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64

        

         본디 받은 만큼 돌려주는 거라고.

         인상에 관해서는… 나도 굉장한 선입견을 가지고 비꼬아서 평가한 게 맞다. 잘못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어마어마한 시간 낭비였다며 입가를 씰룩이는 와이즈맨에게서 눈을 돌려 슬쩍 방 내부를 훑어봤다.

         

         황량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별다른 장식도, 사유물도 없이 오직 의자와 책상. 그리고 업무에 사용할 전자기기만 즐비한 지극히 실용적인 풍경.

         

         이쪽을 살피고 품평하는 방식도 파라다이스 임원답게 ‘무가치’ 라는 표현을 강조하며 나라는 존재의 값어치를 날카롭게 판단하려고 들었으니, 손에 쥔 정보가 적어서 어설픈 결론을 내린 것일 뿐 절대 무능한 인물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어떻게, 살살 긁어서 자존심을 자극하면 추방 명령 정도는 떨어질지도 모르니 한 번 시험해보자.

         

         “…저는 아직껏, 미스터 와이즈맨께서 이런 자리를 마련하신 이유를 정확히 못 들었습니다만.”

         

         “…….”

         

         임의로 면담을 끝내버리려는 와이즈맨의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졌다.

         대놓고 무시당했음에도, 고개를 쳐들고 버티고 있는 눈치 없는 행동을 본 그의 눈에 이채가 맴돌았다.

         

         내 안에 조금 전까지 느꼈던 불쾌함 따위는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탈출구에 더불어 친히 드레이퓨스에 대한 사적인 정보까지 제공해주실 분께 품을 감정은 고마움이면 충분하다.

         

         “아무래도… 애인을 위한 깜짝 선물이었나보군. 얼마 전 네년의 낭군님이 전략기획부서에 전자전 대응팀 공석을 만들 것을 총무부에 통보해왔다. 놈이 친히 신입 채용에 열을 올린다는 소식에 총무부 보직을 대신 내밀려고 했는데… 쯧.”

         

         ‘애인에… 낭군…? 어허허….’

         

         …역시 지체 높으신 분이라 그런가? 굉장히 고급진 단어 선택에 뒷목 근처가 살짝 뻐근해지고 편두통이 찾아왔다.

         그나마… 그나마 저런 식으로 여기고 있다면 다짜고짜 살해당할 걱정은 덜었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그러니 물러나기엔 아직 이르다.

         적어도 드레이퓨스가 추후에 확인했을 때, 이 남자가 스스로 당당하게 쫓아냈다고 대답할 상황은 만들어야 한다.

         

         “그럼… 저는 이제 뭘 하면 될까요?”

         

         “그건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닌 것 같군. 위로 올라가서 그 사갈 같은 놈과 거사를 치르던 붙어먹던 마음대로 하도록. …단, 파라다이스에 기생충이 들러붙을 공간이 없다는 것만 똑똑히 알아두면 좋겠군.”

         

         와이즈맨의 독살스러운 말과 이글거리는 눈동자에서 언뜻 복잡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던져진 말 한마디 한마디를 곱씹고, 깐깐하기 그지없는 그의 입장에 서서 이 어처구니없는 조우를 분석해본다.

         

         대낮에 회사로, 그것도 본사 고층 언저리에 사적인 인연을 끌어들인 동료 간부.

         기대와는 전혀 다른 손님의 정체.

         원래라면 감히 엮일 일도 없었을 천한 계집애에게 줄줄 새나가는 귀중한 시간.

         

         가장 확실하게 보이는 건 자신의 위치에 대한 자부심, 라이벌에 대한 희미한 실망감, 그리고… 정의 내리기 어려운 맹렬한 감정 하나.

         

         비록 본인이 총무부의 책임자라지만, 사비도 아니고 회사지출까지 걱정하는 열혈 기업인의 자세는 단순한 출세욕이 근원인 것 같지 않았다.

         내가 살면서 권력을 쥐어 본적이 없어서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걸 수도 있으나, 이건 오히려 공명심과는 상반된 곳에서 피어난… 메가 코프라는 진흙 속의 연꽃 같은….

         

         “……아.”

         

         “이제 좀 납득했나? 알았으면 그만 여기서 사라지도록. 마음 같아서는 손해배상이라도 청구하고 싶지만…… 쯧, 따져보면 의미도 없겠군.”

         

         혀를 차는 그의 모습이 누군가의 형상과 겹쳐 보였다.

         외형 얘기가 아니라, 저 거침없는 성격에 기시감이 들었던 원인도 찾고. 더불어 그가 참견을 결심한 근간도 알 수 있었다.

         

         충성심(Loyalty).

         이 복마전 최상층에 있을 파라다이스 회장, 그 미친 유아독존 할망구에게 탄복한 자들이 보내는 격렬한 구애.

         

         지배 구조가 비교적 견고하다고 묘사된 파라다이스 코퍼레이션의 비밀을 이렇게 알게 될 줄은 몰랐다. 한 명의 팬으로서 흥미롭기도 하고… 또 상황파악도 한결 편해졌다.

         

         원작에서 어떻게 회장이 전화 몇 통과 명령조차 아닌 농담만으로도 매끄럽게 일을 처리하나 했더니, 이런 충성스러운 부하들이 뒤에서 죽어라 일하는 배경이 있었다면 납득이 간다.

         

         이거… 어쩌면 드레이퓨스의 인재 욕심도, 모시는 분을 닮아서 생긴 집착이라면.

         그럴싸한 비상 돌파구가 마련된 걸지도….

         

         “…얼마나 더 내 사무실 공기를 소비할 셈이지?”

         

         이런, 방 주인이 슬슬 짜증이 나신 모양이다.

         하여간 지금 중요한 건 네오 헤이븐의 설정 음미가 아니라 와이즈맨을 자극할 강렬한 한 방.

         

         “제가 이대로 가버리면 미스터 드레이퓨스께 하셨던 폭언을 전부 일러바칠 텐데… 정말 괜찮으신가요?”

         

         “…….”

         

         이크! 이건 조금 너무 건방졌나…?

         지금은 내가 센 척해봐야 어울리지 않는 역할이었기에, 방패를 세우듯 라이벌의 이름을 전면에 밀어냈는데 분위기가 단숨에 험악해졌다.

         

         드르륵…!

         

         의자가 거칠게 밀어내진다.

         일방적인 용무가 끝나자마자, 자리에 착석해서 업무용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던 그가 벌떡 일어나 내 쪽으로 다가왔다.

         

         다소 격앙된 모습에, 내심 손찌검당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핑계가 되겠다고 생각하며 각오를 마쳤는데. 와이즈맨은 겨우 품위를 지켜, 어디까지나 말로만 나를 타일렀다.

         

         “아론 녀석에게. 한층 위에 있다고 제멋대로 굴면 가지고 노는 안드로이드 컬렉션을 전부 으깨 버리겠다고 전해라. 애당초 전략기획부와 총무부는 상하관계가 없는 핵심 부서이거늘, 건물 구조 때문에 나눠진 걸로 아주…!!”

         

         물론 부드러운 말은 아니고 채찍에 가까웠지만.

         

         적당히 지어낸 삼류 악당 같은 대사를 자존심 싸움으로 받아들인 건지, 당장 코앞에 있는 당사자도 아닌 한 층 위에 있는 사람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그것도 아니라면, 일개 하층민이 이런 도발 자체를 할 리가 없다 여기고. 내 뒤에 아른거리는 경쟁자를 지목한 거던가.

         

         …앞으로 조금만. 아주 약간만 더 노력하면 되겠다.

         

         “그렇게 하실 말씀이 많았다면, 제가 오기 전에 두 분끼리 알아서 해결하셨어도…. 아, 혹시 본인 면전에는 말할 용기가 없으셔서…?”

         

         까드득!

         

         …와우. 이빨 갈리는 소리가 방금 제대로 들렸다.

         빨개진 얼굴에 실핏줄 선 부릅떠진 안구와 눈을 마주쳤다.

         

         “계집… 지금 곧바로 꺼져버리지 않으면, 암묵적인 선이고 뭐고 따지지 않고 가만두지 않겠….”

         

         “넵! 바로 사라지겠습니다…!”

         

         마침내, 기다리던 지시를 받은 나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을 하며 뒤로 돌았고.

         

         “오호라? 미스터 와이즈맨, 제 손님까지 빼돌리시더니… 이젠 회장님의 부서별 위치선정에 그런 막말을 던지시는 건가요…?”

         

         신나게 뒷담화를 하던 48층 거주자와 정면 충돌했다.

         

         “왁?!”

         

         넘어질 뻔한 몸을 호리호리하지만 굳건한 두 손이 붙잡는다.

         

         대체 언제, 어느새?!

         농담없이, 갑자기 튀어나온 느물거리는 말투와 얼마나 봤다고 익숙해진

         

         말하는 걸 보면 아까부터 이미 엿듣고 있었던 모양인데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그러면, 양측이 있는 자리에서 고자질이나 하겠다고 깐족거린 건가 난?

         

         “……잘 됐군. 네 애인이나 데리고 꺼져라. 쌍으로 속을 긁어 대는 솜씨마저 아주 천생연분이군.”

         

         “? 애인… 입니까? 그건 또 굉장히….”

         

         위에서 내려다보는 아론과 어깨를 잡힌 채로 가까스로 고개만 치켜든 나.

         졸지에 참 오묘한 눈초리를 받게 된 나는 필사적인 마음을 담아 조용히 호소했다.  

         

         아니요. 절대 아닙니다. 그런 망측한 사실을 주장한 적도, 긍정한 적도 없어요. 저쪽이 멋대로 착각한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관계개선을 할 수도 있었구나… 하고 납득하지 마! 야!!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친했다고!

         

         말없이 의사소통을 하려니 진전이 느려 터진 데다가, 외야의 인내심마저 금세 바닥나고 말았다.

         

         철컥! 하는 쇳소리와 함께… 팔뚝만 한 산탄총이 다짜고짜 그 모습을 책상아래로부터 드러냈다.

         

         “회장님께서 결근사유를 물으시거든. 그럴 만한 개짓거리를 해서 총에 맞았다고 해명하도록…!!”

         

         “이런! 얼른 나가볼까요, 미스 아나스타샤? 안타깝지만 저희의 애틋한 모양새가 누군가에겐 자극이 너무 강했나 봅니다. 당신을 위해 준비한 연애 계약서가 위층에서 기다리고 있답니다?”

         

         “……제발.”

         

         차라리 시원하게, 드레이퓨스를 향해 방아쇠 한번만 당겨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으나. 내 몸은 순식간에 밖으로 끌어내 지고 총무부서실장의 사무실 문도 매정하게 닫혀버렸다.

         

         잠깐 사이에 내려가는 꽃길은 막혀버리고, 지대한 신경전이 예상되는 가시밭길로 선택지가 좁혀져 버렸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와이즈맨의 오지랖 덕택에 드레이퓨스에게 제시해야할 게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는 게 유일한 구제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히히 못가!

    예고하긴 했지만… 역시 3시간씩 지각을 해버리니까 마음이 너무 무거운데… 몸은 더 무겁네요. 죄송합니다!

    항상 재밌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