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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4

       * * *

       

       

       

       폴란드 외무장관 가브리엘 나루토비치는 냉정하게 지금의 국제 관계를 파악했다.

       

       러시아는 지금 공산주의 혁명의 적이며, 한편으로는 다시 날아오르는 쌍두독수리다.

       

       

       “그렇기 때문입니다. 아나톨리아 영토도 있고, 이제는 저 동쪽의 중국과도 밀접하게 닿아있지 않습니까. 심지어 러시아는 공산 독일과 적대 관계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들이 우리와 싸울 까닭이 없습니다.”

       

       

       가브리엘 나루토비치는 차리나가 폴란드와 적대할 의사가 없다고 판단했다.

       

       폴란드를 노린다는 건, 영국과 다시 대립각을 세우겠다는 건데. 내전을 승리로 이끌고 콘스탄티노플을 수복하는 기염을 토해 이미 권위가 하늘을 찌르는 차리나가 굳이 그런 쓸모없는 일을 할까?

       공산 독일과 싸우는 처지면 러시아는 오히려 폴란드와 친하게 지내려 할 거다.

       

       그런 가브리엘 나루토비치의 판단에 유제프 피우수트스키는 잠시 고민을 했다.

       

       상대가 러시아라면 역시 함부로 판단하긴 어렵다.

       

       

       “어째서 적대라고 생각하나.”

       “차리나는 내전 때 신민들 마음을 돌리기 위해 노동자 복지 정책 등을 펼쳐서 볼셰비키를 옥죄었습니다. 수정자본주의로 공산주의자들의 뒤통수를 후려쳤죠. 공산주의 독일은 자신들의 혁명을 정당화시키려면 러시아를 반드시 물리쳐야 합니다. 그래서 대치할 수밖에 없죠.”

       

       

       결국, 훗날 독일은 러시아를 공격할 것이다.

       

       그럼, 독일과 함께 러시아를 공격하는 방법도 생각했지만, 그러기에는 영국과 프랑스가 걸리고, 그 빨간 독일과 한패란 취급도 받기는 싫다.

       

       그래. 차리나가 거기까지 안다면. 폴란드를 진지하게 독립국으로 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건가.

       

       

       “그렇군. 차리나가 그럼 우리를 진지하게 대하고 있다고 봐도 좋은 건가.”

       “우리 역시 영국 덕에 독립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마당에 러시아와 얼굴을 붉힐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겠지.

       

       그런 걸 생각해 보면 역시 적군. 볼셰비키가 이 러시아를 장악했어야 했다.

       

       

       “아쉽군. 적군이 승리했어야 우리가 러시아 쪽을 노려봤을 텐데.”

       

       

       백군에 대한 아무런 지원 없이 적군이 이겼으면 독일도 공산화되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폴란드는 영국을 등에 업고 러시아 쪽으로 나아갔을 텐데.

       

       역시 그게 아쉬울 따름이다.

       

       그래. 러시아는 가깝다. 괜히 적대해서 공산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서 위험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

       

       안 그래도 최근에 독일로 인해 이탈리아가 공산화되는 것을 보고 피우수트스키 역시 경각심을 가지고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와 열심히 연대할 생각이었는데, 프랑스는 미적지근하고. 영국 역시 공산 독일을 경계해도 막상 전쟁이 터지면 진지하게 도울 거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와 연대하자니. 오스트리아는 이미 러시아에 접근하는 듯하고, 헝가리도 아직 자기 앞까지 닥친 일이 아니라고 별다른 반응이 없다.

       

       그럼 치사하고 더러워도 러시아밖에 없나.

       

       

       “그래도 그렇지 차리나가 직접 오겠다니.”

       

       

       얼마나 간이 부은 것인가.

       

       들어보면 차리나는 내전을 겪으며 매번 생사를 넘어본 몸이라 그럴 만하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너무 경각심이 없는  건 아닌가.

       

       전러시아의 성녀이자, 차르, 몽골의 대칸이며 동로마의 황제.

       

       그 자리에 오른 여제 다운 판단인가.

       

       이러면 또 머리가 아파진다.

       

       우익들이 과연 차리나의 폴란드 방문을 환영할 지가 문제겠지. 혹시라도 차리나에 대한 어떠한 암살 모의를 한다든가.

       

       

       이건 군대를 동원해서 막아야겠지.

       

       

       “환영 준비는 해야겠지. 우익들이 준동하지 못하도록 하게.”

       “예. 각하.”

       

       

       그래. 어디 한번 직접 만나보자.

       

       그 젊은 차리나가 무슨 생각으로 폴란드까지 왔는지, 한번 들어나 봐야겠지.

       

       

       * * *

       

       

       폴란드행에는 장관 몇명과 함께 하게 되었다.

       

       일단 전 외무부 장관이었던 세르게이 사조노프 차관, 운게른 중장, 내 담당의인 베라게드로이츠가 함께 했다.

       

       

       “차관으로서의 일은 괜찮으십니까?”

       “예. 괜찮습니다. 이렇게 폐하를 보필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러시아는 넓어서 외교부 일도 커져서 세르게이 사조노프, 바실리 하를라모프 둘이 장관으로 있었다.

       

       세르게이 사조노프는 아시아 외교일을 주로 맡았고, 바실리 하를라모프는 튀르키예와 유럽 쪽 외교를 맡았다.

       

       솔직히 말하면 여기는 헤프닝이 있는데.

       

       합중국으로서 부서 개편을 하면서 기존 외무부와 내가 외교부란 걸 따로 만드는 바람에 이게 다시 외교부로 합쳐지면서 생긴 일종의 헤프닝이었다.

       

       여기서 세르게이 사조노프는 외무부를 외교부로 개편하면서 장관직에서 차관으로 밀려났다.

       

       

       “크흠. 설마 이런 식으로 폴란드에 오게 되다니.”

       “중장은 마음에 안 드시나 봅니다.”

       “그럴 수밖에요. 이 폴란드 놈들을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정해야 한다니.”

       

       

       운게른 중장의 투덜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어쩔 수 없습니다. 폴란드를 살려두면 완충지대의 역할은 똑똑히 할 테니까요. 적어도 지금은요.”

       

       

       무엇보다 폴란드와의 전쟁을 치르게 되면. 여러 의미로 귀찮아진다.

       

       이기면 이기는 대로 공산 독일도 날뛸 테고. 러시아는 나라가 크다 보니 지금의 개혁도 또 전쟁으로 멈출지도 모른다.

       

       

       “으음, 알겠습니다.”

       “그래도 콘스탄티노플은 수복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폴란드도 살아야죠. 오히려 폴란드가 공산 독일에 넘어가기 전에 우리 쪽에서 아군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폴란드가 영국의 체제에 순응하고 있어도. 결국, 영국이 자기들을 돕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달을 거다.

       

       지금 상황만 봐도 그렇지.

       

       오스트리아에서도 발을 빼고 있으니, 폴란드도 좀 그럴 거다.

       

       그럼, 지금 폴란드는 독일이든 러시아든 양자 간의 선택을 해야 하겠지.

       

       독일 편을 들어 영국과 척질 생각을 할 거 같지도 않고.

       

       폴란드가 결국 동프로이센을 감싸고 도는 이상 어쩔 수 없지.

       

       그러니 이쪽에서 먼저 선수를 친다.

       

       

       “혹시라도 몸이 불편하시면 바로 말씀하셔야 합니다.”

       “걱정 말라니까요. 괜찮습니다.”

       

       

       그리고 베라게드로이츠는 걱정이 너무 많다.

       

       솔직한 말로 본인이 지금 나한테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닐텐데. 나는 몸에 신의 축복이 코팅된 탕후루 차리나라 괜찮거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바르샤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폴란드 공화국의 외무부 장관 가브리엘 나루토비치입니다.”

       “이분은 전러시아의 차르시오.”

       “로마의 황제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만나서 반갑소. 뭐 굳이 내 소개는 하지 않아도 되겠지. 원래 황위와는 인연이 없던 터라 자칭하기 부끄럽거든.”

       “예. 폐하. 우리 총통 각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독립 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이렇게 나라 기틀을 다 갖췄네.

       

       영국의 도움도 있었겠지만, 이 정도면 피우수트스키는 능력자라 볼 수 있겠다.

       

       직접 나오지 않은 건 불만이지만.

       

       

       “어서 오십시오. 오시는 동안 불편함은 없으셨는지요.”

       “그동안 아국의 압제에 시달린 폴란드인들의 서러움만 하겠습니까?”

       “으음.”

       “아, 따로 비웃거나 놀리는 의도는 없습니다. 진지하게 나는 귀국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생각이니까.”

       

       

       최대한 영업 미소를 지으면서. 차르의 진심을 보인다.

       

       이 과정에서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

       

       적어도 세상에는 차르가 폴란드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화해를 한다고 알려질 테니까.

       

       여기서 무슨 일을 당한다면 이제 그건 순전히 폴란드의 책임이 되겠지.

       

       

       “그렇습니까? 그럼 우리가 리투아니아를 합병해도 인정하시겠다는 말입니까?”

       “못할 것이 무엇입니까. 폴란드의 총통께서는 리투아니아 출신으로 압니다만. 폴란드-리투아니아 제국의 재건을 원한다면 내 기꺼이 지지하죠.”

       “그것을 어떻게.”

       “동서양을 아우르는 러시아의 차르인 제가 모르는 것은 없습니다.”

       “그럼, 차르께서는 발트에 욕심이 없으시다는 말입니까?”

       “러시아는 그렇게 땅을 잃고도 충분히 넓습니다. 최근에는 아나톨리아까지 진출했죠. 굳이 발트 쪽이나 폴란드에 연연할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 있는 땅덩어리를 개발하고 정비하는 것만으로도 러시아는 충분합니다.”

       

       

       러시아는 넓고 또 넓다.

       

       러시아의 땅에 비하면 폴란드의 땅덩어리는 한 줌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이었다면 대륙이든 일본으로든 땅을 확장했을 테지만, 이제 러시아는 충분하다.

       

       이미 북만주와 몽골, 아나톨리아 정도면 많이 먹은 거 아니냐.

       

       그냥 이웃국가에 영향력을 떨치는 정도면 충분하지.

       

       

       “그럼 원하시는 것을 말씀해 주시지요.”

       

       

       역시 이야기가 빨라서 좋다.

       

       

       “우리 러시아는 더는 폴란드를 다시 점령하려 하지 않을 겁니다. 독립 보장도 하죠. 제가 바라는 것은 귀국 폴란드와 러시아의 관계 개선입니다.”

       “저희가 공산 독일의 완충지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말입니까?”

       

       

       그래. 잘 아네.

       

       너희는 너희 입장을 잘 이해해야 한다.

       

       

       “두마를 설득해 이곳에 내가 직접 온 명분은 그게 맞습니다. 그것과 별개로 저는 이웃국가끼리 잘 지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폴란드와 러시아는 이웃이 아닙니까?”

       “저희가 반대로 독일과 붙어서 러시아로 진격한다 하면 어쩌실 겁니까?”

       

       

       그래도 자기들 처지에서 나름의 항의나 반항이라도 하고 싶은 건지. 대놓고 눈을 날카롭게 뜨고, 빨갱이와 합해서 러시아를 치면 어쩌겠냐 하는데.

       

       알만한 사람이 왜 이러실까. 그거야 말로 우문이다.

       

       결국 그 끝에는 똑같이 빨갛게 물들 폴란드밖에 없을 텐데 말이지.

       

       

       “정말로 그걸 전장에서 잔뼈가 굵으신 분이 진지하게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못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 그래. 정말 못할 것도 없겠지.

       

       러시아가 만일 진지하게 폴란드를 적대한다고 치면. 폴란드도 바다 건너에 있는 영국의 눈치를 보지는 않고 독일과 함께하겠지.

       

       영국은 지금 공산 독일 포위망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판국이니, 유제프 피우수트스키는 빨갱이와 손을 잡을 수도 있다.

       

       그리고 뒤에서 빨갱이 독일의 통수로 폴란드 인민공화국이든 뭐든 세워지겠지.

       

       빨갱이는 믿으면 안 된다니까.

       

       내가 폴란드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 이 자리까지 온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자세로 굴복할 이유는 없다.

       

       

       “빨갱이의 선동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군요. 틀림없이 우리를 공격하면서 뒤에서 폴란드 공산화 작업에 착수할 겁니다. 그리고 예카테린부르크까지 오셔야 할 텐데. 가능하시겠습니까? 차라리 베를린이 더 가깝지.”

       

       

       말은 바로 해야지.

       

       지옥의 불구덩이, 도박을 감수하고 독일과 함께하겠다?

       

       전쟁하실? 너 가능하냐? 내전 때, 예카테린부르크를 수도로 쓴 덕에, 사실상 에카테린부르크를 수도로 전쟁할 수 있는데, 예카테린부르크까지 올 수 있어?

       

       공장도 독소전에서 소련이 공장을 옮긴 것처럼 이미 남러시아나 중앙아시아 쪽으로 공장이 꽤 있거든.

       

       그럴 바엔 베를린으로 가고 말지.

       

       분할은 러시아만 했었나? 프로이센도 했었지.

       

       그것을 알기에 나는 보기 좋게 갑의 입장에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럼.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시는 게 무엇입니까.”

       “간단합니다. 저희가 바라는 건 상호방위조약입니다.”

       “결국 중간에 낀 처지로서 러시아의 방패막이나 하라는 뜻이군요.”

       “그래서. 선택지가 있습니까? 설마 폴란드 입장에서 중립이란 카드를 선택할 수 있다고 여기는 건 아니겠죠. 아니, 해도 상관없습니다. 저희는 폴란드를 어쩔 생각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독일에 어떤유린을 당해도 저희는 돕지 않을 겁니다.”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그 외에 오스트리아, 서우크라이나, 루마니아, 나머지 발트국가를 중심으로 방어선을 짜야겠지. 그렇게 빨갱이 독일을 막을 수밖에.

       

       말했듯, 폴란드는 러시아로 오지 못한다.

       

       빨갱이 독일은 혁명의 적을 반드시 처리하기 위해 쳐들어오겠지만, 폴란드는 반러감정이 아무리 심해도 폴란드의 확장을 위해서 러시아를 공격하기 힘들다.

       

       공격 방향을 돌리면 충분하다

       

       그걸 알지만 소심한 반항, 항의라도 하고 싶을 터.

       

       

       “전쟁이 날 거라 확신하는군요.”

       “어떻게든 나게 되어있죠. 폴란드는 독일에 러시아로 가는 발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요.”

       

       

       그리고 독일이 아니라 해도 너희가 가만히 있겠냐?

       

       결국 독일에 굴복하느냐. 아니면 러시아의 아군이 되느냐 둘 중 하나밖에 없다.

       

       국가 간에는 영원한 동맹도, 적도 없는 법이다.

       

       물론 프로이센이 분할해 간 폴란드 땅을 전부 러시아가 집어삼키긴 했지만, 지금 폴란드 사정이 좋은 편도 아니지 않은가.

       

       양쪽에서 껴있고, 브리튼 해적 놈들은 믿기 힘들 테니까.

       

       

       “하.”

       

       

       러시아가 싫어도 자기네 사정을 잘 아는 인물이다.

       

       적당히 당근 정도는 던져주자.

       

       

       “대신 리투아니아를 먹든 라트비아를 먹든 우리 러시아를 노리지 않는 선에서는 폴란드의 입장을 지지하죠.”

       “……시간을 주십시오. 내각과 의논해서 결정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란다.

       

       누가 진짜 적인지, 우리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씨라면 잘 아시겠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 왜 교정기 쓰면 자꾸 단어가 삭제되는 걸까요;;

    아나스타샤 팬클럽의 비공개 회원이 20코인 후원을!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후원은 아나스타샤 일러스트 비용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옆동네 순위가 후발주자들에 의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플러스하면 조회수 펌핑되는 노피아와 달리 저쪽은 유료계약 들어가면 초반 반짝하다가 조회수가 확 떨어지는데, 역시 서양 ts물은 옆동네에선 많이 힘든 모양이네요.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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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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