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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46

        

       어찌 사람이 모든 것을 알 수 있으랴?

       사람은 오직 경험과 배움으로 그 지식을 축적해나갈 뿐이다.

       그것이 전지(全知)하다 하는 것은 지독한 오만일 터.

       인간과는 다르게 초월을 한 초월자들조차도 많이 알고 있을 뿐 모든 것을 알고 있지는 아니하니 무지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세상의 이치란 이리도 기기괴괴한 것이니. 관심을 가지지 아니한 것에서는 이렇게나 아이보다도 무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배움이란 끊이지 않아야 하는 것이지….’

         

       그렇기에 진성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아니하였다.

       대신에 떠오른 것은 무언가의 깨달음.

         

       ‘다만.’

         

       그가 철저하게 무지하다는 것에서 잡히는 무언가의 실마리.

         

       ‘아무리 내가 모든 것을 모른다고 한들 그 조각조차 잡지 못할 수가 있겠는가?’

         

       용병 시절의 진성은 분쟁을 나쁘게 보지 않았다.

       세계평화를 목적으로 하는 이들이 보면 기함을 할 것이요, 반전(反戰)을 원하는 이가 본다면 거품을 물것이요, 사람들끼리 싸우며 피를 흘리는 것을 싫어하는 이가 본다면 이를 갈고도 남을 일이기는 하였지만-

       적어도 그것이 진성의 목적은 아니었다.

         

       주술사 박진성의 목적은 주술.

       주술을 익히고 배우기 위함이 그의 목적이다.

       초월을 바라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던가?

       주술을 익히기 위하여, 가능하다면 세상의 모든 주술을 알기 위하여.

       그리하여 진성은 초월을 바라는 것이다.

       감히 주술의 끝에 닿았다는 말을 입에 담을 가능성을 좇기 위하여, 그는 그렇기에 세상을 헤매고 기나긴 방황을 하였다.

         

       그렇기에 분쟁이란 그가 투신한 ‘용병’이란 직업과 관련해서는 호재요, 세상이 분쟁에 휩싸이게 된다면 그 틈을 틈타 주술을 얻거나 훔칠 수 있으니 이 또한 호재요, 위기의 상황에 숨겨두었던 것을 꺼내 들 수 있으니 그 역시 호재다.

         

       그렇기에 진성은 용병으로 일하며 곳곳에서 일하는 분쟁에 관심을 보였다.

       자신이 비집고 들어갈 틈을 찾기 위하여.

       자신이 용병으로 투신한 이유를, 용병이라는 하잘것없는 위치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의문이 든다.

         

       완벽하게 모를 수 있는가?

       경지에 이른 정신과 영혼이 속삭이는 중요한 사실을 그때는 깨닫지 못할 정도로 미숙하고 무지하였는가? 무능하고도 참으로 무능하여 그 사실을 편린조차 잡지 못한 채 그저 흘려버렸을 것인가?

         

       진실로 그러한가?

         

       그리고 그러한 무능은 이어지고 이어져 그의 뇌리에 그 사건에서부터 그 여파까지 전부 사라질 때까지 그가 눈치채지 못하게 만든 것인가? 그렇게 더없이 무지하고 무능하며 둔감하여 그는 그것에 수상함을 전혀 느끼지 아니하였음이 맞는가? 그리고 그의 머리에서부터 그의 점괘, 그의 직감과 그 모든 것이 그 어떠한 위화감도 느끼지 못했음이 과연 맞는 것인가?

         

       아니라면 지금 그의 경지와 영혼의 속삭임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어떠한 중요한 것이 있기에 그에게 무지의 앎을 깨닫게 하였는가?

         

       맞았다면 그것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그것이 그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인가?

         

       “새까만 돌을 깨뜨려 날카로운 칼로 만들어 피로 물들이나니 붉은색과 검은색이 뒤섞여 마땅히 신께 공양하기에 알맞은 보석이 되었음이니 신이시여 저에게 길을 인도하고 저에게 속삭임을 주시옵소서. 태양의 빛이 그러하듯 그 속삭임이 깃털처럼 머리에 내려앉아 피를 타고 흐르며 저의 눈을 트게 하여주소서.”

         

       진성은 주언을 외우며 선반에서 흑요석을 꺼내 쥐었다.

       그는 자그마한 흑요석을 양쪽에서 잡은 뒤 과자를 부수는 것처럼 부숴버렸고, 그렇게 부서진 단면에서 가장 날카로운 부분을 검지에 가져다 댔다.

         

       사아악-

         

       그리곤 손가락 끝에서 손바닥까지 일직선으로 주욱 그었다.

         

       날카로운 흑요석은 너무나도 쉽게 진성의 손가락에 깊은 일직선의 상처를 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일직선의 상처는 진성이 손가락을 움직이자 쩍 하고 벌려지며 피를 줄줄 흘리기 시작하였는데, 힘 조절이 어찌나 섬세하였는지 피부 아래에 있는 근육들은 그 어떠한 상처도 입지 않았다.

         

       피부만 자르는 섬세한 손길.

         

       마치 인신 공양을 반복하며 신체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던 제사장을 보는 듯하지 않은가?

         

       진성은 피가 흘러내리는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리곤 피가 더 잘 흘러나오도록 열심히 움직이고는, 어느 정도 되었다 싶을 때 팔을 휘둘렀다.

         

       마치 물감을 벽에다가 뿌리기라도 하는 듯 세차게.

         

       촤아악.

         

       손가락 전체를 적시는 피는 그렇게 벽에 다다라 얼룩이 되었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이 그러하듯 새빨갛게 피어났고, 수많은 작은 것들이 발자국을 남기는 것처럼 하나의 선을 그렸다.

         

       촤아악.

         

       진성의 팔이 움직일 때마다 벽에 선이 만들어진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가로와 세로가 그어지고, 대각선이 그어진다.

       그렇게 점들이 퍼져나가고, 마침내 선의 구분이 없어지고 일그러진 어떠한 도형처럼 보이는 형태가 될 때까지 그것은 반복된다. 세차게 움직이지만 섬세하게 통제되는 궤적은 손가락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효율적으로 한곳에 집중시켰고, 점들이 가득한 하나의 도형을 만든다.

         

       그리고 그제야 진성은 팔을 휘두르는 것을 멈추고 서랍으로 향해 무언가를 꺼냈다.

         

       그가 꺼낸 것은 응급처치에 사용하는 물건들.

         

       그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필요한 것을 꺼내 지혈하기 시작했다.

       상처 부분을 알코올을 적신 솜으로 깨끗하게 닦아낸 후 연금술사가 크로믹(chromic)을 개량해서 만든 특수물질로 이루어진 흡수성 거즈를 잘게 찢는다. 소독약과 회복약을 적절한 비율로 섞은 뒤 거즈를 담가 흠뻑 적시고 그것을 길게 찢어진 상처에 빼곡하게 채운다. 마취조차 하지 않았기에 고통이 찾아오기는 하였지만, 진성은 개의치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러한 작업을 반복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거즈가 다 채워지자 그는 스테이플러(stapler)를 닮은 의료기구를 꺼냈다.

       그러고는 그는 상처의 끝부분에 하나씩, 상처의 중간에 하나. 총 세 개의 철심으로 상처를 대충 봉합하였고, 그다음에는 바늘과 실을 이용해서 묵묵히 자신의 상처를 꿰맸다.

         

       일반적인 바느질과는 다르게, 어떠한 문양을 떠올리게 하는 패턴으로 말이다.

         

       스으윽.

         

       진성은 자기 손가락이 카펫이라도 되는 것처럼 실을 계속해서 움직였다.

         

       그렇게 손가락에는 색색의 실로 무늬가 만들어졌다.

       그 형태나 색은…마치 카펫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

       카펫을 축소해서 만든 모형 일부를 찢어서 손가락에 길게 붙인 것 같은.

         

       그렇게 바느질이 끝나자, 도수가 90도에 달하는 어마어마하게 독한 보드카 하나를 꺼내서 그의 손가락에 부었다. 그리고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아무렇지도 않게 참으며, 자신이 피를 뿌린 벽으로 다가가서 천천히 원을 그린다.

         

       천천히.

       천천히….

         

       “—-”

         

       그리고 눈을 감으며 중동에서 배웠던 주언을 길게…너무나 길어서 언어로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정말로 길게 늘어뜨린다. 폐에 들어온 공기를 소리와 함께 내보내며, 폐를 쥐어짜 공기 하나 남지 않을 때까지 그렇게 소리와 함께 숨을 내뱉고…그리고 잠시 멈추었다가 다음 주언을 계속해서 읊는다.

         

       길게.

       아주 길게.

         

       “——”

         

       그렇게 주언과 손가락을 놀리는 것이 마침내 끝나게 되었을 때.

         

       벽에는 얼룩이었던 것이 사라지고 하나의 문양이 만들어졌다.

         

       진성이 지나간 자리의 피는 길게 정렬하고 저들끼리 이어지며 선을 그렸고, 그 선은 마치 원래 그러했던 것처럼 하나의 그림을 만들었다. 그리고 진성이 지나가지 않은 곳에 묻어있던 피는 감복하고 부러워하여 그들에게 합류하였으니 그 색이 짙어지고 선이 두꺼워지게 하여 문양을 더 명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였다.

       그리하여 벽에는 눈알 하나가 그려지게 되었다.

         

       동그란 눈알.

       눈알을 뽑은 뒤 그것을 그대로 옮겨 그린 듯한 그 문양이란.

       피로 그려져 새빨간 그 눈알!

         

       간단하지만 너무나도 생생하여 마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든다.

       울퉁불퉁 매끄럽지 않은 선들은 마치 눈알이 흔들리게 만드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은은하게 풍기는 혈향과 알코올의 냄새는 마치 전장의 한복판에 있기라도 한 듯하다. 벽지 하나 없는 시멘트벽에 그려져 투박한 눈알의 그림은 벽에 실제로 눈이 튀어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생기 가득한 느낌을 주고, 가운데에 콕 자리 잡은 눈동자는.

         

       눈동자는.

         

       또르륵.

         

       움직인다.

         

       그림에 불과한 눈알이.

       그저 벽에 피로 그려졌을 뿐인 눈알 그림이.

         

       움직인다.

         

       눈동자를 굴려서, 굴려서….

         

       “허허. 이거 참.”

         

       …진성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고는 눈이 마주치고 1초, 2초.

         

       파악-!

         

       뽑아낸 눈알을 발로 짓밟아 터뜨리기라도 하듯, 문양이 산산이 터진다.

         

       조금 전까지 깔끔하게 눈알 그림을 그리고 있던 피는 폭탄이 터지기라도 한 것처럼 사방으로 퍼져 얼룩이 되었고, 한때 이곳에 눈알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처럼 비어있는 공간만을 남겼다.

         

       “어떠한 주술을 썼기에 나를 속여 무지하고 또 무지하게 만들었던 것인고?”

         

       진성은 그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주 환한 미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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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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