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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5

       카페에 앉아있는 세 소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유하늘, 신소희, 이수아 모두, 자신이 나름대로 사라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어떤 결정적인 행동을 했던 것은 아니다. 셋 중 누구도 사라와 친구 이상의 관계가 되지는 못했으니까. 마음 깊은 곳에서 그걸 원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건, 인정하지 못했건.

        

       사라와 붙어있는 것은, 분명 스스로 좋아서 했던 것도 있다. 하지만 그런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그녀들은 ‘사라가 부탁했다’라는 핑계를 사용했다.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선을 밟아도, 아니, 한 발자국 정도 선을 넘어도 사라는 별다른 불평을 하지 않았다.

        

       물론 다소 불편해하거나, 그 행동에 의문을 나타내거나 하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사라에게 뭐라고 했었지?

        

       유하늘은 생각했다.

        

       얼버무리고 핑계를 대었다. 사라가 잘 모르는 ‘친구’라는 거리감을 멋대로 왜곡했다. 다른 아이들과 경쟁하듯 달라붙어 자신의 욕망을 마구 풀어내었다.

        

       그것은, 한없이 가벼운 기분으로 저지른 일이었다.

        

       물론 사라의 상황을 인지하고는 있었다— 아니,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하긴 했었다.

        

       오랫동안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 새장 안의 공주님. 마침내 그 새장의 문을 열고 드디어 세상 바깥으로 나오고자 용기를 낸 공주님.

        

       그래,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슴으로 공감했다고 생각하기에는 그 감정이 지나치게 얕았다.

        

       그저 좋아서. 반쯤 장난으로.

        

       사라와 끌어안고 있는 것이 기분 좋았으니까. 눈앞에 있는 사라가 예뻤고, 당황할 때의 반응이 귀여웠으니까. 사라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을 때마다 너무나 아름답다고 느꼈으니까.

        

       하지만, 자신이 그렇게 학교생활을 즐기는 동안, 사라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사라는 그저 세상 밖으로 나가겠다고 다짐했던 것이 아니었다.

        

       사라가 한 모든 행동은, 그 자체로 이미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사라가 남겨둔 이 처절한 내용의 편지를 읽고 나서야, 유하늘은 즐거움이라는 감정 아래 매몰되어있었던 사라의 본심이 조금이나마 보이는 것 같았다.

        

       사람들과 제대로 된 대화를 해보지 못했던 사라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데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까?

        

       말을 거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사라가 학교에서 보여준 유쾌한 모습은, 그 모든 걸음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힘겹게 버티고 서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사라 입장에서 그 모든 행동은, ‘장난’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

        

       분명 옷을 따뜻하게 입고 있었는데도, 난방 설비가 되어있는 카페 안에 있는데도, 유하늘은 한기를 느꼈다.

        

       “사라야…….”

        

       이수아가 중얼거렸다. 이 아이도 아마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껏 살아온 사라의 과거가 얼마나 가혹했던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벗어나고 싶었던 것인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을 테니까.

        

       그야말로 목숨을 버려서라도 도망가고자 했던 그 심정이, 이 편지……아니, ‘유서’에는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

        

       신소희는 눈을 부릅뜬 채로 탁자 위에 올려진 편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있었는지, 갸름한 턱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세 사람의 반응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양혜인이, 다시 품 안을 뒤적였다.

        

       그녀가 꺼낸 것은 플라스틱으로 된 하얀 약통이었다. 약통에선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양혜인은 그 약통을 탁자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두었다.

        

       라벨을 읽지 않아도, 유하늘은 그 안에 무슨 약이 들어있는지 대충 유추해 볼 수 있었다.

        

       유서에도 쓰여있던, 불법적인 경로로 얻었다는 수면제.

        

       지금은 처방해주지 않는 성분의 수면제라고 쓰여있었다.

        

       “바르비탈 성분의 수면제입니다. 지금은 오용의 위험 때문에 수면제로 처방되지는 않습니다.”

        

       양혜인은 잠시 말을 쉬었다. 마치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건지 고민하듯. 하지만 이내 마음을 먹은 듯,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복용량을 늘리면 안락사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약물입니다.”

        

       “……사라는, 이 약을 사용했나요?”

        

       양혜인은 고개를 저었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잠시 말을 쉬었다가,

        

       “하지만,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양혜인은 탁자 위의 약통을 집어 뚜껑을 열었다. 약통에는 약이 절반 정도 들어 있었다. 아까의 그 달그락거림은 그 때문이리라.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수면제잖아요? 그냥 불면증 때문에 수면제로 썼을 수도…….”

        

       “…….”

        

       양혜인은 유하늘의 말을 듣고,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짐작 가는 날이 있습니다.”

        

       양혜인은, 사라가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치던 때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병원에 실려 간 사라의 등에는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 의사도, 경찰도, 그 흔적이 아동학대의 흔적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이제 와서 생각하면, 아동학대의 흔적이 맞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수면제를 먹고 등에 멍이 들 이유가……”

        

       “어쩌면, 실패했다는 것에 절망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메이드라고 할 수 없는 신분이었지만, 양혜인은 여전히 사라의 이야기를 할 때는 존댓말을 썼다. 나이 차가 한참 나 보였는데도.

        

       “마지막으로 품고 있던 희망이 산산이 조각나고…… 침대에서 눈을 뜨게 되었을 때. 얼마나 큰 고통을 느꼈을까요.”

        

       사실 양혜인은 바르비탈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지 못했다. 의사가 사라의 몸에는 큰 이상이 없다고 한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미 그 전에 약을 먹어서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날은 윤다호를 만나러 가는 날이었으니까. 사라는 윤다호를 지독하게 불편해했다. 윤다호는 사라를 싫어하는 모습을 굳이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회장이 어째서 이런 약혼을 성사했는지 의아할 정도로.

        

       그러니, 그에 맞춰서 약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패하고— 결국 윤다호를 만났다.

        

       그래, 사라는 그때부터 어딘가 바뀌어 있었다. 어쩌면 그날 이미 사라는 모든 것을 놓아버렸는지도 모른다. 지금 사라가 행하는 모든 것들은 사실 그 결과 때문일지도 모른다.

        

       죽지 못했다는 것에 절망하고, 등에 피멍이 들도록 자학하고, 한밤중에 비명을 지르며 온몸을 뒤튼다.

        

       양혜인이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뿐이었다.

        

       ……3년이나 그녀의 곁에 있었는데도, 양혜인은 사라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

        

       잠깐의 침묵.

        

       지독하게 답답한 침묵이었다. 그 침묵은 지금까지의 양혜인의 무신경함을 질타하는 것 같기도 했고, 반대로 더 깊게 생각해보려 하지 않은 세 소녀를 꾸짖는 것 같기도 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여기에 있는 누구도 그녀들을 탓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탓하는 것은 그녀들 자신이었다. 그게 남들이 보기에 정말로 잘못한 것이건, 아니건. 그녀들은 자신을 탓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편지를, 저희에게 보여주시는 이유가 뭔가요?”

        

       열려있는 약통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유하늘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는 희미하게 노기가 서려 있었다. 꼭 듣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를 들어버린 것처럼, 그녀는 마음이 불편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사라가 그렇게 망가질 때까지 그대로 방치했던 사람들에 대한 분노. 조금만 더 알아보려고 했으면 금방이라도 알 수 있었던 사실을 외면하고 있었던 자신에 대한 실망. 이런 이야기를 지금 이 타이밍에 굳이 해준 양혜인에 대한 원망.

        

       하긴, 이런 이야기를 모른 채로 그저 사라와 함께 즐겁게 지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극도로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그래서야 최나경 회장과 다를 것이 뭐가 있겠는가.

        

       자신이 가지고 싶다는 이유로, 그대로 저택에 자기 수양딸을 방치한 채 조금씩 망가뜨리며 자신만을 알게 만든 그 여자와, 비정상적인 환경에서 자라 어쩔 수 없이 순수해진 그녀의 마음을 이용해 욕망을 채우고자 한 자신이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제야’ 등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고, 유하늘은 자신에게 다시 한번 실망했다.

        

       “……저는, 이제 아가씨 곁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양혜인은 무겁게 말했다.

        

       “그곳에서 해고당한다는 말은, 이후에는 그곳에 일절 접근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도 포함되니까요. 아마 제가 어떤 방법으로 아가씨에게 접근하려고 하더라도, 유진그룹 측에서 막으려고 할 겁니다.”

        

       유하늘은, 아니, 양혜인과 마주 보고 앉은 세 소녀는 그 말에 양혜인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녀들에게 접근했는지 어렴풋이 깨달았다.

        

       더 이상 사라 옆에 있지 못하게 된 자신을 대신하여, 사라를 보살펴달라는 말이 하고 싶은 것이리라.

        

       제일 먼저 반응한 사람은 신소희였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닌가?”

        

       한참 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신소희가 사납게 물었다.

        

       “우리가 대체 뭐라고? 무슨 힘을 가지고 있어서 당신보다 낫다는 건데?”

        

       어쩌면 그건 단순히 힘의 차이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리라. 유하늘이 방금 자신에게 느꼈던 것과 같은 감정을, 신소희도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저 높은 곳에서 우리를 막으려고 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대체 뭐냐고.”

        

       사납게 이를 드러내고 있지만, 그건 사람을 향해 겁먹은 작은 개가 맹렬하게 짖는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아니, 사람을 향해 짖는 것도 아니었다. 허깨비를 향해 짖는 것이다. 양혜인은 이제 그쪽의 사람도 아니었으니까.

        

       “……저는 더 이상 아가씨에게 다가가지 못합니다. 만약 유진그룹이 진심으로 여러분을 막으려고 한다면, 여러분도 마찬가지겠죠.”

        

       양혜인은 죄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하지만 곧 양혜인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 얼굴에는 한가지 결심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의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뭐죠?”

        

       유하늘의 질문에, 양혜인은 살짝 숨을 들이쉬고 대답했다.

        

       “아가씨는, 저에게 다가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반대입니다. 여러분께는 아가씨께서도 기꺼이 먼저 다가가실 테니까요.”

        

       “…….”

        

       “그리고, 그렇기에, 만약 여러분께서 아가씨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면, 아가씨도 더 이상…… 뭔가를 포기하지 않으실지도 모르니까요.”

        

       “…….”

        

       다시 한번, 테이블에 침묵이 찾아왔다.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 싶었던 말씀입니다.”

        

       양혜인은 다시 한번, 세 사람을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

        

       셋은 잠시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쩔래? 같은 말이 오가지는 않았다.

        

       애초에 오갈 필요가 없었으니까.

        

       사실, 이 셋은 모두, 편지를 보기 전부터, 사라가 회장과 만나는 것을 보기 전부터—

        

       아니, 어쩌면 사라를 처음 만나던 그 순간부터, 애초에 사라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다만, 이 편지는 지금까지의 일을 다시 생각하고 되새기는 일을 했을 뿐이었다.

        

        

       ……짧은 생의 단 일주일이라도, 남들과 같은 평범한 삶을 살아보고 싶었는데……

       

       

       그녀들이 사라를 만난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만약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지난 일주일간 자신들과 사라가 지냈던 행복하고 즐거웠던 시간이라면.

        

       만약, 사라가 다시 한번 삶을 포기하고자 한다면. 

        

       ……사실, 그런 것을 따지지 않아도, 처음부터 그녀들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녀들은 사라를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처음부터, 이런 것을 보지 않았던 때부터, 포기할 생각은 요만큼도 없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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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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