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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46

    <646 – 위기의 가능충(8)>

     

    칭호에는 효과가 있다.

    보유만으로도 효과를 주는 보유효과.

    장착해야 비로소 효과를 주는 장착효과.

    플레이어는 장착과 해제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

    NPC는 달랐다.

    NPC에게 칭호란 일종의 정체성의 상징.

    해당 정체성과 관련된 행동을 해야 칭호가 변경된다.

     

    *고독한 동방검객* : 먼 동방제국에서 복수를 위해 힘을 쌓고자 건너온 검객. 이국의 검술은 검술에 대항하기 어렵게 만들고, 고독함은 성장속도를 상승시킵니다.

    [보유효과 – 검술최종판정수치 10% 상승, 성장속도 100% 상승]

    [장착효과 – 검술최종판정수치 100% 상승, 성장속도 1000% 상승]

     

    이 칭호는 싱이 동방제국에 돌아갈 때, 자동으로 장착이 해제된다.

    동방제국에서 검객을 칭할 때, 구태여 동방검객이라 칭할 이유가 없으니까.

    낯섦에 대한 표현은 동방제국 기준으로는 역으로 서역검객이라 칭함이 옳다.

     

    그리하여 싱의 칭호가 장착상태를 유지하려면 동방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이는 그가 아카데미를 빠르게 나서서 조급한 복수행에 나서면 복수가 실패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높은 성장속도의 효과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성장이 끝나지 못한 채로 복수행에 나섰다가 동방제국의 강자들에게 패배하기에.

     

    그러나 동방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칭호가 장착해제되는 또 하나의 조건이 있다.

    고독함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

    ‘고독한 동방검객’은 고독을 유지하기에 성립된다.

    고독의 사전적 의미는 접촉이 차단seclusion되거나 고립isolation된 상태.

    필연적으로 혼자인 상태를 이루어야만 한다.

     

    어떤 플레이어는 이에 대해 반문을 했다.

    기프트 아카데미에 수강생과 교직원이 몇 명이고 외부인이 드나드는 이벤트가 생기면 마주할 사람이 몇이나 되는데 항시 고독을 유지할 수 있겠냐고.

    수련장에 틀어박혀서 폐관수련만 하는 것이 아니고서야 어디 가당키나 한 소리냐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주장이었다.

    싱은 실제로도 성장을 목적으로 폐관수련을 자주 하는 인물이다.

    이는 물리적인 고독을 의미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정신적인 고독도 존재한다.

     

    자존감의 회복, 병든 마음을 회복하는 자기회복과 인간성 수복의 시간, 사색과 자기반성을 통한 자아성찰과 성장의 기회를 선사하는 정신적 측면에서의 고독.

    누군가에게 자신의 사고방식, 주관, 판단기준을 공유하거나 맡기지 않은 채로 오직 자신의 길을 걷는 삶은 정신적 고독이라 명명할 수 있다.

    싱은 그런 삶을 살고 있다.

    복수를 위해 타인의 사고, 가치, 관념에 관심을 주지 않고 자신의 길만을 걸어가니까.

     

    [싱의 특수버프 <고독> 상태가 해제되었습니다.]

     

    오크노디의 존재가 싱의 내면에서 지나치게 커지는 순간, 그는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자신만의 길에 오크노디의 길이 점차 걸쳐지기 시작하였다.

    거짓된 존재나마 그의 여동생의 형상을 지닌 유령을 사역하고, 그의 복수를 위해 힘을 기른다.

     

    복수를 도울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자신 또한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음에도 약속을 잊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알린다.

    그 숭고한 의지와 강철 같은 정신력은 철옹성처럼 굳건한 싱의 고독의 성채에도 구멍을 뚫었다.

     

    그 순간, 위대한 예술가나 종교적 수행자, 신체적 구도자들이 추구하는 고독의 자세가 깨졌다.

     

    싱은 고독을 상실했다.

    그리고 그의 성장속도는 느려졌다.

     

    [보유효과 – 검술최종판정수치 10% 상승, 성장속도 100% 상승]

    [장착효과 – 검술최종판정수치 100% 상승, 성장속도 1000% 상승]

     

    장착효과는 보유효과로 내려갔다.

    성장속도가 십분의 일이 되니, 한동안은 오크노디의 가르침을 응용하여 감소한 성장력이 무색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그러나 오크노디와의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고 그녀의 가르침을 더 이상 곱씹을 여지가 없어지니, 비로소 싱은 체감했다.

    한계가 찾아왔음을.

    이 속도로는 자신이 바라는 복수를 이루지 못함을.

    오크노디는 앞으로도 자신을 버리고 혼자만 나아가리라는 사실을.

     

    고독을 잃은 그에게 오크노디조차 없는 삶.

    이는 인생의 부정이나 다름없었다.

     

    고독한 동방검객의 정체성을 흔들고 부정한 오크노디가 멋대로 그를 버리고 떠나버리며 변화하던 그의 정체성을 또 다시 부정했다.

    그는 두 번이나 오크노디에 의해 인생을 부정당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충격? 당연히 컸다.

    배신감?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동안은 검을 쥐지도 못할 정도로.

    마음을 추스르려 애써 검을 움켜쥐고도 얼마간은 검끝이 떨릴 정도로.

    그러나 몸에 밴 습관이란, 영혼에 새긴 각오란 사람의 영육, 영혼과 육체가 가장 병들고 피폐할 때 다시금 일어서며 자기주장을 펼친다.

    이것이 나라고.

    죽어 사라지기 전에 자신의 주장을 알린다.

    생의 끝.

    시한부의 환자가 평소 이루지 못한 꿈을 적는 버킷리스트와 달리, 마지막만큼은 병실을 떠나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친숙한 환경 속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어 하는 소망과도 같다.

     

    ‘결국은 검이다. 검을 쥐지 않으면 지키지도 못하고, 되갚지도 못한다.’

     

    여동생 린Lin은 잃었다.

    오크노디는 아직 살아있다.

    그것이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이유였다.

     

    [베수비오 화산전 모의 시뮬레이션을 개시합니다.]

     

    레어그릴스 교수의 시뮬레이션.

    강력한 마인과의 첫 교전에서 싱은 오르데 타코를 골랐다.

    그는 <영역화>의 입문, 확장을 넘어 영역을 ‘변형’하기 시작하는 특화단계를 깨우친 강자였다.

     

    <흡력>

    <압착>

     

    마인의 암흑인자를 체내에 받아들여 몬스터의 기능을 인간의 몸으로 펼치고, 암흑마나의 힘으로 위력을 증가하며, 공격범위를 인간의 사지말단이 닿는 범위를 영역범위까지 넓혔다.

    처음 오르데 타코와 접전을 벌였을 땐 놀랍게도 10초도 버티지 못하고 순식간에 목이 날아갔다.

    확장된 범위 속에서 앞으로, 뒤로, 아래로, 제멋대로 발동하는 <흡력>에 몸의 균형이 무너지고, 검의 위력이 분산되며 종잇장처럼 흔들리다가 거대화한 촉수에 맞아 죽었으니까.

     

    ‘영역전개의 흐름과 그에 저항하는 부동의 제어력을 갖추어야 한다.’

     

    지식으로는 이해했다.

    그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그러나 다섯 번을 더 죽으면서 실감했다.

    앎이 곧 체득으로 이어질 수는 없음을.

    깨달음이 없는 앎이란 소귀에 경을 읽는 우이독경처럼 자신의 곁에 머무르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했다.

    그에게는 지나가는 바람을 붙잡을 깨달음이 필요했다.

    앎을 넘어선 이해를 갈망했다.

    그래서 하루는 검을 내리고 물어보았다.

     

    “오르데 타코. 너에게 있어서 <흡착>이란 무엇이냐.”

    “미물에게 알려줄 가르침은 없다.”

    “…”

     

    답을 듣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다.

    소통이란 인정이 있어야 가능하다.

    대등한 객체로서의 존중.

    종족이나 지위, 개체로서의 격차를 넘어선 존중.

    존중을 부를 한 수가 있어야만 했다.

     

    “내 <베기>를 먼저 보여주겠다. 그 위에 목숨을 얹지. 그 가치가 충분하다면 알려다오.”

     

    싱은 목숨을 걸고 뛰어들었고, 끝내 패배했다.

     

    “네 목숨에 답을 구할 가치는 없다.”

    “조금은 끈질겼으나, 답을 구할 가치는 없다.”

    “묘한 잔재주를 부렸으나, 답을 구할 가치는 없다.”

    “미래를 엿보는 예지안을 각성했나? 그럼에도 답을 보지 못했다면, 역시 네게 답을 구할 가치는 없다.”

     

    오르데 타코의 수법에 익숙해졌다.

    대응전략을 모색하고, 버티는 시간이 늘었다.

    심지어는 유효타가 들어가기도 했다.

    그래도 답은 늘 같았다.

    깊이가 없는 성취.

    경험에 의지하는 파훼.

    공허한 검으로는 닿을 수 없었다.

    싱은 다시금 욕심을 버렸다.

    경험으로 쌓은 이해를 버렸다.

    우직하고 어리석은 검에 골몰했다.

    늘어났던 생존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입혔던 타격은 점점 옅어지며 종래에는 스치지도 못하게 되었다.

    시뮬레이션에 도전할수록 그는 점점 약해졌다.

    그러나 오르데 타코의 답은 달라졌다.

     

    “검에 대한 진심만은 전해졌군. 그래도 부족하다.”

    “과할 정도로 정직하고 어리석은 검이군. 네게 조금의 시간이 더 없었음을 원망해라.”

    “내던지며 나아가나, 너의 무모한 길을 버티기에는 종족의 한계가 아깝구나. 받아라.”

     

    어느 순간, 오르데 타코는 자신의 팔에서 돋아난 촉수를 잘라 바닥에 던졌다.

    제멋대로 꿈틀거리는 촉수에서는 선명한 암흑마나의 기운이 느껴졌다.

     

    “마인세포다. 먹고 얻어라. 가르침을 이어받을 수 있는 강인한 생명력을. 네게는 ‘다음’으로 나아갈 자격이 있다.”

    “…마인이 될 수는 없다.”

    “네게는 생을 도외시하는 목적이 있지 않은가. 그 목적은 고작 종족의 한계 따위에 매몰되어 사라져도 좋을 하찮은 목적인가?”

     

    고뇌했다.

    갈등했다.

    이런 제안, 목전까지 다가온 깨달음.

    다시 도전하더라도 재현할 자신은 없었다.

    천에 한 번 찾아온 기회.

    지금을 놓치면 다음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는 우연히 찾아온 기연이다.

     

    “…”

     

    오랜 침묵의 끝에, 싱이 검을 뻗었다.

    흙바닥을 꿰뚫고 내리꽂힌 검 아래에서 팔딱팔딱 뛰던 촉수가 검은 피를 흘리며 움직임을 멎었다.

     

    “어리석은 선택을 내렸군. 복수를 위해 종족마저 벗어던질 각오조차도 없는 자에게 내 깨달음을 전수할 수는 없다.”

    “아니. 이것으로 충분하다.”

     

    오르데 타코의 제안과 유혹.

    이는 싱에게 새로운 성찰의 기회를 제공했다.

    무엇을 위한 복수인가.

    어디까지 희생할 것인가.

    포기한다면.

    더 많은 것을 내려놓는다면.

    그리하면, 복수를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린이 없는 세상에 <다음>은 없다고 여겼으나, 지금의 내게는 다음이 있음을 알고 있기에.’

     

    린의 다음은 오크노디다.

    자신의 복수가 끝이 아닌, 오크노디를 지키는 여정이 남아있다.

    그는 고독의 길을 걸어가며 강해져야 하나, 언제나 내뻗은 검을 되돌릴 수 있어야만 했다.

    멀리 뻗기만 하는 검으로는 가까이에 있는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없기에.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찌르기의 기능 경험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베기의 기능 경험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찌르기의 극의, 일섬.

    베기의 극의, 절단.

     

    [일섬의 기능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절단의 기능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그가 연마해왔던 필살의 일검을 연마하는 길을 내려놓았으나, 도리어 성취는 더욱 올랐다.

    올바른 성장의 길을 깨우치니, 검술의 이해도가 더욱 상승한 까닭이었다.

     

    [진 · 극의 단절을 습득합니다.]

     

    그의 길은 고독하다.

    수많은 유혹이 따르고, 많은 빠른 길이 보일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빠른 길은 가깝고 멂에 구애받지 아니한다.

    흔들리지 않는 길.

    그것이 진정으로 가장 빠른 길이었다.

    가장 고독한 자들만이 고독에서 스스로 깨달음을 얻고 나서야 내디딜 수 있는 걸음이기도 했다.

    뻗은 만큼 되돌린다.

    내밀은 만큼 거슬러 돌아간다.

    원점.

    절대값.

    복귀지점.

    중심을 가진 싱의 검은 아무리 휘어지고 흔들려도 자신의 위치를 되찾았다.

    누르고 튀어 올라도 시간이 지나면 제자리로 돌아오는 용수철처럼.

     

    ‘오르데 타코. 당신은 인간을 저버린 뒤에야 그 깨달음을 얻었군.’

     

    오르데 타코는 돌아갈 장소를 잃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등을 밀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인외의 길로.

    그의 뻗음에는 되돌림이 없었다.

    더욱 길게.

    더욱 멀리.

    그저 나아가며, 자신을 잃는 길이었다.

    검귀로서의 완성점이 그곳에 있을지는 모르나 싱의 새로운 목표인 자신의 복수와 오크노디의 조력, 두 가지를 모두 달성하기엔 부족한 길이었다.

     

    ‘고맙다. 너의 그릇된 길을 보여주어서. 그 길에 진심으로 나 또한 발을 내디딜 수 있었으나, 그래서는 아니 됨을 알게 해주어서.’

     

    철저한 자기 관조와 제어력을 갖춘 싱은 오르데 타코의 흔들기의 영향에서 벗어나 그를 베었다.

    이백십삼 번의 죽음의 끝에 깨우친 깨달음으로 그는 하나의 마인을 스스로 넘어섰다.

    전대용사 디스트로이어와 마인 오르데 타코의 싸움에 편승하여 막타만을 노린 오크노디와 달리, 가상훈련에서나마 정면승부로 이룬 결실이었다.

     

    “그 검, 무엇을 실었지?”

     

    마정핵을 베여 죽어가던 오르데 타코가 물었다.

     

    자신이 추구하는 진의眞意를 깨닫고.

    자신이 추구하는 극의極意에 도달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멸의滅意로 거듭나니.

     

    “원점.”

     

    [진극 · 멸의 원점을 습득합니다.]

     

    인간의 한계 끝까지 자신을 몰아붙이고도 언제나 자신을 되찾을 수 있는 검술의 마지노선.

    그저 인간성의 어둠에 가라앉기만 하는 검은 무겁고 악독하나, 그뿐이다.

    돌아갈 곳이 있는 검이기에 깊이 내려갈수록 거슬러 돌아가는 힘은 더욱 강하다.

     

    “훌륭하다.”

    “…!”

    “한때는 나 역시 그런 검을 원했었지.”

     

    차이는 하나뿐이었다.

    돌아갈 이유를 찾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절대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

    “잃지 마라. 너의 <원점>을.”

     

    오르데 타코의 신체가 흩어졌다.

     

    “…….”

     

    싱은 강해졌으나, 수행을 멈추지 않았다.

    그에게는 아직 깨우쳐야 할 고독과 가르침을 얻을 ‘교본’들이 남아있었으니까.

    다음 교본의 이름은 베수비오 화산전에서 발견된 두 번째 마인 박스캣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존버가 길수록 높이 날아오르는 존버떡상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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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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