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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4

       “나는 친구들을 지키러 가요~!”

         

       파스텔은 상단 거리를 씩씩하게 걸었다. 길가 좌우로 인파가 몰려들었다.

         

       “인기인에겐 의무가 따르기 마련이라서요!”

         

       빙그르르 돌았다가 양팔을 번쩍 들었다.

         

       “이예~!”

         

       생기발랄하게 걸어가는 분홍색 소녀 뒤로 200명가량의 칙칙한 사병들이 뒤따랐다. 병장기에 허리춤엔 단발총까지 갖춘 완전 무장 상태였다.

         

       파스텔은 걸으며 슬쩍 뒤돌아 인원을 살폈다.

         

       든든한 인원수.

         

       이것이 밥도 쫄쫄 굶으며 시작한 밀무역의 성취?

         

       뿌듯!

         

       “여러분! 우리 힘내 보자구요!”

         

       한 팔을 들고 흔들며 으쌰으쌰! 했다.

         

       긴장한 표정의 병사들은 혼자만 들뜬 후작 각하께 호응할지 말지 머뭇거렸다.

         

       으잉.

         

       다들 전쟁터에서 칼밥을 먹고 사시느라 감수성이 죽으셨나? 아니면 군기가 잡힌 건가?

         

       상단 호위대의 총책임자인 맥스가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긴장한 표정을 한 채 다가왔다. 그리곤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말 이대로 아카데미를 습격하는 겁니까? 상시 병력은 많지 않아 기습에 약한 편이긴 해도 아카데미의 전신은 엄연히 장교 양성소입니다. 위기가 닥치면 고학년의 학도병 전환은 단번에 이루어질 테죠.”

         

       으아?

         

       뭔가 심각한 분위기와 논제.

         

       누가 보면 나쁜 짓이라도 하러 가는 줄 알겠다.

         

       걸으며 좌우를 둘러보자 구경 인파들은 맥스 씨의 긴장한 표정과 작은 목소리가 수상쩍은지 수군거렸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이러다 나쁜 아이라고 오해받겠어!

         

       그런 오해는 악마님 혼자만으로도 충분한데!

         

       파스텔은 당당히 외쳤다.

         

       “습격이라뇨! 우리는 친구들, 그러니까 학생들을 지키러 가는 거예요!”

         

       양팔을 펼치고 하늘섬 번화가의 구경 인파에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현재 아카데미의 상황은 너무 혼란스러워요! 총장님이 돌아가시고 테러 계획이 발견되는 등 내우외환의 위기가 찾아왔건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채 교수회의만 거듭하고 있죠!”

         

       씩씩하게 주먹을 쥐었다.

         

       “많은 게 잘못됐어요! 이런 식으론 면학에 집중했을 뿐인 선량한 학생들을 지켜주지 못해요!”

         

       뒤돌아 사병들을 가리켰다.

         

       “그러니 저희가 나서서 혼란을 정리하고 학생들을 지키겠습니다! 더 큰 비극이 벌어지기 전에!”

         

       파스텔은 열창하다가 멈칫했다. 자신이 방금 한 발언이 무슨 의미인가 되짚다가 입이 벌어졌다.

         

       현재의 혼란한 체계를 내 병사들로 정리하고 평화롭게 만들겠다. 나쁜 의도가 아니니 믿어달라.

         

       허억.

         

       말하고 보니 하극상 으쌰으쌰 쿠데타에서나 할 법한 발언.

         

       파스텔은 아기새처럼 입을 세모로 벌리고 경악했다.

         

       난 그냥 아카데미 경비대론 부족해 보여 나쁜 아이처럼 교칙 무시하고 사병을 증원해 친구들을 지킬 생각이었는데 어쩌다가 이런 흉악한 발언이 입에서 튀어나온 거지?

         

       설마 나, 악마님 머리 위에 올라가는 하극상에 맛 들이다 보니 입버릇까지 나빠져 버린 거야?

         

       으아아.

         

       악마니임!

         

       왜 절 이렇게 키우셨어요……!

         

       맥스가 진중한 얼굴로 고개 숙였다.

         

       “알겠습니다, 후작 각하. 어차피 상단 규모가 커질수록 하늘섬을 관리하는 아카데미와의 충돌은 필연적이었죠. 아카데미가 대비하지 못한 지금이 오히려 적합한 타이밍이겠습니다.”

       “네에?”

         

       갑자기 쿠데타 주모자로 추대된 기분.

         

       “그게, 그게 아니라요오……!”

         

       파스텔은 당황해서 허우적댔다.

         

       “그냥 친구들 지키러 가는 거예요! 혹여 토너먼트 도중에 테러라도 일어나면 단시간에 기사단 도움을 받기 어려우니까 병력을 늘리려고요! 사병도 조금 나눠줘서 가장 위험할 앨시어, 그러니까 친구도 지켜주고요!”

         

       맥스는 다 이해한다는 표정이 됐다.

         

       “알겠습니다. 저희는 각하의 친구분들을 지키러 가는 겁니다.”

         

       앗.

         

       바로 이해하시는구나.

         

       휴우.

         

       파스텔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카데미 상대로 하극상을 저지르는 나쁜 애에서 친구를 지키러 가는 착한 애로 돌아왔어.

         

       맥스가 병력을 돌아봤다.

         

       “우리는 아카데미로 돌입한다.”

       “예!”

         

       병사들은 일제히 대답했다.

         

       돌입……?

         

       뭔가 단어 선택이?

         

       “저기이, 제대로 이해하신 거 맞죠?”

         

       설마 친구 지키기를 적당한 명분 챙기기라 생각하는 건 아니시죠?

         

       “예.”

         

       맥스가 가슴팍을 손으로 짚으며 믿음직하게 대답했다. 격전을 각오한 태도였다.

         

       어어!

         

       믿음직 하긴 하지만!

         

       어쩐지 다른 의미로 믿음직한 거 같아……!

         

       으아아.

         

       파스텔은 손을 떨다가 주변의 강렬한 시선에 흠칫 놀랐다. 주변 인파가 굉장한 수군거림을 내며 쳐다봤다.

         

       상황을 이해한 사람이 어리둥절해하는 사람에게 설명해 주고 먼저 온 구경꾼이 늦게 온 구경꾼에게 설명해 주는 연쇄작용.

         

       수군거리는 인원과 범위가 초 단위로 늘어났다.

         

       허억.

         

       파스텔은 몸이 떨렸다.

         

       덜덜덜.

         

       이렇게나 많은 사람에게 관심받으면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왜 이럴까?

         

       그야, 완전 나쁜 오해니까아!

         

       일부 구경꾼이 놀라운 소식을 알리기 위해 현장을 떠나는 게 보였다.

         

       “으아으아.”

         

       내 손을 완전 벗어났어!

         

       하늘섬 전체에 나쁜 아이 인증이 됐어!

         

       파스텔은 손을 허우적대며 울상이다가 얼굴이 서서히 붉어졌다. 얼굴에 김이 모락모락 나고 눈물이 맺혔다.

         

       나, 나, 나, 그런 나쁜 애 아닌데!

         

       하지만 내가 한 말은 또 맞고!

         

       으아아.

         

       악마니임!

         

       왜 절 이렇게 키우셨어요!

         

       악마님이 가장 나빠!

         

       눈을 질끈 감고 힘껏 외쳤다.

         

       “여러분 오해에요……!”

         

       수군거림이 멈추고 시선이 집중됐다. 그러더니 더 격렬한 수군거림이 시작됐다.

         

       자극적인 거짓 앞에 버림받은 진실.

         

       손쓸 수도 없는 전파력이었다.

         

       으아아.

         

       “몰라아!”

         

       파스텔은 비정한 현실 앞에서 도망치기로 했다.

         

       후다다닥.

         

       분홍색 소녀가 굉장한 속도로 멀어졌다.

         

       맥스는 놀라더니 뒤쫓았다.

         

       “각하를 따르라! 지금부턴 속도전이다!”

         

       병사들이 함성을 질렀다. 무장 병력이 울먹이며 달리는 후작 각하를 뒤따랐다.

         

       “다들 믿어 주세요……!”

         

         

         

       #

         

         

         

       “후우! 후우!”

         

       정신 없이 달려 아카데미의 지척에 당도하자 맥스가 숨을 내쉬며 거친 호흡을 가다듬었다. 뒤따라온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을 벗어난 신체라 혼자만 금세 멀쩡해진 파스텔은 미안한 표정이 됐다.

         

       “으아, 죄송해요. 앞뒤 분간 못 하고 저 혼자 달렸네요.”

         

       맥스가 이마의 땀을 닦았다.

         

       “아닙니다, 후우. 대비할 시간을 주지 않으면 좋죠. 아카데미 경비대와 전투가 있을지 모르니 잠시 호흡은 정리해야겠군요.”

         

       “저, 전투.”

         

       파스텔은 입술을 떨었다.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런 건 그런 건, 없을 거예요!”

         

       양손이 허공을 허우적댔다.

         

       “저희는 친구를 지키러 가는 거니까요! 착한 아카데미에 착한 병사를 이끌고 착한 학생들을 지키는! 그러면 착하고 착하며 착한 상황이니까.”

         

       파스텔은 손가락 세 개를 펴다가 반색했다.

         

       “착함이 세 배!”

         

       완전 천국 수준.

         

       분홍 눈동자가 반짝였다.

         

       “전투는 절대 없을 거예요!”

         

       파스텔이 자신만만하게 확신했다.

         

       다만 주변에까지 확신을 주진 못했다.

         

       맥스와 병사들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더니 크래프트 가문의 이미지 관리용 연기를 흘려듣기로 했다.

         

       부하조차 속이는 비정한 불신은 크래프트 각하를 모시기로 생각하며 이미 각오한 바였다.

         

       착함 세 배 같은 소리를 진심으로 할 리 없다. 전투가 없을 거라는 내용만 새겨들으면 되리라.

         

       신성한 교육 기관에 사병을 들이는 폭압을 하는데 충돌이 없을 방법까진 몰라도 짐작은 얼추 할 수 있었다. 모략을 꾸며뒀을 것이다. 크래프트는 제국 제일의 모략 가문이니까.

         

       아카데미 정문에 당도하자 무장한 경비대와 마주할 수 있었다. 전투를 대비한 모습이었다.

         

       맥스와 병사들은 착함 세 배! 같은 헛소리는 전혀 믿지 않았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았다.

         

       정작 가장 잘 알고 있었을 각하께선 몸을 떨었지만 말이다.

         

       으아아.

         

       파스텔은 파리하게 질렸다.

         

       착함 마이너스 세 배!

         

       완전 지옥 수준!

         

       허윽.

         

       긴장하고 경계하는 눈빛들이었다.

         

       누가 봐도 불량아를 상대하는 경비대의 모습이잖아.

         

       벌써 소문 다 났나 봐.

         

       아카데미의 경비대장이 정문에서 걸어 나왔다. 거리를 두고 멈추더니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무리 크래프트 각하셔도 이곳은 학문의 정원이자 무예의 요람. 병사는 들이실 수 없습니다.”

         

       명백한 존칭과 존댓말.

         

       학생이 아니라 갑자기 외부인이 된 기분.

         

       파스텔은 숨이 턱 막혔다.

         

       나, 난 그냥 아카데미의 호위 병력이 부족해 보여 데려온 거뿐인데.

         

       맥스가 결연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전투 준비를 마친 용사의 얼굴이었다.

         

       믿음직 하지만!

         

       믿음직 하지마안!

         

       그런 얼굴 필요 없는데요……!

         

       우아아아.

         

       파스텔은 허공에 양손을 휘저었다.

         

       “하, 학생회로서 토너먼트 행사를 대비해 아카데미 호위 인력을 늘리려고 데려왔어요! 오직 학생 안전을 위해!”

         

       경비대장이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럴싸한 명분 만들기도 귀찮았느냐는 반응이었다.

         

       아니, 사실인데요?!

         

       소란이 일자 학생과 교수가 정문으로 몰려들었다.

         

       교수들이 현장에 모이더니 파스텔과 병력을 보곤 혼비백산하며 부산스럽게 의논했다.

         

       그중에서 카를로 교수가 대표처럼 의논을 주도하는 듯했는데 호레이스 교수가 나서더니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 외쳤다.

         

       “저 병력은 학생회로서 데려왔다고 하셨잖나! 학생회 감사는 내 소관일세! 아니면 지금 본인을 조롱하는 건가?!”

         

       의논이 더 이어지다가 책임자가 결정됐는지 호레이스 교수가 걸어 나왔다. 경비대장이 상관을 대하듯 비켜섰다.

         

       교수와 학생들이 소란을 멈추고 상황을 지켜봤다. 아카데미 정문은 사람이 많았지만 어느 때보다 정적이 감돌았다.

         

       호레이스 교수가 신성한 교육 기관의 참된 교육자다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후작 각하, 학생회로서 호위 인력을 늘리기 위해 병사를 데려오셨다 하셨습니까?”

         

       파스텔은 창백하게 질렸다.

         

       으아아.

         

       저 불량아 아니에요오!

         

       벌벌 떨다가 간신히 대답했다.

         

       “네에.”

         

       호레이스 교수가 파스텔의 대답을 음미하듯이 눈을 감았다.

         

       “교수와 학생을 대표해서 그런 학생회의 과감한 행보는…….”

         

       경비대장이 다음 답변을 예상한다는 듯이 경비대를 정비했다. 교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만약의 충돌을 대비하며 경계했다.

         

       파스텔은 숨넘어갈 듯한 얼굴이 됐다.

         

       호레이스 교수가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곤 방긋 웃었다.

         

       “아주 훌륭한 의도라 생각합니다! 허허!”

         

       정적 속에서 웃음소리만 울렸다.

         

       오잉.

         

       교수들이 충격받은 표정으로 배신자를 바라봤다. 호레이스 교수가 참된 교육자의 얼굴로 경비대에게 호통쳤다.

         

       “뭣들 하는가! 후작 각하께서 들어오시겠다는데 길을 트지 않고!”

         

       파스텔이 가만히 있자 호레이스 교수가 솔선해서 다가왔다.

         

       “가시죠, 각하!”

         

       파스텔은 얼떨떨하게 이끌렸다. 무장 병력이 뒤따랐다. 병력은 정문을 지나고 혼란에 빠진 경비대를 넘어 완전히 진입했다.

         

       호레이스 교수가 방긋 웃었다.

         

       “무혈입성일세!”

         

       계획 완료 같은 발언에 교수와 학생들이 눈을 크게 뜨고 파스텔을 쳐다봤다.

         

       완전 크래프트를 보는 시선……!

         

       우아앙!

         

       파스텔은 뒤늦게 몸을 떨었다.

         

       선배님!

         

       선배님까지 그런 쿠데타 발언을 하시면 제 마음이!

         

       제 마음이……!

         

       마음속으로 외치던 파스텔은 멈칫했다.

         

       오잉.

         

       힐끔 주변을 살펴봤다.

         

       교수들은 호레이스 교수를 노려보며 무언의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정작 욕은 못 하는 걸 보면 무력 저항은 없을 듯하다.

         

       경비대는 얼떨떨해했지만 책임자도 인정하고 정문도 넘어버렸으니 역시나 전투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학생들은, 그냥 선배님과 친구들.

         

       오이잉.

         

       생각해 보니 지금 상황, 나쁘지 않은 거 같았다.

         

       어차피 학교는 학생 거고 학생의 대표는 학생회잖아.

         

       그리고 난 학생회의 부학생회장 겸 총무부장 겸 기획부장 겸 홍보부장 겸 봉사부장 겸 선도부장이고.

         

       입꼬리가 헤실헤실 풀렸다.

         

       “맞아요! 무혈입성이네요! 제 계획대로!”

         

       오예오예.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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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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