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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5

        

       길리어스가 떠난 이후, 나는 제자리에 멈춰있었다.

         

       아무래도 스승님을 떠나보내며 너무 많은 심력을 소모한 모양이었다.

         

       나는 스스로가 방전된 것을 느끼며 마른 세수를 했다.

         

         

       피곤했다.

         

       그만 돌아가고 싶었다.

         

       아무 생각 없이 침대에 누워, 가만히 눈을 감고 싶었다.

         

       나는 작은 소망과 함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길리어스라는 거물과 안면을 터두었으니… 그건 좋다고 봐야 하나.’

         

         

       나는 애써 지친 스스로를 달랬다.

         

       그렇게 잠시 피로를 곱씹고 있던 와중, 근처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면 의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리시트 공자님.”

         

       “……라인하르트 영식?”

         

         

       원작의 주인공, 앨런이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녀석은 뜬금포로 나에게 동행을 요청했다.

         

       그의 표정은 비장함으로 덧칠되어 있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잠깐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좀 피곤한데…”

         

         

       순간 거절하고픈 마음이 올라왔지만, 애써 끊어냈다.

         

       앨런이 이렇게 진지한 태도로 말하는 걸 보면 보통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겠지.

         

       나는 비틀거리는 시야를 붙잡으며 앨런의 요청을 수락했다.

         

         

       “……아니, 잠깐이면 괜찮겠지.”

       

       “감사합니다. 그럼 저를 따라와 주십시오. 사람들의 귀가 없는 곳으로 가겠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앨런은 나를 이끌고 장례식장을 벗어났다.

         

       그리고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골목진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그에 내가 의문에 젖은 시선을 보내고 있으니, 녀석이 드디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리시트 공자님.”

       

       “그래… 무엇 때문에 이렇게 구석진 곳까지 왔는지, 설명해봐라.”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질문을 허락하지.”

         

         

       앨런은 머뭇거리는 듯 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에게서 비롯된 물음은 흐릿해져 있던 나의 의식을 되돌아오게 만들었다.

         

         

       “이번 수학여행 습격 사건에서 사망한 루카스 수석 교수… 공자님의 짓입니까?”

       

       “……뭐?”

         

         

       순간 잘못 들었나 하는 마음에 미간을 굽혔지만.

         

       앨런은 그런 나에게 확인 사살을 던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했다.

         

         

       “당신이 죽인 거냐고 물었습니다.”

       

       “……”

         

         

       질문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스승님을 죽였냐고…?

         

       대체 어떤 생각으로 그런 추측을 하는 것일까.

         

       안 그래도 어지러운 머리가 다시 한 번 혼란으로 젖어들었다.

         

         

       나는 침묵과 함께 지끈거리는 미간을 짚었다.

         

       그 와중에도 앨런은 나를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대답해주십시오… 정말 공자님입니까?”

         

         

       속이 울렁거렸다.

         

       금방이라도 나를 이루고 있는 파편들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위태로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보았지만, 계속되는 앨런의 목소리가 나를 괴롭혔다.

         

       나는 구역질을 삼키며 머리를 주먹을 꽉 쥐었다.

         

         

       어떤 과거가 뇌리에 떠올랐다.

         

       연회장 습격 사건이 있었던 직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어떤 용무이십니까, 리시트 공자님.

         

       -그만…! 거기서 멈춰주십쇼!”

         

         

       그래, 기억났다.

         

       그때도 너는 나를 노려보고 있었지.

         

       마치 악당을 마주한 용사처럼.

         

       기이할 정도로 똑같은 구도와 똑같은 장면이었다.

         

         

       다만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면.

         

       오늘은 내가 너의 미숙을 넘어가 줄만큼 마음의 여유가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나는 끊어지는 이성을 실감하며 입술을 달싹였다.

         

         

       “물음에 대답해주십시오!”

         

       “앨런.”

         

       “물음에 대답…!”

         

       “이빨 꽉 물어라.”

         

         

       -빠악!!

         

       다음 순간, 나의 주먹이 앨런의 안면을 강타했다.

         

       둔탁한 충격과 함께 일그러지는 소년의 얼굴.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대로 다리를 걸어 녀석을 넘어뜨렸다.

         

         

       “으흑…?!”

         

         

       엎어진 몸뚱아리 위로 올라탄 나는, 앨런이 저항할 수 없도록 무릎을 고정시켰다.

         

       그리고는 곧장 녀석의 턱을 팔꿈치로 내리찍었다.

         

       팔이 움직일 때마다 손끝이 피로 물들고, 불쾌한 타격감이 전해져왔다.

         

       나는 주먹질을 이어가며 차분하게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빠악, 빡! 뻐억!

         

       “너를 이해해줘야 하는데, 괜찮다며 넘어가줘야 하는데… 오늘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구나.”

         

       -빡! 콱!! 콰득…!

         

       “너를 동경하고 애정했지만, 이제는 모르겠다. 그저……”

         

       -빠악…!

         

       “지금은 네가… 너무나도 밉구나.”

         

         

       어쩌면 이것은 나의 잘못일지도 몰랐다.

         

       나는 알고 있다.

         

       네가 별 이유 없이 이런 의심을 할 인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아마 나의 어떤 의심스러운 부분 때문에, 이렇게 독대를 요청한 것이겠지.

         

       분명 너에게도 깊은 고심이 있었을 거다.

         

         

       -뻐억! 팍!

         

       하지만 말이다, 앨런.

         

       나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다.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절망 속에서 싸워나갔다.

         

       그리고 의지했던 스승님을 잃었다.

         

         

       부디 나를 용서해라.

         

       이런 상황에서까지 분노를 참기엔, 내가 너무 부족하구나.

         

         

       -빡! 퍼억!

         

       체념으로 물든 폭력은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 없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슬픔과 회한으로 점철된 무의식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 나의 폭주를 멈춘 것은, 다름 아닌 가녀린 소녀의 음성이었다.

         

         

       “그만…! 이제 그만하세요, 라이덴 씨…!”

         

         

       비명과 함께 달려와 내 팔을 붙잡는 백발의 소녀.

         

       앨런의 히로인들 중 하나인 성녀, 로레인이었다.

         

       나는 죽은 동공을 움직여 그녀를 응시했다.

         

       로레인은 반쯤 울먹이며 나를 막아내기 위해 끙끙거리고 있었다.

         

         

       “라인하르트 영식은 저를 모욕했습니다. 이건 그에 대한 대가이고요.”

         

       “이, 이 정도면 충분하잖아요…! 그만 용서해주세요!”

         

       “충분하고 안 하고는 제가 정합니다. 대체 무슨 권리로 저를 막아서시는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그럼 성녀님께서 대신 대가를 받기라도 하시겠습니까?”

         

         

       내가 주먹을 쥐며 그리 묻자, 로레인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었다.

         

       그녀는 얼어붙은 채로 손을 떨더니 이내 결심했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제가 받을게요… 저는 어차피 금방 치, 치유되니까…”

         

       “……”

         

         

       나는 그런 로레인을 질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평소였다면 역시 첫 번째 히로인이라며 박수를 쳤을 대목이었지만.

         

       오늘은 엿 같은 기분 밖에 들지 않았다.

         

         

       뭐랄까, 정말 악당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그것도 좋지 않은 쪽으로.

         

       나는 깊은 한숨과 함께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의식을 잃은 채로 쓰러져 있는 앨런을 일으켜, 로레인의 품에 넘겨주었다.

         

         

       “정말 위험한 부분은 피해서 때렸습니다.”

         

       “네…?”

         

       “성녀님께서 조금 치료해주시면 금세 팔팔해질 겁니다. 상처도 없을 거고요.”

         

       “네, 네에…”

         

       “녀석이 깨어나면 전해주십시오.”

         

         

       나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등을 돌렸다.

         

       그리고는 많은 감정들이 뒤섞인 한 마디를 남기며 자리를 벗어났다.

         

         

       “……한동안, 제 눈앞에 나타나지 말아달라고.”

         

         

       과정도, 결과도, 기분도.

         

       전부 좆 같기 그지 없는 하루였다.

         

         

         

       ***

         

         

       하늘이 어둑어둑해진 저녁.

         

       나는 시간이 늦었음에도 기숙사로 복귀하지 않았다.

         

       별 이유는 없었다.

         

       그냥… 조금 혼자 있고 싶은 기분이 들었기에.

         

       나는 스승님의 장례식이 이루어졌던 공원, 그 근처에 위치한 벤치에 앉아있었다.

         

         

       “……”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힘을 주고 싶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진한 탈력감이 선사하는 중독적인 허무.

         

       나는 그것을 천천히 곱씹으며 숨을 내쉬었다.

         

       사멸초를 물고 있던 입술 사이로 끈적한 연기가 하얗게 피어났다.

         

         

       손이 따끔거렸다.

         

       자잘한 상처가 남아있는 주먹을 보고 있으면.

         

       앨런의 얼굴을 구타하던 순간의 감각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

         

       나는 팔이 미약하게 떨려오는 것을 느끼며 미간을 짚었다.

         

         

       -띠링!

         

       [괜찮으십니까.]

         

         

       별안간 들려오는 기계음이 나의 안부를 물어왔다.

         

       나는 상태창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작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네가 보기엔 어땠어?”

         

         

       -띠링!

         

       [무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까 전의 일 말이야… 내가 너무 과격했던 걸까.”

         

         

       -띠링!

         

       [본 시스템이 함부로 속단하기엔 복잡한 상황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 뭐… 나도 대답을 바란 건 아니었어.”

         

         

       나는 자조적인 미소와 함께 머리를 쥐어뜯었다.

         

       뭉게뭉게 흩어지는 한숨이 시야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렇게 안개에 취한 것처럼 형편 없는 자세로 늘어져 있으니.

         

       상태창이 다시 한 번 말을 걸어왔다.

         

         

       -띠링!

         

       [심리 상태가 불안정하신 것 같습니다.]

         

         

       “말했잖아. 나는 멀쩡하다고.”

         

         

       -띠링!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십시오. 회피는 마음을 더욱 병들게 만들 뿐입니다.]

         

         

       “너도 사람 말 참 안 듣는구나…”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상태창은 쉴세 없이 나를 쪼아대고 있었다.

         

       몰아치는 잔소리 공격에 패배한 나는 결국 항복 의사를 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 그래… 나 힘들다. 알겠으니까 그만 좀 괴롭혀라.”

         

         

       무심하게 토해낸 본심은 바람의 궤적을 따라 부서졌다.

         

       나는 입에 머금고 있던 침묵을 개워내며, 한탄을 하듯이 독백을 이어갔다.

         

         

       “사실… 앨런의 말에 울컥해버렸어.”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거든.

         

       스승님은 정말 나 때문에 돌아가신게 아닐까 하는 생각.

         

         

       스승님의 죽음은 원작에서도 명확히 예견되어 있었다.

         

       앨런이 3학년이 되던 시점, 친하게 지내던 교직원으로부터 그의 부고 소식을 전해 듣는 이야기가 있었으니까.

         

       원작의 내용대로라면, 적어도 스승님은 2년 뒤까지는 무사하셨어야 했다.

         

       하지만…

         

         

       “……원작은 틀어졌고, 스승님은 돌아가셨지.”

         

         

       원작을 비튼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디가 잘못되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했던 행동들의 여파로 이야기의 흐름이 바뀌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앨런의 말대로야, 스승님은 나 때문에 돌아가신 걸지도 몰라.”

         

         

       스스로는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정말 잘하고 있는 걸까.

         

       내가 더 노력했다면 스승님을 구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띠링!

         

       [당신은 이미 수십 만의 목숨을 살렸습니다.]

         

       [연회장 습격 사건에서 황녀를 지키지 못했다면, 제국에는 혼란이 도래했을 겁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수학여행에서도, 언데드 군단을 저지함으로써 많은 학생들을 구해내지 않았습니까.]

         

         

       “글쎄, 잘 모르겠어…”

         

         

       나는 열정적인 상태창의 위로에 중얼거렸다.

         

       유감스럽게도 녀석의 문자는 나에게 닿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사멸초를 태우던 입가에는 어느새 쓴웃음이 화상처럼 번져있었다.

         

         

       “스승님이 보고 싶네… 이런 상황에서 스승님이라면, 나는 잘하고 있다고 말씀해주셨을 텐데.”

         

         

       새삼 느껴지는 빈자리에 나는 허공으로 시선을 던졌다.

         

       어느새 하늘은 검게 물들어 완전한 밤이 되어 있었다.

         

       나는 어스름의 고요 속에서 천천히 익사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내가 눈을 감으며 쏟아지는 회명을 받아들이고 있던 순간.

         

         

       “네 잘못이 아니야, 라이덴…!”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익숙한 소녀의 음성에 나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며 반응했다.

         

         

       “저하…?”

         

         

       내 앞으로는 눈물을 그렁거리고 있는 루시가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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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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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s a Bastard Aristocrat

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s a Bastard Aristocrat

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d by a Bastard Aristocrat DKPBA 망나니 귀족에 빙의한 우울증 검도 선수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Don’t worry, Mom.

This time I will be truly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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