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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4

       마탑의 지하 1층.

        대학원생들이 기거하는 미궁의 수로에서 치안부장 슈톨렌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둥그런 천장에서 떨어지는 축축한 물방울과 발 밑을 지나다니는 거대한 쥐들.

        인상을 잔뜩 쓴 채 한참 어둠 속을 응시하자, 마침내 로브를 뒤집어쓴 마법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쪽에서 먼저 날 부른 이유가 뭐지? 그것도 이런 기분 나쁜 곳에서.”

        “치안부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슈톨렌. 홀크로프트의 은익 기사단을 잡기 위해 우리에게 검은별을 부를 것을 제안한 게 바로 당신이었죠.”

        “당신들은 보기 좋게 실패했고 말이지. 대체 뭘 어떻게 의뢰한 거냐? 고작 모험가 나부랭이들로 전락한 놈들 하나 제대로 처리 못 하다니.”

        “전력 계산에 착오가 있었습니다. 중요한 건, 그 결과 정보부에 의해 우리 꼬리가 밟혔다는 겁니다.”

       

        어떤 문장도 달고 있지 않았으나 플라멜 가문의 인간임은 틀림없었다.

        사자는 자신들의 소가주가 위험에 노출되었다며 치안부에서 ‘급행’을 폐쇄할 것을 요구했다.

        플라멜 가문의 소가주는 현재 차기 연금학파의 칠현자 자리에 가장 가까운 마법사.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번 사태를 막아야 했다.

       

        “비아지오 님께 문제가 생기면 최상층의 공략대가 타격을 받는 건 물론이고 아슈펠 황자께서 구축하신 ‘동맹’에도 균열이 일어날 겁니다.”

        “내가 원하던 게 바로 그 동맹에 들어가는 거였다! 헌데 그걸 위해서 협조했더니 이젠 뒤처리까지 하라고?”

        “어차피 상층에 진입하기 전까지 동맹에 당신이 설 자리는 아직 없습니다. 그리고…… 치안부라고 해서 이번 일을 무사히 넘기긴 힘들 텐데요?”

        “…….”

       

        흑마법사 집단이 11층에 출현할 당시 고의적으로 출격을 저지시켰다.

        게다가 사건이 마무리된 후 검은별의 대장이 이를 갈고 잡으라 했던 ‘산태우기’ 이자젤의 신병마저 확보에 실패했다.

        대미궁에 숨어있다가 나와서 경비를 서던 마법사들을 얼려 버리고 도망친 듯했다.

        불 마법 내성만 갖추라고 지시했던 것이 크나큰 실책이었다.

       

        “정보부의 요원이 66층에서 내려와 본격적으로 조사를 시작하면 당신의 자리도 위태로워집니다.”

        “이쪽은 원탁회에서 급행이 열리는 것까지 필사적으로 막았단 말이다!”

        “허나 어쩌겠습니까? 이미 누군가에 의해 열려버린 것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셀루시아의 정령사가 별 허무맹랑한 소문을 듣고 일을 저질렀다는데…… 운이 나빴던 거죠, 덕분에 정보부가 탈출로를 확보했으니까.”

        “으드득……!”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

        기사단이 탑을 너무나 쉽게 오른 것도, 홀크로프트의 영애가 어둠의 숲에서 살아남은 것도.

        놓치고 있는 퍼즐 한 조각처럼 슈톨렌은 뒤에서 자신들의 모든 계획을 망치려는 자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맹’의 일원이었던 운드라 가문의 빈센트가 실종되고 그 자리가 자신에게 돌아왔을 때부터 그 직감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걱정할 건 없습니다. 수사를 진행하던 정보 3과의 대장은 연금학파 출신이니 당신이 급행을 끊기만 하면 그녀는 고립되겠죠. 어떤 학파의 도움도 없이 악의의 층에서 오래 살아남진 못할 겁니다.”

       

        허나 당장은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노릇.

        이대로 정보부와 완전히 척을 져야 하나 고민하던 그는 한 가지 궁금한 것을 물었다.

       

        “이봐.”

        “…….”

        “왜 너희 소가주가 66층에 갔던 거지?”

       

        그렇다.

        만약 비아지오 플라레가 자신의 복제체를 그곳에 남겨두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문제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날고 기는 정보부라 한들 그 출신은 기껏해야 평민과 탑 밖의 귀족, 그리고 일부 백가의 하위 서열이 전부.

        클라우디아 이네스코트와 함께 최상층에서 공략대를 지휘하는 그를 만나러 가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테니까.

       

        “그도 칠현자의 직계인 만큼 등반의 의무가 없을 텐데?”

        “그것은…….”

        “알려주기 싫다면 이쪽 역시 행동할 이유가 없지. 동맹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한다면 나는 기껏해야 무능했던 치안부장으로 남을 수 있다.”

       

        사자는 망설였다.

        그러나 슈톨렌이 상층으로 올라가는 발판을 무너뜨릴 기세로 말하자 이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어느 마법사를 죽이기 위해서입니다. 비아지오 님 뿐만이 아니라 당시 아슈펠 님을 따르던 모든 이들이 참가했던 작전. 과거의 잔재들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그곳에서 결행하는 게 최적이었죠.”

        “마법사? 어째서?”

        “이유는…… 그녀가 가지고 있던 신비의 파편을 얻기 위해.”

       

        신비의 파편.

        4황자는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도 오직 그것만을 노렸다.

        파편을 지닌 채 상층에 오르면 신비는 그 가치를 드러내며 마탑에 새로운 학파가 탄생한다.

        물론 백이면 백 실패하기에 지금껏 그런 사례는 딱 하나 뿐, 그마저도 지금 와서는 반쯤 사멸한 학파였다.

       

        ‘물론 동맹의 지원이 있다면 다르겠지만.’

       

        신비의 파편을 지니고 있으면 등반 중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58층의 다도해를 절대 통과할 수 없다.

        허나 수백 년 동안 누구도 탑의 끝을 보지 못한 이상 기존에 존재하는 신비로는 꼭대기에 오르는 게 불가능하다 믿는 이들도 있었다.

       

        그것이 바로 슈톨렌을 비롯한 ‘신비 동맹’의 일원들.

        새로운 신비를 이용해 마탑의 끝을 보는 것.

        홀크로프트의 여식에 4황자가 집착하는 이유 역시 그녀가 신비의 파편을 지녔기 때문일 거라 슈톨렌은 예상했다.

       

        “그런 거였군. 만약 그때 얻은 파편이 아직 남아있다면 내 자리도 동맹에…….”

        “아뇨, 실패했습니다.”

        “뭐?”

        “그뿐 아니라 66층에 엄청난 괴물을 만들어냈죠.”

       

        마법 살해자.

        사자는 자신의 주인이 잡혀갈지도 모른다고 말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두려움으로 마법사의 정체에 대해 알려주었다.

        생소한 이름을 되뇌이며 기억을 더듬던 슈톨렌은 이내 구내식당 무전취식자 명단을 떠올려냈다.

       

       

       

        *

       

        불야성의 유일한 비전투지대는 하늘에서 메테오가 떨어지는 최전선으로 바뀌고 말았다.

        마법사들은 더 이상 소속도 묻지 않고 자신들의 학파와 같은 문양이 아니면 곧장 공격해왔다.

        복도에서 몇몇 이들과 마주쳤는데, 그때마다 전투가 불가피했다.

        머리 위로 떨어진 십자가를 현자의 약관이 깃든 검으로 쳐낸 시엔이 의문을 표했다.

       

        “이게 다 무슨 일이야……? 분명 부르크 하우스는 안전지대였는데.”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게 아닐까? 세상엔 갈등과 파괴만이 가득하니까.”

        “클락…… 혹시 너 또 무슨 짓 벌인 건 아니지?”

        “내가 뭘? 난 최대한 말려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어.”

       

        열차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는지 의심의 화살이 이쪽을 향해 쏘아졌지만 순진무구한 마음에는 티끌만큼의 흠집도 생기지 않았다.

        나는 부르크 하우스를 빠져나가기 위해 루벤을 찾았다.

        그 정도 되는 마법사라면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마법을 이용해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았지만 그러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럴 줄 알고 구태여 선물을 무겁고 커다란 액자에 넣어 마차에 실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미티어 학파의 마차가 있어야 안전하게 도시를 벗어날 수 있었기에, 그의 협력은 필수적이었다.

       

        “이익, 메테오는 얼음마법이야! 너희 미티어한테 빼앗긴 거라고오!”

        “클락! 여태 어디에 있었나?”

       

        다행히 아직 떠나지 않고 무도회장에 남아있는 루벤을 발견했다.

        앳되어 보이는 한 마법사와 한창 실랑이를 벌이는 중이었다.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지는 얼음조각들을 부수던 그가 나를 알아보고 손짓했다.

       

        “같이 있던 일행은?”

        “길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일행은 먼저 떠났고, 이쪽은 제 친구입니다.”

        “좀 도와주겠나? 떠나려 하는데 이 여인이 자꾸 발목을 잡아서 말이야.”

        “흠, 어디 보자…….”

       

        나는 바닥에 엎드린 채 눈물을 질질 짜고 있는 여인의 로브를 슬쩍 걷어 소속을 확인했다.

        허황된 주장을 펼치는 이단아 답게 역시 글레시아 학파였다.

       

        나는 마력을 한껏 끌어올리며 앞으로 다가갔다.

        지금껏 갈고 닦은 간섭기의 위력을 제대로 시험할 때였다.

        무려 60층에 오른 원소술사를 상대로도 해주가 통할 것인가.

        만약 성공한다면 돌아가는대로 고행의 층의 시련도 도전할만 해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메테오가 얼음마법이라,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당연하지! 난 알고 있어, 이미 바깥에선 우리의 이론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걸! 니플헤이르의 미래를 짊어질 새로운 신성의 뜻에 따라서 말이야!!”

        “오, 안타깝게도 그녀의 뜻은 좌절되었습니다. 사제폭탄을 만든 혐의로 본가에 불려간 이후에는 마족 전담기구에 배정되어 의미없는 서류작업이나 하고 있죠.”

        “거짓말, 거짓말이야……!”

        “정말인데요? 여기 증거를 보여드릴까요?”

        “아아아악!!”

       

        이전에 비해 확연히 줄어든 비나의 갤러리 활동 내역과 처음 내게 키배에서 발렸을 때의 아카이브.

        그리고 최근 그녀가 올리는 글마다 ‘글평’이라고 댓글을 달며 놀리는 모습 등을 보여주자 발 밑의 얼음이 급속도로 녹아갔다.

        무사히 루벤을 구출한 우리는 무도회장을 빠져 나왔다.

       

        “자네 해부학파라고 하지 않았나?”

        “사람의 마음을 도려내는 것, 그것이 해부입니다.”

        “세간에선 그걸 저주라고 부르는 것으로 아는데.”

        “이곳에 오래 계셔서 트랜드가 바뀐 것을 잘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아, 저기 마차가 보입니다.”

       

        전투를 최대한 피하며 후문 근처의 뒤뜰에 도착했다.

        전정(剪定)을 끝마친 채 가지런히 세워진 나무들과 보이지 않는 경비.

        이대로 담장 너머에 세워진 마차를 타고 떠나면 될 거라 생각하던 찰나.

        불현듯 시엔이 검을 뽑으며 걸음을 멈추었다.

       

        “클락, 아무래도 따라잡힌 것 같아.”

        “정말로?”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는데…… 어쩔 수 없지. 거기서 나와, 다 보고 있으니까.”

       

        시엔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무들 사이로 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누더기에 가까운 로브에 땅딸막한 체구, 푸석푸석한 흑갈색의 머릿결.

        붕대를 감은 손에 든 것은 마장이라고 하기에도 뭣한 이 빠진 단검이었다.

       

        연금학파 출신인가?

        하지만 이런 혼란 속에서 플라멜 가문이 시엔을 추적하는 건 불가능할 텐데.

        내가 의아함을 품던 그때, 루벤이 우리들의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와, 왔다. 둘 다 지금 당장 마차로 도망치게!”

        “그게 무슨 소립니까?”

        “마, 마법 살해자. 저건 자네들이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야……!”

       

        마법 살해자.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의 기감이 이변을 감지했다.

        불타는 건물로부터 날아온 미풍이 죽음을 싣고, 초목과 풀밭의 벌레들이 생명을 빼앗겨 말라 비틀어졌다.

       

        “하나는 스카디의 왼팔이고, 다른 하나는 비아지오의 뜨네기라…… 어느쪽이든 나를 죽이려 했던 놈들이군.”

       

        뇌리에 쉴 새 없이 울리는 경종과 함께 느껴지는 이상한 기시감.

        눈앞의 마법사에게 창을 던져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 마법 살해자와 눈을 마주쳤다.

       

        “흠, 너는 희한한 아이로구나. 익힌 신비도 그렇고, 손에 그렇게나 이형의 피를 묻히고서도 아직 제정신을 유지하다니.”

        “예?”

        “성정이 다소 뒤틀려 있으나 곧은 신념 하나로 이 지옥까지 왔구나. 마법에 재능이 전무하면서도 탑에 오르고자 하는 열망만큼은 지금껏 봐 온 누구보다 강하다니. 만약 내가 실패했다면 제자로 들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생각났다.

        내 기억보다 15센치 정도 더 커서 곧바로 떠올리지 못했었다.

       

        “괘념치 말거라, 만약 이곳에서 실패하더라도.”

       

       반쯤 죽은 눈을 한 채 우리를 막아선 마법살해자의 정체.

       그녀는 사감실에 놓아둔 얼음정수기 앞에서 매일 아침 자신의 키를 확인하는 나의 스승.

       

       “내가 네 몫까지 이 세상을 저주해주마.”

       

        아녜스 아이테르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파페포포님 후원 감사합니다.
    작가는 전혀 작은 금액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불성실한 작가의 정신을 번쩍 깨울 만큼 큰 금액이라 생각합니다.
    현생과 일에 치여 살수록 항상 독자분들만큼은 작가의 글을 볼 때 행복하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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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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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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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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