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64

       아피스가 기량에 따라 캐릭터의 성능이 천차만별로 나뉘는 게임은 맞다.

       

       특히 손을 많이 탄다는 기 캐릭터, 그 중에서도 아피스 최고의 실력 캐릭터로 불리는 천마를 극한에 가깝게 다루는 화령이라면 그 성능이 격을 달리해도 이상하지는 않다.

       

       이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저건 너무하잖아.

       

       전프로를 3초컷 내는 인간을 어떻게 이기라는 거야!

       

       하루종일 분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이순은 데케이의 섭외를 수락한 걸 후회했다.

       

       이건 그의 검신을 위한 장대한 데뷔 무대 같은 게 아니었다.

       

       이건 화령이라는 괴물이 아피스에 출현했음을 알리는 경종의 장이었다.

       

       그리고 이순은 그 희생양으로 낙점된 불쌍한 아이에 불과했다.

       

       대회 당일이 되어 화령의 모습을 두 눈으로 본 순간 이런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그는 보았다.

       

       천마 유저로써 그 실력을 인정받은 당소일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패하는 모습을.

       

       언제 우승해도 이상하지 않단 소리를 듣던 유저가 바닥을 구르는 광경을.

       

       누군가는 참패를 당하는 당소일의 모습을 보며 비웃었지만 이순은 그럴 수 없었다.

       

       저 모습은 훗날 그의 모습이 될 예정이었으니까.

       

       운 좋게도 이순은 화령과 가장 먼 곳에 자리를 배정 받았다.

       

       앞으로 계속 이겨나간다 한들 화령을 만나는 곳은 맨 마지막. 결승전이었다.

       

       그럼에도 이순은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기뻐할 수 없었다.

       

       차라리 광탈을 당하는 게 나았다.

       

       결승은 모두의 주목을 받는 자리다. 사람들의 이목이 가장 많이 끌리는 자리란 말이다.

       

       패배가 예견된 상황에서 그 곳에 선다는 건 괴롭힘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대회 같은 거 참가하지 않았을 텐데.

       

       요전 대회에서 2군 프로를 압살하고 너무 기고만장해져 있었나.

       

       조금만 겸손했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 아냐!

       

       이순은 속으로 한탄을 했지만 그런다고 바뀌는 건 없었다.

       

       그는 이미 대회에 참가해 버렸으니까.

       

       첫 경기에서 맹주를 만났을 때 이순은 진지하게 일부러라도 지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했다.

       

       맹주 정도면 괜찮은 실력의 유저고 이 사람에게 진다해도 크게 욕먹을 일은 아니었다.

       

       이런 생각을 가로막은 것은 아쉬움이었다.

       

       오늘을 위해 미친 듯이 검신을 연습했는데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떨어지기엔 그동안의 노력이 너무도 아까웠다.

       

       그래서 이순은 맹주를 상대로 실력을 보인 후 떨어질 계획을 짰다.

       

       8강, 아니면 4강 정도에서 적당히 탈락을 하고 화령에게 참패하는 역할은 다른 사람에게 넘기자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맹주를 쓰러트리고 나오면서 화령과 눈을 마주한 순간 그는 모든 걸 체념했다.

       

       그를 바라보는 화령의 눈빛은 사냥감을 바라보는 맹수의 눈이었다.

       

       어설프게 도망치려 한다면 쫓아가 찢어 죽여 버릴 것만 같은 그런 눈이었다.

       

       이순의 체념에 쐐기를 박은 것은 화령에게 시비를 걸었던 맹주가 참교육을 당한 모습이었다.

       

       겁에 질린 듯 바닥에 주저앉아 이빨을 떠는 맹주는 겁에 질려 있었다.

       

       화령이 무언가를 한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맹주의 손목을 붙잡은 채로 맹주를 노려보기만 했다.

       

       그런데 이 꼴이다.

       

       만약 자신이 어설픈 싸움으로 탈락한다면 화령이 모를까? 그럴 리가.

       

       자신과의 싸움을 회피한 걸 안다면 저 사람은 어떻게 반응할까? 적어도 유쾌하진 않겠지.

       

       미움을 살지도 모른다. 아니 미움을 살 것이다.

       

       그럼 화령은 분명 자신을 가만 내버려 두지 않겠지. 

       

       맹주를 부축하며 자리로 돌아 온 이순은 차라리 최선을 다하고 나서 발리기로 결심했다.

       

       맹수에게 미움을 사는 것보단 남들의 놀림거리가 되는 편이 나았다.

       

       그렇게 이순은 본인이 바라던 대로 자신의 검신 실력을 뽐내게 되었다.

       

       다른 참가자들도 나름 아피스 최상위에 속한 유저들이었지만 그의 검 앞에서는 무력했다.

       

       그를 상대했던 모든 참가자들이 그를 칭찬했다.

       

       실력이 엄청나게 늘었다고.

       

       검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다고.

       

       다음 번엔 검신으로 대회에 출전해도 무조건 우승할 것 같다고.

       

       귀가 간지러운 소리를 들으면서도 이순은 기뻐할 수 없었다. 그에겐 승리의 길이 처형대로 향하는 길처럼 보였으니까.

       

       당연한 일이지만 화령도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며 결승까지 올라왔다.

       

       2.7초라니. 그게 대회에서 나올 만한 숫자야?

       

       데케이 그 인간은 대체 저걸 어떻게 이기라고 대회에 초청을 한 거야?!

       

       결승의 상대로 화령을 만난 순간 이순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화령의 눈빛에 잡아먹힐 것 같았기에.

       

       할 수만 있다면 당장에라도 뒤로 돌아서 도망을 치고 싶었기에.

       

       하지만 이순은 얌전히 경기에 들어갔다.

       

       도망치기에는 이미 너무 먼 길을 와버렸으니까.

       

       이순은 맵을 확인하고 나서 심호흡을 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최선을 다해보자.

       

       화령에게 상처라도 입혀보자.

       

       이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화령은 단 한 번도 데미지를 허락하지 않았다.

       

       대회뿐만이 아니었다. 화령이 랭크에서 마스터를 전승으로 찍는 동안 그녀의 피를 깎아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가 아피스를 하며 상처를 입은 적은 단 한 번 뿐이었다.

       

       게임을 시작한 첫 날 데케이에게 입었던 상처가 화령이 입은 처음이자 마지막 상처였다.

       

       그 한 번 때문에 요즘 데케이가 재평가를 받듯이, 나도 발악을 해서 상처 한 번을 입히면 언젠가 재평가를 받을 수 있을 거야.

       

       이순은 처음부터 전력을 다했다.

       

       온힘을 쏟아서 공세를 퍼부었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반격도 생각하지 않았다.

       

       죽어도 괜찮으니 화령에게 상처 하나라도 내보자고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닿지 않았다.

       

       하나도.

       

       단 하나도.

       

       쏟아지는 연격 속에서 화령은 평온했다.

       

       미소를 흘리며 검을 걷어내는 그 모습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강아지와 놀아주는 것처럼 긴장감 없는 모습이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이순의 검을 박살낸 사람이 없던 건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많았다. 이순이 아무리 실력이 좋다한들 그보다 잘하는 사람은 차고 넘쳤으니까.

       

       그렇지만 일말의 위협조차 주지 못한 적은 없었다.

       

       예상은 했지만 진짜 이렇게 될 줄은!

       

       이순의 연격이 이어지던 어느 순간 화령이 처음으로 주먹을 내밀었다.

       

       아주 짧은 틈이었다.

       

       검로와 검로 사이에 존재했던 0.1초가 될까말까한 아주 자그마한 틈.

       

       화령은 그걸 놓치지 않고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

       

       물론 이순도 반응을 하려고 했다.

       

       화령의 권에 대응하고자 했다.

       

       그가 자랑하는 연격으로 주먹을 걷어내려고 했다.

       

       그렇지만 허사였다.

       

       화령의 주먹은 단순한 주먹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깨부수는 일권이었다.

       

       자신의 앞에 있는 모든 것을 박살내는 압도적인 폭력이었다.

       

       모든 검로가 박살난 이순은 그 즉시 물러서는 것을 택했다.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그 자리에 더 있으면 그대로 화령의 권에 잡아먹힐 것 같았기에.

       

       화령은 멀찍이 떨어진 이순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기뻐하거라. 본인은 그대가 마음에 들었다.”

       

       그 말에 이순은 도저히 웃을 수 없었다.

       

       안다.

       

       자기보다 한참은 윗선에 있는 사람이 인정을 해준다는 것은 그의 장래를 인정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기뻐해도 좋은 일이라는 걸.

       

       그렇지만 아직 나오지 않은 뒷말이 너무도 두려웠기에 이순의 표정은 굳어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좀 힘을 내마.”

       

       역시 좋은 말이 아닐 줄 알았어.

       

       “아뇨. 그러실 필요는.”

       

       없는데요.

       

       이순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화령이 발을 내딛은 순간 주변의 중력이 몇 배는 되어버린 듯한 압박감이 그를 찍어 눌렀기 때문에.

       

       이게 무슨 기술인지에 관해선 이순도 알았다.

       

       천마군림보.

       

       천마의 트레이드 마크이자 효율이 너무 안 나와서 예능기로 전락해버린 기술.

       

       아피스에서 천마군림보는 모두가 인정하는 예능기다.

       

       내기는 더럽게 많이 잡아먹는데 그걸로 나오는 결과는 주변 건물이 삐거덕거리는 정도가 끝.

       

       상대 유저에게 주는 데미지는 없다시피한데 그렇다고 다른 디버프를 주는 것도 아니다.

       

       처음 천마를 시작한 유저가 호기심에 써보고 이딴 게 천마군림보? 를 외치며 봉인하는 기술이 천마군림보일텐데.

       

       왜 화령이 쓰는 천마군림보는 이런 거지?!

       

       숨이 막힌다.

       

       발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팔을, 손을 움직이는 것조차 버겁다.

       

       억지로 고개를 들어 다가오는 화령의 모습을 본다.

       

       화령은 너무도 거대했다.

       

       그녀가 발을 움직일 때마다 세상이 울렸다.

       

       그녀의 존재감이 너무도 커서 태양빛조차 그녀를 넘지 못했다.

       

       화령의 그림자 아래에서 세상이 검게 물드는 것 같았다.

       

       이기라고? 저걸?

       

       어떻게?

       

       이순은 속으로 데케이를 욕하며 검을 잡은 손잡이에 힘을 더했다.

       

       거인이 그의 앞에서 팔을 치켜들었다.

       

       *

       

       음. 역시 실력 있는 녀석들이 좋다.

       

       자신만의 심지를 가진 녀석들은 가지고 노는 맛이 있으니 말이다.

       

       내 억지에 어울리게 된 이순은 경기가 진행됨에 따라 점차 질린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게 되었지만 어쩌겠느냐.

       

       나의 상대가 된 이상 감수해야 할 일이었다.

       

       정 험한 꼴을 피하고 싶었다면 자신의 실력을 숨겼어야지.

       

       무얼. 이순에게도 나쁘기만 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벽을 느껴본다는 것이 이후의 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 일인데.

       

       한 번 자신의 생각하던 모든 게 박살 나봐야 더 높은 곳으로 갈 수 있는 법이다.

       

       우승을 결정짓고서 돌아오자 박수소리가 돌아왔다.

       

       대개는 의례적인 것이었다.

       

       본인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이는 하린이나 편사러브 정도였다.

       

       다른 이들은 박수를 치면서도 어딘가 떨떠름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너무 압도적이긴 했나 보구나.

       

       보통 이런 자리에선 성의껏 축하를 하기 마련이거늘.

       

       영혼 없는 축하가 끝난 후에 데케이가 대회의 마무리를 진행했다.

       

       별 것은 아니었다.

       

       이런 대회를 진행하면 으레 있는 공치사 같은 것이었지.

       

       상위의 성적을 거둔 이들을 모으고 수상 소감을 이야기하는 흔한 절차였다.

       

       인터뷰를 하는 것은 3위부터였는데 그 자리는 자신의 상대를 가벼이 꺾은 하린의 것이었다.

       

       그녀는 이런 인터뷰를 해 볼 일이 몇 번 있었는지 말을 하는데 능숙했다.

       

       이런 인터뷰를 하게 되면 으레 나오는 이야기만을 하는 그녀는 너무 뻔해서 재미가 없을 지경이었다.

       

       권존과 사이가 좋은 듯 하여 한 번쯤은 도발을 해주리라 생각했는데 공과 사 정도는 가릴 줄 아는가 보구나.

       

       다음은 이순이었다.

       

       검을 휘두를 때 말고는 유약해 보이는 녀석이니 하린처럼 재미없는 이야기나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달랐다.

       

       그는 마이크를 쥐자마자 대뜸 이런 말을 꺼냈다.

       

       “결승에서 발리면서 생각한 건데 여기 참가자들이 다 함께 덤벼들면 화령님을 이길 수 있을까요?”

       

       그걸 질문이라고 하느냐?

       

       당연히 불가능하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드디어 끝이 보이는 것 같네요.

    다음화 보기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