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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41

        

       진성을 찾아온 이는 평범해 보이는 백인이었다.

       잘생기지도 못생기지도 않은 얼굴, 잘 관리된 금발, 여타 중년들이 그러하듯 툭 튀어나온 배, 거기에 잘 차려입은 양복까지.

       서양에서 흔히 볼법한 평범한 중년 남성.

         

       그는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은 채 진성을 찾아왔다.

         

       “콜라 좋아합니까?”

         

       “그것을 싫어하는 이는 별로 없지요.”

         

       “하하. 정말 말씀하시는 게 주술사 그 자체시군요.”

         

       남자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더니 자신이 가지고 온 가방에 손을 넣었다.

       그러고는 콜라 두 개를 꺼내서 하나는 자신의 앞에, 하나는 진성의 앞에 내밀었다.

         

       16.9oz짜리 페트병 콜라.

       한 손으로 쏙 잡고 마실 수 있는 크기였다.

         

       남자는 목이나 축이고 이야기를 하자는 듯 콜라를 들고 미소를 지었고, 뚜껑을 딴 뒤 단숨에 들이켰다. 마치 이 콜라는 안전하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 말이다.

         

       ‘흐음.’

         

       진성은 남자가 콜라를 들이켤 때 조용히 콜라를 집었다.

       그리곤 그것을 자연스럽게 좌우로 기울이면서 손에 힘을 주어 쥐어짰다.

         

       주사 같은 것으로 콜라에 약물을 주입했다면 바로 티가 날 수 있게 말이다.

       만약 실제로 수작을 부렸다면 페트병 밖으로 콜라가 새어 나오며 바로 티가 나리라.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진성이 쥐어짜도 콜라는 멀쩡했다.

         

       적어도 주사 같은 것으로 수작을 부리지는 않았다는 이야기.

         

       진성은 그 사실을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콜라를 자신의 앞에 놓았다.

         

       지금은 콜라를 마실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듯 말이다.

         

       ‘굳이 마실 필요는 없으니.’

         

       주사로 수작을 부리지 않았다는 것이지 다른 것으로 수작을 부리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뚜껑에 수작을 부렸을 수도 있고, 아예 내용물 자체가 오염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

       콜라의 뚜껑을 따거나 콜라를 마시는 것에서 트리거가 발동되어 무언가 일어날 수도 있고.

         

       그러니 가장 좋은 방법은 애초부터 마시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경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리스크를 고려하더라도 말이다.

         

       ‘경계의 표시 역시도 상황을 어찌 이끌어가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법. 자아, 나에게 어떠한 용무가 있는 것인고?’

         

       진성은 콜라를 마시지 않은 채 가만히 남자를 바라보았다.

         

       “흠. 이거 원. 한국인들이 ‘빨리빨리’를 좋아한다고 하더니, 이렇게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가기를 바라는 줄은 몰랐군요. 프론티어 정신으로 무장한 미국인보다도 더 직설적입니다.”

         

       남자는 그러한 진성의 모습에 생긋 웃었다.

       자신에게는 악의적인 의도가 없으며, 자신은 안전하다고 말하려는 듯 말이다.

         

       그는 그렇게 웃으면서 ‘나는 한국인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라는 티를 내려는 듯 한국에 대한 것을 언급하였고, 그 뒤로 자신이 미국인이며 이곳은 미국이라는 사실을 그에게 상기시켜주는 말을 했다.

         

       자연스럽게 상대를 압박하는 화법.

         

       특히 이야기를 나누는 이가 억류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아주 정중한 태도로 협박을 말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억류되어있는 자신의 처지를 상기시키고, 자연스럽게 자신을 억류하고 있는 국가의 힘을 떠올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거기다가 그는 자신의 소개조차 하지 않았으며, 그러면서도 박진성의 성을 아무렇지도 않게 부름으로써 위아래를 확실하게 구분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자신이 명백히 우위에 있는 상황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압박을 주려고 하는 것이다.

         

       ‘보자….’

         

       거기에 저 미소를 보라.

       사람 좋아 보이려는 듯 웃음을 짓고 있지만 저것은 명백히 훈련에 의한 것.

       요원 같은 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느낌의 미소다.

         

       훈련에 의한 미소는 티가 난다.

       한둘만 본다면 티가 나지 않을지는 몰라도, 수많은 요원을 보다 보면 알게 된다.

         

       같은 교본을 보면서 익혔구나.

       같은 교관의 아래에서 익혔구나.

         

       언젠가 한 용병은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 저 빌어먹을 놈들은 미소도 비슷해. 하지만 그 비슷한 미소에도 차이가 존재한단 말이지. 그걸 알기만 하면 저놈들이 어디 소속인지 알 수 있어. 흐흐흐. 』

         

       그러면서 그 미소는 자신의 비기나 다름이 없는 것이라고, 나중에 용병 짓 때려치우고 교관으로 일하게 된다면 그걸로 밥을 벌어먹어야겠다고 진성에게 말을 하곤 했었다.

       물론 그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어디 용병이 평범하게 퇴직하는 것이 쉽겠는가.

       심지어 세계 3차 대전까지 터진 상황에서 말이다.

         

       그는 총알받이로 쓰였고, 시체도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

       벙커버스터에 맞아서 죽는다는 위업을 달성함과 함께 그의 시체는 산산조각으로 찢겨버렸으며, 그나마 남은 시체마저도 벙커와 함께 땅속 깊숙한 곳으로 묻혀버렸다.

       무덤을 굳이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그의 죽음은 지독하리만큼 효율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한 사람 눕기에는 너무 커다란 무덤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지독하게 사치스럽기까지 했고.

         

       그렇게 그 용병은 죽었고, 그가 말한 ‘비기’는 그렇게 사라졌다.

       그 누구에게도 전수되지 않은 채로 말이다.

         

       하지만 전수되지 아니하였다고 해서 사용하지 못하지는 않는 법.

         

       그 용병처럼 작정하고 파고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여럿을 만나다 보면 보이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비슷한 것에서 비슷한 것을 찾아내는 것이 인간의 눈이며, 비기를 만들어낸 것이 정보일 것이니.

       그리하여 정보들이 모인다면 비슷하게 흉내는 가능한 법.

         

       ‘흠. FBI나 CIA 쪽은 아닌 것 같은데.’

         

       진성은 남자의 미소에서 많은 정보를 얻었다.

       그가 보아왔던 FBI와 CIA 요원들과는 묘하게 다른 미소라는 것.

       친절한 듯 보이나 자부심이 넘치는 듯한 감정이 읽히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자신만만한 태도를 굳이 숨길 생각이 없다는 것까지.

         

       ‘자신감이라.’

         

       자신감?

       무엇이 그리도 그를 자부심에 넘치게 하는가?

       무엇이 그를 자신만만하게 하는가?

       진성을 앞에 두고 그를 저렇게 용기가 넘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무력에 대한 자신감?

         

       그렇지는 않다.

       호위들이 쫙 깔려 있을 것이며, 그의 안전을 위한 조치들은 분명히 있을 것이나-

       진성이 보기에 저 남자는 능력자도 아니고, 딱히 격투 실력이 뛰어나 보이지도 않는다.

       총기를 지닌 것 같지도 않으니 거기서 자신감을 얻은 것 또한 아니다.

         

       그렇다면 자신을 지키는 근본적인 무력에서 저 자부심이 비롯되지 않는다면.

       억류된 신세인 주술사를 앞에 두고 있음에도 저리도 자부심이 넘친다는 것은.

       그 자체는 볼품없는 중년에 지나지 않는 그를 저렇게 만드는 것은.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라…?’

         

       그것밖에 없다.

       세계 최강의 국가, 미국을 등에 업고 있기에 가질 수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그 국가에 속해있기에 가지는 평범한 애국심이 아니라, 그 국가의 힘을 어느 정도 휘두를 수 있기에 가질 수 있는….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짐작이 되는구나.’

         

       진성은 남자가 무슨 이야기를 꺼낼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떤 이유로 자신을 억류하였는지도.

         

       “일단 가장 먼저 이 질문을 드리고 싶군요. 미스터 팍, 미국은 즐거우셨습니까?”

         

       “거대한 땅만큼이나 수많은 사람으로 가득한 나라였지요. 무릇 문화라는 것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요 그 다양성 역시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라. 하니 수많은 사람이 있는 이 나라에서 볼 것이 많았음은 이상하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진성은 남자의 물음에 방긋 웃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이들 중에서도 연이 닿아 특별한 이와도 친분을 쌓을 수 있었으니, 이를 주께서 주신 축복이라 하지 않으면 무엇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주께서 주신 축복이라…. 미스터 팍도 주를 믿으십니까?”

         

       남자는 진성의 말에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동양에서 온 주술사의 입에서 ‘주’라는 단어가 나오자 관심을 가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에 진성은 반쯤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거 원.’

         

       자신의 눈앞에 있는 남자가 네오콘(neocon)이라고 말이다.

         

       ‘그들과 참으로 비슷한 느낌이로구나. 그림으로 그린 듯해….’

         

       진성이 보아왔던 네오콘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흘렀으며, 국경을 걸어 잠그고 자기들끼리만 살아가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외국에 대한 이해도가 파멸적인 수준이었다.

         

       그래.

       바로 눈앞의 남자처럼 말이다.

         

       ‘무지한 것보다 무지하지 않다고 믿는 어리석은 이들이 더 문제인 법이니.’

         

       이해도가 파멸적인 수준이라는 것은 단순한 무지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아예 모른다면 배우면 그만이고, 비어있다면 채우면 그만.

       하지만 이들은 잘못된 믿음을 품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다른 나라를 자신의 기준으로 짜 맞춰서 ‘이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자신을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것이야 흔히 있는 일이다.

       하지만 네오콘들은 그게 좀…심했다.

         

       많이.

         

       심각한 왜곡을 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철석같이 믿고 있으며,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완벽한 결론’을 훼손시키기를 원치 않는다. 반례가 눈앞에 나타나더라도 제 생각을 바꾸지 않으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편견을 상식이라고 여긴다.

         

       거기에 더해서 네오콘 특유의 우월감 가득한 태도가 더해지기까지 하니….

         

       ‘나의 입에서 이러한 말이 나온 것에 놀란 것이 아니로다. 말을 할 적에 얼굴만을 본 것이 아니라 얼굴과 손의 피부를 분명히 훑는 시선을 보았으니 가장 먼저 본 것이 피부색이라. 거기에 더하여 주를 믿느냐는 질문에 의외라는 감정과 함께 약간의 혐오감이 살짝 섞여 있는 듯도 하였으니 이는 주술사를 이교도로 보는 시선이 더해진 것이라.’

         

       신실한 기독교인.

       ‘우상을 숭배하는 이교도’를 혐오하는 ‘신실한’ 기독교인이다.

       ‘미국 중심의 서양 문명’을 사랑하며, 그를 오염시키려는 동양 문명에 대한 약간의 혐오를 품고 있는 신실한 기독교인 말이다.

         

       진성은 남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곤 방긋 웃으며 물었다.

         

       “루카스 메타트로니우스 골드스미스(Lucas Metathronius Goldsmith)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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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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