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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5

       누구나 아는 얘기지만, 원래 학기평가 마지막 날에 기대 받는 주역은 1학년이 아니었다.

         

       2,3학년들.

         

       투기법을 본격적으로 갈고 닦으며, 제 역량을 한계까지 올렸을 전사들.

         

       그들을 보기 위해 많은 이들이 몰려드는 게 당연하단 뜻이었다.

         

       그래선지 매해 1학년들의 평가 시간에는 사람의 숫자가 상당히 적은 편이었다.

       어차피 형편없는 전투를 벌일 놈들을 봐서 뭐하겠냐는 식이었다.

         

       한데, 지금,

         

       상당히 많은 숫자의 군중이 모여들었고, 그 숫자는 줄어들긴커녕 계속 증가했다.

       인원 중엔 일반 시민들도 많았지만, 귀족들의 비중도 만만치 않은 바.

       무슨 목적이 있기에 이토록 많은 이들이 모여든 것일까?

         

       “…나온다.”

         

       “저 애야? 와아, 소문보다 더 미남일세?”

         

       “로엔 공자님!!”

         

       “용맹한 사자에게 영광을-!”

         

       [[라이오넬이여 영원하라! 왕국의 용맹한 사자에게 영광을-!]]

         

       [와아아아아!!]

         

       그래, 오로지 한 남자의 얼굴을 보기 위해 이토록 많은 군중이 모여든 것이다.

         

       소리 높여 울부짖는 그 이름.

         

       북부의 수호자.

       영광스러운 흑사자.

       왕국의 영원한 전우이자 동맹.

         

       현 시대에서 가장 기대 받는 사자에게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가 부디 그 위대한 핏줄에 걸맞은 거룩한 결투를 벌이길 바라며.

         

       기대와 환성, 열망.

         

       이러한 무형의 것들이 기세가 되어 쏟아졌고, 누군가가 이런 상황을 마주한다면 현기증이 날 테지만.

       콜로세움 중앙에 선 흑발머리의 사내.

         

       로엔은 오로지 자신이 상대해야 할 적만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시리도록 굳건한 눈으로.

         

       “광대가 된 것 같군.”

         

       로엔은 홀로 중얼거리며 나지막한 조소를 드러냈다.

       솔직히 기분이 그다지 유쾌하진 않다.

       이토록 남들 앞에서 실력을 내보인다는 건 그다지 현명한 일이 아니니까.

         

       그러나.

         

       – 할 거면 최선을 다해라. 장난처럼 하지 말고.

         

       …엊그제, 어딘가 초췌하고 피곤한 낯빛으로 나타난 스승은 생도 전원을 모아 격려하듯 말했다.

         

       기왕 할 거면 제대로 하라고, 또 기왕이면 다치지 말고 몸을 아끼라고.

       어딘가 이상한 발언이다.

       최선을 다하라면서 다치면 안 된다니.

         

       그만큼 그가 자신들을 신경 써주는 것일까?

         

       허나 로엔은 다치지 말라는 발언이 다른 생도들에게 한 것이고, 앞서 말한 ‘최선’이란 발언은 자신에게 향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의 속내를 꿰뚫어보듯이.

         

       ‘원래는 참여하지 않을 생각이었거늘.’

         

       기권할 마음이 가득했었다.

       이깟 놀음에 어울려서 뭘 할까 싶기도 했고.

       하지만 로엔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그래, 빚쟁이 주제에 어찌 명령을 거부할까?

         

       ‘이걸로 그때 빚을 다 갚았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최선을.

         

       [GRRR-!]

         

       로엔은 잘 벼려진 롱 소드를 천천히 늘어트렸다.

       자세를 잡는 대신 어딘지 몸이 축 늘어진 것만 같은 자세.

       누군가 봤을 때는 장난인가 싶을 수도 있으나, 눈썰미가 있는 이들은 눈을 부릅떴다.

         

       저토록 흐느적거림에도 허점이 없음에.

         

       “네놈 따위에겐 과분한 처분임을 알아라, 증오스러운 마물아.”

         

       [GRR?]

         

       바위 트롤은 이성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고, 로엔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슨 뜻인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마냥 상대를 때리고 부숴야 한다는 ‘본능’만 있을 뿐.

         

       그렇게 바위 트롤은 피하려는 자세조차 취하지 않는 로엔을 향해 달려들었다.

       방금 전 배리와 싸웠을 때처럼 그냥 무작정 돌진하는 것이었다.

         

       한데도.

         

       “왜 안 움직이지?”

       “어어어!?”

         

       군중은 당황했다.

       코앞까지 괴물이 다가왔거늘 방어나 공격적 태세를 조금도 취하지 않는 그의 행동에,

       그렇게 그들이 무어라 소리치기 직전.

         

       “검기(劍氣), 난 그렇게 이름 붙였다.”

         

       촤아아악!

         

       일순, 칼날이 번쩍거렸다.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이를 보고 있던 모든 이들이 보았다.

       그의 칼날에서 빛이 명멸했음을.

       그리고 다음 순간.

         

       콰직!

       콰지직…!

         

       [GR━…R….]

         

       쿠웅…!

         

       바위 트롤은 단말마도 제대로 못 지르며 그대로 기능이 정지되었다.

         

       허무하면서도 꿈과 같은 광경이었다.

         

       “무슨…?!”

         

       하여 사람들 입장에선 대체 뭐가 지나갔는가 싶을 따름이었고, 5초의 정적이 끝난 후에야 그들은 발견했다.

         

       머리와 심장, 그리고 배 등이 정확히 뚫려 있는 바위 트롤의 모습을.

       언제 찔렸는지도 모를 세 곳의 상처.

       이를 보며 다시금 정적이 일어날 뻔했으나, 그보다 놀라운 것은.

         

       “뭐, 뭐야, 저거?”

       “…세상에.”

       “…….”

       “지, 지금 그게 뭐였지? 혹시 오러야?!”

       “아 아무리 천재라도 저 나이에 오러 유저라고!?”

       “아, 아니야, 오러는 아니야. 오러는 아닌데, 대체 저건…?”

         

       대중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어떻게 이겼는지도 모른 채, 마냥 감탄하는 자들.

       검술의 식견이 있는 자들의 경우는 아예 혼란에 빠진 듯했다.

       방금 전 보았던 오러와 비슷한 힘이 무엇이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는 않는다며.

       그리고 마지막 부류는.

         

       “검명에다 유형화된 기세를 섞었군.”

       “마냥 두 개의 기예를 섞었을 뿐만 아니라, 쾌검식과 변검식, 환검식마저 섞인 것 같군요. 거기다 경을 써서 부족한 부분을 메꿨습니다. …저런 기술을 저토록 자유롭게 다룬다는 면에서 입맛이 쓰군요. 저는 저렇게 못 합니다.”

       “검둥이 강하다. 진짜 강하다!”

         

       그가 해낸 것을 알아보는 정말 극소수의 재능 많은 검사들.

       실력자라 자부할 수 있는 자들은 로엔이 펼쳐낸 검기가 무엇인지 서서히 깨달아갔다.

         

       검과 검사의 공명현상을 이용하여 검격의 파괴력을 극한까지 올리는 ‘검명’ 현상과 투기법의 달인이 되어야만 펼칠 수 있는 ‘기세의 유형화.’

       이 두 가지 기예를 동시발현한 후, 쾌검식과 변검식, 그리고 환검식 등의 세 가지 검식을 일순간 검에 전부 담아 쏘아낸다.

         

       …이렇게 설명하면 마냥 쉬워 보이지만, 말도 안 되는 기술이었다.

         

       검명이나 기세의 유형화나 하나같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기예.

       거기다 추가적으로 경을 보조 수단으로 삼아 세 가지 검식을 단번에 펼쳐낸다니…!

         

       이건 뭐 두 손으로 동시에 각기 다른 내용을 필기하며 하모니카 연주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무슨 말이냐고?

       그냥 불가능을 해냈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는 노력이나 열정으로 어찌 할 수 없는 분야기도 했다.

         

       순수한 재능의 영역이자, 검명과는 다른 지극히 새로운 관점의 경지였다.

         

       검기상인(劒氣傷人).

       검이 내뱉은 기세만으로 능히 사람을 벨 수 있을 경지.

         

       그렇게 이름 붙인다면 적절하리라.

         

       “저, 저게 투기법의 신기원을 연 천재….”

       “저런데도 우리보다 어리다고?”

       “제기랄! 빌어먹을!”

         

       그의 실력을 보며 2,3학년 생도들은 절망했다.

       소문은 익히 들었으나, 솔직히 북부에서 지어낸 거짓으로 여겼다.

       하여 진지한 결투로 가면 망신살을 충분히 줄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지 않은가?

         

       그들은 아직 검명조차 펼쳐내지 못한다.

       그럴 자격도 갖추지 못하였고.

         

       이는 세 살배기 아이와 어른만큼의 격차가 있음이다.

       한데 상대는 이미 검명과 기세의 유형화를 넘어 이를 공존시키는 기예를 터득했다.

         

       일생을 바친다 하여도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

         

       평생을 검과 투기법에 바친 인생이 부정당하는 감각이었고, 의욕이 팍 꺾이다 못해 절망감이 엄습하니.

         

       “…크윽.”

         

       때론 너무 큰 재능을 목도한 자들은 마음이 꺾이고 마는 것이었다.

         

       …허나.

         

       “시, 신기하긴 하네요.”

       “근데 좀 애매하다?”

       “그렇지…?”

         

       절망하고 마음이 꺾인 선배들과 달리, 이번 해 신입생들.

       그러니까 이한의 밑에서 구르고 또 구른 1학년들은 미묘한 시선을 던질 따름이었다.

         

       “그냥 투기법이 투기법한 거지, 뭐.”

         

       이는 그들이 검술에 무지하거나, 경지가 낮아 내뱉는 평가가 아니었다.

       이게 무어랄까,

       빛을 내뿜는 듯한 검기는 굉장한 기술임은 분명 맞지만, 어딘지 ‘정상적’으로 보인다고 해야 할까?

         

       그도 그럴 게.

         

       “저것보다 백보신권이 더 신기하긴 하지.”

         

       수십 보 밖에 있는 물건을 격타하거나.

         

       “난 금강을 좀 더 높게 평가하고 싶은데, 오히려 교관님이면 저 검기를 맞아도 멀쩡하지 않으실까?”

       “아니요, 사형. 제가 봤을 때 궁신탄영으로 피하시지 않을까요?”

         

       검과 화살이 날아와도 피부에 박히지 않거나, 화살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등.

         

       “아니, 사자후면 끝날 것 같은데? 대사부라면 기합 한 번으로 검기도 지울지도 모르지.”

       “…부정하고 싶은데, 그 양반은 왜 될 것 같지?”

         

       말 그대로 인외(人外)의 기술을 너무 많이 접한 그들이었다.

         

       1학년 생도들.

       귀족 영애들마저 로엔의 기술을 그저 ‘화려한 기예’로 평가하며 심드렁하게 대하였으니.

         

       “교관님이 더 신기하죠.”

         

       저걸로 놀라기엔 그들의 교관이 보여준 기술이 더 경악스러우며 창의적이고, 기괴하기 짝이 없기에.

         

       그의 가르침을 받은 지 3개월도 안 됐으나, 지나치게 눈이 높아진 검술학부 1학년 일동이었다.

         

       “…야박하구먼, 이것들. 주군이 기껏 보여준 건데, 쩝.”

         

       그의 주군 로엔이 북부의 유력한 후계자로 불리게 된 이유가 저 기예 덕분이었는데, 이상하게 심드렁한 이들이 많다.

       검기를 보며 그 막시무스 경마저 눈을 부릅떴었는데.

         

       어이가 없다.

         

       하지만.

         

       ‘나도 분명 처음 봤을 땐 경악했는데, 지금은 그저 그렇긴 하네.’

         

       잭은 저마저도 그들의 평가에 동의하는 자신을 발견하며 다른 의미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양반 밑에서 구르며 워낙 기막힌 광경을 수두룩하게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며 문득 드는 평가는 이러했다.

         

       ‘우리 주군이 천재라면, 그 양반은 그거지 뭐.’

         

       ……맹수, 그러니까 코끼리나 호랑이 등이 우연치 않게 사람의 지혜를 얻고 책을 읽은 후, 논문마저 발표하여 박사학위를 딴 걸 본 듯한?

         

       무슨 정신 나간 소리냐고 할 테지만, 아마 1학년 동기들은 모두 ‘이게 맞다!’ 동의할 평가가 아닐 수 없으리라.

         

       하기에.

         

       ‘주군, 안타깝게도 박사 학위 얻은 코끼리에 비하면 주군은 평범한 범부인가 봅니다.’

         

       잭은 하필 시대를 잘못 타고난 저의 주군을 안쓰럽게 바라보고 말았다.

         

         

         

       그리고 이런 동정 어린 시선을 마주한 천재 범부(?)는.

         

       “…뭐지?”

         

       반응이 왜 이래, 이거?

         

       왠지 모를 섭섭함이 몰려들었다.

         

       * * *

         

       한편 그를, 아니 정확히는 1학년 동기들을 바라보며 남몰래 응원하는 소녀가 있었다.

         

       “다들 대단하다. 내가 이런 사람 많은 곳에 서있으면 움직이지도 못할 텐데.”

         

       [아린이 네가 남들 시선에 약하긴 하지.]

         

       아이린 윈들러.

         

       그녀는 인식저해 마법을 펼친 상태에서 몰래 콜로세움에서 평가전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뭐, 친한 지인들이 많아 응원의 목적으로 온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교관님이 없으시네….”

         

       [그저께 보니 많이 피곤해 보이시던데, 괜찮으시려나?]

         

       그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한데 안타깝게도 그는 오늘도 보이지 않았다.

       오늘로만 10일째다.

         

       소녀와 유령은 기사를 걱정했다.

         

       전날 자신과 같이 돌아다닌 이후로 어딘지 표정이 굳어 있던 그였다.

       이후, 갑자기 집중 수련 기간이라며 자취를 감추기까지 하여 이웃사촌인 자신조차 만날 수가 없었다.

       거기다 추가로 어제는 집에 있다고 하여 가보니.

         

       -기사님이요? 죄송해요, 피곤하셔도 하루 종일 잠만 자고 계세요. 가끔 일어나도 밥만 드시고 주무시더라고요. 깨우고 싶어도 못 깨우겠어요….

         

       …라더라.

         

       혹여 자신이 불편하여 피하는 게 아닐까 싶을 따름.

         

       마음 같아선 시녀님처럼 같이 살고 싶….

         

       ‘너 이상한 말 할래!’

         

       [왜 맞는 말만 했잖아?]

         

       ‘너어!’

         

       유령 소녀가 귀를 속삭이며 이상한 소리를 내뱉자 아이린은 발끈했다.

       그랑 같이 산다니, 아무래도 그건 아직 좀 이른 감이 있….

         

       “또, 또 너지?!”

         

       [뭘?]

         

       이번에 자신은 아무런 말도 안 했다며 어깨를 으쓱이는 유령이었다.

         

       “이이!”

         

       아이린 윈들러는 괜히 얼굴이 새빨갛게 익어가며 다시금 소리치려 할 때.

         

       톡.

         

       “…비?”

         

       [와, 하늘에 먹구름이 언제 저렇게 깔렸었지?]

         

       쿠르릉.

         

       조금 전만 해도 맑았던 하늘은 어느 순간 검게 칠해진 것처럼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비라도 한판 쏟아질 분위기였고, 아이린은 눈을 끔뻑거렸다.

         

       [왜 그래 아린아?]

         

       “…저 구름, 이상해.”

         

       [응?]

         

       “…….”

         

       아이린 윈들러는 푼수 같고 실수도 많으며 게으른 소녀이지만, 마법적 소양만큼은 또래 마법사들 중에서 비견되는 이가 없는 우수한 마법사였다.

         

       그리고 아이린은 바람과 물의 적성을 가진 마법사.

         

       소녀의 마력은 수증기로 이루어진 먹구름에서 곧장 이질감을 느꼈다.

         

       ‘자연적으로 생성된 게 아닌 것 같은데? 뭐지…?’

         

       아이린은 저 먹구름이 뭔가 싶어서 자세히 관찰했고, 어느 순간.

         

       “허억!!?”

         

       [아린아?]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아, 아니지, 내가 잘못 본 거지?’

         

       현실을 부정하는 소녀였지만, 이미 한 번 깨달은 사실을 어찌 부정할 수 있으랴.

         

       소녀는 얼마 가지 않아 창백해진 얼굴로 인정해야만 했다.

         

       저 먹구름이….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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