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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4

       일 이야기.

         

        좋은 말이다.

         

        일단 날 시험에 들게 하지 말고 용건부터 이야기 해줬으면 좋겠다.

         

        저 내공 주머니를 계속 보고 있는 건 고문과도 같았으니.

         

        “우후훗. 이상한 녀석이구나. 정말로 다리 달린 뱀이 맞다면, 이런 모습을 보고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을 텐데 말이야.”

         

        허를 찔린 거 같다.

         

        내가 인간이었다는 걸 딱히 숨길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게 밝혀져서 좋을 건 없을 거 같다.

         

        이 뱀 모녀가 무슨 짓을 저지를 지 모른다.

         

        갑자기 인간 고기의 맛을 궁금해할 수도 있고.

         

        …물론 쉭쉭이가 그러진 않겠지만, 뱀 여왕은 혹시 모른다.

         

        날 잡아먹으려고 들 수도 있다. 그게 어떤 의미든 간에.

         

        직시해라.

         

        내 앞에 있는 내공 주머니를.

         

        그래.

         

        이건 의심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쳐다보는 거다.

         

        “이쯤 왔으니, 굳이 내 소개를 하지 않아도 괜찮겠지?”

         

        당연한 소리다.

         

        내 앞에 있는 존재는 뱀 여왕.

         

        레벨 측정 불가의 바실리스크 아니던가.

         

        “자네는 분명 새의 왕을 만났겠지. 그리고 살아남았고.”

         

        뱀 여왕이 살짝 미소 지었다.

         

        “놈의 흔적이 남았으니 녀석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았다는 건 알 수 있다. 그래. 너도 예상했듯이, 이 뱀 여왕과 새의 왕은 좋은 관계가 아니리라.”

         

        그래 보인다.

         

        공포새와 같은 커다란 새부터 앵무새까지 통솔하는 새의 왕.

         

        아직 보진 못했지만, 아나콘다나 티타노보아 같은 뱀을 통솔하는 뱀의 여왕.

         

        이 둘이 거대한 밀림을 양분하고 있다는 건 지나가던 미크랍토르도 알 사실이었다.

         

        새의 왕과 뱀 여왕.

         

        혹시 둘이 부부인 걸까.

         

        이건 부부 싸움이고?

         

        “…다리 달린 뱀아. 표정이 기분 나쁘구나.”

         

        당신도 다리 달린 뱀이잖아요.

         

        “새의 왕은 모든 뱀의 원수다. 뱀은 새를 죽이기 위해 태어났지.”

         

        응. 부부는 아닌 거 같네.

         

        하긴, 이런 미녀가 이상하게 생긴 인면조랑 결혼을 했을 리가 없지.

         

        “왜, 나의 반려라도 되어줄 생각인 게냐?”

         

        인면조보단 고모도가 낫… 잠깐만요?

         

        “무얼 놀라나. 이리 가까이에 있는데, 단편적인 생각 정도야 읽을 수 있다는 건 상식 아니더냐.”

         

        어느 나라 상식인데 그게.

         

        “히야아아악!”

         

        열심히 견제를 해주는 쉭쉭이.

         

        …그런데 너 뱀 아니니?

         

        왜 자꾸 고양이가 할 법한 행동을 하는 거야.

         

        쉭쉭이는 뱀 여왕의 손가락을 마구 깨물었다.

         

        잘한다, 우리 복덩이.

         

        “확실히 이빨이 날카로워졌구나. 이렇게만 성장한다면 조만간 내 뒤를 이을 수도 있겠어.”

         

        뱀 여왕은 자신의 손가락을 물고 있는 쉭쉭이를 쓰다듬었다.

         

        “새와 뱀은 서로가 서로의 원수다. 하지만 힘의 균형 때문에 우린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지.”

         

        인면조와 바실리스크.

         

        서로 싸운다면 엄청난 광경이 될 거다.

         

        둘 중 하나가 이긴다고 하더라도 남은 하나가 멀쩡할 리가 없었다.

         

        이 밀림의 주인을 노린 제3의 세력에게 공격당하는 게 당연지사.

         

        “팽팽한 균형을 깨트리려고 하는 자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나.

         

        전설 속의 영물, 고모도.

         

        뱀 여왕은 나라는 조커를 이용해 인면조를 무너트릴 계획이었던 거다.

         

        과연 이 정돈 되어야 여왕의 이름을 가질 수 있는 건가.

         

        저 신묘한 계책에 괜스레 감탄이 나온다.

         

        “게게겍….”

         

        고모도의 힘이라면 균형을 깨트리고도 남을 것이다.

         

        모조리 쓸어버릴까?

         

        아예 입도 뻥긋 못 하게 도륙을 내는 것도 좋을 거다.

         

        “으음…. 정말 미안하지만, 자네를 뜻하는 게 아닐세.”

         

        …쥐구멍이 있으려나.

         

        아까 쉭쉭이가 들어간 구멍에 들어갈 수 있나.

         

        몸을 어떻게 잘 구기면 될 수 있을 거 같긴 한데….

         

        [차가운 피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뜨거웠던 얼굴이 점점 식었다.

         

        뭐, 도마뱀이 착각 한 번 정도 할 수 있는 게 아니겠나.

         

        뻔뻔하게 나가자.

         

        “게겍….”

        “물론 자네의 도움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 그런데 자네 정도로 균형을 깰 수 있는 건….”

        “겍!”

         

        그만해요.

         

        내가 잘못했어.

         

        “우후후. 그래, 귀엽구나.”

        “됴로롱….”

         

        쉭쉭이는 어느 순간 코를 골고 있었다.

         

        …너 머리 몇 번 쓰다듬어줬다고 자는 거야?

         

        “균형을 깨트리는 자의 정체는 계명성을 품은 뱀이라네.”

         

        계명성을 품은 뱀?

         

        “감히 이 몸을 배신한 추악한 변절자.”

         

        계명성(啓明星).

         

        거창한 이름이었다.

         

        샛별.

         

        루시퍼라는 의미 아니던가.

         

        탐욕의 베엘제부포에 이어서 이젠 루시퍼 뱀이라니.

         

        잠깐만.

         

        계명성?

         

        뱀 여왕은 바실리스크잖아.

         

        그걸 배신한 계명성을 품은 뱀이라면….

         

         

        *

         

       

       

        천마신교의 어느 건물.

         

        당소영의 마음은 복잡했다.

         

        사천당문의 사람인 자신이 대체 왜 마교의 중심지에 있을까.

         

        다른 사람한테 말한다면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을 거다.

         

        게다가 인질로 다루는 것도 아니고, 나름 극진히 대접했으니 말이다.

         

        식사에 부족한 것도 없었고 매일 멱을 감을 수 있게 따뜻한 물을 길어다 줬다.

         

        몸은 편하지만 마음 한편이 무거워진 당소영이었다.

         

        그런 당소영의 마음을 더욱 심란하게 만드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키에에엑!”

         

        아까부터 계속 난리 치는 이 거미들이 주인공 되시겠다.

         

        작은 독거미는 이빨을 아득아득 갈았다.

         

        “키오오오오!”

         

        실을 뿜는 거미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실뭉치로 만든 도마뱀의 형상에 몸을 마구 비벼댔다.

         

        “키야아아아아악!”

         

        덩치가 큰 거미는 두 다리를 캉캉 부딪치며 어딘가를 향해 포효하고 있었다.

         

        이 거미들이 대체 왜 저럴까.

         

        당가에서 수많은 짐승과 영물을 다뤄본 당소영이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어쩐지 자신의 기분도 조금씩 이상해지고 있던 거 아니겠나.

         

        무언가 소중한 것이, 다른 이에게 뺏길 거 같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지, 진정해요. 저도 기분이 이상하긴 한데, 여기서 이럴 필요는 없잖아요오!”

         

        거미들이 당소영을 쓱 쳐다봤다.

         

        그래도 함께 지낸 시간이 있어서 그런 걸까, 투스와 푸스는 조용히 해주는 거 같았다.

         

        “켕.”

         

        물론 그건 당소영의 착각이었다.

         

        매우 재수 없는 소리를 낸 투스와 푸스는 하던 행동을 마저 했다.

         

        “…켕? 그게 무슨 뜻이에요?”

        “케엥!”

         

        거미와 인간이 말이 통할 리가 없었다.

         

        영물과 교감하는 능력이 뛰어난 당소영이라고 하더라도 짐승이나 영물의 모든 말을 알아듣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투스와 푸스가 어떤 의미로 저런 표정을 짓고, 저런 소리를 내는지 추측할 순 있었다.

         

        서열도 낮은 게.

         

        투스와 푸스는 그렇게 말하는 거 같았다.

         

        당소영의 착각일지, 아니면 진실일지는 아무도 몰랐다.

         

        “조, 좋아요. 오늘 한 번 서열을 가려보자구요. 당가의 비기, 만천화우를…. 자, 잠깐만요. 왜 둘이 덤비려고 하는 거예요? 히, 히익!”

         

        당소영이 내공을 두른 거미 자매에게 흠씬 두들겨 맞으려고 할 때였다.

         

        드르륵.

         

        문이 열림과 동시에 투스와 푸스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얌전히 행동했다.

         

        “…아야아. 우씨. 이 거미들이이이!”

         

        당소영은 문이 열리는지도 모르고 거미들에게 응징하려고 했다.

         

        “사이좋게 지내거라.”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당소영의 동작이 순식간에 얼어붙고 말았다.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목소리였다.

         

        천마신교의 교주.

         

        십대고수 중 일석을 차지하고 있는, 그야말로 천하제일인이라는 표현에 가장 가까운 여성.

         

        백연영이었다.

         

        몸이 덜덜 떨리는 걸 가까스로 통제한 당소영이 겨우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아, 안녕하세요오오….”

         

        개미가 기어들어 가는 듯한 목소리.

         

        천마신교의 교주가 들을 말이 아니었고 오대세가의 사람이 할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백연영은 개의치 않았다.

         

        “그래. 이곳에서 지내는데 불편한 점은 없느냐.”

         

        과할 정도로 편의를 봐주고 있었다.

         

        기본적인 건 물론이고, 외부로 절대 공개되지 않는 천마신교의 평소 모습까지 구경할 수 있게 해주었다.

         

        또 여기서 당소영이 놀란 것이, 이곳 역시 영물들이 득실거린다는 것이다.

         

        달로포를 축소한 듯한 영물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고 천마신교의 교인들이 그들과 교감을 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정파의 어느 곳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사천당문도 당소영과 같은 몇몇 온건파를 제외하고는 폭력과 공포가 가미된 강압적인 방법으로 영물을 길들이는 게 대세였다.

         

        그런데 천마신교의 교인들은 달랐다. 그들은 인내심을 갖고 그들과 소통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그것 때문에 당소영은 혼란스러웠다. 정파의 행동보다 마교의 행동이 더 정의로워 보였으니까.

         

        “자리에 앉거라. 다과를 가져왔으니, 잠시 이야기나 나누자꾸나.”

         

        살 떨리는 다과 시간이 시작되었다.

         

        물론 당소영이 벌벌 떠는 것도 잠시, 달콤한 음식이 입에 들어가자 그녀의 얼굴이 헤실헤실 녹았다.

         

        백연영이 가져온 다과는 천마신교의 신녀, 백설화가 애지중지 아끼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당소영이 그걸 알 리는 없으니 주는대로 넙죽 받아먹을 뿐이었다.

         

        “으헤헤….”

         

        약간 음침한 소리를 내며 백연영이 건네는 다과를 받아먹은 당소영은 조금 편한 분위기에서 백연영과 대화를 시작했다.

         

        주제는 별거 없었다.

         

        큰 거미의 치료 경과, 그리고 작은 거미들의 훈련 계획.

         

        추가적으로 자신이 천마신교에 와서 느낀 것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영물과 관련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다.

         

        백연영도 영물에게는 큰 흥미가 있는 사람이었기에 절대 맞지 않을 거 같던 두 사람의 이야기는 막힘없이 진행됐다.

         

        “이렇게 많은 영물이 있을 줄 몰랐어요.”

        “영물이 될 가능성이 있는 짐승들이지. 내단을 품고 있는 녀석은 적을 거다. 희와 같이 내공을 다룰 수 있는 영물은 더더욱 적을 거고.”

         

        주제는 어느샌가 내공을 다룰 수 있는 영물로 넘어갔다.

         

        당소영은 사천당문이 극비로 관리하는 정보를 제외한, 달로포와 고모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내공을 다루는 영물은 확실히 대단한 것이었다.

         

        주제가 그렇게 넘어가니, 그들의 이야기는 어느샌가 그 존재를 향하고 있었다.

         

        한쪽은 고 대협으로 부르고, 한쪽은 희라고 부르는 이제는 작지 않은 도마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 맞다. 고…. 아니, 희 대협에게 기연이 있다고 말했잖아요. 혹시 어떤 기연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고모도에 대한 걱정이 되기도 하고, 당소영도 무림인이라 마교의 교주가 말해준 기연이라는 게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백연영은 우아한 움직임으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십만대산에서 기연이라고 한다면 무엇이 있겠나. 이번에도 영물이지.”

         

        그녀는 찻잔을 잡은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봤다.

         

        희가 깨물던 그 손가락이었다.

         

        “들어본 적은 없을 거다. 워낙 희귀한 영물이니.”

         

        당소영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백연영의 말을 기다렸다.

         

        “계명성(鷄鳴聲)을 가진 뱀.”

         

        자신이 모르는 영물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으니까.

         

        “고가두리수(苦假頭利獸).”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진화하는 도마뱀이 되었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reincarnated as a lizard in a martial arts world. “Roar!” “He’s using the lion’s roar!” “To deflect the Ten-Star Power Plum Blossom Sword Technique! Truly indestructible as they say!” “This is… the Heavenly Demon Overlord Technique! It’s a Heavenly Demon, the Heavenly Demon has appeared!” It seems they’re mistaking me for something e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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