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64

       

       

       “어, 어쩔 셈이에요···?!”

       

       “···어쩌긴, 막아야지.”

       

       “미, 미쳤어요?! 저걸 우리끼리 막으라고요?! 선생님들을 불러왔어야죠!”

       

       

       도로시가 나를 타박하기 시작했다.

       

       이제 와서 도망칠 수도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안색이 창백했다.

       

       

       “그러게 내가 도망가라고 했잖아.”

       

       “도망가라고 진짜 도망가는 놈이 어딨어요?! 게, 게다가 이런 거라고는 생각 못했죠!”

       

       “그리고, 선생님이라면 금방 올 거야.”

       

       “네?”

       

       

       난장판이 된 아카데미 본관을 바라보았다.

       

       아카데미 본관으로 다가가는 저 빌런을 쫓던 중 들리던 커다란 소리.

       

       소음의 정체는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난동을 피웠으니 금방 누군가 이곳으로 올 거야. 우리는 버티기만 하면 괜찮아.”

       

       

       선생님을 굳이 찾으러 갈 필요는 없었다.

       

       이 정도의 소음이라면, 내가 선생님을 찾아서 이곳으로 데려오는 것보다 누군가 이곳으로 도와주러 오는 게 빠를 테니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네. 분명 그 사람들은 강할 테지만, 네가 그 사람들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글쎄. 힘들겠지.”

       

       “그런데도 여기를 와? 도대체 무슨 의도지?”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내가 싸우는 것보다 지금 당장 도망치는 게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겠지.

       

       저 모습을 보아하니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 아카데미에 침공했을 거고, 여유를 부리고 있는 걸 보아하니 거의 성공했거나 이미 성공한 상황이다.

       

       곁에 있던 개 귀를 한 여성 한 명이 저 안쪽으로 들어간 걸 보면 대충 맞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내가 그들을 막아선다 한들 의미는 없었다.

       

       안 그래도 흩뿌리듯이 뿌려댄 공격을 도로시 대신 맞은 상황이라 솔직히 힘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격이 날아들어 온 상황에서, 도로시를 지킬 수 있는 건 주변에 나밖에 없었으니까.

       

       애초에 이곳에 오지 않고 몸을 사리는 게 최선이었다.

       

       ···그런데 왜 이곳에 왔냐고?

       

       

       “그거야 간단하잖아. 너를 막으러 온 거야.”

       

       “이해가 안 가는데.”

       

       “머리 좋아 보이는데, 생각보다 머리가 나쁘네. 이런 것도 모르다니.”

       

       

       의문을 표하며 나를 바라보는 그녀를 향해 말해주었다.

       

       

       “빌런 앞에서 도망치는 놈이 영웅이 될 수 있겠어? 멍청하긴.”

       

       “···영웅 심리에 취한 애송이었네. 하긴, 여기는 아카데미였지.”

       

       “그렇게 생각해도 상관없어. 나는 이런 상황에서 도망치지 않기로 마음먹었으니까.”

       

       

       아멜리아가 예전에 그랬듯이.

       

       그때, 그 산속에서 그녀는 비합리적인 판단을 했다.

       

       그 능력을 활용해 도망친 후 위험을 알리러 가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었을 때, 그녀는 친구를 버릴 수 없다는 이유로 빌런에게 맞서 싸웠다.

       

       그건 어찌 보면 비합리적인 행동이겠지.

       

       하지만 영웅은 언제나 합리적으로 움직일 수는 없는 법이다. 아멜리아를 보고 깨달았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때로는 누군가를 사로잡기 위해.

       

       비합리적인 판단이 필요할 때는 망설이지 않고 움직이기로 마음먹었으니까.

       

       그러니, 나는 어떻게든 저 빌런의 발을 묶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이 비합리적인 판단을 할 시간이었으니까.

       

       

       “도로시. 이왕 이렇게 된 거 좀 도와주라.”

       

       “어쩔 수 없네요. 도와주지 않으면 죽을 게 뻔하니까요. ···하지만 강화뿐이에요? 저는 공격을 버티지도 못할 테니까.”

       

       “그거면 충분해. 고마워.”

       

       

       점차 날뛰기 시작하는 바람에 직감이 경종을 울리는 걸 느끼며, 눈앞의 적을 바라보았다.

       

       

       “현실을 깨닫지 못한 아이들에게 현실을 알려주는 것도 재미있겠네.”

       

       “글쎄, 아줌마. 현실을 깨닫지 못한 게 아니라, 요즘 애들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걸 느끼게 해줄게.”

       

       “···입은 살았군. 좋아, 시작해볼까.”

       

       “허수아비는 말했다. 나는 뇌를 갖고 싶어. 마법사는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였다.”

       

       

       도로시의 목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세상이 뒤틀리는 듯한 감각과 격통과 함께 느껴졌다.

       

       그리고 빌런의 손에서 해방된 바람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보이지도 않는 공격에 어느새 몸이 찢겨나갔겠지.

       

       ···하지만 내게는 보인다.

       

       어느새 몸을 숨긴 도로시의 강화를 받은 내게는, 보이지 않는 칼날이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빠르다. 하지만 아멜리아만큼은 아니다.

       

       날카롭다. 하지만 아르테의 실만큼은 아니다.

       

       이 정도의 공격은, 내게 상처를 입힐 수 없었다.

       

       

       “···피했네. 입만 살아있던 놈은 아니었던 모양이구나. 상처를 입었길래 그저 그런 놈인 줄 알았더니.”

       

       “당연하지. 나는, 우윽. 꽤 유능하다고.”

       

       “그게 원래 실력은 아닌 것 같고···. 강화? 부작용도 조금 있는 것 같고···. 지속시간은 그리 길지 않은 모양이네. 애니가 오기 전까지는 즐길 수 있겠어.”

       

       “···하, 젠장.”

       

       

       토기가 밀려와 잠깐 헛구역질한 거로 거기까지 알아보다니.

       

       도로시의 강화로 인한 부작용과는 다른 의미로 눈앞이 아찔해지는 기분이었다.

       

       정말 버틸 수 있을까?

       

       ···아니, 버티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버리자.

       

       오히려 쓰러트리겠다는 기세로, 싸우는 거야.

       

       이 정도는 두렵지 않으니까.

       

       언제였던가. 아멜리아와 미지에 대한 공포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죽은 이후에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였지.

       

       그렇다면 나는 저 빌런이 두렵지 않다.

       

       다른 사람이 두려워할 법한 보이지 않는 칼날도 내게는 보인다.

       

       다른 사람은 눈치채지 못할 사소한 움직임, 사소한 반응 하나마저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두렵지 않다.

       

       미지를 향한 두려움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공포라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두려움 없는 존재가 되리라.

       

       

       “시간이 많지는 않으니까, 금방 끝내줄게.”

       

       

       빌런이 바람으로 이루어진 참격을 쏘아낸다.

       

       이번에도 역시 보이지 않지만, 보인다.

       

       회피하는 순간 나를 갈기갈기 찢어놓기 위해 준비된 칼날마저.

       

       

       “?!”

       

       “미안하지만 다 보여. 내게 속임수는 통하지 않아.”

       

       “···생각보다 재미있는 녀석이구나, 너. 하지만 허세는 그만 부려도 괜찮아. 많이 힘들어 보이네.”

       

       “···.”

       

       

       들켰나.

       

       그래, 확실히 머리가 지끈거린다.

       

       컨디션이 좋을 때도 오래 버티지 못하던 도로시의 강화다.

       

       멀쩡한 상태일 때도 뇌가 정보량을 버티지 못했는데, 온몸이 너덜너덜한 상황에서야 말할 것도 없지.

       

       벌써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슬슬 강화가 해제될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거든.

       

       

       “도로시. 한 번 더. 이번에는 다른 강화도 부탁해.”

       

       

       몸을 숨긴 도로시에게 말을 걸었다.

       

       분명히 들었을 텐데도 강화되지 않았다. 싫다는 의미겠지.

       

       

       “도로시. 이대로 가면 나 죽어. 쓰고 뭐라도 해보는 게 나을 거야.”

       

       

       빌런은 아직도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나는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겠지.

       

       무슨 짓을 하는지 구경해보겠다는 시선이 느껴졌다.

       

       ···후회하게 될 거다, 그 판단.

       

       나를 설득하기를 포기한 건지 도로시가 내게 강화를 걸어주었다.

       

       온몸에 힘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마치 전신이 회복된 것처럼. 마치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하지만 전능감이 느껴지던 것도 잠시. 끔찍한 격통이 전신을 두들기며 내가 전능하기는커녕 위험한 상황이라는 걸 인지시켰다.

       

       

       “후윽, 후읍, 하악···.”

       

       

       끊어지려던 강화를 억지로 덮어서일까, 아니면 너덜너덜하던 몸을 강제로 움직여서일까.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지.

       

       한 발짝 몸을 움직일 때마다 격통이 느껴지고,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더 이상 버티기는 힘들다. 강화 탓에 몸이 버티지 못해.

       

       억지로 강화를 내 몸에 걸어 버티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무식한 강화의 후유증 탓에 오히려 몸이 버틸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쓰러지기 전에 최대한 강한 공격을 해야 했다.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시야가 암전했다.

       

       

       “눈을 감아? 나를 무시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눈을 감았던가?

       

       그런 적은 없는데. 아마 눈이 저절로 감긴 모양이었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으니까.

       

       점점 몸에 감각이 사라지고, 짙은 흙내음과 혈향이 느껴지지 않기 시작했다.

       

       입에서 풍기던 단내도 어느새 느껴지지 않는다.

       

       

       “···! 나···게! 죽···버리겠···어!”

       

       

       마지막으로, 자신을 무시했다고 느낀 건지 짜증을 내는 빌런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전신의 감각이 사라졌다.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냄새를 맡을 수 없고, 맛을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다.

       

       어둠 속에 오직 나만이 있는 것 같은 느낌.

       

       만약 죽는다면 이런 공간에 홀로 남아있게 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고요했다.

       

       한숨을 내뱉었다.

       

       아니, 내뱉은 게 맞을까? 감각이 사라져 확신할 수가 없었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이 시점에서 극심한 공포를 느끼겠지.

       

       오감이 사라져 움직일 수도 없을 거다.

       

       ···하지만 나에게는 직감이 있었다.

       

       다른 말로는 육감. 여섯 번째 감각.

       

       사람이 인지할 수 없는 것을 인지하는 능력.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을 듣고,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고, 맡을 수 없는 것을 맡을 수 있는 능력.

       

       능력에 의존해 발걸음을 옮기던 시우는, 문득 자신의 앞에 수많은 길이 놓여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많은 길의 유시우는 바람에 몸이 찢겨 온몸에 피를 흘린 채로 쓰러져 있었다.

       

       하지만 몇몇 유시우는 살아남았다. 그 길로 발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길을 걷자 또다시 갈림길이 시우의 앞에 나타났다.

       

       ···이번에도 여전히 대부분의 유시우는 죽어 나갔지만, 소수의 유시우는 그렇지 않았다.

       

       살아남은 유시우가 있는 길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그렇게 여러 번 반복하길 수십 번.

       

       어느새 유시우의 앞길에는 단 두 가지 길만이 남아있었다.

       

       빌런이 급하게 설치한 바람 장막에 전신이 찢겨나가는 길과 그렇지 않은 길.

       

       시우는 그렇지 않은 길로 걸어가, 검을 휘둘렀다.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다. 휘둘렀는지 아닌지, 시우는 흐려지는 의식 사이로 확신할 수 없었다.

       

       그것으로 끝.

       

       시우의 의식이 암전하고, 세상이 온통 검게 물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아르테가 나오지 않았어요

    다음화에 나올거래요

    다음화 보기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