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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4

       다리에 힘이 빠진 것 같은 사라를 부축해서 방에 데려다주었다. 다행히 도어락은 사라의 손가락 지문을 제대로 인식했다. 잠긴 문을 열고 들어가 일단 사라를 침대에 앉혔다.

        

       언제나 사라 옆을 따라다니던 메이드는 보이지 않았다. 방에 들어가서도 침대에 힘없이 앉아있는 사라를 그대로 두고 나올 수 없어서, 유하늘, 이수아, 신소희는 힘을 합쳐서 사라의 옷을 갈아입혀 주었다.

        

       사라의 상태 때문이었을까. 그러면서도 별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사라가 걱정될 뿐이었다.

        

       파자마로 갈아입은 사라를 침대에 눕히고, 세 사람은 어색하게 잠시 서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방으로 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이 방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사라 외에는 메이드와 회장뿐이라고 했었다. 메이드가 보이지 않는 시점에서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오늘은, 이만 가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사실, 유하늘은 옆에서 사라를 돌보고 싶었다. 아마 신소희와 이수아도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침대에 누워 유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라는, 몹시 혼자 있고 싶어 보였으니까.

        

       사라는 유하늘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하늘, 신소희, 이수아는 서로를 한 번 바라보고, 사라에게 작게 인사했다.

        

       “월요일에 보자.”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

        

       사라는 조용히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세 사람은 조금은 주춤거리며 사라의 방을 떠났다.

        

       삐리릭, 하면서 도어락이 찰칵 잠겼다.

        

       ……그 소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 사라는 꼭 그 세 명이 저택 바깥으로 나갈 때면 함께 대문 앞까지 나와주었다.

        

       이제 저 잠긴 문은, 사라가 다시 열어주기 전까지는 열 수 없다.

        

       “……가자.”

        

       얼마나 문 앞에 멍하니 서 있었을까. 유하늘이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그녀가 걷기 시작하자, 나머지 두 명도 따라 걸었다.

        

       복도를 걸으면서도, 계단을 내려오면서도 서로 대화하지는 않았다.

        

       각자 생각에 빠져있었다. 아마 그 생각의 대상은 사라일 거라고, 유하늘은 쉽게 예상해 볼 수 있었다.

        

       쓸데없이 넓기만 한 이 저택은 입구로 빠져나오는 데까지도 시간이 걸렸다.

        

       다행인지 아닌 건지, 전속 메이드를 제외하면 나머지 사용인들은 그대로 있는 모양이었다. 저택의 커다란 문 앞에 서 있던 두 명의 사용인이 문을 열어주었다.

        

       세 사람은 계속 말없이 걸었다.

        

       저택에 딸린 널따란 앞마당을 지나, 대문으로 가는 길이 유독 길게 느껴졌다. 사라 한 명이 없을 뿐이었는데도.

        

       저택의 대문을 지났다.

        

       고작 그 선 하나만 넘었는데도, 정체되어있던 공기가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세상 바깥을 수많은 사람이 거닐고 떠들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정적이던 저택의 안과는 완전히 딴판인 분위기.

        

       이제야, 사라가 지금껏 어떤 삶을 살았는지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모두 잘못된 것이었다. 그녀들이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사라의 삶의 일각뿐이었다. 그 아래, 저 아래까지, 심장을 차갑게 얼려버릴 수 있을 정도로 냉담한 현실의 저 깊숙한 곳까지, 사라의 삶은 가라앉아있었다.

        

       “…….”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머리 안이 생각으로 가득 차서, 유하늘은 두 친구에게 무슨 말로 인사를 해야 할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잠깐 주춤거리고 있는데—

        

       “여러분.”

        

       누군가가 그녀들을 불렀다.

        

       여성용 정장을 차려입은 한 젊은 여성이었다. 옆에는 작은 여행용 캐리어 하나가 서 있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메이드복을 입고 있었던, 그 사람이었다.

        

       “저…….”

        

       유하늘이 잠깐 망설이듯 우물쭈물하자, 그녀는 허리를 살짝 숙여 보이며 말했다.

        

       “바로 조금 전까지 예사라 아가씨의 전속 사용인이었던 양혜인이라고 합니다.”

        

       “네…….”

        

       ‘조금 전까지’라고 했던 것은 지금은 아니라는 말일까?

        

       신소희와 이수아도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양혜인은 세 사람을 천천히 번갈아 바라보더니,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혹시, 잠시 시간 되시겠습니까?”

        

       *

        

       그 세 명이 다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얼른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몸에 힘은 돌아온 모양이다. 다행이야.

        

       이불을 옆으로 치우고, 얼른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곧장 예사라의 책상 쪽으로 갔다.

        

       예사라가 남겨둔 몇 안 되는 기록.

        

       비록 짧은 기록이긴 했지만, 그 안에 예사라의 생각이 담겨있었다. 내가 처음 읽었을 때와 예사라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게 된 후인 지금 읽는 것은 느낌이 다를 것이다.

        

       어쩌면 지금 읽어봐야 예사라의 생각을 제대로 알 수 있을지 모른다.

        

       운이 좋다면 예사라의 기억이 떠오를지도—

        

       하지만, 내가 열어본 세 번째 서랍에는 그저 노트 하나가 덩그러니 들어있을 뿐이었다.

        

       편지 봉투도, 약통도 없었다.

        

       “……어.”

        

       한참 동안 굳은 채로 그 서랍을 내려보다가, 그대로 힘이 쭉 빠져서 책상 서랍에 머리를 기댔다.

        

       아, 그렇구나.

        

       이 방은 나 혼자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방학이나 주말이 아니라면, 사실 이 방은 비어있는 시간이 더 길었으니까.

        

       청소하는 메이드가 들어올 수도 있고,

        

       ……책상 서랍을 열어볼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그동안은 너무 당연하다는 듯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아서 너무 당연하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당장은 회장이 그대로 돌아가긴 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몰랐으니까.

        

       양혜인이 오늘 나에게 보인 반응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나와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모습. 평소와는 다르게 어딘가 어색하고 불편해 보이는 모습.

        

       만약 그 편지를 읽었다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혹시 회장에게 그 편지를 전달했을까? 아직 혼자 가지고 있을까?

        

       회장의 반응을 보면 아직 회장에게 그 편지를 넘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 인간이 그 편지를 읽고 아무렇지도 않을 리가 없으니까.

        

       나는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파자마를 입은 채였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밖으로 나갈 일은 없을 테니까.

        

       언제나 이 저택에 있던 사람이니까.

        

       하지만, 나는 그날 양혜인을 찾을 수 없었다.

        

       *

        

       주말이었기 때문일까? 카페 대부분은 사람으로 붐볐다.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를 몇 곳 정도 들어갔다가, 자리가 없어서 다시 밖으로 나오기를 반복하다가 우연찮게도 지난번에 사라와 함께 왔던 어느 골목 구석의 카페에 들어왔다.

        

       제일 앞에서 앞장서고 있는 양혜인은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

        

       유하늘은 그녀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렇게까지 사라를 괴롭히는 집안의 사람이었다. 뒤에 감시인을 붙여두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각자 앞에 커피 한 잔씩을 두고, 마주 보고 앉았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둥근 탁자를 가운데 두고 양혜인 혼자 세 사람을 상대하는 것 같은 모습이 되었다.

        

       하지만 양혜인은 크게 신경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하고 싶으신 이야기가 뭔지 알 수 있을까요?”

        

       유하늘은 목소리에 가시를 세우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그렇게 물었다.

        

       “예사라 아가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메이드를 그만두었다면서도 여전히 메이드다운 말투를 버리지 못한 그녀였다.

        

       “……어떤 이야기인가요?”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서,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양혜인의 목소리는 어디까지나 차분했다.

        

       “여러분은 예사라 아가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느끼고 계십니까?”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질문을 받은 세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저는, 둘도 없는 친구라고 생각해요.”

        

       유하늘이 내놓은 대답은 다소 소극적이었다. 물론 둘도 없는 친구라는 말이 결코 가벼운 말은 아니다. 모든 친구 중에서 단 하나라는 뜻이니까.

        

       하지만 동시에, 그 말은 모든 친구에게도 똑같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사실 그 아래 숨겨진 마음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아직 대놓고 드러내기에는 영글지 못했다. 그녀도 아직 그 마음이 정말로 ‘그런’ 마음인지 확신하지 못했으니까.

        

       “저는…… 사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수아의 대답이었다.

        

       물론, 새장에 갇힌 새가 되고 싶다는 소리는 아니리라. 오히려 그 반대였다. 당당하게 새장을 열고 밖으로 나와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가는 새. 이수아의 눈에 사라는 그런 사람인 모양이었다.

        

       “나는 좋아하는데.”

        

       마지막으로, 신소희가 대답했다.

        

       그녀는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냈다.

        

       “결혼도 하고 싶고.”

        

       심드렁한 표정. 탁자에 턱을 괸 자세. 얼핏 보면 딱히 진심이 담기지 않은, 비꼬는 말이나 별생각 없는 말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그녀의 행동을 알고 있다면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으리라.

        

       그녀에겐 그 사실이 너무 당연해서, 부끄러워하거나 용기를 내서 고백해야 할 말이 아니라는 것을.

        

       유하늘은 그녀의 그런 면이 조금은 부러웠다.

        

       “그렇습니까…….”

        

       양혜인은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아가씨를 위해, 어디까지 힘써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

        

       세 사람 모두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그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들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대답이 하나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세 사람의 분위기를 보았는지, 양혜인은 딱히 대답을 기다리는 기색도 없이 품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하얀 봉투였다.

        

       혹시 돈이라도 쥐여주고 헤어지라고 할 생각인가. 유하늘은 그렇게 생각하다가, 그 봉투의 끝이 뜯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봉투에는 ‘어머님께’라고 쓰여있는 것도.

        

       “이걸, 읽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양혜인은 그 편지를,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

        

       세 사람은 잠깐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편지를 집어 든 것은 유하늘이었다. 국내에서 제일 부자인 사람의 밑에서 일하던 전직 메이드가 가져온 편지 봉투라기에는 딱히 고급스러운 재질은 아닌 것 같았다.

        

       안에 있는 편지지도 마찬가지였다. 동네 아무 문구점이나 가도 살 수 있는 얇고 별다른 장식 없는 흔한 편지지였다.

        

       하지만 편지의 내용은 결코 흔한 것이 아니었다.

        

       “아.”

        

       처음 몇 줄을 읽고, 유하늘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리고 곧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

        

       두 사람이 유하늘 옆으로 바싹 붙었다.

        

       그 편지가 무슨 편지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이 편지를 가져온 것이 양혜인이었다. 그리고 편지를 보여주기 전에 한 말. 덕분에 직접 편지를 보지 않은 두 사람도 대충 그 편지가 누구와 연관되어있는지 쉽게 떠올릴 수 있었으니까.

        

       “…….”

        

       얼핏 편지를 읽은 두 사람도, 유하늘과 비슷한 반응이었다.

        

       뻣뻣하게 굳어버린 얼굴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만큼, 그 편지의 내용은 그 세 사람에게 충격적인 것이었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코제트님, 후원 감사합니다!

    한번에 이렇게 많은 돈을 후원해주시다니, 너무나 감사드립니다ㅠㅠ 이제야 주요 인물이라고 할만한 사람들이 다 나올 수 있었네요. 여기까지 썼으니 드리는 말씀이지만, 사실 최나경은 초기(소설 쓰기 시작하기 한참 전, 아이디어 단계)에는 여자 캐릭터는 아니었습니다. 남자였고, 사라와의 관계도 양부모가 아니라 친부모 관계였어요. 당연히 지금같은 관계는 아니었고, 훨씬 더 단순한 캐릭터였습니다. 자신의 딸을 정계진출의 도구로 보는 피도 눈물도 없는 캐릭터였는데, 사실 이렇게 해봐야 그냥 불쾌하기만 하고 캐릭터는 캐릭터대로 너무 단순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성별을 바꿔보고, 사라를 이런 상태로 만든 이유를 비틀어버렸더니… 이런 캐릭터가 되었네요. 저는 이쪽이 더 마음에 들어서 좋지만, 독자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몰라 조금 불안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반응해주시는 것을 보니 제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도 독자 여러분께서 보시기에 재미있는 전개를 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소설을 쓸 때마다, 특히 전개에서 중요한 부분을 드러내야 할 때마다, 업로드하면서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부분인데 독자 여러분께서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자꾸 들고, 업로드 시간이 지날때까지 심장이 쿵쿵 뜁니다. 막상 전개가 드러나고 독자 여러분께서 그 전개를 보고 즐거워해주시면 마음이 확 놓이면서 안도하게 되죠. 저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느끼시는 그 즐거움이 제가 글을 쓰는 이유니까요.

    다시 한 번, 후원 감사드립니다! 계속 정진하여 더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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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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