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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42

        

       루카스.

       크리스털 팔을 가지고 있던 사나이.

       자신의 안전에 그렇게나 신경을 쓰던 사람이었으며, 곳곳에서 자신을 감시한다는 생각에 빠져서 한시도 마음 편히 있지 못했던 사람.

       그렇기에 외국인 주술사인 진성과 연을 맺고자 했으며, 진성을 자신의 빌딩에 머무르게 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뜻대로 진성은 그의 빌딩에 최근까지 있었다.

         

       그래.

       바로 최근까지 말이다.

         

       “…흠.”

         

       남자는 진성의 입에서 루카스의 이름이 나오자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제법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진성을 보았다.

         

       심지어는 약간의 호의를 얼굴에 띄우기까지 했다.

         

       “그렇군요. 한국인들이 똑똑하다고는 들었습니다만….”

         

       루카스의 이름이 나오자 남자의 자세가 조금 변했다.

       진성을 좀 더 진지하게 마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호의.

       그로선 명백한 호의였다.

         

       ‘한국인이 똑똑하다고는 들었지만…. 하긴. 미국이 멍청한 놈들을 데리고 베트남에서 같이 싸웠을 리는 없겠지. 제법이군.’

         

       물론 그 호의의 저변에는 우월감이 깃들어있음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남자의 생각은 진성에게 훤히 읽히고 있었다.

         

       너무 투명한 나머지 ‘내가 모르는 속내를 감추는 방법인가?’라는 생각을 잠시나마 했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남자의 태도가 너무나 투명한데다가, 진성이 보아왔던 사람들과 너무나도 일치하는 상황. 신체가 보내는 무의식적인 신호까지도 모두 그가 읽고 있는 것이 바르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진성은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있는 남자가 정말 그림으로 그린 듯한 네오콘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좋습니다. 한국인은 ‘빨리빨리’를 좋아하는 만큼 미국인은 본론을 바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니…. 그냥 말하도록 하죠. 루카스. 그에 대해서 좀 이야기를 해주셔야겠습니다.”

         

       “흠.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는지요? 제가 보아왔던 그는 나름 괜찮은 미국인처럼 보였습니다만…. 아, 혹시 빌딩에 가해진 테러와 그가 무슨 연관이라도 있는 겁니까?”

         

       진성은 루카스를 언급하는 남자의 말에 방긋 웃으며 슬쩍 말을 돌려 물어보았다.

       혹시 내가 테러와 연관이 되어 있으리라 생각해서 여기에 붙잡아 둔 것이냐, 아니면 정부에서 테러를 가장하고 루카스를 암살하려고 했다가 실패해서 입막음하려고 여기에 붙잡아 두었냐는 뉘앙스가 담긴 질문이었다.

         

       남자는 이러한 뉘앙스를 바로 캐치해냈다.

         

       “테러라…. 비슷합니다. 국가의 안위와 관련이 있는 것이니까요.”

         

       그는 진성의 말에 담긴 뉘앙스를 파악하고 대응해주었다.

       아주 온건하게 말이다.

         

       진성이 루카스의 이름을 대지 않았다면 아마 평소처럼 대했겠지.

       미국의 힘을 각인시키고, 윽박지르고, 협박하고.

       미국의 ‘강인함’으로 굴복시켜서 답을 알아내는 방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진성의 입에서 루카스의 이름이 먼저 나온 데다가, 생각해보니까 진성은 나름 미국과 꽤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나라의 사람. 거기다가 가만히 보니까 얼굴도 어려 보이니 괜히 협박했다가는 어린아이 괴롭히는 기분이 드는 것 같기도 해서 찜찜하기도 했다.

         

       그러니 ‘온건한’ 방법을 택한 것이다.

         

       물론 그 기준에서의 온건한 방법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국가 보안과 관련된 것은 자세한 설명을 해드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겠지요?”

         

       “아. 물론입니다. 제 육신의 나이가 아무리 어리다고 한들 그런 것조차 모를 만큼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집의 안전을 위해서는 담장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떠들고 다니지 않는 것이 옳음은 자명하지 않겠습니까? 안전이라는 것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니까요.”

         

       “그렇지요. 말이 통하는군요.”

         

       “국가 보안과 관련된 것이라니 제가 협조하지 않을 수가 없겠군요.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루카스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묘하게 낡은 말투.

       사극이나 할아버지들이나 쓸법한 영어가 진성의 입에서 나온다.

       나쁘게 말하면 고리타분한 것이고, 좋게 말하면 고풍스러운 영어.

         

       늙어버린 세대들이 쓸법한 낡은 언어는 어려 보이는 진성의 언행에 힘을 실어주었고, 그와 동시에 어려 보이기까지 한 진성의 외모와 심각한 갭을 만든다. 할아버지나 쓸법한 표현이 늙은 사람이 젊은 사람에게 충고라도 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다가도, 어려 보이기까지 한 진성의 외모를 볼 때마다 그러한 감상이 확 깨어지며 적지 않은 간극이 생긴다. 그리고 그 간극 사이에 진성이 ‘외국인’이라는 사실이 끼어들며 간극을 좁혀버리고, 평범한 상식이 그나마도 메워버리며 이해하게 만든다.

         

       드라마나 영화 같은 것으로 영어를 배웠구나.

       늙은 사람에게서 영어를 배웠구나.

         

       그렇게 진성이 하는 말투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된다.

         

       원어민과 외국인이라는 그 입장의 차이가 오히려 하나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식과 편견의 사이.

       진성은 그 이점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누린다.

         

       억류된 상황.

       국가 보안을 위해 찾아온 낮지 않은 위치에 있을법한 사람.

       미국 정부를 등에 업고 있는 남자.

         

       당연히 그쪽으로 힘이 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분위기와 대화의 흐름 역시 말이다.

         

       하지만 진성은 고풍스러운 말투를 사용하며 일방적으로 남자 쪽으로 대화의 흐름이 흘러가지 않도록 막아버린 것이다. 외국인이라는 이점으로, ‘옛날 말투를 잘못 배운 어린 외국인’이라는 의태를 통해서 말이다.

         

       그리고 거기서 끝이 아니다.

         

       진성의 언행 하나하나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큰 틀에서 본다면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일지는 몰라도 세세하게 들어간다면 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눈앞에서 대화하는 사람이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인식하는 수준으로 말이다.

         

       사용하는 언어가 좀 더 고급스러워진다.

       엘리트들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와 관용어가 대화에 들어가기 시작하였고, 그의 자세 역시 예절 교육이라도 받은 것처럼 조금씩 변화한다. 몇몇 단어들이 남자가 사용하는 언어와 비슷하게 변화하기도 하고, 전략적으로 휴지(休止, Pause)를 사용하여 마치 엘리트끼리 담화라도 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소탈한 사람이었습니다. 동시에 개척자 정신이 풍부한 사람이었죠. 제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았던 서부 개척 시대의 미국인이 현대에 살아가고 있다면 그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전사였습니다. 돈이 오가는 전쟁터에서 살아가는 전사.”

         

       단어 몇몇 억양이 바뀐다.

       어떤 것은 친근하게.

       어떤 것은 낯설게.

         

       몇몇 언어들은 귀에 쏙쏙 들어갈 수 있도록, 나머지는 물 흐르듯 이어 나가며 그 단어를 돋보여줄 수 있도록. 그리고 그렇게 쏙쏙 귀에 박히는 단어들은 적절한 휴지와 함께 힘을 얻게 되고, 그와 함께 남자에게서 어떠한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

         

       진성이 루카스에게 분명한 호의를 품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루카스 개인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갑자기 좋은 기회를 줄 수 있는 미국에 대한 것도 분명히 있다는 것.

         

       그렇게 진성은 남자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러한 좋은 인상은 자연스럽게 진성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이렇게 미국에 호의적인 사람이 어떠한 문제를 일으키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품게 만드는 것이다.

         

       작은 차이.

       그리 크지 않은 차이다.

         

       미사여구를 떼어놓고 본다면 진성의 말은 그가 읽었을지도 모르는 보고서에 적힌 내용과 다르지 않은 내용일 테니까 말이다.

         

       루카스를 어떻게 만났고, 그와 어떤 대화를 나눴고, 어떤 의뢰를 받았고, 어떤 행동을 했다….

         

       하나하나 객관적인 사실이 듬뿍 담겨있을 그 보고서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알아야 한다.

       자그마한 인상은 그 객관적인 사실조차도 왜곡시킬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다는 것을.

         

       진성이 지금 남자에게 심어주는 이 호의적인 인상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그 사건은 참으로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에게 그런 폭력적이고 끔찍한 행위를 할 줄이야. 심지어 그 사악함이 어찌나 강력하였던지 삿되고 저주받은 것들이 몰려들고 활동하게 될 위기까지 처했지요. 아니, 어쩌면 범인들은 그걸 원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우리가 모두 공포에 휩쓸리고 일상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맞습니다. 테러리스트들은 세상이 불타기를 원하고, 세상이 공포에 휩쓸리기를 바라지요….”

         

       그리고 그렇게 호의적인 인상을 심은 후 진성은 말을 이어 나간다.

       자기 말을 쏟아내는 것에 집중하는 척하면서 남자의 모습을 살핀다.

       그리고 남자가 자기 말에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지, 미국 정부가 과연 어디까지 파악하고 있는지를 남자의 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이용해서 파악한다.

         

       눈앞의 남자는 요원이기는 하지만 네오콘이라는 크나큰 허점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허점을 파고든다면 훈련을 간단하게 뚫고 그 속내를 알아볼 수 있음이니.

         

       그렇게 진성은 남자의 반응을 파악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자신이 그 빌딩에서 해온 일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어찌 호의를 베푼 이를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저에게 그렇게나 성심성의껏 대접해주었던 주인을 어찌 손님 된 입장에서 배반할 수가 있겠습니까? 기독교에서 받은 만큼 대접하라고 가르치듯 동양에도 비슷한 말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지 못한다면 신의가 없는 것이요, 후안무치한 자가 될 수밖에 없음이니. 그리하였기에 빌딩에 저는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력의 부족함을 통감하면서도 그 빌딩에 남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흐음.”

         

       “실력이 모자라는 것이 어찌 부끄럽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다른 주술사였다면 짧은 시일 만에 능히 그 빌딩을 정화하고 안전하게 만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만 부끄럽게도 저의 실력이 뛰어나지 않은 터라 그 시일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 대접받은 만큼 대접하고자 하였던 저의 의지가 퇴색되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말한다.

       자신이 그 빌딩에 남아있었던 것은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설명하면서도 약간은 부끄럽다는 듯, 하지만 향상심이 담긴 태도를 보인다.

       마치 자신은 더 발전할 것이라고 말하려는 듯 말이다.

         

       이러한 진성의 모습에서는 젊은이의 치기와 늙은이가 한탄하는 듯한 태도가 함께 공존했다.

         

       마치 자신이 ‘외국인’이라는 것을 남자에게 다시 상기시켜주려는 듯 말이다.

         

       그렇게 진성의 ‘협조’가 종료되었고.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렇군요.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약간의 호의를 숨기지 않고 내보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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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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