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65

    <65 – 이건 진짜 농담 아니야>

     

    제국출신 마도학 교수 레이브.

    그는 드래곤 교장의 서민친화적인 아카데미 운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국에서 기껏 거액의 지원금을 지불해도 그 수혜를 보는 것이 제국귀족이 아닌 변방귀족에 심지어는 미개한 평민들까지 포함되어 있다니.

     

    “용납 못할 일이지. 부의 재분배도, 상위계급에의 진급도 무엇 하나 허락할 수 없다. 이 레이브 교수의 마도학 강의에서만큼은 더더욱.”

     

    그렇기에 시험을 제출했다.

    엄청난 점수배점이 걸린 쪽지시험을.

    제국귀족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시험으로.

     

    “헌데 뭐냐, 이 결과는!”

     

    이사벨 – 19/20

    유피 – 18/20

    매스각키 – 17/20

     

    황실의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자라온 제국의 2황녀 매스각키.

    유일신 소페미아님에게 선택받아 교황청의 교육을 받으며 자란 성녀.

    제국의 자랑이어야 할 이들의 위에 제국의 일원도, 귀족의 핏줄도 지니지 못한 미개한 평민의 이름 따위가 제일 위에 올라섰다.

     

    “황녀님과 성녀는 막중한 책무를 짊어진 몸이니 이해할 수 있다고 쳐도, 이 결과는 또 어떻게 된 것이냐. 이걸 납득하라는 건가!”

     

    A그룹 평균 – 14.2

    B그룹 평균 – 13.7

     

    평균점수에서도 제국의 동량들의 역량이 변방의 하찮은 것들에게 밀렸다.

    981기 제국입학생들의 역량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예년에 비하면 오히려 평균점수는 훨씬 높은 축에 속했다.

    다른 해라면 제국출신도 평균 10점을 넘으면 우수하다 평가했을 쪽지시험이니까.

    변방출신은 평균 5점이나 넘으면 용한 수준이라고 여겼을 시험이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다른 해의 2배를 웃도는 평균점수의 상승.

    비정상적인 변화에 레이브는 깨달았다.

     

    “시험지가 유출되었군.”

     

    침입의 흔적은 없다.

    문제지도 답안지도 모두 방호술식은 여전하다.

    그럼에도 안전하다 장담할 수 없게 만드는 눈엣가시처럼 성가신 존재가 하나, 이 아카데미에 있다.

     

    “브론즈 디 아스트라다. 의적놀음이나 하는 건방진 범죄자 녀석. 네년의 짓이구나!”

     

    제국귀족 출신 교수의 체면을 이렇게까지 구기게 만들다니, 제국에서라면 사형감이다.

     

    “오늘의 수치는 절대 잊지 않겠다.”

     

     

    * *

     

     

    “저기, 모처럼 시험지를 구해놓고 A그룹 학생 전원한테 공유하다니. 아깝지 않아?”

     

    티토소가는 아까워 죽겠다는 얼굴로 투정했다.

    이사벨은 문제지를 슥 집어 등 뒤로 감췄다.

     

    “그러네. 아까우니까 안 보여줄래.”

    “아앗, 좀 더 보여줘! 빨리이. 아직 문제랑 정답 못 외웠다고!”

    “그럼 군소리 말고 조용히 보기만 해.”

     

    이사벨은 마도학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쪽지시험 문제지와 답안지를 모두 공유했다.

    물론 그걸 받아낸 것은 오크노디의 활약 덕분이었고, 그녀도 오크노디에게 문제지와 답안지를 양도받은 신세였다.

     

    “괜찮아? 이런 귀한 걸 나한테 줘도. 제국출신 학생에게 보여준다면 포인트를 잔뜩 받을 텐데.”

    “마도학 강의를 듣는 사람 중에 저랑 제일 친한 사람은 이사벨인걸요!”

     

    이익이 아닌 친분을 중시한다.

    모험단에서는 당연한 상식이지만 막대한 이권은 그런 상식도 무너지게 만든다.

    세상 모든 모험단이 에소니아 모험단처럼 좋은 사람들로만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아는 이사벨에게는 오크노디의 호의가 더욱 눈부시게 보였다.

    돈 몇 푼에 동료를 팔고 배신하는 쓰레기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귀족가의 암살자로 키워진 오크노디가 이렇게까지 선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기적이었다.

     

    “……고마워.”

    “히힝. 별 말씀을요.”

     

     

    * *

     

     

    브론즈 교수는 기껏 큰돈이 될 시험지와 답안지를 손에 넣고도 그것을 무료로 친구에게 넘겨주는 오크노디의 행동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의적의 장점은 돈이 아주 많이 된다는 것.

    그 장점을 체험하도록 만들고자 돈 되는 상품을 가져와서 진품과 가짜를 감별하는 실습을 진행했다.

     

    “이 세 장의 종이 중에 어느 것이 진짜 시험지일지 맞춰보게. 가장 많은 문제를 맞힌 학생에게 이 시험지와 답안지를 상품으로 주지.”

    “단, 이 시험은 진짜를 찾는 것뿐만 아니라 가짜가 어째서 가짜인지도 맞춰야하네.”

     

    말이 되지 않는 글자로 이루어진 조잡한 문제지부터 시작해서 글씨체만 다른 문제지, 종이의 재질이 다른 문제지 등등 뒤로 갈수록 원본에 가까운 문제지가 나타나는 실습시험.

    학생들은 물건의 진위유무를 판별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사항이 얼마나 많은지를 깨달으며 ‘안목키우기’에 필요한 요소를 자연스레 터득했다.

    그렇지만 이미 완성형에 가까울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학생도 있었다.

    물론 그 대상은 오크노디였다.

     

    “거짓말. 우린 2학년에 비슷한 실습도 한 번 겪어봤는데, 같은 2학년도 아니고 1학년한테 지다니.”

    “현역 모험가랑 같은 수준이면 선배도 나쁜 성적은 아니었어요. 상대가 나빴을 뿐이죠.”

     

    이사벨은 빅스톤을 위로했다.

    전원이 통과한 1단계 진짜찾기와 달리, 2단계부터는 가파르게 난이도가 올라갔다.

    4단계에 이르러서는 이사벨과 빅스톤도 탈락을 면치 못할 정도로 수준이 높아졌다.

     

    “너, 1학년 맞아? 너무 잘 맞추잖아.”

    “그러는 선배님의 실력이야말로 깜짝 놀랐습니다. 작년에 낙제한 학생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눈이 좋으십니다.”

    “당연하지. 리즈나 상단의 후계자이니 안목에는 나름 자신이 있는걸.”

    “굉장하군요. 좋은 요령이라도 있습니까?”

    “내 이름을 본딴 상단의 후계자가 된다는 쪽팔리는 경험을 하면 수치를 당하기 싫어서라도 공부하게 될 걸. 너도 지젤상단 같은 걸 꾸려보지 그래?”

    “하하. 부모님께서 자식사랑이 각별하셨군요. 그래도 전 쪽팔리니 사양하겠습니다.”

     

    빅스톤의 여자사람친구 리즈나는 지젤과 같이 5단계에서 탈락했다.

     

    “……쯧. 눈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건만.”

    “……동감이다.”

     

    과묵한 검객 싱과 과묵한 2학년 선배.

    두 과묵한 남자는 6단계에서 탈락했다.

    그 결과, 문제지와 답안지는 6단계 통과자 오크노디의 것이 되었다.

    아무리 실력과 재능을 고루 갖춘 학생들이라도 마력위조물에 마법해제주문까지 막혀있다면 원본을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럼 새로운 마법을 걸어보면 되잖아요! 이미 마법이 잔뜩 걸린 위조품은 마법이 걸릴 용적도 남지 않을 테니, 마법이 걸리지 않는 종이가 가짜죠.”

    “정답이네. 하지만 오크노디 학생은 마법을 걸지 않았는데 어떻게 진짜를 찾았지?”

    “음…… 감으로?”

     

    무조건 오른쪽에 있는 종이가 정답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오크노디는 대충 얼버무렸지만 이미 오크노디를 수제자로 키울 마음이 만반인 브론즈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이 좋은 것도 좋은 의적의 자질이라며 만족했다.

    하지만 이득을 챙기지 못하고 주변 사람에게 쉽게 넘겨주는 태도는 의적의 의로운 면모를 대변할지는 몰라도 부유함을 충족시킬 수 없는 태도였다.

     

    “다음에는 교우관계를 조사해서 사적인 친분을 지닌 학생이 한 명도 없는 교수의 강의와 연관된 물건을 가져와야겠군.”

     

    명색이 제국귀족이라는 작자가 제 시험지와 답안지 하나 간수하지 못했다는 평판을 듣고 싶지 않은 이상에야 소문을 내지는 않았을 터.

    다음 표적을 대상으로 한 도둑질도 그리 어렵지는 않으리라.

     

    “이왕이면 성장에도 도움이 되는 물건이 좋을지도 모르겠군.”

     

    한의학 교수의 풍유환豊乳丸을 목표로 해볼까.

    아니면 연금술 교수의 키가 자라는 성장의 비약을 노릴까.

    오크노디와 같은 장난기가 감도는, 하지만 그녀는 지니지 못한 어른스러운 키와 가슴을 지닌 브론즈 교수는 다음 강의를 준비할 생각에 기분 좋게 웃었다.

     

     

    * *

     

     

    2교시 안목 키우기 강의 후, 점심시간.

    약속대로 식당에서 다시 모인 교장의가르침 강의시간에 짰던 낙오자조.

    오크노디는 깃발을 잔뜩 가져온 모두를 보며 깜짝 놀랐다.

     

    “와. 어떻게 깃발을 다들 열 개씩이나 챙겨왔어요?”

    “팼다.”

     

    헤스티아의 짧고 굵은 대답에 좀처럼 당황하는 일이 없는 오크노디도 눈을 깜빡거렸다.

     

    “네?”

    “같이 팼어요.”

     

    롯토도 어딘지 모르게 후련해 보이는 얼굴을 하며 그리 대답했다.

     

    “농담이죠?”

    “난 안 팼어.”

     

    지고쿠는 떳떳했다.

     

    “안패는 대신 총으로 쐈거든.”

     

    대답을 듣기 두려웠지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를요? 훈련용 허수아비?”

    “뭐겠어? 깃발이 있는 동급생들이지.”

    “네에에?!”

    “바보야? 애초에 훈련용 허수아비를 왜 패고 쏘겠어. 깃발 모으기도 바쁜데.”

    “패고 쏘는 것부터 이상하거든요?!”

     

    식당을 둘러보니 얼굴이 뭐에 맞은 것처럼 푸르딩딩한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눈을 마주치기 무섭게 “히익”이나 “허억”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리고 덜덜 떠는 모습을 보니 누구한테 맞아서 저리 됐는지도 뻔했다.

     

    “얼른 따라와요.”

    “뭐하러? 숨겨둔 깃발 없는 건 벌써 확인했는데.”

    “나오면 깃발 하나당 총알구멍 하나라니까 다 갖다바치던데?”

     

    981기 1년생 무력상위권다운 헤스티아와 지고쿠의 난폭한 대답이었다.

     

    “사과하러 가야죠!”

    “저런 약한 놈한테?”

    “오히려 저놈이 사과해야 하지 않나? 이렇게 약한 주제에 우리랑 동급생이라서 죄송하다고?”

    “아카데미 생활 오늘만 할 거예요? 이번엔 전투관련 강의라 두 분이 유리했지만 다음에 머리를 쓰는 강의가 나오면 두 분이 유린당할지도 모른다고요.”

    “저런 약골들한테? 내가?”

     

    지고쿠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백과사전 같은 걸로 머리를 찍기라도 하나?”

    “…상대를 지정해서 지식대결로 이긴 쪽이 점수를 얻고 진 쪽이 점수를 잃는 시험도 있어요.”

    “아, 그건 곤란하지.”

     

    결국 세 사람은 얌전히 오크노디를 따라 얼굴에 멍자국이 남은 학생에게 사과를 하러 갔다.

     

    “어젯밤에 제 조원들이랑 불상사가 있었다고 들었어요. 미안해요.”

    “그게 사람을 이 지경으로 패놓고 할 소리야…? 덕분에 난 점심메뉴로 나온 가라아게도 못 먹고 죽만 먹고 있다고.”

    “와 진짜 심했다.”

     

    먹을 것도 못 먹을 정도로 패는 건 너무하잖아.

    눈에 쌍심지를 켜고 조원들을 노려보자 헤스티아가 어쩔 줄 몰라하며 고개를 숙였다.

     

    “정말 미안하다.”

    “그럼 깃발 돌려줘.”

    “네? 깃발을 왜 돌려줘요?”

    “사과하러 왔다면서?”

    “사과했잖아요.”

     

    누가 깃발 돌려준대?

    사과만 한다고.

     

    “농담이에요. 돌려드릴게요.”

    “휴…”

    “개당 100포인트에.”

    “하하. 그것도 농담이야?”

    “아닌데요.”

     

    이건 진짜 농담 아니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팬아트게시판에 파괴왕님의 컬러풀 메스가키 오크노디가 추가되었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