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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4

        

       눈 위에서 질주하던 이아린이 도착한 곳은 호텔에서 멀지 않은 위치에 있는 집이었다.

       비교적 외곽에 지어져 있기에 도심 속과는 달리 고즈넉한 분위기가 풍기고 있었고, 저택의 모든 벽면은 검은빛을 띠는 나무로 이루어져 있었다. 거기에 뾰족해 보이는 지붕까지 합쳐지니 마치 동화책에 나오는 마녀의 집 같았다.

         

       쾅! 쾅! 쾅!

       딩동! 딩동!

         

       집 앞까지 도달한 이아린은 한 손으로는 초인종을, 한 손으로는 문을 신나게 두들기기 시작했다.

         

       “토끼야! 토끼야!”

         

       고즈넉한 외곽 지역이 아니라 도심이었다면 당장 소음으로 신고가 되었을 정도였다.

         

       덜컹!

         

       “토끼라고 부르지 말랬죠! 퓨마 커리안커(Puma Корея́нка)!”

         

       집주인은 집 전체를 울리는 그 소음에 견디지 못하고 달음박질을 하는 소리를 내며 뛰어와 문을 벌컥 열었고, 이아린의 얼굴을 보자마자 빼액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이아린은 그 모습이 전혀 무섭지 않다는 듯 실실 웃으면서 그녀에게 달라붙었고, 그녀가 질색하는데도 팔짱을 끼고 자연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소파가 있는 곳으로 가서 그녀를 힘으로 앉히고는 자신도 그 옆에 앉았다.

         

       “토끼야~ 부탁 하나만 할게~”

       “토끼라고 부르지 말라니까요!”

       “알았어. 엘라.”

       “친한 척 이름만 부르지도 마세요!”

       “알았어~ 엘라 B 빈터(Ella B Winter)!”

         

       엘라는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듯 배시시 웃는 이아린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한숨을 푹푹 쉬면서 제대로 정돈도 되지 않은 하얀 긴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고는 물었다.

         

       “그래요…. 프라우(Frau) 리. 무슨 일인가요.”

         

       엘라는 새빨간, 그것도 아름다운 보석을 연상케 하는 붉은 눈동자로 이아린을 쳐다보았다.

       무표정한 얼굴에서는 ‘얼른 할 말만 하고 꺼져라.’라는 그녀의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듯했다.

         

       하지만 이아린은 넉살 좋게 웃었다.

         

       “그렇게 노려보니까 진짜 토끼 같다.”

       “토끼라고 하지 말라니까요! 당신 진짜!”

       “왜~ 다른 사람들은 잘만 부르던데~”

       “당신이 하니까 문제라고요!”

         

       토끼(Hase).

         

       하얀 머리카락에 붉은 눈, 창백할 정도의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는 엘라로서는 어릴 적부터 일상처럼 듣는 단어였으며, 러시아에 유학 와서는 아예 이름 대신에 토끼(зайка)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랬기에 토끼라는 단어 자체에는 거부감이 없었다.

         

       하지만 같은 문장, 같은 단어도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 법.

         

       “일단 좀 떨어져요! 자리도 넉넉한데 왜 내 옆에 와서 앉아요?! 이러니까 당신한테 토끼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아~ 왜~ 친하게 지내면 좋잖아?”

       “아, 진짜! 당신 진짜 레즈에요?!”

         

       토끼라는 단어는 단순히 동물을 나타내기도 하고, 귀엽고 예쁜 여자를 비유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또 다른 용도로도 쓰였으니.

         

       그것은 바로 애칭.

       독일에서는 여자친구를 부를 때 사용하는 애칭으로도 쓰였다.

         

       “일단 떨어져요! 가! 바닥에 앉아요!”

         

       엘라는 자신과 계속 팔짱을 끼려는 이아린을 바닥으로 쫓아버렸다.

       이아린은 바닥에 떨어지자 자연스럽게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그녀를 쳐다보았고, 엘라는 거칠어진 숨을 잠시 가다듬더니 말했다.

         

       “당신 나라에서는 팔짱은 친구들끼리 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애인끼리 하는 거라고요. 몇 번이나 말해야 하나요?”

       “하지만 여긴 다른 나라잖아~ 다른 나라에 왔으면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응?”

       “여긴 제 나라도 아니지만, 당신 나라도 아니잖아요! 아니, 애초에 러시아에서도 여자끼리는 팔짱 안 껴요!”

       “아닌데~ 여기서도 팔짱 끼고 다니는데~”

       “…그래요. 그렇긴 한데….”

         

       엘라는 학교 곳곳에서 목격되는 이아린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지붕에서 낮잠을 자거나.

       곰이랑 맥주를 마시거나.

       이글루를 만들곤 거기서 고기를 구워 먹고.

       점심시간만 되면 다른 여학생들과 팔짱을 끼고 식당에 가서 같이 밥을 먹고….

         

       그래.

       틀린 말은 아니다.

         

       이아린은 예쁜 외모와 붙임성 있는 성격으로 학교에 녹아들었다.

       게다가 인간 카피바라라도 되는지 수많은 여학생 그룹 전부와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고 있었으며, 교사들에게는 귀여움을 받고 있었다. 게다가 그 친화력이 어찌나 대단한지, 엘라로서는 과하다고밖에 보이지 않는 스킨십을 하는데도 불평불만 없이 받아들여질 정도다.

         

       이아린과 이세린의 말로는 한국 여고생들의 평범한 친밀감의 표현이라고는 하는데, 그녀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어쨌든 저한테는 하지 말고…. 아니, 됐어요. 그래서 무슨 일인가요?”

         

       왜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잔소리와 더불어 자신에게는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하게 못을 박으려던 엘라는 이아린의 순진무구한,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청순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보고는 포기해버렸다.

         

       말을 해도 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이아린은 그녀의 체념한 듯한 표정을 보고는 슬쩍 소파 위로 올라와 앉았다.

         

       그리곤 엘라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스마트폰을 꺼내서 그녀에게 내밀더니 말했다.

         

       “이것들 좀 구하려고 했는데, 우리 토끼한테서 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우리 토끼….”

         

       호칭이 업그레이드됐다.

       그냥 토끼도 아니고, 우리 토끼로.

         

       하지만 이젠 지적하는 것도 힘겨운지 엘라는 그저 깊은 한숨을 한 번 쉬었다.

       엘라는 그녀가 내민 문자를 살펴보았고, 다시 깊은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이거 한국어죠?”

       “응!”

       “…저 한국어 못한다니까요?”

       “어? 못해? 벌써 시간이….”

       “제가 당신들처럼 순식간에 언어 하나 뚝딱 익힐 수 있는 줄 아세요?”

         

       엘라는 자각 없이 언어 습득 능력을 자랑하는 기만자를 쏘아보았다.

         

       “원래 언어라는 건 익히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거예요. 당신 같은 무인들이야 언어 습득 장치(Language Acquisition Device)가 발달해 있으니 빨리 익히는 거라고요.”

       “하지만 이세린도 순식간에 익혔는걸?”

       “당신 여동생은 계약자잖아요! 계약자는 계약한 초월종이 선험 지식(Schema) 역할을 한다고요!”

       “하지만 오래비도 순식간에 익혔는걸?”

       “오-래-비(O-Rae-bi)는 또 뭐에요?”

         

       엘라는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표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래비? 맥락을 보면 사람 이름 같은데…. 그런 사람이 학교에 있던가?’

       “오빠(Bruder)의 또 다른 표현이야.”

       “응? 당신 오빠가 있었나요? 그 사람도 무인인가요?”

       “아~니, 주술사.”

         

       주술사?

       주술사 오빠가 있다고?

         

       그녀는 이아린을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주술사 오빠를 두다니. 대단한데요. 처음으로 당신 집안에 관해서 관심이 생겼어요.”

       “집안? 왜?”

         

       엘라는 몰라서 묻냐는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부잣집 출신.

       자매 중 언니는 강한 무인.

       자매 중 동생은 계약자.

         

       이 세 가지만으로도 명문가로 보이는데, 거기에 오빠가 기인이라는 주술사이기까지 하다.

         

       당연히 ‘네 집안은 무슨 귀족 집안이길래 자식들을 전부 이능력자로 만들었냐’, ‘자식을 참 잘 둔 것 같은데 비결이라도 있냐’ 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어쨌든 오래비도 언어 순식간에 익히던데?”

       “당신 오빠는 주술…사니까…. 음….”

         

       엘라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주술사니까 뭔가 특별한 방법을 썼을 거라고 말하고 싶긴 한데, 그 특별한 방법이 뭐냐고 물으면 딱히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술이란 무어라 딱 단정 짓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뭉뚱그려서 주술을 주로 쓰는 이들을 ‘주술사’라고 하기는 하지만, 사용하는 기술이 천차만별인 데다가 사람마다 발현하는 형태도 달라 칭호를 통해 개성을 나타내곤 했다.

         

       시체를 특별한 처리를 통해 사용하는 강시술사, 악령과 악귀를 부리는 강령술사, 영혼을 붙잡아 제 몸에 사용하는 빙의술사, 예지 능력을 사용하는 점성술사, 기계를 매개로 주술을 사용하는 기계술사, 인형을 부리는 인형술사 등등…

         

       우스갯소리로 ‘주술사의 종류는 주술사의 숫자와 똑같다’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였다.

         

       그러니 분명히 언어를 쉽게 익히는 주술이나 머리를 좋게 만드는 주술이 분명히 있기는 할 텐데, 그 주술이 뭐냐고 물으면 ‘그냥 있을 것 같아요’ 이상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근거가 없는 말을 내뱉는다는 건 뭐다?

       논쟁에서 졌다는 얘기다.

         

       ‘제가 말싸움에서 졌다고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 사람 모양 짐승한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아린한테는 말로 밀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엘라는 치트키를 사용했다.

         

       “아무튼, 언어는 익히기 힘든 거예요! 그렇게 아세요!”

         

       엘라는 말싸움을 이어가는 대신, 억지를 부려서 끝내는 길을 택했다.

       그리곤 슬쩍 말을 돌렸다.

         

       “그래서 그 구해야 한다는 물건이 뭔가요?”

       “아, 그 얘기 하고 있었지? 읽어줄게? 자작나무 장작 30kg, 생후 10개월을 넘지 않은 염소 한 마리….”

         

       이아린은 문자를 독일어로 읽어주기 시작했고, 엘라는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귀하지는 않은데 은근히 구하기 까다로운’ 물건의 목록에 혀를 내둘렀다.

         

       “…첫 번째로 태어난 설치류 한 마리! 끝!”

       “참…. 비싸지는 않은데 은근히 희귀하고, 구하려고 하면 구할 수는 있는데 귀찮은 것들만 가득 있네요. 그래서, 저한테 이 물건을 구해달라고 부탁을 하러 오신 건가요?”

       “응!”

       “제가 마녀이기는 하지만 저런 물건들을 가지고 있진 않아요. 잘못 찾아온 것 같은데요.”

       “아~니, 그~ 가지고 있잖아. 얼마 전에 새끼가 태어났으니 팔아서 용돈 번다고 했잖아~”

       “네?”

         

       엘라는 이아린의 말에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직 안 팔렸지? 염소.”

       “염소…?”

         

       엘라의 얼굴에 짜증이 서렸다.

         

       “염소가 아니라 산양이에요! 상징 자체가 다른! 산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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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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