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64

    루크는 자기를 걱정하느라 밤을 꼬박 샌 예르나에게 피로회복에 괜찮은 차를 내주기로 했다.

    마력초는 대부분 마나포션의 재료가 된다.

    마침, 루크가 사과의 뜻으로 건넸던 마낼로가 있었다.

    마낼로로 만드는 마력포션은 마나를 다룸에 조금 섬세할 필요가 있지만, 루크에게 그런건 일도 아니었다.

    평생토록 만든 영약과 포션을 한군데에 모으면, 웬만한 호수정도는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의 압도적인 경험이 있으니 말이다.

    “흐음.”

    이렇게 오랜만에 영약을 달이고 있으니,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

    그때와 현대, 냄비나 식기의 모양새는 5000년간 달라진게 거의 없다.

    후룹.

    휘젓던 국자로 살짝 맛을 보니, 마력이 충분히 녹아있어서 피로회복에는 문제가 없어보인다.

    루크는 거기에 향을 추가하기위해 찻잔을 뒤져서 예르나가 자주 사용하던 찻잎을 꺼내 살폈다.

    ‘티르드 잎이로군.’

    티르드잎에도 약간이지만 피로회복의 효과가 있다.

    이것을 섞어, 그 효과를 마력으로 일깨우면 피로회복의 효과는 더욱 상승하겠지.

    완성시킨 차를 적당히 식히고, 마력을 숙성시킨다.

    서클을 이용해 더욱 완성도를 높인 피로회복의 차.

    사실, 이건 차라기보다는 이미 포션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일단은 마력이 담겨있고, 원리는 초보적이라지만 한낱 차에 담기에는 과분한 수준의 인챈트까지 담겨있으니까.

    루크는 잎과 꽃을 건져내서 찻주전자에 옮겨담고는, 넉다운상태인 예르나에게 다가갔다.

    “예르나.”

    “응?”

    “마시거라. 피로가 풀릴게다.”

    “하아……. 고마워.”

    루크가 내민 차를 마신 예르나는 눈이 뜨였다.

    ‘나보다 잘 달여…….’

    깊고 은은한 향기에, 가슴속으로 스며드는듯한 이 느낌…….

    정말로 좋은 차였다.

    ‘정말로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아.’

    10살때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차를 달여마셨는데, 루크가 훨씬 잘 한다는게 조금 기분이 이상했다.

    ‘어쩌면, 나는 차를 달이는덴 별로 소질이 없었던걸지도.’

    그리 생각하니 조금 부끄러워졌다.

    거의 40년을 꾸준히 차를 달여마셨는데, 소질이 없다니.

    소질이 없으면 어떠한가, 차는 훌륭하고 기분은 훨씬 나아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빙빙 돌리지 말고 물어보는건데.

    예르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하아……. 정말 좋은 차야. 고마워, 루.”

    “천만에.”

    찻주전자를 들고 씨익, 미소짓는 루크를 바라보면, 그동안 나쁜생각을 했던게 몽땅 쓸모없어지는 기분이 든다.

    걱정할게 없어졌으니 그건 좋은일인데…….

    예르나는 이번엔 한숨을 쉬는 대신에 차를 한모금 더 마셨다.

    ——–

    “흐음…….”

    피로가 완전히 회복된 예르나가 출근을하고 혼자남은 집.

    어질러진 집을 정리하고, 피묻은 손수건을 빨래한 루크는 책을 읽으며 통조림을 까먹는다.

    ‘먹고싶은건 마음껏 먹어도 돼!’라고 말하긴 했다만, 역시 아침부터 손이 많이가는 요리를 하기는 조금 귀찮았다.

    사람이 언제나 부지런할수는 없는 노릇이고, 루크도 아침부터 자극적인 맛을 찾는 경향은 아니니.

    “헌데, 저게 다 뭐란 말인가…….”

    예르나가 한가득 사놓은 각양각색의 과자.

    하나 하나 꺼내보면서 포장지에 그려진 그림을 확인하니, 모두 먹음직스러워보이기는 하다.

    “흠, 이건 옥수수로 만든건가?”

    옥수수라면 보통 빵으로 만들거나, 쪄서 먹거나, 구워서 먹거나, 짜내서 기름으로 만드는 경우는 흔했어도…….

    이런식으로 만드는 경우는 잘 없었다.

    꽤 신기한 형태다.

    그런데, 어째서 옥수수에 눈코입을 달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있는 그림을 포장지에 그려야했던 것일까?

    이 과자의 마스코트라도 되는걸까?

    그냥 ‘사진’으로도 충분했을텐데말이다.

    루크는 과자봉지를 뒤집었다.

    이번에는 완전히 글자로 빼곡하다.

    대체 이런건 다 누가 쓰는걸까?

    이토록 자그맣고 뚜렷한 글자를 모든 상품에 새겨넣는자가 누군지 참으로 궁금할 지경이었다.

    “이 시대의 포장지는 뭔가 정신없구나.”

    -…….

    파이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루크는 그것을 한글자 한글자 차분히 읽어나갔다.

    옥수수, 혼합식용유, 시즈닝, 포도당, 미립당, 유지분말, 설탕, 소금, 산미증진제…….

    그냥 옥수수를 재료로 만든 달고 짠 간식거리가 아닌걸까?

    다른 과자를 집어서 보아도 비슷하다. 재료가 한두개가 아니다.

    겨우 쿠키를 만드는데 뭐가 이렇게 많이 들어가는걸까?

    자세히 읽어보면 처음보는 재료들도 한가득이다.

    게다가, 뭔가 이름이 위험해보이는 것도 있다.

    먹어도 문제가 없으니까 판매하는 것이겠지만…….

    살짝 꺼림칙하다.

    영양성분을 읽어내려가면 탄수화물이니 나트륨이니 하는 것들이, 일일 권장 섭취량을 기준으로 몇 퍼센트니 하는 정보가 쓰여있다.

    이건 너무 많이 먹지 말라는 경고문같은걸까.

    그나저나, 탄수화물은 또 뭐고, 나트륨은 또 무엇인가?

    “이 시대는 무슨, 과자 하나를 만드는데도 연금술을 하는 모양이구나.”

    그리 생각하며 가장 빵빵한 과자를 들어 흔들어보니, 공기와 함께 포장했는지 바스락 바스락 하는 소리가 났다.

    “부서지지 않도록 공기와 함께 포장한 모양이군.”

    꽤 신기한 발상의 포장이다.

    루크는 어째서 그렇게 되었을까, 추측했다.

    그때는 밀봉이나 보관에 관한 기술이 너무나 고급기술이었기에(그것은 4서클에 해당하는 마법이다.) 일반적으로 양산될 수 없었다.

    따라서, 과거엔 그냥 과자점에서 그날그날 만드는 과자들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직접 가져온 천 같은것으로 감싸고 바구니에 담는게 포장의 전부.

    헌데 지금은 어떤가.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밀봉보관기술은 현재 굉장히 진보한 것 같다.

    지금 이것은 완벽한 밀봉상태지 않은가?

    덕분인지, 포장지에서 주장하는 유통기한도 꽤 길다.

    “흐음.”

    이 시대는 과거와는 너무나 달랐다.

    더욱 오래,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게된 현재는, 이런 포장상태의 상품을 수많은 진열장에 한데 모아놓고 오랫동안 판매할 수 있다.

    그날 만들어진 과자를, 그날 소비할 필요가 없는것이다.

    “새삼 생각해보니 그렇구나.”

    루크는 옛날, 레니에가 먹고싶은 과자가 있다며 대신 구해다주면 안되겠냐는 부탁을 받고 심부름을 해준것이 떠올랐다.

    10서클 마법사를 심부름으로 써먹는다니, 꽤 당돌한 아가씨가 아니었는가.

    뭐, 줄을 서서 먹을정도로 맛있는 쿠키이기는 했다만.

    루크는 조용히 눈을 감고 기억을 떠올렸다.

    ———

    키잉-!

    마나가 술렁인다.

    레니에는 그것이 무슨 의미이고, 그것을 일으킨자가 누군지 알고있다.

    그녀는 그저 공간이 찢어지는 장면을 보며 눈웃음지었다.

    그 너머에서 걸어나올 남자와, 그가 가지고올 기쁨을 위해.

    저벅, 저벅, 저벅.

    “오셨군요.”

    공간이 갈라진 틈새에서 백장발의 남성이 걸어나온다.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변방의 영지에서, 여기까지 한번에 도약함과 동시에, 수백개의 마법방해진까지 무시한 경악할만한 워프였지만, 그는 그저 조금 곤란하다는듯 고개를 저으며 바구니를 건넸다.

    거기엔 물론 맛있어보이는 쿠키가 한가득 담겨있었다.

    그 쿠키는 과거 성창의 용사를 찾는 모험중에 알게된 과자점의 인기메뉴였다.

    레니에는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어 하나를 집어 입 안에 넣는다.

    “음, 오늘도 맛있군요. 갓 만들어져서 따끈따끈하네요. 루크님, 고마워요.”

    건네받자마자 바구니의 시간을 정지시키고 공간을 도약해왔으니 그럴수밖에.

    루크는 크흠, 하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왜 그 제과사를 왕궁에 초청하지 않은게지? 그리하면 얼마든지 그의 과자를 먹을 수 있었을텐데.”

    “후후, 루크님. 당신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요.”

    “무슨 의미지?”

    레니에는 가볍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이 쿠키는, 그곳에서 만들기에 가장 맛있는 거랍니다.”

    루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흠. 그런가, 그곳에서 나는 재료, 그 지역 특유의 환경, 그 장소만이 낼 수 있는 미묘한 차이가 있는 거로군.”

    “흐음,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요. 그게 주된 원인은 아니에요.”

    “음?”

    레니에는 쿠키 한조각을 루크에게 건넨다. 

    “자요.”

    얼결에 그것을 건네받은 루크는 동그란 쿠키를 바라보다가, 레니에의 표정을 바라본다.

    “그게 무슨 뜻인가?”

    “그 쿠키는, 제과사 혼자서 만드는게 아니에요. 그것을 먹어주는 사람들이 만드는거죠. 생각해보세요. 루크님이 가보셨을때, 그 가게가 어땠죠?”

    “음…….”

    루크는 기억을 떠올려봤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쁜 표정으로 사과하며, ‘오래 기다리신 손님에겐 조금 더 드렸어요.’ 따위의 말로 위로를 건넨다.

    그 말에 언제나 쿠키를 사가던 사람들은 ‘괜찮아요, 머스탱씨. 한두번도 아닌걸요.’하며 우스갯소리를 한다.

    제작자와 소비자는 단순히 돈을 내고 돈을 받는 그런 관계가 아니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루크는 쿠키를 다시 바라본다.

    이제는 그것이 그냥 조금 맛있는 쿠키로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제과사의 마음이로구나.

    “강제로 부른다면야, 오겠지요. 하지만 그 쿠키를 이전처럼 기쁘게 만들 순 없을거에요. 저는, 그런 쿠키가 먹고싶은게 아니랍니다.”

    “과연…….”

    “이제 왜 제가 그를 왕실에 들이지 않는지 아시겠지요?”

    제작자의 충분히 넘치는 감정은 제작품에도 깃든다는 간단한 마법적사실이다.

    제작자의 감정…….

    ——

    루크는 쿠키를 바라보았다.

    “감정…….”

    루크는 살짝 씁씁해졌다.

    그의 제과점은 결국 2대째에서 문을 닫았던것으로 기억한다.

    그의 쿠키는 그저 레시피대로 제작된, 평범한 제품이었으니.

    그래, 마치 이 쿠키처럼.

    ‘이 시대라고해서 모든게 좋아진것은 아니로군.’

    바삭.

    맛은 좋았으나, 어딘가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은 남았다.

    그것에 감정은 담겨있지 않았으니까.

    -루크,……?

    “아, 파이.”

    정령의 걱정스런 표정과 물음에, 루크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는 표정을 지어내며 말했다.

    “별거 아니다, 걱정 말거라. 그냥 목이 좀 메이는구나.”

    바삭.

    역시 맛은 좋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옛날 생각에 왠지 조금 쓸쓸해진 루크…..ㅠ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