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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49

    <649 – 위기의 가능충(11)>

     

    와이히엠하이 재단 이사장에게는 직속삼장이라 불리는 세 명의 강자가 있다.

    비서실장.

    집사장.

    메이드장.

    이중 비서실장은 이사장의 곁에 머무르며 그의 일을 책임지고 지휘하는 총군사의 역할을 도맡았다.

    메이드장은 재단본부에 상주하며 이사장을 노리는 외부강자들의 습격으로부터 본부와 이사장을 지키는 역할을 수행했다.

    집사장은 자연스럽게 외부로 투사하는 무력의 대표가 되었다.

     

    “대륙의 기온이 지나치게 빠르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교장’의 새로운 장난이 시작된 모양입니다. 이번 목적지는 불의 정령계가 될 겁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집사장은 언제나 그렇듯, 어려움을 입에 담지 않았다.

    주어진 지령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완수한다.

    그는 언제나 이사장을 실망시키지 않으려 노력했고, 실제로도 많은 성과를 거둔 인물이었다.

     

    “끄아아아악!”

    “살려줘어어!”

     

    정령계는 지옥도였다.

    인간이 주인이 아닌 어느 차원계든 모두 똑같겠지만, 인간이 ‘자원’으로 삼아 착취했던 종족들도 그들의 차원계에서는 인간을 자원으로 삼았다.

    불의 축복을 받아 불타는 고통을 느껴도 죽지 못하는 몸이 된 인간들이 화형대에 매달려 비명을 지르는 모습에 집사들이 얼굴을 굳혔다.

     

    “집사장님. 저들을 풀어준다면 전력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내버려 두어라. 비명이 그치는 순간, 정령들이 알아차릴 것이다. 고통에 복종한 이들이 우리의 정보를 파는 순간, 잠입임무는 배로 귀찮아진다.”

     

    집사장은 집사들의 마땅찮은 시선을 받으면서도 개의치 않았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어둠에 발을 들이면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표어다.

    혁명군의 대의는 악독한 황제로부터 대륙의 가엾은 민초들을 구하는 것이나, 집사장의 대의는 달랐다.

    인류를 위해, 인류에 반하는 모든 위험에 맞선다.

    만 명을 해할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면, 백 명의 죽음을 외면할 수 있어야 했다.

     

    ‘고통의 화형대. 악취미적인 마나수집기구. 멸해 마땅할 녀석들이군.’

     

    화염 정령들은 인간들이나 다른 중간계 생명체들의 비명과 절규로부터 에너지를 얻고, 그들의 분노와 고통, 절망을 각자의 정령핵을 키울 동력으로 삼았다.

    그렇기에 하등한 불의 정령들은 성급하고 격분하고 널리 보는 시야가 없었다.

    하급 정령들의 화형지대를 넘어선 집사단은 짐승이나 인간의 형체를 갖추기 시작하는 정령들을 발견하고 숨을 멈추었다.

     

    “지겨워. 백날 비명을 키워봤자 저런 괴물이 될 뿐인데, 쟤들은 그렇게 짐승형으로 진화하고 싶나?”

    “그러게. 이왕 진화를 하려면 아름다운 외모가 좋을 텐데. 고통이 꼭 영원한 고문에서 비롯되는 줄 아는 하급정령들은 저래서 안 된다니깐.”

     

    불의 중급정령들은 거대하거나 근육질의 형체를 한 짐승형의 형태, 혹은 아름답고 유려한 미형의 신체를 지녔다.

    전자는 앞서 화형의 고문으로 에너지를 습득하던 하급정령들이 오랜 세월이 지나 힘의 총량이 그릇을 가득 채워 새로이 형태를 확장하게 된 결과물이다.

    후자는 긴 고문과 비명에 질려 새로운 형태로 힘을 수탈하는 방법에 귀를 기울인 결과물이다.

     

    “얘, 포시. 아직도 ‘아름다움’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바칠 수 있어?”

    “아니요… 잘, 못, 했어요… 끄윽, 큭…! 제발 용서해주세요…!”

    “안~돼. 너도 좋아하는 남자를 홀리던 불여시들의 얼굴을 불살라달라고 부탁했잖니. 그 대가로 사후에 네 영혼이 불타도 좋다고 한 건 너였잖아?”

     

    악마나 별반 다를 바 없는 불의 정령과의 계약.

    순간의 치기어린 욕망을 실현한 결과, 여인 포시는 영혼종속의 저주에 당한 채로 불의 정령의 불의 고리에 목이 조인 채, 불에 타 추하게 문드러진 얼굴로 항상 정령을 따라다녀야만 했다.

    정령의 얼굴은 아이러니하게도 포시의 얼굴.

    영혼의 형태에서 얼굴만을 앗아간 결과였다.

    정령들은 적게는 하나의 불의 고리와 연결된 목줄을 쥐었으나, 많게는 대여섯 개의 목줄을 쥐고 있었다.

    여성과 남성, 인간과 아인종, 아이와 성인.

    성별, 종족, 연령.

    모든 요소를 막론하게 불의 정령들이 탐을 내는 ‘아름다움’을 지닌 존재들이 정령계약에 필요한 마나를 대납하는 담보로 영혼을 바쳐 치르는 업보.

    그들의 신체, 혹은 재능을 박탈당한 결과물이 정령을 윤택하게 만들고, 자신의 것을 빼앗긴 존재들의 영원한 시샘과 절망이 그들에게 에너지를 공급했다.

     

    -지옥이 따로 없군요.

    -녀석들을 소각하고 싶습니다.

    -불허한다. 우리의 목표는 더욱 깊은 곳에 있다.

     

    마인드링크.

    육성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고 마나의 끈을 이어 심어를 주고받는 마법으로 집사장이 휘하 집사단의 모든 집사를 통솔하였다.

    끊임없는 탐욕과 잔혹한 착취로 점철된 정령계.

    하급정령들의 화형지대가 그렇듯이 중급정령들의 망령지대 또한 더 강한 존재들을 불러들이는 함정에 지나지 않았다.

     

    “아~ 따분해라. 어디 전쟁 좀 하고 싶어하는 인간은 더 없나?”

    “아서. 우리가 중급정령도 아니고 영혼을 담보로 해도 본전 뽑을 정도로 강하고 탐나는 영웅들이 그리 쉽사리 영혼을 담보로 한 신용대출계약을 받을 리가 없잖아?”

    “포로들을 모아다가 불태우면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만기일이 다가온 인간들도 묻지 마 방화를 저지르다가 할당량을 다 못 채우고 죽는데 대군을 포로로 잡아서 불태울 자신이 있을까? 흥. 어림도 없어.”

    “왜, 요즘은 전쟁도 많이 일어나잖아.”

    “그만큼 강한 인간들도 많아. 계약을 해도 마나로 계약하느라 힘은 늘어나도 우리가 만족할만한 영혼을 먹어치울 기회는 없을걸?”

     

    불의 건축물.

    거대한 불타는 시설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외모, 혹은 가장 뛰어난 재능을 지닌 존재들이 따분함을 참지 못하고 뒹굴거렸다.

    수많은 ‘목줄’을 수집하여 그들을 시설 내 농장에 가두고, 완성된 형태로 보다 우수한 계약자와 계약하며 미모나 재능으로 계약자를 꼬드기는 상급 정령들.

    이들은 강자들과 주로 계약하기에 중급정령 시절처럼 새로운 ‘목줄’을 수집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신, 그들에게 충분한 마나를 공급할 수 있는 계약자를 얻어서 중간계에 내려가 유희생활을 만끽하거나 계약자를 직접 유혹하고는 했다.

     

    “모멘토는 조금만 더 유혹하면 넘어올 것도 같던데?”

    “히야, 부럽다. 나도 여성체로 변신할걸. 남자들은 너무 쉽게 속아!”

    “큭큭. 남성체도 미형이기만 하면 속아나는 건 여성들도 마찬가지잖아.”

    “그건 그래.”

    “이번에 한 번 자주는 대가로 점령지나 불태워달라고 해야겠어. 별미도 좋지만 허기질 땐 양으로 때우는 것도 좋잖아.”

    “부럽네. 내 계약자는 시시한 정령핵 연구나 하는데, 밑의 제자한테나 재능을 주고 스승을 불태우라고 시켜볼까, 생각 중이야.”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상급정령들의 이야기에도 집사장은 인내했다.

    그러나 몇몇 집사들은 감정의 동요를 참지 못했고, 존재를 정령들에게 발각당했다.

     

    “헤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네?”

    “계약 없이 불의 정령계에 제 발로 들어오다니. 걸어 다니는 티본스테이크가 따로 없잖아?”

    “후후후후후.”

    “하하하하하!”

    “이 미친 정령 녀석들. 더는 용서하지 않겠다!!”

     

    존재가 발각되었음을 알아차린 집사들은 마인드링크를 끊고 뛰쳐나갔다.

    다른 집사들이 동요했으나 집사장은 냉혹하게 걸음을 돌렸다.

     

    -무시해라. 끊임없이 몰려드는 정령들과 패배가 확정된 전투를 벌일 작정이 아니라면.

     

    많은 정령이 집사들의 손에 펑펑 터져나갔으나, 그 끝이 집사들의 죽음으로 귀결될 가능성은 계측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컸다.

    집사장은 계속해서 불의 영지의 중심부에 자리한 영지성으로 향했고, 정령계의 한 지역을 지배하는 불의 최상급 정령, 불의 영주를 노렸다.

    집사들의 손실은 아쉽지만, 그들의 희생 덕분에 영주성에서 상급정령들이 빠져나가 감시체계에 구멍이 뚫렸다.

     

    -잊지 마라. 우리의 목표는 불의 정령계의 힘을 감소시키는 것. 영주를 물리치는 순간, 영지 전역의 정령들이 혼란에 빠진 틈에 문을 열고 도주한다.

     

    인류의 모든 위협을 수집, 격리, 제거한다.

    재단의 모토를 따라 집사장이 마침내 오래도록 참아온 분노로 벼려낸 암살검을 뽑았다.

     

    -시작한다. 이 내성에서 단 하나의 정령도 빠져나가게 두지 마라.

     

    집사들의 분노어린 암살검이 정령들의 신체를 유린하고 마정핵을 파괴했다.

     

     

    * * *

     

     

    “허억…!”

    “저런, 악몽이라도 꾸셨나 보군요. 물이라도 한 잔 하시겠습니까?”

     

    악몽에서 깨어난 집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물이 든 잔을 건네는 해골을 노려보았다.

     

    “변신술사. 독을 물로 변형시켰다고 몰라볼 정도로 내가 우스워 보였나?”

    “하하. 걸렸나요? 아쉽군요.”

    “넌 모른다. 집사단이 불의 정령계에서 어떤 지옥을 보았는지, 우리가 무엇과 싸워가며 이 중간계를 지키고 있는지…”

    “감동적인 헌신에 감사드립니다만, 이왕이면 제가 납치되지 않은 상태로 들었으면 더 좋았겠군요.”

    “…우리는 전력이 부족하다. 차원계의 침공에는 언제나 막대한 손실이 발생하고, 인류를 위해, 재단을 위해, 이사장을 위해 헌신할 집사의 수는 부족하니.”

     

    집사는 해골감독관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러니 너는 ‘미끼’가 되어야 한다. 새로운 집사후보생들을 재단의 집사부로 끌어들일 소재가 되기 위해서. 허튼짓은 부리지 마라. 미끼의 역할을 완수한다면 너 또한 지부로 돌아갈 수 있으니.”

     

    그 말도 기억소각마법을 발동하고 수작을 부리지만 않았다면 순순히 받아들였을 텐데 말입니다.

    기프트 아카데미에 파견된 장학생들을 감독하는 와이히엠하이 재단 아카데미지부 감독관 파시블 예프.

    그는 해골 특유의 관절 소리를 내며 웃었다.

     

    ‘당신들에게는 당신들의 사정이 있다는 것이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닌 기억은 제가 저로서 있기 위한 소중한 퍼즐. 그걸 손대려 한 죄를 용서할 수는 없지요.’

     

    파시블 예프는 순간적인 정신보호로 재단집사의 습격에서도 기억을 지켰다.

    그럼에도 충직한 비서 까망의 앞에서는 기억을 잃고 냉혹한 감독관으로 변한 모습을 보였다.

     

    ‘당신은 오크노디의 수족을 끌어들일 작정이었겠지만, 까망은 모시는 주인을 향한 충심이 깊을수록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어주었죠.’

     

    어떤 기억은 제 것이 아니고 사진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바라보더라도 소중히 여겨진다.

    추억. 우정. 사랑.

    그것이 아름다운 기억일수록 더욱 그렇다.

    파시블 예프는 집사들의 인류를 위한 헌신이나 정령들의 잔혹한 행태, 중간계의 위협보다는 제 곁의 까망이나 죽엉무새, 싫엉무새와의 하찮은 일상이 더욱 가치 있다고 느꼈다.

     

    ‘화가 난 까망이 얼마나 강력한 지원군을 불러올지 기대가 되는군요.’

     

    파시블 예프의 기대는 머지않아 충족되었다.

    집사가 동굴 입구에 발을 들인 누군가를 감지하고 마중을 나갔다.

    드디어 원군이 도착한 것이다.

     

    ‘오크노디가 직접 왔을까요? 아니면 아카데미의 교수가?’

     

    의문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쾅! 콰과과과과!

    결계와 산 내부로 향하는 토굴을 모조리 붕괴시키는 골렘의 미친 공격에 휩쓸린 탓이었다.

     

    “이 미친 녀석들! 인질까지 같이 죽일 기세로 주먹을 휘두르면 어쩌자는…”

     

    붕괴한 동굴 안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남자의 목소리가 당혹을 넘어서 공포에 가까워졌다.

     

    “…그런가. <호위골렘>이 아닌 <전투골렘>이니 인질의 목숨 따윈 처음부터 안중에도 없었던 건가.”

     

    <연금술>로 쏟아지는 토사를 지탱할 기둥을 세워 살아남은 파시블 예프도 진짜 그런 건지 혹할 법한 이야기였다.

     

    ‘지독한 수완을 보니 그 사다코 교수의 제자 오크노디가 손을 쓴 것은 맞겠구나.’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나쁜?집사 vs 나쁜?골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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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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