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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45

    <645 – 위기의 가능충(7)>

     

    싱은 칼을 벼려왔다.

    자신 대신 오크노디와의 제국행을 선택받은 즈앙.

    그녀를 넘어설 수 있다는 확신이 설 때까지.

     

    ‘981기 내에 즈앙을 넘어설 암살자는 없다. 한 기수의 톱클래스, 나아가 정점 수준의 암살자.’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즈앙은 입학시점부터 충분히 강력한 실력자였다.

    싱조차도 그녀의 ‘암습’에 당한 상태로 겨룬다면 대처하기 힘들 정도로.

    심지어 시간이 지난 지금은 암습을 걸지 않은 상태에서도 녹록지 않음을 느꼈다.

     

    눈앞에서도 시야의 사각지대로 숨어드는 <은신>.

    은신 뒤에 이어지는 <암습>.

     

    이는 선제공격을 걸어도 역으로 암습을 당하는 기가 막힌 사태로 이어지기에.

     

    시스템적으로도 즈앙의 암습은 위협적이다.

    암습의 데미지계수는 기본 300%.

    일반검격의 치명타데미지가 200%에 불과하다.

    급소베기 수준의 유효타를 입혀야 300%의 데미지계수가 나온다.

    심지어 즈앙은 제대로 된 암살교육을 받은 암살영재.

    휘젓기(+100%), 깊은상처(+100%), 결베기(+250%), 독살포 등등.

    데미지계수를 올리고 추가효과를 입히는 기능을 다수 숙지하고 체득했다.

     

    즈앙의 암습이 실제로 입히는 데미지는 1550%.

    부가효과는 손목마비, 사지둔화, 심장통증, 환각, 맹독 등의 13종류에 달한다.

     

    제대로 암습에 당하면 약점 간파나 관통 공격에 갑옷도 뚫리는 마당에 이에 대비하지 않고서는 즈앙을 능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내 검술이 즈앙만큼 위력적이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아닌 즈앙을 선택한 이유는… 강자와의 결전에서 <생존력>이 부족했기 때문이겠지.’

     

    싱은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복수를 마치지 못한다면 살아도 의미가 없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쌓아온 검술은 공격에 치중됐다.

    그래서 스스로를 지키지 못했다.

    강자에게도 통할 위력을 지녔으나, 그 또한 일정수준 이상의 격차가 있거나 진정한 고수들에게는 통할 힘이 아니었다.

    분하게도, 그 자신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도와주십시오.”

     

    알지 못하는 기술을 스스로 깨우칠 수는 없다.

    싱은 스스로 고개를 숙이고 가르침을 구했다.

    레어그릴스 교수.

    오크노디를 알며, 오크노디의 스승이라는 소문이 도는 북부대공 유다를 아카데미에 불러들인 자.

    친 오크노디 성향의 교수로 알려진 레어그릴스는 싱의 부탁에 몹시 당혹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오해다. 난 친 오크노디 성향도 아니고, 북부대공 유다 님께서도 오크노디의 스승이 아니시다.”

    “그런 걸로 알아두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이 자식, 전혀 믿는 기색이 아니잖아.”

     

    레어그릴스 교수는 갑자기 생긴 골칫거리에 머리가 지끈거리며 제 팔자에도 없던 두통을 느꼈다.

     

    “왜 하필 나냐? 오크노디와의 친분을 따지자면 사다코 교수나 브론즈 교수처럼 가르침을 줄 교수는 많이 있을 텐데. 전투기술이 배우고 싶다면 플라톤 교수나 마하바라타 교수도 있지 않나.”

    “플라톤 교수는 외공의 고수이며 단련에 꾸준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마하바라타 교수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는 제가 알지 못합니다. 레어그릴스 교수, 당신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명백히 알고 있습니다.”

     

    레어그릴스 교수는 조금 자존심이 상했다.

    이놈 이거, 내가 만만하다는 뜻인가?

     

    “내게서 뭘 배울 수 있다고 자신하지?”

    “생존력.”

     

    레어그릴스 교수의 <전장에서 지휘관으로 살아남기> 강의는 어렵기로 정평이 났으나, 동시에 강의의 유용성도 널리 알려졌다.

    981기 신진3강의 일원, 서부삼국에 명성을 떨친 성기사 제이다스가 오크노디에게 깨지며 입소문이 확 돈 덕분이었다.

     

    “아무리 복잡한 전장에서라도 어떤 강자를 상대하더라도 살아남는 것에 치중한 강의. 지휘관으로서의 책무도 소홀히 하지 않으며 살아서 목적을 이루는 것을 주로 하는 강의. 생존력은 지금의 제게 가장 필요한 덕목입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이유가 있나 보군. 생존을 도외시하는 검객이 삶에 집착하는 건 대개 좋은 이유에서 비롯되지는 않을 텐데.”

     

    싱은 자신의 고민을 솔직하게 토로했다.

    오크노디의 거침없는 노빠꾸 화법은 싱도 언제나 당황하게 했으나 돌이켜보면 자신의 의도를 솔직하게 전달하는 언행 덕분에 오크노디는 늘 목적을 이뤘다.

    레어그릴스 교수 역시 싱의 진의를 듣고는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한결 유해졌다.

     

    “방어검술을 배우면 네 검의 부족한 부분은 확실히 채워지겠지만 검술이 아닌 생존력을 올리기 위해 왔다는 뜻은, 단기결전보다 보다 넓은 시야에서 종합적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뜻이겠지.”

    “그렇습니다.”

    “의도하고 찾아온 것은 아니지만 너는 지금 최고의 스승을 찾아왔다. 안 그래도 내후년부터 시작하려고 준비 중인 강의가 있었지.”

     

    전술테이블 및 전술마나보드를 통해 실행하는 최대 100인 규모의 개별 전술브리핑 및 개인전술지도와 종합전술지도, 개인별 선택지 부여 및 상황지시를 시행하는 <전장에서 지휘관으로 살아남기> 강의.

    이 모든 행위를 주관하는 고도의 연산장치 <쟈비스>의 술식개선 및 연산처리량 증가로 인해 실행 가능하게 된 <전쟁 시뮬레이션>.

    시뮬레이션에는 <대군파트>와 <강적파트>가 별도로 존재하며, 강적과의 다양한 전투상황에 대한 체험도 가능하도록 입력됐다.

    강의자료로 쌓인 데이터는 전자인 대군파트의 정보만을 추가했으나 걱정은 없었다.

    후자인 강적파트를 채워줄 강자는 기프트 아카데미에 널리고 널렸으니까.

     

    ‘훈련실의 훈련장비부터가 애초에 쟈비스의 ai를 본따 만든 정보수집기였지.’

     

    수집한 전투정보를 강의에 사용한다는 사실을 고지하거나 학생들 본인의 동의를 얻은 적은 없었지만, 양질의 훈련 기능을 체험할 기회를 주었는데 쩨쩨하게 이런 사소한 일로 동의를 구할 필요는 없겠지.

    엉뚱한 부분에서 기프트 아카데미 교수의 덕목 뻔뻔함을 보인 레어그릴스 교수였으나, 하여간 싱이 의도치 않게 전략적인 생존뿐만 아니라 강자와의 사투에서의 생존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된 계기였다.

     

    “목표로 하는 적은 누구냐.”

    “남부신성도시국가연맹의 베수비오 화산4성에 출몰한 마인. 같은 국가연맹의 카넬레 시를 습격한 혁명군과 혁명가. 제국과의 접견지대에 숨어있던 키메라대군의 마더급 개체. 제국수도방위에 나선 제국십구강. 주류24신격의 교황들. 금기에 심취한 역사상 최단기 황제. 언더월드의 지하군단.”

    “…혹시 2차전직으로 용사라도 되고 싶은 게냐?”

     

    레어그릴스도 당혹스러울 정도로 쟁쟁한 라인업의 등장이었으나, 싱은 진심이었다.

     

    “이 전부를 극복할 수 없다면, 오크노디의 여정에는 두 번 다시 따라갈 수 없습니다. 반드시 넘어서야만 하는 시련입니다.”

    “유감이지만 네가 요구하는 정보는 하나같이 접근성이 미친 것들뿐이다. 강자와의 다양한 전투상황을 상정한 데이터베이스에도 없는 놈들이 대다수이지. 정보수집에 들어갈 비용도 비용이지만 일개 학생을 위해 그걸 감수할 이유도 없다.”

    “그렇, 습니까…”

    “그러니 일개 학생이 아닌 조교가 되어라.”

    “…!”

    “뭘 놀란 표정을 짓는 거냐. 시뮬레이션의 기동훈련과 완성에 도움을 줄 피험체가 제 발로 나타났는데 곱게 돌려보낼 교수가 어디 있냐. 죽도록 힘든 시간이 되겠지만 네가 원하는 전투상황의 최소 반절은 체험할 수 있게 해주마. 내 조교가 되겠느냐?”

     

    싱의 눈이 차갑게 번뜩였다.

     

    “바라던 바입니다.”

     

     

    * * *

     

     

    레어그릴스 교수는 한동안 막막한 심정에 사로잡혔다.

     

    “북부은퇴지휘관연합에서도 정보가 없는 전쟁이나 교전 투성이니, 이거 큰소리만 떵떵 쳐놓고 통상전투훈련밖에 시켜주질 못하는군.”

     

    당장은 싱도 기량을 끌어올리고 생존술과 전술적 시야를 터득하느라 개의치 않으나, 배움의 속도가 미친 듯이 빨랐다.

    이 기세면 한 달 뒤에는 맡겨놓은 강자와의 전투시뮬레이션을 내놓으라고 할 기세다.

     

    “이럴 때 도적길드라도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도적길드를 찾으신다고요?”

     

    레어그릴스 교수의 시선이 천장으로 향했다.

    천장의 대들보 하나에 다리를 걸고 거꾸로 매달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도적길드 길드원이 레어그릴스 교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는 뭐하는 놈인데 그런 곳에 매달려있냐?”

    “디스트로이어 님의 지시로 아카데미에 상주 중인 도적길드 길드원입니다.”

    “다 좋은데 좀 정상적인 곳으로 다니면 안 되냐?”

    “도적에게는 무리한 요구를 하십니다. 천장과 창문, 지붕은 도적들의 오랜 서식지입니다. 그보다 교수님께 커다란 고민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저희 길드에서 드릴 수 있는 도움이 있겠습니까?”

    “…이것도 기회라면 기회인가.”

     

    레어그릴스 교수는 밑져야 본전이라고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그러자 어디론가 통신을 주고받던 길드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적절한 대가만 제공하신다면 저희 측에서 정보를 제공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오. 누구와의 전투를 말이냐?”

    “마인 오르데 타코와 박스캣. 혁명군과 혁명가. 제국십구강과 주류24신격의 교황급 전력의 비공전단, 금기황제 파케 히우그마그입니다.”

    “아니 그 많은 정보를 어떻게 다 알고 있냐?”

    “오크노디의 정신 나간 행보가 걱정된다고 디스트로이어 교수님이 직접 따라가거나 길드원들을 붙여서 본의 아니게 파악하게 됐습니다.”

     

    전수받은 정보대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레어그릴스 교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연산 결과가 잘못됐나 싶어서 몇 번을 다시 돌려봐도 결과는 갈수록 살벌했다.

     

    “이 정도면 나도 죽겠는데…?”

     

    엥간한 평교수급도 죽어나갈 살벌한 여정을 몇 번이고 거듭 쌓아올린 오크노디의 행보.

    그 뒤를 쫓으려는 싱의 여정을 보며 레어그릴스 교수는 싱이 이룰 수 없는 목표에 도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일 년 내로 반짝 노력한다고 어찌 해결될 수준이 아니다.

    그렇게 쉽게 따라잡힐 강함이면 상대방들은 어찌 수십 년간 힘을 쌓아왔겠는가.

    본인의 노력뿐만이 아니다.

    대의에 동참한 하수인과 동료들.

    교단과 혁명가, 제국, 마왕군 등등 세계구급으로 알아주는 거대조직들의 지원.

    이 모두를 싱은 단신으로 따라잡아야 하는 것이다.

     

    ‘일생을 걸어서 하나라도 성공하면 제국의 신물 랭킹보드에 곧바로 이름을 올리겠군.’

     

    걱정도 잠시.

    레어그릴스 교수는 깨달았다.

     

    ‘근데 내가 하는 게 아니잖아?’

     

    하려는 사람은 싱.

    자신은 싱을 통해 연산 결과만 잔뜩 뽑는다.

    다른 학생들은 시켜도 교수님 미쳤냐고 후유증이 두려워서 발을 빼는 고위험도 전투실험.

    노예가 제 발로 찾아온 셈이다.

    심지어 싱은 별다른 배경도 없다.

    학생이 죽으면 눈이 뒤집힐 귀족가나 후원조직, 국가나 거대단체가 없다는 말이다.

    안전 규약도 복지혜택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로서는 이 정신나간 난이도의 미친 훈련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오늘부터 작정하고 굴려주마.”

    “바라던 바입니다.”

     

    고삐 풀린 교수와 제정신 아닌 학생의 만남.

    그 시너지 효과가 드러나기까지는 불과 3개월이면 충분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살벌한 파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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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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