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65

       게임에서는 아무리 오랫동안 걸어 다녀도 캐릭터가 지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캐릭터가 걸어 다니기만 하는 것으로 지친다면 플레이하는 입장에서 굉장히 짜증 나는 일일 테니까.

        

       한 시간 정도 돌아다닌 캐릭터가 10분씩 쉬지 않으면 움직이지 못한다니, 플레이타임이 기나긴 JRPG같은 부류의 장르에서는 치명적인 단점이 될 거다.

        

       게다가 이런 게임에서는 달리는데도 큰 제한을 두지 않는다. 액션 RPG가 아닌 이상은 스테미너 제한 같은 것을 두지 않더라도 플레이하는데 크게 영향이 가지는 않으니까. 어차피 적과 싸울 때마다 전투 모드로 바뀌게 되는데, 굳이 빠른 이동에 제한을 둬서 플레이만 답답하게 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그건 게임에서나 그렇다는 것이다.

        

       “헥…… 헥…… 헥…….”

        

       내 뒤쪽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엘리멘탈 베어가 있는 곳은 깊은 숲속이었다. 길이 없는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본격적인 산도 아니었지만, 마을의 단단한 길에 비해서는 걷는 데 힘이 많이 드는 오솔길이었다.

        

       당연히 그런 길을 수십 분씩 쉬지 않고 걸으면 체력에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

        

       그나마 나는 최소한의 단련 정도는 해두었다. 다른 주인공들처럼 초인적인 몸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더라도 나름대로 체력 자체가 최악인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평소에는 운동과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미아 크로우필드였다.

        

       “괜찮아?”

        

       이 악물고 표정을 유지하며 따라가고 있는 나는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는지, 클레어는 내 뒤쪽에 겨우 붙어 따라오고 있는 미아 크로우필드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물었다.

        

       “헥, 괘, 괜찮아, 요…….”

        

       “아니, 전혀 안 괜찮아 보이는데.”

        

       앨리스가 말했다.

        

       “차라리 여기서 쉬고 가도록 하죠. 크로우필드 영애뿐만이 아니라 저희도 최적의 상태로 사냥감을 만나는 쪽이 나으니까요.”

        

       “확실히, 그건 그래. 여기서 잠깐 쉬자.”

        

       하늘에서는 해가 조금씩 떠오르고 있었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식사한 뒤 나오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런 한밤중에 숲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다들 알고 있는 모양이었으니까. 다만 그사이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고, 의뢰 내용을 한 번 더 복기하고 숲으로 들어가기 전 준비물을 한 번 더 점검했다.

        

       내가 게임을 아무리 열심히 했어도, 제국의 가도처럼 이 숲도 게임과 똑같이 생기지는 않았다. 마을의 형태는 게임과 똑 닮아 있었지만…… 이런 넓은 숲의 크기를 게임에 똑같이 구현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했을 테니까.

        

       “하아…….”

        

       바닥에 쪼그려 앉으며 미아 크로우필드가 숨을 내쉬었다.

        

       “…….”

        

       나는 허리에 차고 있던 수통을 꺼내 미아 크로우필드에게 건넸다. 아침에 팔팔 끓여서 수통에 넣은 뒤 허리춤의 가죽 주머니 안에 넣어두어서 아직 온기가 조금 남아있었다.

        

       “아…….”

        

       내가 그 수통을 건넸다는 것에 미아 크로우필드는 조금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고, 고마워요.”

        

       하지만 주변에서 보는 시선 때문인지 차마 수통을 거절하지는 못했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수통을 받아 열고 조심스럽게 물을 한 모금 마신 미아 크로우필드는 “후우…….”하고 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의뢰 중 몇 개는 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겠는데?”

        

       제이크가 꽤 냉정한 소리를 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제이크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 미아 크로우필드는 둘째치고, 나의 체력에도 한계가 있으니까. 남들이 보기에는 무슨 철인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단련하더라도 미아 크로우필드를 제외하면 여기 있는 누구에게도 힘과 체력으로는 이길 수 없다.

        

       “…….”

        

       문제는, 그렇다면 게임의 스토리는 어떻게 되냐는 것이다.

        

       서브 퀘스트 몇 개 정도야 사람이 빠져도 상관없지만, 메인 퀘스트에서는 파티가 고정된다. 뭐, 지금도 게임과는 아주 다르긴 했다. 게임에서는 한 파티에서 한 번에 전투에 들어갈 수 있는 파티원은 네 명이 고작이었으니까.

        

       이렇게 여러 사람이 한 번에 다 같이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이미 게임에서 많이 벗어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메인 퀘스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인물이 체력이 고갈되거나, 다치거나, 지쳐서 퍼져버리면 어떻게 되는 거지?

        

       혼자 진지하게 생각에 빠져있는데, 미아 크로우필드는 자신을 바라보는 나를 어떻게 생각한 건지 조금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나에게 다시 수통을 건넸다.

        

       나는 말없이 수통을 받아들고 안에 있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아직 따뜻한 물이 목 안을 타고 내려가며 속을 조금이나마 덥혀주었다.

        

       ……하긴, 아직 이야기 진행만 따지면 극 초반이니까. 조금 더 지켜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을 거다.

        

       그리고 뭐.

        

       이 의뢰는 샤를로트가 고르고 레오와 클레어가 찬성한 것이 아닌가.

        

       세 사람은 엘리멘탈 베어를 확실하게 쓰러뜨릴 실력이 있다고 스스로 판단했고, 그레이스 가의 이름을 들은 안내인도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으니, 어떻게든 될 거다.

        

       고작 서브 퀘스트에서 심하게 다치는 사람이 나오겠어?

        

       *

        

       엘리멘탈 독은, 늑대랑 크기가 비슷했다.

        

       다만 신체 능력도 늑대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몸에 마르마로스를 품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게 총알을 막아낼 정도로 강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짐승은 작중에서 첫 전투에서 만나는 몬스터였다.

        

       당연히 여기서도 그렇게 강할 수는 없는 몬스터다.

        

       “크오오오오!”

        

       하지만, 광분해서 그렇게 울부짖는 ‘붉은 발톱’은 그 분위기가 달랐다.

        

       ……그러니까, 이번에 우리가 사냥해야 할 짐승은 ‘곰’이었다. 그 가죽과 뼈가 가끔은 총알도 튕겨낸다는 곰.

        

       그런데 거기에 화 속성 마르마로스를 품고 있어서 본능적으로 마법까지 사용하는 곰.

        

       덩치도 내가 동물원에서 봤던 북극곰보다 두 배는 더 커서 그 머리를 올려다보려면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혀야 할 정도였다.

        

       보통 곰은 입 다물고 멍하니 앉아 있으면 조금 귀엽기라도 하지, 엘리멘탈 베어는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해도 야수라는 분위기가 철철 흘러넘쳤다.

        

       “그럼, 간다!”

        

       레오가 그렇게 말하고, 클레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크오오!”

        

       엘리멘탈 베어가 팔을 휘두르는 것을 재주 좋게 피한다. 레오는 옆으로 펄쩍 뛰었고, 클레어는 고개를 휙 숙였다. 그 날카로운 발톱에 클레어가 뒤로 묶은 머리카락의 끝자락이 조금 잘려 나가는 것을 보면 오히려 내 오금이 더 저릴 정도였다.

        

       “우리도 가자고, 공주님!”

        

       “……그냥 샤를로트라고 부르세요.”

        

       제이크와 샤를로트가 그다음으로 달렸다. 두 사람은 엘리멘탈 베어의 뒤쪽으로 돌아서 검을 휘둘렀다. 물론 두꺼운 가죽 때문에 쉽게 쓰러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클레어가 자기 장기인 채찍 같은 검기로 조금 거리를 둔 채 엘리멘탈 베어의 시선을 빼앗고, 그 틈에 레오가 곰의 정면으로 파고들어 검을 휘둘렀다. 한 번에 치명상을 입히지는 못했지만, 그 짐승의 체력은 확실하게 빼앗아 가고 있었다.

        

       뒤쪽의 샤를로트와 제이크 쪽으로 곰이 고개를 돌릴 때마다 앞쪽의 두 사람이 다시 공격해서 시선을 앞으로 되돌리는 식으로 싸움은 전개되었다. 묵직한 타격과 베기를 중심으로 하는 그레이스 가의 검술, 그리고 세검을 쓰는 샤를로트나 빠르게 치고 빠지는 전술을 쓰는 제이크의 검술은 나름대로 합이 잘 맞았다.

        

       “그럼, 나도 가볼게.”

        

       앨리스가 검을 꽉 잡은 채 말했다.

        

       “뒤를 부탁해!”

        

       “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앨리스가 앞으로 확 튀어 나갔다.

        

       황실의 검술은 한 번 한 번의 공격에 큰 무게를 두는 검술이었다. 같은 양손검을 쓰는 그레이스 가의 검술보다 더 느렸지만, 동시에 한 방의 공격이 어마어마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검기만으로 바닥에 금이 갈 정도니까.

        

       게임에서는 ‘속도는 느린 대신 한 방 기술이 강한’ 근접 딜러가 앨리스였다.

        

       레오와 클레어의 사이를 통해 순식간에 엘리멘탈 베어를 향해 달려 나간 앨리스가 검을 휘두르자, 레오와 클레어의 검기에도 자잘한 상처만 입던 엘리멘탈 베어의 뱃가죽이 확 갈라지면서 피가 튀었다.

        

       “그워어어어!”

        

       조금 전의 패기 넘치는 소리와는 다른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이 귀를 찢을 듯 크게 울려 퍼졌다. 쿵, 쿵, 하고 분노에 찬 엘리멘탈 베어가 땅을 몇 번이나 내려쳤다. 마른 잎이 두껍게 깔린 바닥에 불꽃이 일었다.

        

       “힉.”

        

       그 광경을 보고 미아 크로우필드가 가느다란 비명을 질렀다.

        

       “우리는 작전대로 하면 됩니다.”

        

       나는 그런 미아 크로우필드에게 침착하게 말했다.

        

       게임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박진감이 넘치고…… 더 잔인하게 느껴지는 장면이었지만, 이미 이전에 사람도 폭사시켜보고 늑대 이마에 총알도 박아 본 나였다. 이제 와서 저런 광경에 충격받을 이유는 없었다.

        

       “수속성 마법을 준비해주십시오. 저는 당신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사격을 준비하겠습니다.”

        

       내 말에 미아 크로우필드는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어깨를 조금 움츠린 채 전투 현장에서 다소 떨어진 곳으로 이동한 미아 크로우필드가 지팡이를 들고 주문을 캐스팅하는 것을 보고, 나도 움직였다.

        

       시간이 충분했다면 나무에 올라갔겠지만, 지금 그럴 시간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근처의 커다란 바위 위로 올라가 한쪽 무릎을 꿇어 앉아쏴 자세를 취한 채 엘리멘탈 베어의 머리를 향해 총을 조준했다.

        

       머리가 큼지막하긴 했지만, 괴성을 지르며 레오와 그 일행을 향해 미친 듯이 움직이는 머리는 쉽게 조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기회가 몇 번이나 있으니까.

        

       손가락을 방아쇠에 얹고, 그대로 당겼다. 단단한 쇠가 손가락을 세게 밀어내다가, 결국 내가 준 힘에 무너지듯 뒤로 향하고,

        

       탕!

        

       어쩌면 군대에서 들었던 총소리보다 훨씬 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큰 총소리가 울렸다.

        

       내가 시간을 되돌리지 않고 한 번에 곰의 머리를 맞출 수 있었던 것은 요행이었다.

        

       “크아오!”

        

       하지만 사냥감은 한 번에 쓰러지지 않았다. 한쪽 눈에서 피를 뿜으면서도 몸을 쭉 펴고 일어나는 그 모습은 솔직히 조금 무서울 정도였다.

        

       그 사이에도 엘리멘탈 베어의 몸에는 상처가 몇 개씩이나 추가되었지만, 마치 그딴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곰은 나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격분.

        

       만약 저 곰에게 표정이 있다면 그런 분위기였을 것이다.

        

       나는 스코프로 곰의 오른쪽 눈에서 피와 투명한 무언가가 흘러나오는 것을 똑바로 보며, 손을 볼트에 올려 뒤로 잡아당겼다. 철컥! 딱 맞아떨어지는 총기 부품 특유의 경쾌하고 기분 좋은 움직임이 느껴지고, 동시에 팅, 하는 소리와 함께 탄피가 한 발 밖으로 빠져나갔다.

        

       다시 손을 앞으로 밀어내는데,

        

       “…….”

        

       곰의 등에서 불꽃이 치솟기 시작했다.

        

       살기니 뭐니 하는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내 기준으로도, 곰의 저 모습은 매우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물러서!”

        

       그 모습을 본 레오가 바로 외치고, 엘리멘탈 베어 근처에 있던 모두가 순식간에 뒤로 빠졌다.

        

       엘리멘탈 베어는 그 와중에도 굳이 자기를 둘러싸고 있던 인간들을 쫓지는 않았다.

        

       슈우욱—

        

       마치 주전자가 끓어오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고, 커다란 곰 머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벌어진 입은 나를 똑바로 향하고 있었다.

        

       “……아.”

        

       맞다.

        

       지나치게 짐승 같은 모습에 미처 떠올리지 못했었는데, 아제르나 전기에서는 잡몹들도 아무렇지도 않게 마법을 사용했다.

        

       그것도 인간이 사용하는 마법과 똑같은 이펙트의 마법을.

        

       인간은 주문을 외워야 하는 마법을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내심 궁금했었는데.

        

       곰의 입 깊숙한 곳에 불꽃이 이는 것이 스코프를 통해서 보였다.

        

       몸에서 직접 나가는 거였냐고!

        

       나는 급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탕, 하는 소리가 들리고, 어깨를 통해 총기의 반동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총을 쏘는 것과 동시에 반동에 스코프가 위로 들렸기에, 나는 그 총알이 곰의 볼을 뚫는 것은 바로 보지 못했다.

        

       그리고 동시에, 아까부터 미리 준비하고 있던 미아 크로우필드의 마법이 발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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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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