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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4

       철부리 가면을 한 남자.

         

       그가 운을 떼며 다가왔다.

         

       “이 세상엔 악성 종양이 너무나도 많다.”

         

       핸드 라이트에 비친 건 사람이 아니었다. 3미터에 달하는 장신의 남성, 사람이라고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키가 크고 몸은 호리호리했다. 그런데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신체부위를 검은 천으로 감싸고 있었던 탓에 체형을 특정하기는 어려웠다.

       

       압도적인 신장에 전율이 일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인간, 엘프, 우리를 따르지 않는 몇몇 수인들과, 가장 가증스러운 정령까지…. 그들을 절제하고 소독하는 것이 나의 업이요, 또한 폐하께서 내리신 명령이다.”

         

       이 새끼가 뭐라는 거야.

       

       다짜고짜 읊는 말이 고전시가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분명 같은 언어를 쓰고 있기는 한데, 뭘 말하는지는 이해하기 어려운 느낌.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낀 나는 스태프 끝을 남자에게로 향했다.

       

       사정거리까지 불과 수 미터 남은 지점. 정말 필요하다면 놈의 고글 사이로 캘리퍼스의 끝부분을 박아넣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계획은 머릿속에서 그처야만 했다. 버멜이 또 다시 내 옷소매를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자극하지 마.”

         

       나는 그제야 눈앞의 남자가 재앙급 이상의 마수라는 걸 알아챘다.

         

       여태까지 본 마수라고는 전부 동물형이었다. 인간형은 없었다. 심지어 유일하게 만난 재앙급 마수인 호마루스조차 전갈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입학식에서 인간의 말을 하는 마수를 만난 적 있었지만, 그 또한 직접 본 것은 아니었다. 직접 조우한 인간형 마수는 이번이 처음이리라.

          

       “대륙의 정화와 재건, 그 대업을 몰라보는 동포가 있으니 이 어찌 통탄할 일인가?”

         

       남자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나열했다.

         

       그가 양팔을 내뻗었다. 허름한 로브의 양 소맷단이 현수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손목 사이로 굳다 만 밀랍이 뚝뚝 떨어졌다. 남자의 팔에는 시커먼 지네가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기어다녔다.

       

       “하지만 나는 나와 같은 혈통을 모질게 대하는 일이 없다. 여신이라는 작자는 만물이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주장하지만, 우리 종족은 다른 어떤 종족보다도 더욱 평등하다.”

         

       나는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남자를 내버려둔 채 버멜에게 귀를 빌려달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쟤 뭐냐.”

       “절멸급 마수인 엔테로 콜리티카, 이번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야.”

       “나를 아는가?”

         

       남자가 목을 앞으로 내뺐다.

         

       “내 여태까지 인족 앞에 나타난 적이 없거늘 어디서 정보가 새어 날 아는 이가 생겼단 말인가?”

       “너에게 알려줄 의리는 없어.”

         

       그야 빙의자니까. 

         

       “뭐, 상관없다. 시간은 충분히 벌었다. 너희들이 역병으로 정신을 가누지 못하는 동안 폐하의 군대는 북방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목표는 달성했고, 더는 이곳에 머무를 이유를 찾을 수조차 없다.”

         

       새부리 가면 남자는 아공간에서 기다란 스태프를 꺼냈다. 그 길이는 어림잡아 보더라도 10척에 달했다. 

         

       “그런데 이곳은 지하수로, 감시장비 하나 없이 오수와 사체만이 가득한 곳이지. 거기서 익사체가 한둘 늘어난다고 해서 네 동족이 눈 하나 깜빡할까?”

         

       슬슬 공격하려는 건가.

         

       뒤쪽은 철문으로 막혀 있고, 전방에는 적이 있다. 통로는 일자형으로 되어 있었기에 퇴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싸우게 된다면 전면전이다.

         

       심지어 상대는 절멸급 마수. 나라에서 날고 기는 전략급 마도사들이 떼거지로 몰려들어도 잡지 못하는 수준의 괴물이다. 플레어가 없었더라면 당장 여기서 묫자리 펴야 했다.

         

       통계적으로 봤을 때 이길 확률은 한없이 낮다. 그러니 쓰러뜨릴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여두려면 선빵을 쳐야 한다. 나는 플레어 스크롤을 언제든지 격발할 수 있도록 장전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남자의 말에 맥이 픽 빠지고 말았다.

         

       “그래, 본래라면 여기서 날 마주치는 자는 누구라도 목을 썰어버릴 계획이었다. 헌데 이러면 나로서도 조금 곤란하군.”

       “……?”

       “영악한 엘프여. 보아하니 내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있는 모양이로구나. 네가 그 소녀를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본래의 너는 여기서 숨이 끊어질 운명이었다.”

         

       이건 또 뭔 소리야.

       

       버멜은 아까부터 몸을 뻣뻣하게 세우고 있었다. 겁대가리를 상실해서 허리 꼿꼿이 펴고 있었다기보다는, 그냥 쫄아서 이러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상하다. 전력 면에서 우리가 불리하다는 건 저 자도 잘 알고 있을 터인데. 왜 공격하려 들지 않는 거지?

       

       내 머릿속이 그 의문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당장 빙의자에게 물어보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뭔가, 기류가 뭔가 이상하다. 

       

       마치 지금 물어봤다간 눈치 없는 새끼로 낙인찍힐 것 같은 분위기였다. 조용히 입을 닫고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남자는 낫처럼 생긴 스태프를 휘둘렀다. 공격 모션은 아니었다. 그의 동작이 끝나자마자 아까부터 뒷쪽 철문을 쾅쾅 두드리던 소리가 멎었다.

         

       “엘프에 금안족이라. 나들이를 왔다가 좋은 걸 보고 가는 군. 내 얼굴을 봤음에도 살아 돌아갈 수 있는 건 그 답례라고 생각해라.”

         

       꿀꺽. 옆에서 목울대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아직 이 일이 끝나지 않았다는 걸 잊지 마라. 언제든지 네 주변 사람들이 구천으로 향할 기회는 남아있다. 그래, 그냥 가면 면이 안 서니 작별선물이라도 하나 놔둘까.”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남자는 으스스한 웃음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번뜩거리던 안광도 자취를 감추었다.

         

       핸드라이트로 불빛을 비춰도 새부리 가면은 보이지 않는다. 그제야 버멜은 터널이 떠나가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살았다….”

         

       도박에서 겨우 본전을 되찾은 사람과도 같은 어조였다. 버멜은 벽을 짚으며 몇 번이고 헛구역질을 해댔다.

         

       나도 긴장한 건 매한가지였지만, 그렇다고 얘처럼 과할 정도로 경직된 건 아니었다. 차라리 아까까지 우리를 쫓아오던 수로의 괴물이 더 공포스러울 지경이었다.

       

       생각해보니 얜 미래에 뭐가 일어날지 알고 있을 테니까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거겠구나. 방금 마주친 놈이 상상 이상으로 위험한 놈인 것만큼은 확실해졌다.

            

       나와 버멜이 밖에 나왔을 때는 해가 떨어진 뒤였다. 루틴에 맞추려면 빗자루를 쥐어야만 했다.

         

       피로가 장난 아니었다. 아, 염병할 거.

         

         

       **

         

         

       ─ SYSTEM : 현재 <흑사병> 시련의 진행도는 90%입니다.

         

       ─ SYSTEM : 아카데미 내 흑사병으로 사망한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

         

         

       상황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 빙의자의 말이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그 까마귀 부리를 한 남자와 마주친 이후 모든 지표가 하락세를 그렸다.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철가루의 양이 나날이 줄어들었고, 장례식장에도 자리가 하나둘씩 나기 시작했다.

         

       어느덧 일일 감염자 수는 두 자릿수로 떨어졌다. 거의 한 달 만의 일이었다.

         

       “신기하네요. 못해도 여섯 달은 걸릴 줄 알았는데.”

         

       일반적인 전염병 상황이라면 그 이상 걸리기도 한다. 그때는 진짜 답답해 죽는 줄 알았는데.

         

       [북방 전선에서 전력 손실 심각]

       [제국군, 제1차 저지선까지 재차 후퇴]

         

       바깥에선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왔지만, 설상가상이라는 단어를 쓸 정도는 아니었다. 출판사에서 다시 신문을 발행하기 시작했다는 건 성도의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알렉스 선생님 상태는 어떠세요? 매일같이 항생제를 사용하고 계신다는 것까지는 들었는데….”

       “그, 얼마 전에 퇴원하셨어요.”

       “…그게 돼요?”

         

       이쪽 세계 흑사병은 잘 걸리면 낫지 않는다. 설령 낫는다고 해도 사지 한두 개는 쇳가루처럼 변해 저절로 떨어진다. 신체 일부를 잃는 것만으로도 후유증이 심각할 텐데.

         

       “다리 한쪽을 잃으셨는데, 그 이후로는 면역체계가 활성화돼서 스스로 회복하신 모양이에요.”

         

       진짜 뭐 하는 사람이지. 

         

       “어쨌든 일이 잘 끝나가고 있어서 다행이에요. 아마 6월 초순에는 등교가 가능할 거예요.”

         

       샤디엘은 고생했다는 듯 내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이로써 내가 할 수 있는 방역 업무는 모두 끝났다.

         

       희소식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버멜의 부탁으로 유자나무 열매를 들고 보건실로 향했을 때의 이야기다.

         

       “조금 있으면 치료제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대뜸 보건체육 선생님이 그런 말을 했다.

         

       세피아 글리스턴이라는 이름을 가진 투톤 헤어의 엘프였다. 그녀가 상주하는 보건실에선 약품 냄새와 함께 시트러스 계열의 향이 냈는데, 아마 그녀가 그런 종류의 향수를 쓰는 듯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없었다. 그저 평소 하던대로 마법이나 연구하며 지내다가 원래 세계로 돌아가면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 과정에서 헤를라인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도 잊지 말고.

         

       좋으나 싫으나 이쪽 세계에 정을 붙였다는 것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좆같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런 사람은 지구에도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헤를라인 선생님이나 로테 같은 친구들을 봐서라도 마왕에 대적할 수 있는 무기 하나쯤은 던져주고 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다.

         

       [관리자 모드로 전환합니다.]

         

       [□ 새 연구 작성 : 토카막 내 플라스마 유지장치 개발]

       [□ 새 연구 작성 : 중수로 개발]

         

       [와. 너무 빡센 거 아니에요?]

         

       그래봤자 페스트보단 덜하겠지. 안 그래도 여름방학 전후로 이런 걸 할 생각이었다. 여기서부턴 혼자 하기도 어려울 테니 여러 연구실과 컨택도 해야 할 테고.

         

       [수소탄을 만드실 거라면 첫 번째 연구만 해도 상관없어요. 중수로는 핵분열쪽 이론이니까요. 1차 폭탄을 레이저로 사용하고 싶으시다면 우라늄 같은 거 없어도 되거든요.]

         

       안다. 원래도 그쪽으로 할 생각이었고.

         

       그럼에도 중수로 제작을 머릿속에 넣고 있는 이유는 다른 데 있….

         

       “뭐 해?”

         

       툭. 생각하던 걸 뚫고 다가온 사람은 로테였다.

       

       이때 나는 기숙사에서 양장본을 펴놓은 채로 글씨를 적고 있었다. 평소에는 남들 안 보여주려고 불가시 모드도 켜고 있었는데, 지금만큼은 그럴 필요가 없어서 꺼 두고 있던 참이었다.

         

       “양장본이네. 산 거야?”

        “어? 어, 그렇지.”

         

       강매당했어.

         

       여신이 내린 양장본을 다른 누군가에게 보여준 건 로테가 처음이었다. 로테는 흐음, 하고 내가 쓴 필기를 살펴보더니 이내 비틀거리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 모습이 어딘가 위태로워 보였다.

         

       “왜 그래? 어디 몸이라도 안 좋아?”

       “아니, 그냥 피곤해서. 요새 잠도 얼마 못 자고 방역했잖아.”

         

       로테는 자신은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라며 싱긋 웃었다. 매체에서나 보던 정통파 귀족이라고는 볼 수 없는 따사로운 미소였다.

         

       나는 저런 표정을 평생 못 짓겠지.

       

       로테가 눕는 걸 확인하고는 몸을 돌렸다. 다음 연구할 마도를 구체화하려면 한참 머리를 쥐어 짜내야 할 것 같다.

       

       펜을 들고 페이지를 넘기려던 참이었다.

         

       “크, 크흡, 케흑.”

         

       등 뒤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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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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