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647

        

       그를 속여 넘기기 위해서는 그것이 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아니하여야만 했다. 만약에 직접적인 영향을 조금이라도 끼쳤다면 당연하게도 눈치를 챘을 테니까 말이다.

         

       굳이 지금이 아니라 그때의 박진성이라고 할지라도, 그는 분명히 눈치를 챘을 것이다.

         

       분명하다.

         

       생존본능과 결합이 된 주술은 위협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하였으며, 자기 몸이 전부인 용병의 특성을 이어받았기에 용맹하면서도 자기 보신에는 충실한 그러한 정신상태에 있었을 무렵이었으니까 말이다.

         

       경지가 낮다고 하여 어찌 살고 싶지 않을 수 있을 것이냐?

         

       미물이라고 하여 살고 싶어 하지 아니하는 존재는 없으며, 제 후손을 후대에 이어주고자 하지 않는 생물 또한 존재하지 아니한다. 이것은 자아나, 존재 의의 같은 것을 벗어나는 문제였다.

         

       살아가고, 이어진다.

       생명이란 그런 것이었으니까.

         

       그렇다면 필히 그것은 간접적인 역할의 주술일 수밖에 없다.

       그것도 진성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은밀한 형태의 주술 말이다.

         

       조작, 혹은 은폐.

       그것이 분명하다.

         

       ‘이상하지 않은 것이 무지이지만, 동시에 무지란 두려움이니.’

         

       기생충이나 원생생물을 무기처럼 다루었던 진성은 알고 있었다.

       공포에는 무지가 포함되어있다는 것을.

         

       가장 무서운 기생충은 무엇일까?

       근육에서 알이 부화해서 산채로 사람을 파먹는 벌레?

        귀로 들어가서 뇌를 갉아먹는 생명체?

       중추신경계를 침범해서 수막뇌염을 일으키는 기생충?

       그것도 아니면 위장의 벽에 달라붙어서 피를 쪽쪽 빨아먹으며 염증을 일으키고, 종국에는 배에 물이 차게 만들거나 온갖 합병증을 일으키는 기생충?

       감염이 되면 불같은 고통을 불러일으키며, 제거하기 위해서는 해당 신체 부위를 도려내거나…혹은 그 끄트머리를 잡아챈 뒤 끔찍한 고통 속에 신음하면서도 나무막대기에 돌돌 말아서 꺼내는 작업을 해야 하는 기생충?

         

       사람이란 연약한 동물이며,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벌레도 이토록 끔찍하고 잔인하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가장 잔인한 것은 무엇인가?

       사람을 정말로 공포에 질리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눈치채지도 못하는 것.’

         

       기니벌레(Guinea worm)라는 기생충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메디나충(Dracunculus medinensis)이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진 이 벌레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흔한 기생충이었다.

       아시아 지역은 물론이고 아메리카, 아프리카에서도 보였던 이 기생충은 오염된 물에서 번식하며 사람을 감염시키는 특성이 있다. 물벼룩을 매개로 이들은 인간과 개의 몸 안으로 들어가는데, 그것은 메디나충의 유생이 포함된 물벼룩이 들어가 있는 물을 마심으로써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된다.

       그렇게 들어간 메디나충은 숙주의 영양분을 빨아먹으며 성장한다.

       그리고 이동하게 되는데, 그 이동이 끔찍하기 그지없다.

       살을 뚫으면서 숙주의 발까지 이동하는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숙주에게 고통이 없을 수는 없다.

       아니, 오히려 이 메디나충은 이러한 고통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줄 알고 있었다.

         

       발까지 이동한 메디나충은 변태하여 성충으로 변화하고, 끔찍한 뜨거움을 안겨준다.

       불에 지져지는 듯한 이 고통은 신음을 흘리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수준이며,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숙주가 자연스럽게 뜨거움을 식히는 방법을 사용하게 한다.

         

       뜨거움을 식히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

       물로 식히는 방법을 말이다.

         

       그렇게 숙주는 물가로 가서 발을 담그게 된다.

       발에서 느껴지는 뜨거움을 식히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이 기생충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피부를 뚫고 나오며 물속으로 다시 돌아가고, 번식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번식하고, 유충을 퍼뜨리고, 물을 오염시킨다.

       그리고 그렇게 퍼진 유충은 물벼룩의 안에 들어가고, 다시 사람과 개를 감염시키기 시작하겠지.

       오염된 물이라는 매개를 이용해서 말이다.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기생충.

       ‘아스클레피오스의 뱀’이나 성경에서 말하는 ‘불의 뱀’의 모티프가 될 정도로 유명한 기생충.

       사람들은 이 끔찍한 기생충을 두려워하고 혐오하였다.

         

       하지만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 두려움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가?

       현대에서도 ‘불의 뱀’을 두려워하면서 물을 마시고, 발에 뜨거움이 느껴지면 혹여 피부를 뚫고 기생충이 기어 나오지 않을까 걱정해야만 하는가? 기생충이 거니는 발이 뒤틀리거나 기괴하게 변화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걱정하면서 살아가는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큰 공포를 주었던 기생충이며 한 획을 그은 것이나 다름없는 기생충이건만.

       역설적으로 이 메디나충은 그러한 공포 때문에 이제는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공포 때문에 그 때문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경계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멸종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이.

       필터의 보급과 예방 교육이라는 간단하기 짝이 없는 행위로 이들이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

         

       세상의 이치가 그와 같다.

       공포는 무지에서 오는 것이지만, 그 무지의 장막이 벗겨지게 된다면 사람은 그 공포를 반드시 극복한다. 그리고 그 공포를 원동력으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며, 그 근원을 어떻게든 해결한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살아오며 이어가게 만든 힘이다.

         

       그렇기에 가장 무서운 것은 무지의 장막 안에 숨어있는 것.

       알려지지 않았기에 대응하거나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아무리 인간이라고 할지라도 처음 마주한 병을 효과적으로 퇴치하기는 힘이 들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기생충의 존재를 깨닫는 것도 힘들다.

       그렇게 무지 속에서 그들을 위협하는 것이야말로.

         

       그것이 바로 진정한 위협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흐음.’

         

       진성은 자신을 속였던 이의 주술이 그러한 것이라 확신했다.

       메디나충의 일화가 그러하듯이, 아직도 새로운 것이 발견되는 기생충과 같이.

       예전부터 자연스럽게 존재하였지만, 지금에 와서야 간신히 인식이라도 가능하게 되었던 그러한 생물들의 생태처럼.

       이 알 수 없는 존재의 주술은 분명히 그러한 것이 틀림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존재하나 그것을 특별하게 인지하지 아니하게 하는 것.

       마치 공기와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공존하게 만드는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리를 그렇게 무지하면서도 무관심 속에 파묻히게 만드는 것.

       그러면서도 불시에 나타나 칼처럼 휘둘러 그들의 목숨을 수확할 수 있는 것처럼.

         

       “눈이 마주쳤음이니 나는 너의 존재를 인지하였다. 허허허. 본디 연구는 인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너 역시 내가 인지하였음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니….”

         

       진성은 벽에 묻은 얼룩을 손끝으로 훑으며 웃었다.

         

       “테러리스트가 미국과 관련이 되었으니 이 역시 미국과 관련이 되어 있을 것이니.”

         

       이제 인지하였다.

       그는 깨달았다.

       모른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

         

       그리고 인지와 인식은 뒤바꾸는 법.

       그는 경지에 이른 정신과 영혼이, 별이 그에게 속삭인 것의 뜻을 진실로 깨달았다.

         

       벽돌 하나만 빠져있는 담장과도 같이.

       돌덩이 하나만이 비어있는 성벽과도 같이.

         

       부족함을 알았다면 그것을 채우면 그만이요, 그 부족함을 채우기가 힘들다면 들어맞는 것을 찾아 헤매면 그만이요, 찾아 헤매기가 어렵다면 비어있는 것을 토대로 만들어가기라도 하면 그만이 아니더냐?

         

       그처럼 기준이 되는 것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니.

       그러한 실마리를 통하여 우리는 그것의 실체에 도달하게 된다.

       마치 끄트머리를 어렴풋이 느낀 사람들이 그것의 끝을 잡고 한 발짝 한 발짝 걸어가서 마침내 위대한 발견을 하고 발명을 하는 것처럼.

         

       “이거 참 기대가 되는구나.”

         

       진성은 자신과 눈이 마주쳤던 이에게 흥미를 느꼈다.

         

       어떠한 정보를 숨기고 있었던 것인지.

       그가 모르는 어떠한 주술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주술로 무엇을 하고 있었을지.

         

       아.

       실마리를 잡고 또 잡아 그 실체를 만질 수 있게 된다면.

       그 끝엔 무엇이 있을까?

         

       진성은 옛적 유적을 탐사하였을 때의 즐거움과 같은 것을 느꼈다.

         

       그렇기에 그는 감사했다.

         

       과거에는 알지 못했던, 하지만 이제 새로 알게 된 것을 찾을 기회가 왔음을.

       이렇게 뒤틀린 시간 덕분에 그것을 마주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 * *

         

         

       “크으으윽.”

         

       새빨갛게 충혈된 눈.

       불에 타는 듯한 뜨거움이 휘몰아치는 눈꺼풀.

       그 고통에 양손으로 얼굴을 덮고 눈꺼풀을 꾹꾹 눌러도 그 고통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감은 눈꺼풀 사이에서는 뜨거운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진다.

         

       그 액체는 눈물인가 핏물인가?

         

       분명 뜨거운 액체이니 눈물이니 분명하건만.

       눈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그것은 핏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피눈물.

       거울을 볼 수 없어 알 수가 없으나…그는 피눈물을 흘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고통이 말하고 있다.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말이다….

         

       “이래서 다른 주술사와는 얽히고 싶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눈에서 느껴지는 고통보다도 더더욱 괴로운 것은, 다른 주술사와 얽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주술사….

       괴팍하고 기괴하게 뒤틀린 정신을 가지고 있는 족속들.

       얽혀서 좋은 것이 없는 바로 그 종자들.

         

       변수라는 것을 잔뜩 가지고 다니는 것을 넘어, 아예 존재 그 자체가 변수 그 자체나 다름이 없는 존재들.

       통제는 불가능하며, 유도하는 것조차 힘든 주술사라는 존재와…얽히고 말았다.

         

       그것도 너무나 어처구니없이.

       인과를 토대로 눈을 마주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는, 듣도 보도 못한 주술에 당해서 말이다.

         

       “이거 참….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남자는 그 사실에 씁쓸하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변수가 자신을 인지했다는 것은 그에게는 분명한 악재였으니 말이다.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