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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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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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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경기는 오로지 선택된 일부의 사람들을 위해 준비된 무대였다. 관중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보호막으로 인해 경기장이 잘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관중은 이때를 쉬는 시간으로 여기고 자리를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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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건…상상도 못 했군.”
   “상상은 했지만 어떻게 무대에 올릴지를 몰랐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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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토겐의 힘없는 말에 앙쇼가 빈정거리는 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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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그랬던 거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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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토겐은 멍한 얼굴로 투기장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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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장면을 반숙이 봤어야 하는데.”
    “멍청하게 죽은 놈을 왜 떠올립니까? 기껏 재미있는 무대를 앞에 두고 입맛 떨어지는 소리 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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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토토겐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숙, 리안에게 몇 번이고 고문을 시도하던 그는 반쯤 정신을 놓았다. 완전히 미쳐버린 건 아니지만 그 나이대 노인처럼 힘없이 행동하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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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숙에게 끔찍한 고문과 세뇌를 당해 정신이 무너진 채 그의 오른팔 역할을 하던 시종이 멍청한 반숙의 모습을 보고 정신이라도 차린 건지, 어느 날 밤 그를 잔혹하게 도륙하고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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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기르던 노예에게 죽다니 그것만큼 수치스러운 죽음이 없다. 앙쇼는 멍청한 반숙을 입에 담는 것조차 싫었다. 그와 함께 묶여 ‘형제’라고 불리던 과거가 수치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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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차이라는 겁니다. 그놈과 저의 차이. 저는 결국 최고의 무대를 만들었고 그놈은 멍청하게 패배해서 죽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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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쇼는 죽어버린 반숙을 모욕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비릿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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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무대를 느긋하게 지켜봅시다.”
    “그래. 그게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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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 때문에 폭싹 늙은 것 같던 토토겐의 목소리가 생기를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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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경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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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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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뭐지?”
    [ 흐음? 이 안개는 분명 레디아홀손이군. ]
    ‘레디아홀손? 그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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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의 말에 속으로 질문을 던지자 곧바로 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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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독 안개 중 하나다. 들이마시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을 적으로 인지하게 만들지. 그게 아군이라고 해도. ]
    ‘엄청 위험한 거네. 그런데 이게 왜 여기 깔려있지? 어차피 상대랑은 서로 적이잖아. 아군도 없고.’
    [ 확실히 그렇군. ]
    ‘뭔가 다른 기능은 없어?’
    [ 글쎄, 약간의 흥분 효과? 각성 상태가 되어 쉽게 흥분하여 상대에게 달려들게 만들지. ]
    ‘아 그건가 보네.’
    [ 시야를 가리는데도 탁월하다. ]
    ‘확실히 한 치 앞도 안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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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과 대화를 나누며 검을 늘어뜨린 채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내 머리 위쪽에 주먹만 한 무언가가 날아와 알짱거렸다. 대충 카메라 같은 역할을 하는 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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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청 비싼 거라 부숴 먹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 방어 마법이 몇 겹이나 되어있긴 하지만 내 검의 위력이 워낙 강해서 몇 번이나 경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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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이 뭐든 단번에 베어버리고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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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얼거리듯 뱉어낸 말에 마검이 붕붕 몸을 흔들었다. 자연스럽게 내 손도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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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싫다! 무대 아니, 경기에 나온 게 얼마 만인데 그렇게 금방 들어가! 안돼! 못해! 적어도 기술명 세 개는 외치게 해줘, 그리고 대사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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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식간에 근엄한 이미지를 던져버리고 바닥에 누워 떼쓰는 아이가 되어버린 마검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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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알았어. 해주면 되잖아.”
    [ 기술명 세 개, 대사 외치기도…? ]
    “전부 네가 외치는 거 맞지?”
    [ 당연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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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들어줄 것처럼 대답하자 마검이 붕 떠올랐다. 나는 검을 똑바로 든 사람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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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았으니까 조금 진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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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과 동시에 마검이 축 늘어졌다. 작게 웅웅 떨리는 게 기분이 좋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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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히 경기에 안 나간 지 오래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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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이 [ 피를 마음껏 먹으면 뭐 해, 쓸 곳도 없는데! ]라고 화낼 정도로 경기에 나간 지 오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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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수하지 않도록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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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 생각하며 투기장 가운데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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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웅,쿵,쿠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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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분 효과가 있다는 말이 사실이라는 듯 심장이 점차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카페인을 과하게 섭취한 듯한 감각에 느릿하게 눈을 깜빡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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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멀리 무언가가 가까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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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 주도권을 넘겨라 파트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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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껏 신이 난 마검의 말투에 곧바로 주도권을 넘기자 몸이 멋대로 자세를 잡았다. 얼마 전부터 창이 질렸는지 연무장을 무너뜨렸을 때랑 자세가 달랐다. 손에 든 검도 롱소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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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흐흐, 내가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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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 처음 등장할 땐 이런 대사, 저런 대사 다 쳐보겠다고 해놓고 너무 신이 난 나머지 아무 말이나 뱉고 있는 모습이 웃겼다. 지적해줄까 하다가 그냥 놀게 내버려 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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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 적은 누구냐! 당장 나와서 가르간도아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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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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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눈앞에 빛이 번쩍거렸다. 순식간에 몸이 돌아가고 마검이 날 선 공격을 막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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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챙,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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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식간에 오간 공방 속에서 리안은 상대의 얼굴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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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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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도를 하다 만 건지 거뭇한 입가, 송충이 같은 눈썹, 단춧구멍 같은 눈에 붙은 3cm짜리 긴 속눈썹, 새빨간 립스틱을 칠해 붉고 두툼한 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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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봐도 가발로 추정되는 금발 머리, 사각형에 가까운 각진 턱, 오뚜기가 형제라고 눈물 흘릴 것 같은 둥글둥글한 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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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룡점정은 무릎까지 내려오는 갈색 코트와 훤히 드러난 다리에 자란 부숭부숭한 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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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욕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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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미친 변태가 왜 여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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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장바바리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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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앞에 있는 존재는 고등학교 다닐 때 종종 출몰하던 변태였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남녀공학이었지만 저놈의 표적은 항상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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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의 몸은 모자이크 처리되지만 같은 성별의 몸은 모자이크 처리가 안 된다. 그 소리는 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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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새끼 내가 반드시 썰어버리겠다고 생각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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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 내 눈!”하던 세월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놈이 히힉 웃으며 들고 있는 건 길쭉한 보라색 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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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 순간 이성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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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르간도아 저 새끼 빨리 죽여버려!’
    [ 뭐? 하지만 -…저거 ▉▉인데 괜찮겠어? ]
    ‘뭐라고?’
    [ ▉▉인데 괜찮겠냐고. ]
    ‘앞부분 단어가 안 들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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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앵 -, 챙재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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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앞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검이 섞이고 있었지만 움직이는 건 마검이었기에 태연하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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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정신 간섭인가? 레이다홀손 때문인가 보군. 잠깐, 네가 고작 레디아홀손에 당할 리 없을 텐데? 이상한 일이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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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검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잠시 기다려보라고 말했다. 동시에 마검 주위가 검붉은 빛으로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검붉은 빛이 검 손잡이와 손등으로 옮겨붙더니 내 온몸에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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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
    ​
    동시에 눈앞에 있던 변태가 바뀌었다.
    ​
    ​
    “아이리스?”
    [ 그래, 저 녀석 네 동생인데 괜찮겠냐고 물어본 거야. ]
    “헉, 그러면 안 되지! 절대 죽이지 마!”
    [ 뭐, 그 정도야. ]
    ​
    ​
    이곳에 떨어진 지 얼마 안 된 마검이었으면 모를까 매일 같이 수백, 수천 명 분량의 피를 섭취한 마검에게 아이리스를 제압하는 건 손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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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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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리스는 평소보다 몸이 무겁다는 걸 알아차렸다. 주변에 깔린 자욱한 안개가 어떠한 영향을 줬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안개 때문이 아니었다.
    ​
    ​
    아이리스는 리안을 위해 검을 들었고 용사의 핏줄이 이에 반응하여 막대한 양의 신성력을 활용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검 끝은 리안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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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인이 인지하지 못했다고 해도, 자신이 지키려 했던 존재에게 칼을 뻗는 순간 막대한 힘을 선물했던 신성력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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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때문에 그녀는 안개에 완전히 현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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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욱,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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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리스는 거칠어지려는 숨을 겨우 가다듬으며 매섭게 눈앞에 있는 사람을 노려보았다. 
    ​
    ​
    밋밋한 셔츠에 심장 부근을 가린 가죽 갑옷, 무릎까지 오는 통부츠와 허벅지가 넉넉한 바지를 입은 남자가 장검을 늘어뜨린 채 비열하게 웃고 있었다. 
    ​
    ​
    …과거 잠시 머문 적 있는 노예 상점의 상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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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는 잔혹한 폭력성을 노예들에게 풀어댔다. 본인의 화가 풀릴 때까지 주먹과 발길질을 멈추지 않았다. 노예 상인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
    ​
    친한 사이로 보이는 아이들을 끌어내 눈앞에서 쥐어팼다. 친한 아이에게 대신 맞을 거냐고 물어보고, 맞겠다고 하면 죽기 직전까지 때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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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을 그 정도로 망가뜨리고도 멀쩡했던 건, 노예 상인이 거대한 상단의 차남이었던데다가 죽을 것 같은 노예들은 저렴한 포션으로 숨을 붙여놓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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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에 다른 노예 상인이 노예들을 돌볼 때 포션의 효과가 끝나 노예들이 무더기로 죽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담당이던 노예 상인이 전부 물어줘야 했기 때문에 망나니 노예 상인이 물어줘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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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그곳에 오래 있지 않았지만, 끔찍했던 나날만큼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가 처음 사귀었던 ‘친구’라고 부를 수 있던 존재도 저 남자의 손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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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그때 ‘죽었던 남자’가 눈앞에 나타날 수 없다는 걸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리스의 이성은 독 안개 때문에 반 이상이 마비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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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이할 정도의 열기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고, 숨결이 격해졌다. 벌겋게 충혈된 눈이 남자의 검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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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여버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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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후원해주신 혈소연님! 익명F님! 감사합니다 연재 열심히 하겠습니다! ‘ㅂ’9
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파바박 연참하고 싶은데….손이..느려…서…흑흑흑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특별 경기.

이번 경기는 오로지 선택된 일부의 사람들을 위해 준비된 무대였다. 관중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보호막으로 인해 경기장이 잘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관중은 이때를 쉬는 시간으로 여기고 자리를 비웠다.

“이런 건…상상도 못 했군.”

“상상은 했지만 어떻게 무대에 올릴지를 몰랐겠죠.”

토토겐의 힘없는 말에 앙쇼가 빈정거리는 투로 말했다.

“그래, 그랬던 거 같군..”

토토겐은 멍한 얼굴로 투기장을 내려다보았다.

“이 장면을 반숙이 봤어야 하는데.”

“멍청하게 죽은 놈을 왜 떠올립니까? 기껏 재미있는 무대를 앞에 두고 입맛 떨어지는 소리 하지 맙시다.”

이에 토토겐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숙, 리안에게 몇 번이고 고문을 시도하던 그는 반쯤 정신을 놓았다. 완전히 미쳐버린 건 아니지만 그 나이대 노인처럼 힘없이 행동하고는 했다.

반숙에게 끔찍한 고문과 세뇌를 당해 정신이 무너진 채 그의 오른팔 역할을 하던 시종이 멍청한 반숙의 모습을 보고 정신이라도 차린 건지, 어느 날 밤 그를 잔혹하게 도륙하고 도망쳤다.

자신이 기르던 노예에게 죽다니 그것만큼 수치스러운 죽음이 없다. 앙쇼는 멍청한 반숙을 입에 담는 것조차 싫었다. 그와 함께 묶여 ‘형제’라고 불리던 과거가 수치스러웠다.

“이게 차이라는 겁니다. 그놈과 저의 차이. 저는 결국 최고의 무대를 만들었고 그놈은 멍청하게 패배해서 죽은 겁니다.”

앙쇼는 죽어버린 반숙을 모욕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비릿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 무대를 느긋하게 지켜봅시다.”

“그래. 그게 좋겠군.”

리안 때문에 폭싹 늙은 것 같던 토토겐의 목소리가 생기를 되찾았다.

그렇게 경기가 시작되었다.

***

“이게 뭐지?”

[ 흐음? 이 안개는 분명 레디아홀손이군. ]

‘레디아홀손? 그게 뭐야?’

마검의 말에 속으로 질문을 던지자 곧바로 답이 돌아왔다.

[ 마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독 안개 중 하나다. 들이마시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을 적으로 인지하게 만들지. 그게 아군이라고 해도. ]

‘엄청 위험한 거네. 그런데 이게 왜 여기 깔려있지? 어차피 상대랑은 서로 적이잖아. 아군도 없고.’

[ 확실히 그렇군. ]

‘뭔가 다른 기능은 없어?’

[ 글쎄, 약간의 흥분 효과? 각성 상태가 되어 쉽게 흥분하여 상대에게 달려들게 만들지. ]

‘아 그건가 보네.’

[ 시야를 가리는데도 탁월하다. ]

‘확실히 한 치 앞도 안 보이네.’

마검과 대화를 나누며 검을 늘어뜨린 채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내 머리 위쪽에 주먹만 한 무언가가 날아와 알짱거렸다. 대충 카메라 같은 역할을 하는 놈이라고 한다.

엄청 비싼 거라 부숴 먹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 방어 마법이 몇 겹이나 되어있긴 하지만 내 검의 위력이 워낙 강해서 몇 번이나 경고받았다.

“적이 뭐든 단번에 베어버리고 들어가자.”

중얼거리듯 뱉어낸 말에 마검이 붕붕 몸을 흔들었다. 자연스럽게 내 손도 흔들렸다.

[ 싫다! 무대 아니, 경기에 나온 게 얼마 만인데 그렇게 금방 들어가! 안돼! 못해! 적어도 기술명 세 개는 외치게 해줘, 그리고 대사도..! ]

순식간에 근엄한 이미지를 던져버리고 바닥에 누워 떼쓰는 아이가 되어버린 마검을 내려다보았다.

“아,알았어. 해주면 되잖아.”

[ 기술명 세 개, 대사 외치기도…? ]

“전부 네가 외치는 거 맞지?”

[ 당연하다! ]

내가 들어줄 것처럼 대답하자 마검이 붕 떠올랐다. 나는 검을 똑바로 든 사람이 되어버렸다.

“알았으니까 조금 진정해.”

그 말과 동시에 마검이 축 늘어졌다. 작게 웅웅 떨리는 게 기분이 좋아 보였다.

‘확실히 경기에 안 나간 지 오래됐지.’

마검이 [ 피를 마음껏 먹으면 뭐 해, 쓸 곳도 없는데! ]라고 화낼 정도로 경기에 나간 지 오래되었다.

‘실수하지 않도록 조심하자.’

그리 생각하며 투기장 가운데로 향했다.

쿠웅,쿵,쿠우웅!

흥분 효과가 있다는 말이 사실이라는 듯 심장이 점차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카페인을 과하게 섭취한 듯한 감각에 느릿하게 눈을 깜빡거렸다.

저 멀리 무언가가 가까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 자, 주도권을 넘겨라 파트너! ]

한껏 신이 난 마검의 말투에 곧바로 주도권을 넘기자 몸이 멋대로 자세를 잡았다. 얼마 전부터 창이 질렸는지 연무장을 무너뜨렸을 때랑 자세가 달랐다. 손에 든 검도 롱소드였다.

[ 크흐흐, 내가 왔다! ]

분명 처음 등장할 땐 이런 대사, 저런 대사 다 쳐보겠다고 해놓고 너무 신이 난 나머지 아무 말이나 뱉고 있는 모습이 웃겼다. 지적해줄까 하다가 그냥 놀게 내버려 두기로 했다.

[ 자, 적은 누구냐! 당장 나와서 가르간도아의 -… ]

챙!

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눈앞에 빛이 번쩍거렸다. 순식간에 몸이 돌아가고 마검이 날 선 공격을 막아냈다.

챙,창 –

순식간에 오간 공방 속에서 리안은 상대의 얼굴을 확인했다.

“이런 미친..”

면도를 하다 만 건지 거뭇한 입가, 송충이 같은 눈썹, 단춧구멍 같은 눈에 붙은 3cm짜리 긴 속눈썹, 새빨간 립스틱을 칠해 붉고 두툼한 입술.

딱 봐도 가발로 추정되는 금발 머리, 사각형에 가까운 각진 턱, 오뚜기가 형제라고 눈물 흘릴 것 같은 둥글둥글한 체형.

화룡점정은 무릎까지 내려오는 갈색 코트와 훤히 드러난 다리에 자란 부숭부숭한 털이었다.

쌍욕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

‘저 미친 변태가 왜 여기 있어?!’

여장바바리맨.

눈앞에 있는 존재는 고등학교 다닐 때 종종 출몰하던 변태였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남녀공학이었지만 저놈의 표적은 항상 남자였다.

이성의 몸은 모자이크 처리되지만 같은 성별의 몸은 모자이크 처리가 안 된다. 그 소리는 뭐다?

‘저 새끼 내가 반드시 썰어버리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악 내 눈!”하던 세월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놈이 히힉 웃으며 들고 있는 건 길쭉한 보라색 가지였다.

나는 그 순간 이성을 잃었다.

‘가르간도아 저 새끼 빨리 죽여버려!’

[ 뭐? 하지만 -…저거 ▉▉인데 괜찮겠어? ]

‘뭐라고?’

[ ▉▉인데 괜찮겠냐고. ]

‘앞부분 단어가 안 들리는데?’

채앵 -, 챙재쟁.

눈앞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검이 섞이고 있었지만 움직이는 건 마검이었기에 태연하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 아, 정신 간섭인가? 레이다홀손 때문인가 보군. 잠깐, 네가 고작 레디아홀손에 당할 리 없을 텐데? 이상한 일이군. ]

마검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잠시 기다려보라고 말했다. 동시에 마검 주위가 검붉은 빛으로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검붉은 빛이 검 손잡이와 손등으로 옮겨붙더니 내 온몸에 번졌다.

“어?”

동시에 눈앞에 있던 변태가 바뀌었다.

“아이리스?”

[ 그래, 저 녀석 네 동생인데 괜찮겠냐고 물어본 거야. ]

“헉, 그러면 안 되지! 절대 죽이지 마!”

[ 뭐, 그 정도야. ]

이곳에 떨어진 지 얼마 안 된 마검이었으면 모를까 매일 같이 수백, 수천 명 분량의 피를 섭취한 마검에게 아이리스를 제압하는 건 손쉬운 일이었다.

***

아이리스는 평소보다 몸이 무겁다는 걸 알아차렸다. 주변에 깔린 자욱한 안개가 어떠한 영향을 줬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안개 때문이 아니었다.

아이리스는 리안을 위해 검을 들었고 용사의 핏줄이 이에 반응하여 막대한 양의 신성력을 활용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검 끝은 리안을 향하고 있었다.

본인이 인지하지 못했다고 해도, 자신이 지키려 했던 존재에게 칼을 뻗는 순간 막대한 힘을 선물했던 신성력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그녀는 안개에 완전히 현혹되었다.

“후욱,흐…”

아이리스는 거칠어지려는 숨을 겨우 가다듬으며 매섭게 눈앞에 있는 사람을 노려보았다.

밋밋한 셔츠에 심장 부근을 가린 가죽 갑옷, 무릎까지 오는 통부츠와 허벅지가 넉넉한 바지를 입은 남자가 장검을 늘어뜨린 채 비열하게 웃고 있었다.

…과거 잠시 머문 적 있는 노예 상점의 상인이었다.

그는 잔혹한 폭력성을 노예들에게 풀어댔다. 본인의 화가 풀릴 때까지 주먹과 발길질을 멈추지 않았다. 노예 상인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친한 사이로 보이는 아이들을 끌어내 눈앞에서 쥐어팼다. 친한 아이에게 대신 맞을 거냐고 물어보고, 맞겠다고 하면 죽기 직전까지 때렸다.

상품을 그 정도로 망가뜨리고도 멀쩡했던 건, 노예 상인이 거대한 상단의 차남이었던데다가 죽을 것 같은 노예들은 저렴한 포션으로 숨을 붙여놓았기 때문이다.

후에 다른 노예 상인이 노예들을 돌볼 때 포션의 효과가 끝나 노예들이 무더기로 죽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담당이던 노예 상인이 전부 물어줘야 했기 때문에 망나니 노예 상인이 물어줘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이리스는 그곳에 오래 있지 않았지만, 끔찍했던 나날만큼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가 처음 사귀었던 ‘친구’라고 부를 수 있던 존재도 저 남자의 손에 죽었다.

이성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그때 ‘죽었던 남자’가 눈앞에 나타날 수 없다는 걸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리스의 이성은 독 안개 때문에 반 이상이 마비된 상태였다.

기이할 정도의 열기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고, 숨결이 격해졌다. 벌겋게 충혈된 눈이 남자의 검을 노려보았다.

“죽여버릴 거야…”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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