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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43

   요정여왕의 품에 안겨 지상에 내려 온 조이는 바닥에 주저앉아선 숨을 가다듬었다.

   

   

   스승님께 배운대로 순간이동의 마법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왜 구름 위로 이동된 거야!?

   

   

   다른 분들이 아니었다면 죽을 뻔 했어! 잠시동안 이루어졌던 낙하의 풍경을 떠올린 조이는 두 팔을 붙잡고 어깨를 떨었다.

   

   

   “처음치고는 잘했다. 조이.”

   “저게 잘한 거냐? 홀로 이동했다면 오늘 저 녀석의 장례를 치렀을텐데.”

   

   

   리나가 쏘아붙이듯 말하자 조이가 어깨를 움츠렸다. 그렇지만 에르기누스는 웃으며 고갤 내저었다.

   

   

   “어쨌거나 좌표는 정확했다. 거기에 누구 하나 빠트린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지. 첫 시도에 이 정도를 했으면 천재적이라 해도 무방해. 그대도 알잖나.”

   

   

   자기는 예전에 바다 한 가운데에 떨어진 적도 있다는 에르기누스의 변호에 리나가 조이를 슬쩍 봤다가 한숨을 내뱉었다.

   

   

   “미안하군. 날이 서 있어서 괜한 소리를 지껄였다.”

   “네? 아. 아뇨. 제가 잘못한 게 맞잖습니까.”

   

   

   리나는 조이의 사과에 어색하게 웃자 요정여왕이 신기하다는 듯 감탄사를 내뱉었다.

   

   

   “리나님께선 이렇게나 멀쩡한 분이셨나요?”

   “원래 멀쩡했습니다. 루시의 향취가 제 정신을 뒤흔들어서 문제가 생겼을 뿐.”

   “알른 영애 옆에서도 이런 모습으로 서 있으시면 될 텐데요.”

   “그럼 매도를 못 듣잖습니까. 전 루시가 절 징그러워 해주는 게 좋습니다.”

   

   

   입꼬리를 길게 늘어트리던 리나는 어느 순간 굳어버렸다가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머리를 쓸어올렸다.

   

   

   “여왕님. 요정을 통해 전언을 보내주시겠습니까.”

   “이미 보냈답니다. 여기로 오고 계세요.”

   

   

   요정여왕이 말을 끝마치고서 머잖아 그들의 앞에 거대한 나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인격을 지닌 채 뿌리를 움직여 돌아다니던 나무는 그들을 발견하고는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얼마 뒤 숲 안 쪽에서 중절모를 쓴 신사가 나타나 고갤 숙였다.

   

   

   “존귀하신 분들을 뵙습니다. 전설로만 전해지던 분들을 뵙게 되니 참…”

   

   

   노신사는 격식을 차려 인사를 하려 했지만 그 중간에서 리나가 말을 끊었다.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합시다. 지금은 더 중요한 문제가 있거든요.”

   “…무엇인지요. 리나님.”

   “루시에 대한 겁니다. 예전에 당신을 구해 준 아이를 기억하시겠죠.”

   “말씀하십시오. 무례한 아이지만 그래도 생명의 은인이니까요.”

   

   

   왕궁에서 있었던 일과 루시가 남긴 전언을 들은 노신사는 곰곰이 생각을 하다 고갤 저었다.

   

   

   “추측이 가는 부분이 없습니다. 일단 전 그 분에 행방에 대해 아는 바가 없고, 다른 고목들도 들은 게 없다는 군요.”

   

   

   노신사의 대답에 에르기누스가 끼어들었다.

   

   

   “다른 고목들과 대화할 수 있는 건가?”

   “오랜 세월을 살아온다는 건 그 자체로 대단한 일이니까요. 어느 정도의 지성과 힘이 생기죠. 제 권능을 빌리면 멀리서 대화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고요.”

   “그런데도 추측가는 바가 없다고.”

   “그 분만큼이나 눈에 띄는 사람도 없습니다. 헌데도 아무런 정보가 없죠. 그 분의 행방과 고목 사이엔 연관이 없다고 봐야 합니다.”

   

   

   단호한 대답에도 에르기누스를 비롯한 일행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집요하게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가며 단서를 알아내려 했다.

   

   

   허나 질문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고목과 루시가 관련이 없다는 결론이 명확해졌다.

   

   

   “그 녀석이 잘못된 정보를 전한 건가.”

   “연결이 이상했으니까요. 제가 잘못 알아들은 걸지도 몰라요.”

   “아직이다! 루시가 고목이란 말을 전한데엔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야! 그 녀석은 무의미한 행동을 하지 않아!”

   

   

   셋이 각자의 의견을 표명하는 동안 골몰히 생각을 거듭하던 조이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고갤 들었다.

   

   

   “교황!”

   

   

   커다란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꽂혔지만 조이는 그런 걸 신경쓰지 않고 자기 할 말을 내뱉었다.

   

   

   “루시가 저희에게 전할 정보는 두 가지에요! 자신의 위치, 그리고 교황의 목적! 루시의 위치와 관련이 없다면 교황의 목적과 관계있을 수밖에 없죠!”

   

   

   조이의 말을 듣고 눈을 끔뻑거리던 에르기누스는 노신사쪽으로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신화의 시대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은 고목이 있나?”

   

   

   에르기누스는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다.

   

   

   아무리 나무의 생명이 길다해도 수백년의 혼란을 견딜 고목이 어디 있겠나 생각했지.

   

   

   허나 노신사의 입에서 새어 나온 대답은 그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으며 그의 기대와는 부합하는 종류였다.

   

   

   “예. 있습니다.”

   

   

   나무가 지닌 생명은 에르기누스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더 짙었다.

   

   

   *

   

   

   이전에 무너진 성에서 라샤와 맞붙었을 때 난 그녀의 첫 공격을 어렵잖게 막아냈지만 두 번째 공격은 아니었다.

   

   

   그녀는 단 한 번의 격돌만으로 내가 어떤 식으로 자신의 공격을 튕겨낸 것인지 이해했고 그 다음에는 간단히 내 방어를 파훼했다.

   

   

   이후에도 라샤는 계속해서 자신의 공격을 비트는 걸로 나를 괴롭혔다.

   

   

   유저의 파훼법에 대응해서 전략을 바꾸는 보스라니, 이딴 똥겜이 어디 있어!?

   

   

   속으로 몇 번이나 욕지거리를 내뱉었지만 현실은 그 어떤 창작물보다 끔찍하고 잔악했다.

   

   

   게임을 포기하는 것도, 도주하는 것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도 불가능한 곳이잖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상황에 맞추어 최선을 다하는 것 뿐.

   

   

   모든 게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다음은 없다.

   

   

   이번에는 상대에게 살의가 없었기에 멀쩡할 수 있었지만 다음번에도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다음에 상대해야 할 적은 악신 아그라일 테니까.

   

   

   그는 진심을 담아 날 죽이려 할 테고, 자신의 권능으로 내 목소리를 지워버리겠지.

   

   

   그러니 난 이런 방식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모두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방패와 함께 허공으로 떠오른 나의 몸이 벽에 처박힌다.

   

   

   둔탁한 충격과 함께 바닥에 떨어진 나는 진동하는 손으로 바닥을 짚고 억지로 몸을 일으켜세웠다.

   

   

   도중에 시야가 흐려졌지만 내 몸은 무너지지 않는다.

   

   

   아직은 버틸 만 하다. 본래라면 공포가 잠식했어야 할 내 정신은 아직까지 멀쩡했다.

   

   

   용사라는 스킬을 얻은 영향인 걸까.

   

   

   “확실히 손 맛이 좋네. 1년만 더 있었으면 정말 재미있었을 텐데.”

   

   

   간신히 자세를 다잡고 있으려니 라샤가 손을 흔들며 가볍게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선 지침도, 괴로움도, 분노도, 그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있는 것이라고는 흥미로움과 안타까움의 감정 뿐.

   

   

   지금의 나는 라샤에게 있어 아무것도 아닌 적이란 거다.

   

   

   “아직도 할 거야? 그러다 죽으면 내가 곤란한데.”

   

   

   그게 짜증이 났다.

   

   

   라샤에게 대련을 청하기 전 내 고민에 대해 들었던 할아버지는 결국 내가 시간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노라 말했다.

   

   

   상대의 이성이 완전히 날아가 버릴 때까지 버틸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고.

   

   

   메스가키 스킬의 도발에 완전히 넘어오면 내 멋대로 가지고 놀 수 있지만 그 전에 박살이 나버리면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잠시 쉬는 것이 어떠냐. 신성마법으로 육신을 회복한다 한들 정신의 피로는 그대로다. 머잖아 무너질 게야.>

   ‘아직은 안 돼요.’

   <앞서 말했잖으냐. 완벽한 방어를 꿈꿀 필요는 없다. 버티면서 피해를 최소화하기만 하면 충분해.>

   ‘그쵸. 저도 할아버지의 말에 동의해요. 그치만 지금 이대로는 부족해요.’

   

   

   라샤가 대륙에서 손 꼽히는 강자인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 해도 이렇게 박살이 나선 안 된다.

   

   

   최소한 그녀를 상대로, 그녀가 이성이 날아갈 때까지 버틸 수 있어야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다.

   

   

   <조급함은 이해한다만 이렇게 들이박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개선점을 찾아내고 그 후에 여러 시험을 해봐야지!>

   ‘시야.’

   <시야?>

   ‘제일 거슬리는 게 시야에요.’

   

   

   1인칭의 시점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량이 너무 적다. 상대와의 격차가 심대한 상황이라면 이 문제가 더 크게 느껴져.

   

   

   두 눈을 지닌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는 문제란 건 알아.

   

   

   이게 당연하단 것도.

   

   

   그렇지만 3인칭에 익숙한 입장에선 아쉬움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어.

   

   

   <시야라.>

   ‘근력이나 체급, 기술 같은 건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허나 시야의 문제는 다르다. 1인칭이 3인칭으로 바뀌면 극적인 변화가 생길 거다.

   

   

   거기에 적응하는 데 시간은 걸리겠지만 정보량이 많아지면 상대를 파훼하는 것도 훨씬 수월할 터.

   

   

   <그거라면 간단한 해결책이 있잖으냐.>

   ‘간단…하다고요?’

   <요정들에게 도움을 청하면 되지.>

   

   

   요정들은 요정여왕을 기점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군집이다.

   

   

   그들은 자신의 시야를 공유하는 일에 전혀 거부감을 지니지 않는다. 요정들에게 있어 그건 당연한 일이니까.

   

   

   “…벌레들”

   – 루시. 괜찮아?

   – 나쁜 사람이야!

   – 숲이었으면 혼내줬을 텐데!

   “나한테 도움이 될 기회를 줄게.”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서 부탁을 해보자 그들이 흔쾌히 고갤 끄덕여줬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루시라면 분명 가능할 거라 말하면서.

   

   

   – 루시는 요정보다 더 요정다우니까.

   – 좀 어지러울 거야!

   – 난 처음에 기절했었어!

   

   

   요정들의 걱정어린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그러자 요정들인 내 머리에 자신들의 손을 가져다댔다.

   

   

   뇌가 흔들리다 못해 부서지는 듯한 고통에 입술을 깨물자 요정들이 황급히 물러서려 했다.

   

   

   “가만 있어. 벌레들. 이제 좀 기분 좋아지려는 데 왜 쫄고 난리야?”

   

   

   그런 요정들을 만류하자 다시금 그들의 손길이 내 머리에 닿았다.

   

   

   얼마가 지났을까. 검은 색으로 물들어있던 시야에 다른 그림들이 새겨진다.

   

   

   나의 것이 아닌 다른 이들이 보는 광경이 말이다.

   

   

   – 괜찮아?

   – 힘들면 말해.

   “너네들의 역겨운 시선을 알게 돼서 즐겁네. 나쁘지 않아.”

   

   

   객관적으로 봤을 때 기분이 좋은 풍경은 아니다.

   

   

   당장에라도 멀미로 속에 있는 걸 게워낼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그렇지만 이 풍경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이거야말로 내가 바라고 또 바라던 풍경이었거든.

   

   

   “이제 그만 할거지? 이쯤하면 화풀이도 어느 정도 됐으니까 슬슬…”

   “널 괴롭혀 줄 사람이 그렇게 간절했어?♡ 기분이 많이 좋았나봐?♡”

   

   

   히죽 웃으며 방패를 치켜들자 라샤의 눈동자가 굽었다.

   

   

   “또 한다고?”

   “솔직하게 말해봐. 내 메이스에 얻어맞고서 지리고 싶잖아?♡”

   “하하. 그러다 죽어도 책임 안 질 거야?”

   “개가 짓는 소리가 해석이 안 되네에에~♡”

   

   

   다시금 라샤가 나를 향해 달려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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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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