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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5

       교수회의.

         

       형식적으론 더 높은 결정 기구가 존재 하나 실질적으론 아카데미와 하늘섬의 각종 사안을 결정짓는 곳이었다.

         

       평소라면 교수들이 큰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아 입씨름했겠으나 지금은 뭔가 달랐다.

         

       가장 다른 점이라면 사방의 벽에 늘어선 병사들일 것이다. 완전무장 상태로 평범하게 대기 중이었으나 어째 교수들은 식은땀을 흘렸다.

         

       왜 교수들이 평소처럼 회의를 진행하지 않고 숨 막힐 듯한 얼굴로 눈치를 보는 걸까?

         

       설마 병사들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이 병사들은 크래프트 각하께서 팔짱을 끼고 으잉으잉 거리며 생각하다가.

         

       “교수회의는 중요 인사들이 한 공간에 있는 매우 위험한 타이밍인데 이렇게 호위가 부족하다니요? 테러라도 일어나면 큰일이잖아요!”

         

       라며 회의 도중에도 교수진이 호위받을 수 있게 배려해 주신 결과다.

         

       공작 영애 암살 계획과 무차별 테러 계획까지 발견된 상황에 교수도 안전할 순 없으니 크래프트 각하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모두 감사했다.

         

       물론 은혜도 모르는 일부 교수가 있긴 했다.

         

       모범적인 호레이스 교수를 사나운 기색으로 삿대질하고―이 상황에도 순진한 척 헤실헤실거리는 크래프트 각하를 모욕하긴 너무 무서웠다― 없는 경비대까지 부르긴 했으나 그런 배은망덕한 일부는 병사들에게 사지를 붙잡혀 끌려 나갔으니 이곳엔 없었다.

         

       여기 있는 교수들은 교수회의를 병사가 지켜주는 은혜에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물론 끌려간 교수가 어떻게 됐을지 격렬히 궁금해지긴 했으나 찰나였을 뿐이다. 그런 것쯤은 말 안 해줘도 알 수 있는 머리를 갖췄으니.

         

       그렇기에 교수들이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건 다른 이유였다. 가장 합리적인 이유라면 역시 상석의 학생 때문이 아닐까?

         

       교수로만 이루어진 교수회의에 학생이 참여하게 되며 드디어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 되었다. 질서가 바로잡히고 학교가 정상화된 것이다. 이례적 일이니 교수진은 긴장할 수밖에 없으리라.

         

       이런 긴장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누구보다 학생을 위했고 누구보다 떳떳할 모범적인 교수, 바로 호레이스 교수 같은 사람뿐이었다.

         

       크래프트 각하의 오른 자리에 앉은 호레이스 교수는 방긋방긋 웃었다. 웃음을 주체할 수 없는지 다소 경박한 입 모양이었다.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 된 정상화 상황이 그렇게나 흡족한 걸까? 여기 있는 교수들은 앞으론 저 모범적 태도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호레이스 교수를 모욕하는 존재가 이 자리엔 여전히 존재했다.

         

       『역시 이놈이 원흉이군. 첫 만남이 밀무역 적발일 때부터 알아봤다. 어린 크래프트, 이놈은 당장 쳐내야 한다. 이 사달을 내놓고 네 오른 자리에 당당히 앉은 걸 봐라. 아주 못된 놈이다.』

         

       다행스럽게도 악마의 사악한 속닥임은 아무도 듣지 못했다.

         

       권력 도파민에 머리가 뿅뿅 가버린 파스텔까지도 말이다.

         

       뿅뿅 뿅뿅~.

         

       도파민 뿅뿅 파스텔은 헤실헤실 웃으며 회의를 주도했다.

         

       “교수회의는 기존 입장을 철회하고 기사단과의 협조를 긴밀히 유지해 앨시어 벨라몬트 암살 계획을 차단하고 학생 안전을 도모하는 게 어떨까요? 벨라몬트에겐 기사단의 호위를 붙이고 아카데미 호위 병력은 더 늘리는 식으로요.”

         

       학생을 대표하는 학생회의 강력한 의견 표출. 표결에 부치자 만장 일치로 통과됐다.

         

       교수진은 그 어떤 때보다도 학생을 위해 일했다. 절대 완전무장 한 사병들 때문이 아니었다.

         

         

         

       #

         

         

         

       파스텔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몸을 비비 꼬며 풀린 입꼬리를 문질렀다.

         

       헤헤.

         

       성공한 하극상은 이렇게나 기분이 좋은 걸까?

         

       호레이스 교수의 도움과 협조를 받아 교수회의의 권한을 학생회로 가져왔다. 예산안 가결권부터 경비대 운용권 같은 거였다.

         

       당연한 절차!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니까!

         

       그런데 이런 선량한 목적으로 한 일이건만 어째 권한을 하나씩 손에 넣을 때마다 정신이 반짝반짝하고 마음이 둥실둥실 떴다.

         

       너무 짜릿해.

         

       “으헤헹.”

         

       몸을 격렬히 비비 꼬았다.

         

       흐트러진 분홍 머리카락을 빗겨 주던 악마가 떨떠름하게 내려봤다.

         

       『괜한 데 맛 들이지 마라. 권력에 중독되면 욕심은 계속 늘어나 감당 불가능할 정도가 된다. 욕망을 포기하든 포기하지 않든 끝이 좋지 않아.』

         

       평소처럼 착하게 답하려던 파스텔은 뭔가 떠올라서 정장 차림의 악마를 올려봤다.

         

       오이잉.

         

       『왜 그러지?』

         

       학생회 머리 위에 있던 교수회의를 무릎 꿇리니 이렇게나 기분이 좋다.

         

       파스텔 머리 위에 있는 악마님을 무릎 꿇리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소녀는 마음이 콩닥콩닥 두근두근.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 악마님.”

       『말해라.』

         

       마른침을 꼴깍.

         

       “실례되는 부탁 해도 될까요?”

         

       악마가 어이없어했다. 손에 든 빗을 한차례 돌리더니 파스텔의 머리카락을 빗어 내렸다. 분홍 머리카락이 길게 늘어지며 정리됐다.

         

       『실례되는 걸 알면 말하지 마라.』

         

       단호한 목소리.

         

       “그럴 수가아!”

         

       파스텔은 휘청였다.

         

       『뭐가 그럴 수가지. 실례된다고 생각했으면 말할 때 실례되는 부탁인 거다.』

         

       악마가 턱을 문질렀다.

         

       『흠. 말괄량이 머리로 고민했는데도 실례된다고 판단했다니, 정말 실례되는 부탁이겠군. 말도 꺼내지 마라.』

         

       하지 말라니 더 하고 싶어진 파스텔은 그냥 외쳤다.

         

       “악마님!”

         

       말하려고 보니 살짝 창피해서 눈을 질끈 감았다.

         

       “무릎 한 번만 꿇어주세요!”

         

       정적이 흘렀다.

         

       파스텔은 슬쩍 눈을 떠서 눈치를 봤다. 악마가 말없이 기막혀하며 내려봤다.

         

       우와앗.

         

       보호자에게 불효를 저지르는 아이가 된 기분.

         

       “아, 아니면 존댓말이라거나……?”

         

       기세를 잃던 파스텔은 무언가 번뜩 떠올렸다.

         

       “아 맞아! 어차피 저 후작이잖아요! 후작 각하! 후작 각하께 존댓말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맞아맞아!

         

       “후작 각하께 말을 놓다니요! 도덕과 명예! 예의와 범절! 보호자로서 모범을 보여주세요! 악마님이 이런 식으로 나오면 제가 뭘 보고 크겠어요!”

         

       응응!

         

       파스텔은 본인 주장에 완전 동감하며 양팔을 휘저었다.

         

       악마가 한걸음 떨어지더니 팔짱을 끼고 쳐다봤다. 붉은 눈동자가 매우 어처구니없어했다.

         

       『내가 뭐라 대답할 거 같지?』

         

       파스텔은 멈칫했다. 미간을 좁히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리곤 해맑은 얼굴로 희망 사항을 슬쩍 말했다.

         

       “후작 각하, 알겠습니다.”

         

       우와우와.

         

       상상만 해도 배덕감이 뿅뿅.

         

       악마가 고개를 젓더니 턱을 올리고 내려보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어린 크래프트, 되도 않는 요구다.』

         

       허윽.

         

       파스텔은 비척이다가 살짝 뚱해졌다.

         

       “어차피 사용인 신분으로 돌아다니시잖아요! 어렵지도 않은 거 그냥 존댓말도 해줘요!”

         

       악마의 팔에 매달려서 흔들어 댔다.

         

       “존댓말! 존댓말! 모범을 보여줘요!”

         

       악마가 빗으로 파스텔의 머리를 쿡 찔렀다.

         

       아윽.

         

       『주변에 들리니 목소리를 낮춰라. 기껏 빗은 머리카락도 헝클어지니 가만히 좀 있고. 여기 앉으면 되겠군.』

         

       악마가 큰 나무 상자를 손으로 털더니 그 위에 손수건을 펼쳐 얹었다.

         

       『앉아라.』

         

       하극상 실패…….

         

       힘 빠진 파스텔은 깨끗한 손수건 위에 앉았다. 악마가 머리카락을 재정리해 줬다.

         

       양다리를 흔들며 주변을 둘러봤다. 뱃사람과 용병으로 북적이는 정박장이 눈에 들어왔다.

         

       암살과 테러 방지를 위해 아카데미 내부의 조치는 끝냈다. 카를로 교수가 주도해서 그런지 미적지근하던 하수도 봉쇄도 어느 입구는 매립하고 어느 입구는 병사를 배치하는 식으로 얼추 끝났다.

         

       그러다 보니 토너먼트 행사가 이틀밖에 안 남아서 안전에 만전을 기할 겸 비공정 정박장을 둘러보는 참이었다.

         

       정박장 저편에서 레너드가 병사들을 이끌고 걸어왔다. 사병 책임자인 맥스 씨에게 말해둬 통솔권을 일부 나눠준 상태였다.

         

       어쨌든 레너드의 부하 겸 친구친구들이 의심거리를 찾으면 사병을 동원해 덮치는 프로세스다. 성과가 있어서 용병인 양 아카데미 근처를 기웃거리며 염탐하던 마족을 몇 명 잡았다.

         

       “또 남에게 시키고 혼자만 놀고 있냐.”

         

       레너드가 핀잔을 줬다.

         

       파스텔은 상자에 앉은 채 양다리를 흔들었다.

         

       “노는 게 아니라 관리하는 것!”

         

       오예.

         

       “뻔뻔한 자식.”

         

       레너드가 악마를 힐끔 보더니 보고했다.

         

       “인원이 마족 용병으로만 구성된 비공정이 발견됐어. 마계에서 왔다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계속 정박 중이더라.”

       “헤에.”

         

       파스텔은 흔들던 양다리를 멈췄다.

         

       “그리고그리고?”

       “뭐 하는 자식들인지 확인해 보니 용병 대장이 준기사급이더라. 앨시어 벨라몬트가 준기사급이니 걔를 용케 암살하려면 그쯤은 돼야겠지?”

       “그리고그리고?”

         

       잘 말하던 레너드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야, 태도가 어째 그렇다? 내가 네 부하냐? 응?”

         

       오잉.

         

       파스텔은 눈이 동그랗게 됐다.

         

       생각하듯 눈을 굴리다가 해맑게 대답했다.

         

       “응!”

         

       상큼한 목소리가 울렸다.

         

       “뭐, 뭐?”

         

       레너드의 입이 벌어졌다.

         

       충격받은 표정.

         

       으잉?

         

       생각지 못한 반응에 파스텔은 다시 곰곰이 생각해 봤다.

         

       곰곰 곰곰.

         

       곰 네 마리.

         

       으이잉.

         

       부하 맞지 않아?

         

       이건 공적 업무고 난 슈퍼 울트라 권력자인데.

         

       오만함 뿜뿜~!

         

       그런데 오만한 기분이 무럭무럭 샘솟는 것과는 별개로 쿠데타 권력의 카타르시스는 느껴지지 않았다.

         

       레너드를 부리는 건 악마님과 다르게 아무런 희열도 들지 않아.

         

       왜 그런 걸까?

         

       생각해 보니…….

         

       어차피 얘 나보다 약하잖아.

         

       실망.

         

       실마앙.

         

       파스텔은 곰곰이 생각한 끝에 해맑게 웃었다.

         

       “나보다 약한 레너드! 넌 부하일 필요가 없어! 우린 친구친구야!”

         

       오예, 축하해.

         

       “나보다 약한?!”

         

       레너드가 인상을 왈칵 구겼다.

         

       “야! 너 무슨 생각을 거쳐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 표정 변화부터 이상하던데?!”

         

       오이잉.

         

       그냥 사실만 말한 건데.

         

       파스텔은 눈을 굴리다가 앉은 나무 상자에서 내려왔다. 발랄하게 팔을 들었다.

         

       “사악한 악당을 포착했다니!”

         

       대뜸 달려갔다.

         

       “출동출동~!”

         

       사병들이 뒤따랐다.

         

       “야! 야! 안 멈춰?! 이 뻔뻔한 자식아……!”

         

       외침이 들려왔지만 마음에 와닿진 못했다.

         

       나보다 약한 애라 그런 걸까?

         

       응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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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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