하면, 한 번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조차도 온갖 억지떡밥으로 점철될 것이다. 그야말로 장작을 활활 태우는 기름같은 역할을 할 것이 눈에 선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침묵을 지키기에는…….

        

       《거리는 본인 무기 리치에 두 걸음을 더한 거리를 유지하시네요. 빌깎노님도-》

        

       침묵과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이, 끝도 없이. 정말 말 그대로 끝도 없이, 스스로도 몰랐던 습관들을 열거하고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레반이 택한 건, 중재인 호출이었다.

        

       [레반: 아크님]

       [레반: 혹시 계신가요]

       [레반: 혹시 아따먹님 연락 되시면]

       [아크: 아, 네 레반님!!]

       [레반: 제발 일단 그만해주시라고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크: ……네, 뭔지 모르겠지만 힘내세요…….]

       [아크: 바로 연락해볼게요…….]

        

       그에 대한 답변은, 어지러운 와중에도 호흡을 맞춘 성기사와 도적의 캐리로 승리를 쟁취한 후에야 들려왔다.

        

       [아크: 인정하냐고 물어봐 달라는데요……?]

       [아크: 무슨 일 하셨어요……?]

       [레반: ……그 분, 디스코스 아이디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레반: 제 아이디 알려주셔도 괜찮고요…….]

       [아크: 아…….]

       

       [아크: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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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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