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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4

       생각하자.

       

       위기의 순간, ‘왜’나 ‘어째서?’ 같은 의문은 불필요하다. 놈들은 나를 죽이려 한다. 자연히 나도 놈들을 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 것이다.

       

       “랭커 둘을 움직일 수 있다니. 역시 일성인가.”

       “후후! 맞는 말이오만, 그들이 가진 것은 돈이 전부가 아니지.”

       “루터스 블라드! 여유 부리지 마라. 저놈은 절대 평범한 D등급 능력자가 아니다!”

       

       동료의 여유에 배알이 꼴린 걸까? 조금 전 모습을 드러낸 김인만이 크게 소리쳤다.

       

       “그건 알고있소. <현상거절>. 히어로 생태계에서 가장 희귀하나, 가장 비루한 능력의 소유자가 바로 저 자라는 걸.”

       

       <페이즈 체인저> 루터스 블라드가 손가락을 허공에 튕겼다.

       

       그러자.

       

       파르르륵!

       

       복도에 뜨거운 열기가 가득 차기 시작했다. 문제는 ‘열기’라는 단어로 뭉뚱그렸을 뿐, 그 수준은 절대 평범하지 않다는 것.

       

       “호랑이는 토끼를 사냥할 때도 전력을 다하는 법이오. 하물며 당신 같은 위험인물을 사냥할 때에는, 전력을 넘어선 무언가가 필요한 법이지.”

       “…….”

       

       특이한 놈이다. 녀석은 나를 진심으로 경계하고 있었다. 이제껏 <신속>이나 <공간왜곡> 같은 놈들이 히어로 등급을 근거로 나를 깔보던 걸 생각하면 대단히 독특한 모습이다.

       

       “하아.”

       

       뜨거운 한숨이 입밖으로 새어나왔다.

       

       치이이…….

       

       새어나온 호흡이 기화한다. 그만큼 이곳의 온도는 삽시간에 매우 뜨겁게 상승했다.

       

       ‘<페이즈 체인저>의 능력은 태양의 힘을 빌어오는 것.’

       

       주력기는 주변 공간 전체를 불지옥으로 만들 수 있는 ‘극열지옥’. 애당초 ‘열’이라는 힘에서 자유로운 놈이기에 가능한 공격 수단이었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궁극기는 ‘흑점폭발’. 애석하게도 설정만 공개된지라 실제 위력은 알 수 없었지만, 해당 기술 역시나 인세의 상식을 초월한 힘을 가졌을 것이 분명했다.

       

       ……당장 송수아만 미루어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지 않나. 한 인간이 다수의 태풍을 생성하고, 다룰 수 있으니.

       

       ‘안젤리카와 송수아에게 말한 시간까지 약 오십 분. 그 전에 놈들을 처치한다.’

       

       힘든 싸움이 될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세상을 살다보면, 언제고 바라지 않던 일을 마주하게 되는 법이다.

       

       “현상거절.”

       “……역시. 그대는 영웅이오. 지금 상황에 전의를 다질 수 있다니!”

       

       무엇이 그리 즐거운 건지, <페이즈 체인저>는 밝게 웃으며 소리쳤다.

       

       [ 현재 공간의 열기 상승을 거절한다. ]

       

       가장 먼저 펼친 진언은 ‘열’에 대한 저항이었다. 상대는 존재 자체가 상태 이상 덩어리인 <페이즈 체인저>. 거기에 더해 화상으로 인한 피해까지 우려되니 가장 급한 불을 끌 생각이었다.

       

       화아악!

       

       기나긴 복도의 기온이 삽시간에 하강한다. 그저 온도가 내렸을 뿐인데도 호흡이 원활해지고 맑은 공기를 들이킬 수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참으로 매력적인 일이오. ‘현실 조작’ 능력자 중에서 당신 같은 거물이 출현한 것은.”

       

       스윽.

       

       그리 중얼거린 적은 품 안에서 작은 단검을 꺼냈다.

       

       ‘……도대체 무슨 소재로 만든 거지?’

       

       저 단검은 내 등짝에 피해를 입혔다. 헌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히어로 아카데미 내에선 불의의 사고가 매우 흔하게 일어난다. 따라서 나는 평시에도 능력을 활용해 ‘방어막’ 같은 공간을 얇게 펼쳐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버릇이었다.

       

       헌데 녀석이 내던진 단검은 내게 상처를 입히는데 성공했다. 당장 지혈을 할 수도 없으니 능력을 활용할 수밖에.

       

       “현상거절.”

       

       [ 육체의 출혈을 거절한다. 또한, 출혈로 인한 활력 감소를 거절한다. ]

       

       “참으로 황당한 능력이구려.”

       “내가 말하지 않았냐! 저놈은 위험해. 우리 고용주는 물론이고 인류 전체에 위험한 놈이라고!”

       

       정말 순수히 놀랐는지, 감탄사를 흘리는 <페이즈 체인저>에게 김인만이 소리질렀다.

       

       인류 전체에 위험하다니? 인류에 진정 위험한 건 내가 아니라, ‘일성’이 꾸미는 음모겠지.

       

       “궁금한 것이 몇가지 있다.”

       “……전투 이전에 대화라. 좋소, 물어보시오.”

       “어이! 루터스 블라드, 이 새끼는 아직도 현실감각이…….”

       

       빠아악!

       

       “쿠, 쿠에엑!”

       

       쿠당탕!

       

       <페이즈 체인저>의 주먹이 김인만의 복부에 작렬했다. 자연스레 무방비한 상태에서 공격을 허용한 김인만은 바닥을 뒹굴었고.

       

       “당신 같은 소인배가 문제요. 왜 자꾸 말을 끊는 것이오?”

       “이, 이 미친 새끼! 사극으로 한국어를 배웠다더니 성격까지!”

       

       ……이 녀석도 점잖은 녀석 같았는데, 나름 기분파였나.

       

       뭐, 따져보면 히어로 아카데미의 최상위. 즉 랭커 중에서 기분파 아닌 녀석이 몇이나 있겠나.

       

       “질문하시오. 어차피 우리 중 하나는 이곳에서 죽을 것이오. 승산은 숫자가 많은 우리가 유리해보이나,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법이 아니겠소?”

       

       그리 중얼거린 <페이즈 체인저>는 번듯한 자세로 내 말을 기다렸다.

       

       ……진짜, 대화를 나누면 나눌 수록 이상한 놈이다. 첫인상은 음침한 놈 그 자체였는데, 말은 또 청산유수처럼 잘 하지 않나.

       

       아무튼. 일단 할 건 해야겠지.

       

       “첫번째 질문이다. 도대체 너 같은 녀석이 왜 ‘일성’을 돕는 거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데.”

       

       히어로 아카데미의 랭킹 1위와 2위. <원소술사>와 <페이즈 체인저>는 대외활동을 극도로 꺼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기에 당해 승천전에 이성혁이 참가한 것이 크게 화제가 됐던 거고.

       

       그리고, 그들에겐 부족한 것이 없었다. 부와 명예, 권력. 모두를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헌데 어째서 그가 일성과 손을 잡았다는 말인가.

       

       “흠. 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될 것 같소만, 상관 없겠소?”

       “그래. 상관 없어.”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영국 뒷골목 출신이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가 부랑아 출신이며, 아주 어린 시절부터 살아남기 위해서 ‘단검술’ 공연을 전전하며 살아간 것도.

       

       “나의 고국은 참 재미있는 곳이지. 세상 그 어느곳보다 평등한 곳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오. 미천한 출생인 자에게는 출세의 길이 닫혀있소. 제아무리 Z급 히어로라 할지라도.”

       “……그건 이상한데. 랭커는 대우도 엄청날 텐데?”

       “그렇소.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오. 겉보기와 달리 그곳은 아직 철저한 신분제 사회요. 아무리 발버둥쳐도 대중의 비웃음은 그치지 않았소. 왜냐고? 미천한 출생이니까. 저명한 인사들과 그 출신부터 궤를 달리하니까.”

       

       부들부들.

       

       무엇이 그를 분노하게 하는 걸까.

       

       대중의 시선? 싸늘하고 경멸 어린 뒷담화? 혹은 무엇보다 더 엄격한 잣대?

       

       “그런 와중 일성이 내게 접촉했소. 그들의 계획은 퍽 재밌더군.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 만인이 평등하며, 모두가 같은 꿈을 꾸고, 현세에 존재하는 지상낙원, 즉 유토피아를 그린다고.”

       “……설마, 그 계획이라는 게.”

       “당신은 어느정도 알겠지. <신인류 계획>. ‘죽음 물질’을 통해 인류라는 종 전체의 진화와 도약. 새로운 시대의 개막. 세계의 진보, 그리고 조화.”

       

       마치 혼이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린 그는 우수에 젖은 표정으로 저 멀리 있을 하늘을 바라보았다. 촉촉하게 젖은 듯한 눈가는 지금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몽상가 기질이 강하군.”

       “후후! 틀린 말은 아니오. 하지만 어떻소? 조금 더 나은 세상을 그리는 것이 크게 이상하진 않을 것이오.”

       “방법이 문제다. 헛된 꿈에 지나지 않아.”

       

       인간과 몬스터의 혼종을 만들어 새로운 세상을 개척한다고?

       

       20세기, 전세계를 전화로 물들인 유럽의 어느 정치인도 그런 생각은 안 하겠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다른 꿈을 꾸는 것이오.”

       

       그리 중얼거린 <페이즈 체인저>는 힘을 끌어올렸다. 그가 가진 태양의 힘이, 이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걸 녹여버리겠다는 것처럼 무시무시한 아지랑이를 피워냈다.

       

       “아쉽소.”

       “뭐가?”

       “당신의 생각을 돌리지 못한 것. 나는 말이오, 당신 같은 사람을 아주 아끼거든.”

       “……왜?”

       “이미 말하지 않았소? 내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일성’에 투신한 건지. 그렇기에 <현상거절> 같은, 돌풍을 일으키는 이단아가 어찌 고깝게 보이겠소.”

       “…….”

       

       <신인류 계획>이라는, 네이밍부터 무시무시한 프로젝트에 발을 담근 녀석의 구애라니. 이건 해도 너무한 거 아니냐고.

       

       “보여드리겠소.”

       

       후두둑! 투둑! 치이익!

       

       이미 열기는 평범한 인간이 버틸 수 없을 수준까지 치솟았다. 가장 좋은 예로 특수소재로 만들어진 듯한 연구 시설의 복도, 그 천장 부분이 걸쭉한 액체가 되어 녹아내렸다.

       

       “비, 빌어먹을! 나는 자리를 피하겠어!”

       “그러시오. 하지만 기억하시오, <공간왜곡>.”

       “그건 알고 있어!”

       

       팟!

       

       ……뭘 기억해? 혹시 내가 모르는 작전 따위가 있던 건가.

       

       “그나저나.”

       

       스윽.

       

       천천히 몸을 돌린 나는 <페이즈 체인저>와, 그 뒤의 공간을 천천히 눈으로 훑었다.

       

       이제까지 전력은 내가 적들에 비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송수아와 안젤리카가 지상에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으니, 단독으로 두 랭커를 상대하는 것이 여간 부담스러우니.

       

       하지만.

       

       “이제…… 혼자네?”

       

       씨익.

       

       상황이 변했다. <공간왜곡>이 자리를 피한 이상, 내 모든 걸 녀석에게 부딪힐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상거절.”

       

       능력을 개방한다. 그에 맞춰 <페이즈 체인저>도 공격을 위해 태양 만세…… 아니, 두 팔을 활짝 벌렸다.

       

       “……개악.”

       

       언령이 빛을 발한다.

       

       말하는 것이 이루어지도록 만드는 힘. 다시 한번 ‘개악’이 현실세계를 조각하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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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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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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