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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43

        

         

       하지만 그 호의가 ‘진성을 억류에서 풀어준다.’라는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조금 부족한 듯했다.

         

       “안녕하세요?”

         

       새로운 요원이 들어왔으니까 말이다.

         

       나타난 것은 20대쯤 되어 보이는 여성 요원.

       찰랑거리는 금발 머리카락을 가진 백인이었다.

         

       그녀는 친절해 보이지만 묘하게 인공적인 느낌이 감도는 미소를 띠며 진성을 상대하였는데, 사무적으로 대하는 듯하면서도 중간중간에 진성에 대한 호감 어린 말을 하는 것이 제대로 된 훈련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는 은근슬쩍 밀착하거나, 진성 쪽으로 몸을 기울이기도 하였으며,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진성의 시선을 특정 부위에 집중시키려고도 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진성은 확신했다.

         

       ‘블랙이군.’

         

       Non-official cover.

       소위 ‘블랙 요원’이라고 부르는 이들.

         

       진성은 이 여자가 요원임을 확신했다.

         

       행동 때문에?

       물론 그것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를 확신하게 만든 것은 바로 향기였다.

         

       ‘이 향수 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지….’

         

       그녀의 몸에서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향기.

       그 향기를 맡아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아르카나, 연인(The Lovers).’

         

       용병들 사이에서는 타로의 ‘연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이성 유혹용 향수.

       특징은 향수에 페로몬과 사향을 듬뿍 사용한다는 것.

       살결 냄새와 흡사한 사향의 향기는 자연스럽게 겉으로 드러난 피부에 집중하게 만들며, 옷 안에 숨겨진 피부를 상상하게 만든다. 그리고 페로몬은 이성적 관심을 끌어 자신이 이성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착각하게 만든다.

         

       당연하겠지만 효과가 뛰어난 만큼 이 향수의 단가는 상당히 비싸다.

       요원들에게 그냥 팍팍 쓰라고 내려줄 수 있을법한 그런 물건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인공 사향이 아니라 실제 사향노루에게서 추출한 사향과,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낸 특수 생물의 몸에서 뽑아낸 페로몬이 재료니까 말이다.

         

       ‘미인계…는 아닌 듯하고.’

         

       그런 향수까지 뿌린 이성을 들여보냈다?

         

       어떠한 저의가 있는 것인가?

         

       진성은 자신을 억류한 네오콘들이 어떠한 의도가 있는지 고민했다.

         

       그의 머릿속에 수많은 가능성이 스쳐 지나간다.

       미인계로 자신의 경계심을 낮춘 다음 기습을 하려는 것이 아닌가.

       자신을 방심하게 한 다음 자신을 끌고 가서 화학물질에 절여서 정보를 뽑아내려는 것은 아닌지.

       혹은 이 여자가 품속에 펜타닐과 같은 마약성 물질을 지니고 있어 접촉하는 척 은근슬쩍 몸 이곳저곳에 묻혀놓고 자연스럽게 그를 제압하려는 것은 아닌지.

       특정한 향이 나는 자백제의 냄새를 지우고자 향수를 뿌려놓고 그 효과가 날 때까지 시간을 질질 끌려는 수작은 아닌지.

         

       진성은 수많은 가능성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하지만 이내 그러한 가능성을 죄다 지워버렸다.

         

       대신에 그는 더더욱 협조적으로 나왔다.

       앞서 마주했던 남성 요원과 큰 차이는 없지만, 그래도 자세히 살펴본다면 차이가 나타날 정도로.

       미미하게 호감을 느끼는 상대에게 보이는 듯한 신호를 곳곳에 보였고, 앞서 마주했던 요원보다 심리적으로 편안하다는 듯 말투와 행동을 바꿨다. 그리고 그러한 신호를 계속해서 보내면서도 아까 요원에게 했던 것과 비슷한 내용을 말하며 일관성을 유지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

         

       “협조에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며, 그동안의 불편을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다음에 미국에 방문할 때 이곳으로 연락을 주시면 진성 박이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명함을 받아주세요.”

         

       억류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의심에서 벗어난 것일까?

       아니면 아직은 지켜봐야 할 대상이라고 여긴 것일까?

         

       진성은 시설에서 풀려나 공항에 발을 들일 수 있게 되었다.

         

       ‘흐음.’

         

       하지만 진성은 방심하지 않았다.

       감시의 시선이 아직도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공항 곳곳에 깔린 감시장비들은 진성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으며, 그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돌아다니는 동물들 역시도 은근슬쩍 진성을 흘낏 훔쳐보기까지 했다. 이러한 동물 중에는 진짜 동물들도 있겠지만, 미국이 만들어낸 ‘특별한 동물’들도 있으리라.

       눈알 대신에 렌즈를, 귀 대신에 도청 장치를 달고 있는 첩보용 동물들 말이다.

         

       거기다가 그뿐만이 아니다.

         

       진성의 손에 들려있는 일등석 티켓.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그의 손에 쥐여준 이 티켓은 미국 국적의 항공사의 것이었는데….

         

       ‘아마 비행기 안에도 뭔가가 있겠지.’

         

       확신한다.

       그 비행기에도 무언가 수작질이 있으리라는 것을.

         

       도청 장치나 CCTV 같은 것은 기본.

       아마 스캐너 같은 것들이 있을 수도 있다.

       진성이 가지고 있을 아티팩트나 주물, 진성이 몸에 품고 있는 에너지 등을 스캔하는 장비 말이다.

         

       ‘일본과도 비슷하지….’

         

       이 집요함은 어쩌면 일본과도 닮은 면이 있었다.

       주술사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온갖 장비들을 미친 듯이 깔아놓은 일본 특유의 집요함과 말이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미국은 일본과는 다르게 주술사가 아닌 다른 능력자들에게 더 집중을 한 형태라는 것이겠지. 미국이 행하는 저러한 장비들은 기기괴괴하며 종잡을 수 없는 주술보다는 몸에 에너지를 쌓아두는 형태의 능력자…마법사나 무인과 같은 이들의 경지나 근원을 알아내기에 적합한 형태이니까 말이다.

         

       ‘고립을 원하는 자들은 두려움이 많은 이들이니…. 피식자가 갑옷을 두르고 가시를 세우는 것과 다르지 아니한 모습이로다.’

         

       진성은 이러한 미국의 모습이 가시 갑옷을 입은 뚱뚱한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몸조차 제대로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살이 찐 사람.

       당연히 무기를 휘두르는 것조차 쉽지 않고, 총을 겨누는 것 역시 힘겨워한다.

       하지만 살을 뺄 생각은 없고, 대신에 몸에 가시 갑옷을 두른다.

       그 누구도 자신에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그 누구도 자신을 해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으랴.

         

       가시 갑옷이 총알을 막고 칼을 막고 주먹을 막는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으랴.

       결국 그를 죽이는 것은 내부의 병이 될 것인데.

         

       지금의 미국은 그와 같았다.

         

       미래의 미국 역시 그와 같았고.

       아마도 이번에도 다르지 않겠지….

         

       진성은 그러한 생각을 하며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리고 아주 얌전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그저 의자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말이다.

         

       그리고 한국에 도착하고, 공항에서 충분히 멀어진 후에야.

         

       “ᚱ, ᚳ.”

         

       밝은 빨강의 바퀴가 있으니 그것은 충분히 빠르게 굴러 목적지에 도달하였고 그 색채가 아무런 일이 없음을 말해주고 있었으니 이것이야말로 무언가를 얻고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음을 말하고 있으니 긍정적인 변화를 얻게 된 여행이라.

       그리하여 룬 문자 라드(ᚱ)를 몸에 새겨 여행에서 돌아왔음을 알리니 이곳은 마음을 놓고 쉴 수 있는 터전이로다.

       그리하여 나쁜 것은 떨어져 나가고 불안케 만드는 것은 사라졌음이니 무사히 여행을 왔음을 입으로 문자로 알리는 것이다.

         

       그리고 뒤를 이어 태양을 닮은 불을 몸에 새기고자 함이니 무언가를 녹이는 가능성이 깃들며 숨겨진 것들이 드러나게 되리니. 그리하여 불꽃이 피어나 숨겨진 것들을 태우기 시작하였으니 태양이 그러하듯 정화의 힘이 깃들게 되었도다.

       그리하여 몸에 그려진 룬 문자 켄(ᚳ)이 곧 불꽃이 되었고, 불꽃은 피어올라 몸 곳곳으로 피어오르며 그의 몸 곳곳에 붙어있는 감시장비들을 모조리 불사르고 망가뜨리게 되었음이니.

         

       ‘다 태웠군.’

         

       그렇게 진성은 자기 몸에 붙은 수많은 장치들을 태워버렸다.

       눈으로 보기 힘든 수준으로 소형화하는 데 성공한 도청 장치도.

       자신의 위치를 저 우주로 전송해주는 GPS 장치도.

       자신의 정보 이것저것을 기록해서 보낼 가루 크기의 장치도.

       그리고 모기인 척 자신의 짐 속에 숨어있다가 그의 피를 빨아들인 후 거점으로 날아갈 곤충형 드론도.

         

       그 모든 것들을 불살라버렸다.

         

         

         

        * * *

         

         

         

       진성이 몸에 룬 문자로 불을 붙인 그 직후.

         

       “감시장비 전부 파괴되었음을 확인.”

         

       “센서 고열 감지. 스캔 장비가 전부 전소(全燒)하였습니다.”

         

       미국의 어떠한 시설이 활발하게 돌아갔다.

       진성이 룬 문자로 붙인 불만큼이나 활발하게 말이다.

         

       곳곳에서는 진성의 몸에 붙인 장치들이 파괴되었음을 알리는 말이 터져 나왔다.

         

       “눈치가 빠르네요.”

         

       책임자는 이러한 소식을 듣고 웃었다.

         

       “그렇습니다. 눈치가 빠른 것 같군요. 그래도 하루 정도는 문제없을 것 같았는데….”

         

       “그래봤자 국정원 요원이 냄새를 맡고 찾아온 뒤 발견했겠지만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들은 진성이 장치를 눈치챘다는 사실에 약간 아쉬워했다.

         

       아주 약간 말이다.

         

       “하지만 이것도 소중한 정보니까요. 그렇죠?”

         

       그들이 느끼는 아쉬움이란 약간의 시간을 벌지 못했다는 것.

       그저 그뿐이었다.

         

       애초에 들키는 것을 전제로 붙여놓은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진성은 한국에서 중요도가 높은 인물.

       주술 불모지로 불리는 국가에서 나타난 나이 어린 토종 주술사이니 당연히 정부가 주목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당연하게도 출국 직전 그들에게 억류된 것을 알고 있을 것이고, 미국에서 진성에게 감시장비를 붙여놓지 않았을까 하는 추론 역시 할 수 있었겠지.

         

       당연히 그들은 진성의 짐과 옷을 조사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나서서 그것을 방해한다고 해도 하루 이상의 시간은 벌기 힘들었을 테고 말이다.

         

       그러니 장비가 모두 타버린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진성 혼자서 그것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제거했다는 것 자체가 소중한 정보이니, 이득을 얻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국에 감시자들 준비되어 있죠?”

         

       “예.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음을 알았으니 무언가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그 반응을 토대로 ‘크리스털 열쇠’와 관련이 있는지 확인하겠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은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준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는 어떻게든 사람의 반응을 끌어내기 마련이다.

       어떤 식으로든 말이다.

         

       미국은 그러한 반응을 분석하는데 도가 터 있었다.

       여러 번의 실험과 연구 끝에 첩보 기관에서 사용할만한 신뢰할만한 데이터들을 쌓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진성은 감시당하게 될 것이다.

       자신들이 찾는 물건과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때까지.

       계속 말이다.

         

       하지만….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은데. 스튜던트 K-B는 크리스털 열쇠와 관계없는 것 같단 말이죠.”

         

       “예. 저 역시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M point에서의 일은 별개인 것 같으니까요.”

         

       “그렇겠죠. 그 루카스가 키(Key)를 딱 한 번 같이 일한 동양인에게 줄 리가 없으니…. 그래도 정보는 수집하는 게 좋겠어요. 크리스털 열쇠와 연관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꽤 주목할만한 인물인 것 같기도 하니까요.”

         

       “알겠습니다.”

         

       “미국으로 귀화시킬 수 있다면 그것도 좋고요. 만약 귀화 가능성이 보인다면 CIA 쪽으로도 정보 공유하세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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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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