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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48

        

         

       미국에 무언가가 있다.

       미국에 새로운 주술이 있다.

         

       그 사실은 진성에게 기꺼운 일이었다.

         

       하지만 다만 시기가 좋지는 않았다.

         

       시기와 장소가 맞지 않으면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는 일이 없는 법.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자주 말하지 않던가?

         

       『 너는 잘못된 시간 잘못된 장소에 있었다. 』

         

       라고 말이다.

         

       그러하니 진성은 미국으로 가는 것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지금 가봤자 미국 정부의 끈질긴 감시가 따라붙을 것은 분명했으니까 말이다.

       가뜩이나 주술사라는 것, 그리고 정부에서 감시하는 ‘루카스’라는 인물과 얽혀있기에 신경을 쓰고 있는 존재일 텐데…. 출국했는데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바로 다시 미국에 들어간다?

       그것도 처음 미국에 들어간 핑계가 비즈니스 같은 것도 아닌, 여행인데?

         

       아마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겠지.

         

       거기다가 의문의 주술사 역시 문제다.

         

       진성은 의문의 주술사를 인지했지만, 그 의문의 주술사도 진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눈이 마주쳤다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의미이다.

         

       진성이 피로 그린 눈알이 터지는 모양새로 보아서 피해를 감수하고 연결을 끊은 듯한데…. 그렇다면 진성에 대해서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겠지. 아마 진성이 미국으로 발을 들이기만 해도 온갖 방법으로 그를 견제할 것이다.

         

       ‘인맥을 이용하거나 돈을 쓰겠지.’

         

       진성이 미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수를 쓰거나.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사고를 당해서 제대로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거나.

         

       혹은.

         

       ‘노숙자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총격전을 벌이게 하거나, 범죄자들을 고용해서 짐에 마약이나 폭발물을 넣어서 누명을 씌우거나, 이동 경로 곳곳에 함정을 만들어놓거나, 주술을 깔거나, 주술로 감염시킨 이들을 접근시킨 뒤 공격을 가하거나….’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사회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말이다.

         

       적절한 양념과 조미료만 있다면 옭아매는 것을 넘어 아예 미국 밖으로 추방을 할 수도 있겠지.

         

       그리고 진성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을 상대방이 생각 못 할 리도 없다.

         

       다른 이가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커다란 오만함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진성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특히나 자신이 모르는 주술을 익히고 있을 주술사에 대해서는 말이다.

         

       ‘홈그라운드에 아무 생각 없이 발을 디디는 것만큼 멍청한 일은 없지. 암, 그렇고말고….’

         

       그러니 미국과 관련해서는 차근차근 준비하는 것이 옳았다.

         

       언젠가 분명히 때가 올 테니까.

       미국의 미치광이들이 슬슬 모습을 보이기 시작할 테니까.

       그들이 사회에 혼란을 일으키고, 정부가 그들을 상대하기 버거워할 순간이 분명히 올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미국에 들어갈 수 있겠지.

       어떤 방식으로든 말이다….

         

       그러하니 기다린다.

         

       기다린다.

       인내한다.

         

       길지는 않으리라.

         

         

         

        * * *

         

         

         

         

       미국의 일은 뒤로 미뤄야 하는 것.

       하지만 반대로 최대한 빠르게 확인해봐야 할 일도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이아린과 관련된 일이었다.

         

       진성은 저번에 말했던 것처럼 바로 이아린을 찾아갔다.

         

       “여~ 어서 와 오라비. 집은 오랜만이지?”

         

       그녀는 집으로 찾아온 박진성을 반갑게 맞이하며 방으로 데려갔는데….

         

       “흐음. 평소보다 더 어질러진 것 같은데. 기분 탓이더냐?”

         

       “아~ 그거? 내 혈연 뭐시기가 어디 갔거든. 그래서 자유롭게 쓰고 있지.”

         

       놀랍게도 그 방은 쓰레기장이나 돼지우리 비스름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저택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열심히 치워서 쓰레기나 과자 부스러기 같은 것이 있지는 않았지만, ‘무학개론’이나 ‘대마법전술-2’라는 제목의 교과서들이 대충 엎어진 채로 바닥을 뒹굴고 있었으며, 뜯지 않은 과자들이 방 곳곳에 대충 숨겨져 있었다.

       마치 땅에 고개만 처박고 ‘나는 완벽하게 숨었습니다.’라고 주장하는 멍청한 동물을 따라 하기라도 하는 듯, 대충 일부만 가려지고 몸 대부분은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 채 그렇게 자신의 존재감을 주장하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간식으로 먹으려고 사 온 온갖 디저트들은 상온에 방치된 채 쌓여 있지를 않나, 가방은 집어 던지기라도 한 것처럼 저 구석에 널브러져 있고, 침대는 구깃구깃 구겨져서 공처럼 변해 있었으며, 한때는 껴안고 자는 용도의 인형이었을 무언가는 요가라도 하는 것처럼 뒤틀려서 꼬여 있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혼돈.

       혼돈이 방에 강림한 것 같은 모양새였다.

         

       “평소에 뭐 그리 잔소리가 심한지. 사람은 이렇게 좀 자유롭게 살 필요가 있단 말이지. 그렇지?”

         

       하지만 이아린은 자기 방의 풍경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당당하게 가슴을 폈으며, 자부심마저 품고 있었다.

         

       “이세린 걔는 말이야 어? 무슨 햄스터나 다람쥐도 아니고. 걔가 방 꾸며놓은 거 보면 가끔 공포게임 같은 거 떠오른다니까? 분명 공포게임 배경이 일반 가정집인데 집은 무슨 퍼즐투성이야. 2층의 방을 갔더니 자물쇠가 걸려있어서 비밀번호를 입력하라고 하고, 뭐만 하면 열쇠를 쓰라고 하고. 심지어 어? 무슨 이상한 조각 같은 걸 맞추거나 그림을 올바르게 배치해서 문을 열어야 해. 이딴 집이 어딨어?”

         

       심지어 열정적으로 이세린에 대해서 성토하기까지 했다.

         

       “걔 방을 보면 딱 그 공포게임의 집이 따로 없어. 뭐 하려고 하면 열쇠가 필요합니다, 뭐 하려고 하면 퍼즐을 맞추세요. 뭐를 찾고 싶으세요? 꼭꼭 숨겨져 있으니 알아서 해보세요…. 아우. 권능이랑 온갖 이상한 장치들로 숨기고 숨기고 숨기고…. 걔 방은 진짜 가끔은 신기한데, 가끔은 꼴도 보기 싫어. 방 탈출 카페를 자기 방으로 쓰고 있는 것 같다니까 걔는? 예전에도 좀 그랬는데 요새 더 심해진 것 같단 말이지.”

         

       투덜투덜.

       이아린은 자신의 혈연메이트의 변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러고는 자신은 그녀와 다르다는 듯 장난스럽게 웃었다.

         

       “하지만 봐. 내 방을. 뭐 숨기는 것도 없잖아? 사람이든 물건이든 이렇게 직관적인 것이 좋은 거 아니겠어? 딱 보면 알 수 있는, 보기만 해도 믿음이 가는 모습. 나는 아무것도 숨기는 것이 없다는 것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거지. 응? 오래비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믿음이 샘솟지 않아?”

         

       “흐음. 믿음이라…. 하지만 옷을 저렇게 벗어 던지는 것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데 말이다.”

         

       “응? 옷?”

         

       이아린은 진성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진성이 바라보고 있는 곳에 자신이 뱀이 허물을 벗은 것처럼 벗어놓은 옷가지를 확인했고….

         

       “…아.”

         

       명백히 당황한 얼굴로 손을 움직였다.

         

       진성을 향해서 말이다.

         

       휘익.

         

       그녀는 학교에서 배운 유능제강(柔能制剛)의 묘리를 듬뿍 담은 움직임으로 진성의 몸의 방향을 틀었고, 그렇게 진성의 시선을 돌리자마자 자신이 대충 벗어놓은 운동복과 교복을 침대 밑에다가 쑤셔 박았다.

       그러고는 신묘한 움직임으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뒤 진성의 몸을 다시 틀어서 원상복구 시킨 뒤,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 아까와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허허. 아무리 일하시는 분들이 가져간다고 해도 저렇게 보이는 곳에 놔두면 아니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일하시는 분들에게 일거리를 더 늘려주는 것은….”

         

       “아 좀!”

         

       하지만 있었던 일이 없던 일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진성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아린에게 잔소리하기 시작했다.

       벗은 옷은 저렇게 대충 벗어 던져 놓지 말고 빨래를 모아놓는 곳에다가 잘 넣어놓으라는 말에서부터, 사용인을 고생시키지 말라는 말까지 말이다.

         

       이아린은 이러한 진성의 잔소리에 질색하면서 소리를 빼액 질렀다.

         

       “아 옛날에도 그랬는데 요새는 무슨 할아버지 같아! 이 오래비 진짜 컨셉 이상하게 잡고 다닌다니까!”

         

       그녀는 박진성에게서도 이양훈 못지않은 꼰대의 느낌이 느껴진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는 듯 침대를 향해 뛰었다.

         

       포옥-

         

       그녀가 몸을 던지자 비싼 침대는 폭신하게 그녀의 몸을 받아주었다.

         

       “아~”

         

       이아린은 침대에 눕자마자 마치 침대와 한 몸이 된 것처럼 뒹굴뒹굴했다.

       그 모습은 마치 검과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른 무인의 것과 비슷한 모습이라.

         

       나무늘보가 침대와 한 몸이 된다면 저러한 경지가 아닐까 싶은 정도였다.

         

       물아일체.

       그야말로 ‘편안한 휴식’이라는 점에서는 독보적인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닐까 싶은 모습이었다.

         

       진성은 그러한 모습에 피식 웃고는, 벽면에 있는 캠핑용 의자를 꺼내서 앉았다.

         

       그러고는 침대에 엎드린 이아린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 요새 무엇이 그리 힘들길래 그렇게 지쳐있느냐?”

         

       무엇 때문에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냐는 질문을 말이다.

         

       “역시 오라비는 바로 알아본다니까.”

         

       그리고 그러한 질문에 이아린은 피식 웃었다.

       그녀는 엎드린 자세에서 손만 움직여서 머리 끈을 풀었고, 몸을 다시 똑바로 해서 천장을 바라보는 자세로 만들었다. 그랬다가 조금 불편했는지 침대 구석에 굴러다니고 있는 공처럼 말려있는 이불을 끌어와 베개처럼 베고는 다시 천장을 바라보았다.

         

       “아~ 뭐 요새 신경 쓰이는 일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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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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