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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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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공에서 검이 수 십합이 얽혔다가 떨어졌다. 아이리스는 뒤로 물러나며 입술에 피가 날 정도로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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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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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준 차이가 명확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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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아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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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가 기합을 내뱉으며 검을 휘둘렀다. 거칠게 휘둘러진 검은 허무하게 허공을 베어버렸다. 남자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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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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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 뒤를 무언가가 가격하는 것을 인지하는 것과 동시에 아이리스는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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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끄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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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아이리스의 위에 올라탄 남자가 등 뒤를 무릎으로 누르고 있었다. 아이리스는 이를 악물고 일어나고자 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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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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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로 끝내면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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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바르작거리는 아이리스를 내려다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동시에 내 주변을 날아다니던 둥그런 카메라 같은 것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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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는 상대방이 죽어야만 끝이 납니다! ]
   [ 끝을 낼 생각이라면 심장을 찌르거나 목을 베어버리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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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뜩 흥분한 목소리가 익숙했다. 진행자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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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대의 목숨을 빼앗지 않으면 5분마다 강한 마물이 풀려납니다! ]
   [ 빠르게 경기를 끝내는 걸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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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해서 아이리스를 죽이라는 목소리에 짜증이 치밀어 베어버릴까 고민하던 그때, 마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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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쯧쯧, 저놈들의 목적이 이거였군. ]
   “응?”
   [ 네 녀석이 레디아홀손에 정신이 팔려 제 친동생을 본인의 손으로 죽이게 하는 것. 그게 저놈들이 원하는 거라는 말이다. ]
   ‘그걸 어떻게 알아?’
   [ 저런 변태 같은 놈들의 생각이야 뻔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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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의 으스대는 목소리를 들으며 문득 피로 얼룩진 마검의 역사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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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태는 변태를 알아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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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을 차단한 덕분에 마검이 날뛰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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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쩔 거냐 파트너. 이 녀석 죽일 건가? ]
   ‘아니, 죽일 생각 없어.’
   [ 흐음…서로를 죽일 때까지 경기를 끝내지 않을 생각인 거 같은데. 이참에 투기장을 전부 부숴버리고 도망치는 건 어떤가? 밖으로 나가면 더 강한 적들이 넘쳐날 테니…흐흐. ]
   ‘그건 힘들어. 내 목에 이 목줄 보이지? 이거 차고 멀리 나가면 터진대.’
   [ 그 정도는 다시 회복되잖나. ]
   ‘아이리스는 회복이 안 되잖아.’
   [ 끄응…그건 생각 못했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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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온한 대화를 나누던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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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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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닥에 쓰러져 바르작거리던 아이리스가 칼을 역수로 들어 휘둘렀다. 내 몸이 뒤로 훅 물러나고 아이리스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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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녀석 정체가 뭐지? 어떻게 인간의 몸에서 신성력이 흐를 수 있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아. 신성력 때문에 내 힘이 저 녀석의 몸 근처에 닿기만 해도 흩어진다. ]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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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의 유일한 희망, 마지막 용사, 유일한 용사의 핏줄인 아이리스였기에 별 의문은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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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압은 가능한 거지?’
   [ 가능하긴 하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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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컹,촤르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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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과 대화를 하는 사이 5분의 시간이 지났는지 투기장의 문 중 하나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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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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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짐승이 낮게 우는 소리가 들렸지만 짙게 깔린 독 안개 때문에 어디서 다가오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소리로 감지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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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 또한 갑작스러운 낯선 소리에 놀라 내가 아닌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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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찮게 됐군. ]
   ‘뭐가 보여?’
   [ 기척을 봐선…마계에서 가장 위험한 짐승 중 하나인 크레아다. ]
   ‘크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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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질문하는 것과 동시에 안개 너머로 커다란 실루엣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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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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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게 탄성을 내뱉는 것과 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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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에에에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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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봐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공룡 괴물이 울부짖었다. 설마 마계에도 공룡처럼 생긴 괴물이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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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게 뭐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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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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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웅!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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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물이 땅이 울릴 정도로 거칠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곧장 자세를 잡고 검을 휘두르려는데, 괴물이 몸을 옆으로 휙 틀더니 아이리스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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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어? 그쪽으로 가면 안 되는데? 가르간도아 빨리 죽여버려!”
   [ 그,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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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도 잔뜩 놀랐는지 특별한 대사도 외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안개가 휘몰아치는 것과 동시에 검붉은 검격이 날아가 거대한 괴물의 몸을…베지 않고 허공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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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물이 다리찢기로 몸을 낮춰 피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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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게 뭐야?!”
   [ 저게 뭐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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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르간도아와 내 목소리가 겹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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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에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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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물은 다시 목소리를 높여 울부짖더니 그대로 입을 크게 벌려 아이리스를 덮치기 시작했다. 오로지 아이리스만 노리는 모습에 광기까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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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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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물의 거대한 입이 살벌하게 아이리스를 스쳐 지나갔다. 아이리스도 가만히 당해줄 만한 성격은 아니었기에 뒤로 물러나며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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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어진 곳에 핏물이 터져 나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피가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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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아무래도 나 때문인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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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물의 모습도 그렇고 피가 흘러나오다 멈추는 것도 그렇고. 개그 세계에 거대 로봇과 같이 출몰하던 괴물과 똑 닮아있는 것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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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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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필터가 다양한 방법으로 적용되고는 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을 위협한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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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가 나를 공격해서 그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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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확한 메커니즘을 알 수 없으니 답답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었기에 마검을 세로로 휘둘렀다.
   
   
   괴물의 몸에 세로로 긴 줄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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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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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물이 짧게 비명을 내지르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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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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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발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나는 미동도 없는 안개를 보며 확신했다. 저건 개그 필터 때문에 생긴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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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이런 폭발이 생기면 주변 안개쯤은 거친 바람에 사라져야 정상이었다.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는 건, 저 폭발이 괴물의 퇴장 임팩트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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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컹,촤르르륵!
   철컹,촤르르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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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물을 죽이는 사이 또 시간이 지났는지 철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두군데에서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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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에에엑!”
   “끼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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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나타난 놈들은 노랑과 분홍색 괴물이었다. 놈들은 처음에 나왔던 괴물과 똑같이 아이리스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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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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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은 따라갈 수 없는 상황에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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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르간도아 최대한 빨리 저 두 놈을 죽이자.”
   [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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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가르간도아에게 주도권을 넘긴 채 아이리스 쪽을 바라보았다. 아이리스는 검을 든 채 괴물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또 괴물이 터질까 걱정되어 물러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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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로는 안 돼. 최대한 경기를 빨리 끝내야 해. 그러기 위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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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쪽이 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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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이런 서술이 나오면 잔혹하고 슬픈 전개가 이어져야 하지만. 여기엔 칼에 찔려도 무한 재생을 하는 개그 주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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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 최대한 빠르게 아이리스에게 찔리고 죽은 척 쓰러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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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만 한다면 아이리스와 나. 두 사람 모두 안전하게 경기장을 빠져나갈 수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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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려면 우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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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촤아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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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헥?”
   “끼이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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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괴물들이 또다시 반으로 갈라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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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아아앙
   콰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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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폭음을 내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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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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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분 안에 아이리스에게 찔려 죽는 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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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바쁘게 달려 나가며 마검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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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르간도아 아무래도 이 싸움을 빨리 끝내야 할 것 같아.’
   [ …! 잠깐 그런 멋진 대사는 나에게 줬어야지! 역시 파트너도 대사 욕심이 있었던 거군! 이 싸움을 빨리 끝내겠다…이 싸움을 끝내러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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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이 무어라 중얼거리는 걸 들으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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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차피 나는 안 죽으니까 아이리스에게 찔린 다음에 죽은 척하려고 하거든? 장단 좀 맞춰줄래?’
   [ 뭐, 나도 이 무대..아니, 경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 그렇게 하도록 하지…대신, 흘러나온 피는 먹어도 되나? ]
   ‘되는데, 너무 티 나게 먹진 말고.’
   [ 알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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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이 신이 나서 대답하는 것과 동시에 내 몸이 아이리스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괴물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던 아이리스가 내 기척을 느끼곤 눈을 번뜩거리며 고개를 휙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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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우,흐…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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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내가 어떤 식으로 보이길래 저렇게 화가 난 건가 싶다가 여장바바리맨의 존재가 떠올라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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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히 그런 게 보인다면 저렇게 말할 만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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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챙! 끼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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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과 검이 마찰하는 소리가 비명처럼 울려 퍼졌다. 마검과 아이리스의 검이 몇 번이고 맞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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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거 아무래도 빨리 끝내야겠군. 저 녀석의 검 금방 부러질 거다. ]
   ‘뭐? 진짜?’
   [ 이 몸 같은 위대한 검과 계속 부딪치니 그런 거겠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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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이어 마검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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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슬 빈틈을 만들어 몸을 찌르게 할 건데…어디를 찌르게 하면 되지? 배? ]
   ‘아니, 심장을 찌르게 해. 괜히 배 찔렀다가 안 죽은 걸로 치면 어떡해?’
   [ …파트너는 심장을 찔러도 안…죽나? ]
   ‘보통 안 죽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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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이 잠시 말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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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럼 그 말을 믿도록 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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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을 끝으로 매섭게 아이리스의 검을 쳐내던 마검에 조금 힘이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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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애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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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이 아래에서 위로 튕겨 나가며 상체의 빈틈이 그대로 드러났다. 아이리스가 눈동자를 탁하게 빛내며 검을 내 심장 쪽으로 찔러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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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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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귀엽기만 하던 목소리가 거친 소리를 내는 것과 동시에 검 끝이 내 심장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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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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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장이 꿰뚫린 순간 나는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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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이거 죽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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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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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후원해주신 익명F님! 혈소연님! 감사합니다. 연재열심히 하겠습니다 :3
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 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

내일은 오후 10시 30분에 두편 업로드 예정입니다.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허공에서 검이 수 십합이 얽혔다가 떨어졌다. 아이리스는 뒤로 물러나며 입술에 피가 날 정도로 깨물었다.

‘상대가 되지 않는다.’

수준 차이가 명확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흐아아앗!”

아이리스가 기합을 내뱉으며 검을 휘둘렀다. 거칠게 휘둘러진 검은 허무하게 허공을 베어버렸다. 남자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컥…!”

등 뒤를 무언가가 가격하는 것을 인지하는 것과 동시에 아이리스는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끄윽…”

어느새 아이리스의 위에 올라탄 남자가 등 뒤를 무릎으로 누르고 있었다. 아이리스는 이를 악물고 일어나고자 악을 썼다.

***

“…이대로 끝내면 안 되나?”

나는 바르작거리는 아이리스를 내려다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동시에 내 주변을 날아다니던 둥그런 카메라 같은 것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 경기는 상대방이 죽어야만 끝이 납니다! ]

[ 끝을 낼 생각이라면 심장을 찌르거나 목을 베어버리세요! ]

잔뜩 흥분한 목소리가 익숙했다. 진행자의 목소리였다.

[ 상대의 목숨을 빼앗지 않으면 5분마다 강한 마물이 풀려납니다! ]

[ 빠르게 경기를 끝내는 걸 추천합니다! ]

계속해서 아이리스를 죽이라는 목소리에 짜증이 치밀어 베어버릴까 고민하던 그때, 마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쯧쯧, 저놈들의 목적이 이거였군. ]

“응?”

[ 네 녀석이 레디아홀손에 정신이 팔려 제 친동생을 본인의 손으로 죽이게 하는 것. 그게 저놈들이 원하는 거라는 말이다. ]

‘그걸 어떻게 알아?’

[ 저런 변태 같은 놈들의 생각이야 뻔하지. ]

마검의 으스대는 목소리를 들으며 문득 피로 얼룩진 마검의 역사가 떠올랐다.

‘변태는 변태를 알아보는구나.’

생각을 차단한 덕분에 마검이 날뛰는 일은 없었다.

[ 어쩔 거냐 파트너. 이 녀석 죽일 건가? ]

‘아니, 죽일 생각 없어.’

[ 흐음…서로를 죽일 때까지 경기를 끝내지 않을 생각인 거 같은데. 이참에 투기장을 전부 부숴버리고 도망치는 건 어떤가? 밖으로 나가면 더 강한 적들이 넘쳐날 테니…흐흐. ]

‘그건 힘들어. 내 목에 이 목줄 보이지? 이거 차고 멀리 나가면 터진대.’

[ 그 정도는 다시 회복되잖나. ]

‘아이리스는 회복이 안 되잖아.’

[ 끄응…그건 생각 못했군. ]

평온한 대화를 나누던 그때.

후욱!

바닥에 쓰러져 바르작거리던 아이리스가 칼을 역수로 들어 휘둘렀다. 내 몸이 뒤로 훅 물러나고 아이리스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 저 녀석 정체가 뭐지? 어떻게 인간의 몸에서 신성력이 흐를 수 있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아. 신성력 때문에 내 힘이 저 녀석의 몸 근처에 닿기만 해도 흩어진다. ]

‘역시…’

인류의 유일한 희망, 마지막 용사, 유일한 용사의 핏줄인 아이리스였기에 별 의문은 들지 않았다.

‘제압은 가능한 거지?’

[ 가능하긴 하다만…. ]

철컹,촤르르륵.

마검과 대화를 하는 사이 5분의 시간이 지났는지 투기장의 문 중 하나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크르릉.

짐승이 낮게 우는 소리가 들렸지만 짙게 깔린 독 안개 때문에 어디서 다가오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소리로 감지할 뿐이었다.

아이리스 또한 갑작스러운 낯선 소리에 놀라 내가 아닌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귀찮게 됐군. ]

‘뭐가 보여?’

[ 기척을 봐선…마계에서 가장 위험한 짐승 중 하나인 크레아다. ]

‘크레아?’

내가 질문하는 것과 동시에 안개 너머로 커다란 실루엣이 드러났다.

“어? 저거…”

짧게 탄성을 내뱉는 것과 동시에.

“키에에에에엑!”

아무리 봐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공룡 괴물이 울부짖었다. 설마 마계에도 공룡처럼 생긴 괴물이 있는 걸까?

[ 저게 뭐야?! ]

아닌가 보다.

쿠웅! 쿵!

괴물이 땅이 울릴 정도로 거칠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곧장 자세를 잡고 검을 휘두르려는데, 괴물이 몸을 옆으로 휙 틀더니 아이리스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어어? 그쪽으로 가면 안 되는데? 가르간도아 빨리 죽여버려!”

[ 그,그래! ]

마검도 잔뜩 놀랐는지 특별한 대사도 외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안개가 휘몰아치는 것과 동시에 검붉은 검격이 날아가 거대한 괴물의 몸을…베지 않고 허공을 갈랐다.

괴물이 다리찢기로 몸을 낮춰 피해버렸다.

“저게 뭐야?!”

[ 저게 뭐야?! ]

가르간도아와 내 목소리가 겹쳤다.

“키에에엑!”

괴물은 다시 목소리를 높여 울부짖더니 그대로 입을 크게 벌려 아이리스를 덮치기 시작했다. 오로지 아이리스만 노리는 모습에 광기까지 느껴졌다.

콰아앙!

괴물의 거대한 입이 살벌하게 아이리스를 스쳐 지나갔다. 아이리스도 가만히 당해줄 만한 성격은 아니었기에 뒤로 물러나며 검을 휘둘렀다.

베어진 곳에 핏물이 터져 나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피가 멎었다.

‘이거 아무래도 나 때문인 거 같은데…’

괴물의 모습도 그렇고 피가 흘러나오다 멈추는 것도 그렇고. 개그 세계에 거대 로봇과 같이 출몰하던 괴물과 똑 닮아있는 것도 그렇고.

‘갑자기 왜?’

개그 필터가 다양한 방법으로 적용되고는 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을 위협한 적은 없었다.

‘아이리스가 나를 공격해서 그런 건가?’

정확한 메커니즘을 알 수 없으니 답답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었기에 마검을 세로로 휘둘렀다.

괴물의 몸에 세로로 긴 줄이 생겨났다.

“키..에엑…”

괴물이 짧게 비명을 내지르더니.

콰광!

폭발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나는 미동도 없는 안개를 보며 확신했다. 저건 개그 필터 때문에 생긴 게 분명하다.

보통 이런 폭발이 생기면 주변 안개쯤은 거친 바람에 사라져야 정상이었다.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는 건, 저 폭발이 괴물의 퇴장 임팩트였기 때문이다.

철컹,촤르르륵!

철컹,촤르르르륵!

괴물을 죽이는 사이 또 시간이 지났는지 철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두군데에서 소리가 들렸다.

“키에에엑!”

“끼에엑?!”

이번에 나타난 놈들은 노랑과 분홍색 괴물이었다. 놈들은 처음에 나왔던 괴물과 똑같이 아이리스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냐?! ]

마검은 따라갈 수 없는 상황에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가르간도아 최대한 빨리 저 두 놈을 죽이자.”

[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다! ]

나는 가르간도아에게 주도권을 넘긴 채 아이리스 쪽을 바라보았다. 아이리스는 검을 든 채 괴물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또 괴물이 터질까 걱정되어 물러난 듯했다.

‘이대로는 안 돼. 최대한 경기를 빨리 끝내야 해. 그러기 위해선…’

한쪽이 죽어야 한다.

보통 이런 서술이 나오면 잔혹하고 슬픈 전개가 이어져야 하지만. 여기엔 칼에 찔려도 무한 재생을 하는 개그 주민이 있었다!

‘좋아, 최대한 빠르게 아이리스에게 찔리고 죽은 척 쓰러지자.’

그렇게만 한다면 아이리스와 나. 두 사람 모두 안전하게 경기장을 빠져나갈 수 있을 터였다.

‘그러려면 우선은.’

촤아악 -.

“케..헥?”

“끼이잇?”

거대한 괴물들이 또다시 반으로 갈라지고.

콰아아앙

콰아앙!

거대한 폭음을 내며 사라졌다.

‘앞으로 2분.’

2분 안에 아이리스에게 찔려 죽는 척해야 한다.

나는 바쁘게 달려 나가며 마검에게 말했다.

‘가르간도아 아무래도 이 싸움을 빨리 끝내야 할 것 같아.’

[ …! 잠깐 그런 멋진 대사는 나에게 줬어야지! 역시 파트너도 대사 욕심이 있었던 거군! 이 싸움을 빨리 끝내겠다…이 싸움을 끝내러 왔다…. ]

마검이 무어라 중얼거리는 걸 들으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나는 안 죽으니까 아이리스에게 찔린 다음에 죽은 척하려고 하거든? 장단 좀 맞춰줄래?’

[ 뭐, 나도 이 무대..아니, 경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 그렇게 하도록 하지…대신, 흘러나온 피는 먹어도 되나? ]

‘되는데, 너무 티 나게 먹진 말고.’

[ 알겠다! ]

마검이 신이 나서 대답하는 것과 동시에 내 몸이 아이리스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괴물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던 아이리스가 내 기척을 느끼곤 눈을 번뜩거리며 고개를 휙 돌렸다.

“후우,흐…죽어!”

도대체 내가 어떤 식으로 보이길래 저렇게 화가 난 건가 싶다가 여장바바리맨의 존재가 떠올라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확실히 그런 게 보인다면 저렇게 말할 만하지.’

챙! 끼긱..!

검과 검이 마찰하는 소리가 비명처럼 울려 퍼졌다. 마검과 아이리스의 검이 몇 번이고 맞부딪쳤다.

[ 이거 아무래도 빨리 끝내야겠군. 저 녀석의 검 금방 부러질 거다. ]

‘뭐? 진짜?’

[ 이 몸 같은 위대한 검과 계속 부딪치니 그런 거겠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뒤이어 마검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 슬슬 빈틈을 만들어 몸을 찌르게 할 건데…어디를 찌르게 하면 되지? 배? ]

‘아니, 심장을 찌르게 해. 괜히 배 찔렀다가 안 죽은 걸로 치면 어떡해?’

[ …파트너는 심장을 찔러도 안…죽나? ]

‘보통 안 죽지.’

[ …. ]

마검이 잠시 말이 없어졌다.

[ 그럼 그 말을 믿도록 하지. ]

그 말을 끝으로 매섭게 아이리스의 검을 쳐내던 마검에 조금 힘이 빠졌다.

채애앵!

검이 아래에서 위로 튕겨 나가며 상체의 빈틈이 그대로 드러났다. 아이리스가 눈동자를 탁하게 빛내며 검을 내 심장 쪽으로 찔러 들어왔다.

“하아아앗!”

평소 귀엽기만 하던 목소리가 거친 소리를 내는 것과 동시에 검 끝이 내 심장을 파고들었다.

“커헉…!”

심장이 꿰뚫린 순간 나는 직감했다.

‘어? 이거 죽겠는데?’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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