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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4

       ‘아, 이건 아닌데….’

         

       뜻하지 않게 학기 평가 마지막 날, 첫 번째로 무대에 오르게 된 그는 몸을 떨었다.

       허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시험대였으니.

         

       ‘하자, 할 수 있어.’

         

       자기 최면을 걸듯 그는 이를 악물었다.

       그러며 품속에 넣어둔 은화 두 개를 매만진다.

       존경하는 분이 그에게 건네준 은혜이자 최근 그에게 부적처럼 여겨지는 두 개의 은화.

         

       11번 곰돌이.

         

       아니, 검술학부 소속 1학년 배리 콥스는 은화의 존재감과 함께 공포를 떨쳐내며 창을 휘둘렀다.

         

       후욱!

         

       푸욱!!

         

       [GRR?]

         

       “흡!”

         

       허나 바위 괴물에겐 그다지 먹히지 않았고, 배리 콥스는 다급히 몸을 회피했다.

         

       저보다 덩치가 거대한 놈을 상대하는 법은 이미 불칸에서 질리도록 배웠던 바.

       사냥을 위해선 회피기동이 중요하더라.

         

       ‘내가 잡은 멧돼지가 몇 마린데! 할 수 있다!’

         

       …아, 생각해 보니 몇 마리 안 되는구나.

         

       거의 다 합동으로 잡거나 교관님이 잡으셨으니까.

       배리는 너무 자신만만하면 안 되겠다고 반성하고 있자니.

         

       [GRRR!!]

         

       어느 순간 바위 괴물이 그를 거슬려 하며 달려들었다.

         

       “흐으읍!!”

         

       배리 콥스는 다리의 ‘경’을 집중하며 땅을 박찼다.

       상대를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로지 괴물의 일격을 피해내기 위함이다.

       공격하면 될 것을, 왜 피하느냐고 할 수도 있겠다만.

         

       파아아앗!!

         

       “크윽!?”

         

       이래서 피하고 마는 거다.

         

       바위 괴물, 아니 바위 트롤이 지나간 자리가 모조리 파헤쳐졌다.

       거대한 몸에서 나오는 육중함과 제 몸이 부서지건 말건 신경 쓰지 않고 달려드는 막무가내 돌진.

       피하지 않고 맞상대하려고 했으면 그대로 자신은 비틀어진 육포가 되고 말았으리라.

         

       “후우….”

         

       그러나 배리는 절망하지 않았다.

       예전이었다면 다리가 벌벌 떨려 상대도 못 했을 괴물이다.

       진짜 트롤이 아닐지언정, 보통 인간은 대항도 못 할 괴물이 다름 아닌 바위 트롤이니까.

         

       한데 지금은 어떤가?

         

       ‘그래도 피할 수 있어, 대항하는 게 가능해!’

         

       기쁘게도 싸우고 있는 자신이 있지 않은가.

         

       하여 배리는 실망하지 않았고, 자세를 잡으며 다시금 피할 준비에 들어갔다.

         

       …다만 절망하진 않아도.

         

       ‘…진짜 말도 안 되는 괴물이네, 트롤이란 건.’

         

       꾸드드득!

         

       [GRRR!!]

         

       재생하는 놈을 보며 아연실색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리라.

         

       강력한 돌진 탓에 벽에 부딪쳤던 바위 트롤이었으나, 바위 트롤의 부서진 몸은 점차 다시 뭉치고 있었다.

       트롤의 피를 뿌려 만들어진 인공 마물답게, 어느 정도 재생력이 있는 것이었다.

         

       아찔하다.

         

       ‘이걸 통과하라고 만든 시험이냐? 아카데미 양심이 있는 거야?!’

         

       배리는 말도 안 되는 시험 난이도가 기가 막혔다.

         

       “배리! 잘 좀 해봐!”

       “최선을 다하라고, 최선을!”

       “근성을 발휘해, 배리.”

       “저놈은 불칸으로 다시 보내야 해.”

       “…야, 차라리 부모님 욕을 해라.”

       “아, 이건 좀 심했구나.”

         

       도중 들려오는 17명의 응원소리.

       그래도 동기는 동기라고, 악담이 섞이긴 했지만 응원을 해주긴 한다.

         

       “사형, 힘내세요!”

         

       …그리고 곰돌이들을 상징하는 승리의 여신께서도 말이다.

         

       ‘이긴다, 무조건-!’

         

       배리 콥스는 동기들의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다시금 바위 트롤에게 달려들었다.

         

       용맹하게-!

         

         

         

       -그리고 배리 콥스가 보인 용맹함을 보며 세 사람은 진솔히 평가했다.

         

       “졌다.”

       “졌군요.”

       “못 이겨 저건.”

         

       검술학부 삼인방.

       어느 순간 그렇게 불리는 세 사람이 배리 콥스가 달려드는 것을 보며 승리의 행방을 확신하듯 점쳤다.

         

       “사, 사형이 진다고요?”

         

       레비 폴트의 물음이었고, 아르노는 당연하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차라리 기회를 노려 적절한 타이밍에 ‘창경’을 던져 승부를 보려고 했으면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싸웠다간 체력만 바닥날 겁니다. 배리 동기는 지금 냉정함이 없고, 감정적으로 싸우기에 전략적으로 못 움직이는 게 아쉬운 일이군요. 시야가 넓었으면 그래도 좋은 승부를 냈을 터인데.”

         

       애초에 아직 곰돌이들의 실력으론 바위 트롤은 이기지 못한다.

       창경과 같은 파괴력 높은 수단이 있을지언정, 저런 우월한 재생력이 있는 상대와는 상성이 안 좋다.

         

       단발적인 수단이 아닌, 연발적인 수단이 필요했으니까.

         

       아직은 단발적인 수법밖에 없는 곰돌이들로선 패배가 예정된 게 당연하단 뜻도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콰아앙!

         

       “꺼어억!?!”

         

       배리 콥스는 전력으로 창경을 발휘해 바위 트롤의 어깨를 뚫었으나, 안타깝게도 바위 트롤은 어깨가 망가지건 말건 신경 쓰지 않으며 달려들었다.

       재차 검이라도 휘두르려 한 배리였지만, 이미 체력이 다한 그였고, 바위 트롤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며.

         

       [GRR!!]

         

       퍼억, 하고 배리 콥스를 들이박았다.

         

       끝났다.

         

       모두가 창백해진 시선으로 배리 콥스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압도적으로 끝난 패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멍청한 녀석, 토론 공부 같은 거 하지 말고 검이나 더 휘두를 것이지.”

       “그래도 그 토론 점수가 괜찮으니 퇴학당할 일은 없겠지.”

       “아, 그건 그렇겠네.”

         

       그의 패배에 야멸찬 평가를 내리는 동기들이었으나, 그들도 입맛이 썼다.

       배리의 노력을 알고, 자신들이 배리와 별반 다르지 않는 모습으로 패배할 수 있음에 입안이 쓰라린 거다.

         

       저리 형편없이 패배하면 어찌 될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허나 그런 냉혹한 평가를 내리는 그들과 달리 관중들은.

         

       “와, 어떻게 저런 괴물한테 달려들 수 있는 거지?”

         

       “용맹하군! 역시 검술학부! 기사 지망생들다워.”

         

       “저 사람 평민이라던데?”

         

       “…평민이 바위 트롤한테 상처를 냈다고? 뭐지? 저 트롤 부식된 놈인가…?”

         

       감탄.

         

       그건 감탄이었다.

         

       동기들 눈엔 참담한 패배에 불과하나, 일반 관중들 눈엔 그가 용맹하기 그지없는 전사로 비추어질 따름.

         

       괴물을 상대로 달려드는, 그야말로 몽둥이 하나만 든 채 거인에게 달려드는 행위와 다를 바 없는 강맹함에 감탄이 안 나오는 게 이상할 터.

         

       거기다 처참한 패배치곤 배리 콥스의 경기 내용은 좋았다.

         

       투우사(鬪牛士)처럼 과격한 바위 트롤의 공격을 피해내며, 적절히 일격을 날려대고, 거기다 상처마저 내며 아슬아슬(일반인 눈엔 그랬다)한 승부를 보인 배리 콥스의 실력과 열정에 그들은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내는 것이다.

         

       팬드래건은 전투와 용맹함을 숭상하는 기사의 왕국.

         

       그가 보인 투지에 인색한 평가를 내릴 만큼 모나진 않단 뜻이었다.

         

       “결투의 결과보다 내용을 중시한다는 건가? 하여튼 왕국은 이해할 수 없는 문화가 많군.”

       “선왕 폐하께서 만드신 문화시죠. 훌륭한 전투를 벌인 전사에겐 아낌없는 예우가 필요하다는.”

       “…낭만 있는 양반이네.”

         

       그렇게 꽃잎이 날아드는 콜로세움이었고, 모두가 손뼉을 칠 때 레비 폴트는.

         

       “저기, 아무도 사형 걱정은 안 해주시나요?”

         

       [……아.]

         

       유일하게 정상적인 소녀는 바위 트롤에게 날아간 배리의 생사를 왜 아무도 걱정하지 않느냐는 당연한 의견을 제시했고, 그제야 동기들은 배리를 챙기려 달려갔다.

         

       …부질없는 동기애였다.

         

       * * *

         

       천만다행이게도 배리 콥스는 죽지 않았다.

         

       “아파 죽겠네….”

       “엄살은.”

       “팔다리 부러진 게 엄살로 보이냐?”

         

       다만 죽지 않았을 뿐, 어마어마한 부상을 입은 건 맞았다.

       한데 이상하게도 그는 아픔만 느낄 뿐, 어딘가 크게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뇌진탕이 걸려도 될 법한 상처였으나 이 콜로세움에는 다행스럽게도.

         

       “성법(聖法) 만만세지, 정말.”

       “죽을 일은 없을 테니까.”

         

       성법.

       신성력을 지닌, 유일신 <광명의 빛>을 따르는 사제만이 펼칠 수 있는 신비.

         

       그리고 그 신비한 힘이 이 콜로세움 전체에 퍼져 있었고, 덕분에 큰 부상을 입는 자조차 사망하는 일은 없었다.

         

       배리 콥스의 부상 또한 성법의 영역 안에서 발생한 상처이기에 얼마 가지 않아 회복되리라.

       그야말로 죽을 일도, 다칠 일도 없는 안전한 전투 공간.

         

       신의 존재를 알려주는 기적이었음이다.

         

       그리고 이에 크게 감명 받은 건 어느 신비종족의 전사였다.

         

       “쿤타, 성법이란 거 가지고 싶다! 이거 있으면 우리 부족, 다치는 사람 없을 것 같다!”

         

       항상 마물에 의한 피해를 입는 바바리안 부족의 전사는 성법의 신비를 겪으며 눈을 반짝였다.

       꼭 가지고 싶은 장난감이 생긴 아이처럼.

       허나 아르노는 그 순수한 기대감을 깰 수밖에 없었다.

         

       “그다지 추천은 하지 않습니다.”

       “어째서인가?”

       “실제 마물한테는 효력이 없습니다, 이거.”

       “…응?”

       “저런 통제가 가능한 인공 마물의 경우는 괜찮지만, 진짜 마물이 날뛰면 성법은 쉽게 찢겨지고 맙니다. 지금이야 이렇게 안전한 상황에서 실시간 관리가 들어가니 나름 괜찮은 겁니다만, 그렇지 않다면 아무래도….”

       “추가로 쓸모도 없는 주제에 들어가는 제물도 상당히 많다지? 아마 너희 부족 이거 설치하면 평생 죽만 먹고 살아야 할걸?”

       “……쿤타, 성법 싫어졌다.”

         

       쿤타는 실망했다.

       기껏 좋은 수단을 발견했다 여겼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렇게 축 늘어지려는 상황에서.

         

       “실망하지 말고, 고개 좀 들어. 우리 학부 최대 기대주님이 제대로 칼 좀 휘두르려는 것 같으니까.”

       “……우오!”

         

       바바리안은 언제 실망했냐는 듯 고개를 번쩍 들며 눈을 빛내었다.

       비록 성법은 실망스러웠지만.

         

       “-로엔 드리미트 드 라이오넬이다. 부끄럽지 않은 결투를 벌일 것을 용과 사자, 그리고 요정에게 맹세하겠다.”

         

       저자는 그를 실망하지 않게 할 터이니까.

         

       스릉!

         

       어린 사자가 검을 뽑았다.

         

       *

       *

       *

         

       끊임없이 이어지는 마차의 행렬.

       그것도 그냥 마차들이 아닌 고급스러운 마차들이 즐비했다.

       허영심 넘치는 귀족과 부귀를 자랑하는 상인연합의 마차.

       고급스럽진 않지만, 무시할 수 없는 길드총합의 마크가 그려진 마차까지.

         

       지난 날 워 게임에서도 왕녀에게 잘 보이려 몰려든 인원이 있긴 했었지만, 그때처럼 어중이떠중이들이 급박하게 모인 것이 아니었다.

       엉덩이 무거운 이들이 모인 바.

         

       학기평가가 끝나면 아카데미 생도들은 일주일간 휴식기를 가지게 되는데, 그 때문인지 자식을 데리고 가기 위해 직접 행차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었다

       아무리 엉덩이 무거운 고위 귀족이나 대상단의 주인이라 한들, 부모는 부모란 의미이지 않을까 싶었다.

         

       다만, 그들이 이토록 움직인 데에는 마냥 자식을 위하는 마음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제레미 백작님, 이게 얼마 만입니까!”

       “아이솔 상단주? 호, 자네 자식도 여기 다니는 겐가?”

       “하하, 이번 해에 입학했습니다.”

       “미리 말해줬으면 좋았을 것을.”

       “공사가 다망하신 분에게 사소한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자네가 공사다망한 것이 아니고?”

       “설마요!”

       “어허허!”

         

       명분.

       만나기 힘들거나, 껄끄러운 관계에 위치한 거물끼리 ‘우연’을 가장하여 만나기 좋은 명분이 되어주기에 일부러 아카데미까지 행차할 가치가 있음이다.

         

       그렇게 이런 저러한 이권다툼을 이유로 아카데미 정문에는 마차가 점점 모여들었고, 학기평가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는 콜로세움을 향해 대량의 군중이 몰려들었다.

       각자의 목표와 음흉함, 그리고 속내를 감춘 채.

         

       그리고 한편에서, 그런 이들을 보며.

         

       “-더러운 돼지들만이 잔뜩 모여 있군.”

         

       경멸 어린 평가를 내리는 이가 있었다.

         

       인파의 행력 속.

       사제복을 입은 어느 사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가차 없는 경멸감을 내뱉었다.

       미간을 찌푸리는 게 습관인지, 미간 주름이 짙다.

         

       그리고 사내의 경멸 어린 시선이 향한 곳에는 권세가라 할 만한 이들이 모여 있었고, 당장이라도 일을 저지를 듯했으나.

         

       “그렇게 치면 우리도 돼지 아닙니까?”

       “…부정하진 않겠지만, 일부러 되새기게 하지 말도록.”

       “흐흐, 미안합니다, 대장.”

       “망나니 같은 놈.”

         

       사내의 옆에 있던 동료의 반박에 사내는 진정했다.

         

       그래, 지금은 참아야 할 때인가….

         

       사내는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중얼거렸고, 그런 사내를 향해 동료는 장난스레 입 꼬리를 올리며.

         

       “어차피 대장이 나서지 않아도 도축될 놈들은 다 도축될 겁니다. 준비는 철저했으니.”

       “확신하는가?”

       “오러 유저나 실력자들이 움직이면 모르겠는데, 그런 게 아니지 않습니까? 오늘 명단 보니까 실력자는 없는 듯한데.”

       “그도 그렇군.”

       “그러니 우린 구경이나 합시다. 모처럼 재밌는 축제이지 않겠습니까, 하하!”

       “축제가 아니라 학기평가 기간이다. 말을 똑바로 하도록. 생도들은 제 인생을 걸며 열심히 하고 있지 않은가.”

       “참나, 별 이상한 소리도 다 듣겠습니다.”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지금 사내가 하는 말은 무척이나 이상했으니까.

       그도 그럴 게.

         

       “그 열심히 하는 생도 전원을 죽이시려는 분이.”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을 아무도 살려둘 생각이 없는 주제에, 저리 정상인처럼 말하니 미묘할 수밖에.

         

       허나 사내는 당당했다.

         

       “죽이다니, 그런 말 말게.”

         

       철컥.

         

       “죽음이 아닌 영광스러운 축복이지, 이만한 영예가 어디 있다고. 저들도 분명 만족할 걸세.”

         

       사내는 십자가를 든 채 조용히 성호를 그었다.

         

       “부럽기 그지없군.”

         

         

       지금부터 제물이 될 어린양들이 부럽기 짝이 없다며.

       사내는 진심으로 부러움을 드러냈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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