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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5

       책상을 가득 채운 것도 모자라 흘러넘치는 물건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떠오르는 메세지 창.

       

       길게 이어진 문자의 나열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최상단에 위치한 11개의 여신상 알림이었다.

       

       “???”

       

       아니, 그.

       

       지켜봐 달라는 게 이런 뜻은 아니었는데?

       

       내가 어쩌다 보니 분위기 타서 카렌에게 여신상을 줬던 게 그리도 불만이었니 여신여신아.

       

       이렇게나 3성을 퍼주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그게 아무 쓸데도 없는 여신상이라니.

       

       아직까지 몸이 멀쩡한 걸 보아 스킬이나 권능은 하나도 안 뽑힌 것 같은데…거기에 쓸 운을 전부 여신상에 쏟아부은 거 아냐?

       

       “확률 조작…멈춰!”

       

       원망스러운 마음에 하늘을 노려보았지만, 보이는 것은 칙칙한 천장뿐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트럭이라도 보내고 싶었지만, 그 돈으로 가챠 한 번 더 돌려야 하니 봐준다.

       

       그래도 어찌됐건 3성이 이렇게나 많이 나오면 개이득인 건 사실 아닌가.

       

       최대한 좋게 좋게 생각하려 노력하며 눈앞에서 깜빡이는 리스트를 쭈욱 내려보았다.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가공된 회복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오리너구리의 눈물]

       [1성: 가공된 회복초]

       .

       .

       .

       .

       .

       [★4성: 투명 망토★]

       .

       .

       .

       .

       .

       [3성: 헤이스트 부츠]

       .

       .

       .

       .

       .

       [3성: 명작 –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여신의 조각상을 보관하기 딱 좋은 고오급 장식장]

       .

       .

       .

       .

       .

       [★4성: 대용량 아공간 반지★]

       

       “데뎃?”

       

       4성이…2개라고?

       

       중간에 이상한 게 하나 끼어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굉장히 좋게 나온 뽑기 결과.

       

       심지어 내가 가장 필요하고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아이템들이었다. 마치 내일 있을 일을 준비하라고 쥐여준 것 같은 느낌.

       

       “아! 그렇구나! 사람 새끼는 아니지만, 여신님이었어!”

       

       어디 있는지 모르겠는 여신을 향해 넙죽 큰절을 올렸다. 아니, 고마우니까 두 번 올렸다.

       

       두 번 절하는 건 죽은 사람에게만 하는 거긴 한데, 여기가 유교 문화권도 아니니 상관없겠지.

       

       오히려 내 도게자(아님)을 2번이나 감상한 여신은 만족했을 것이다.

       

       “흐흫. 그럼 이제 한번 살펴볼까.”

       

       콧노래를 부르며 마력초 더미를 뒤져 보았다. 조금만 건드려도 손에 잡히는 여신상을 의도적으로 피하기를 반복하자, 그제야 손끝에 닿는 유리병.

       

       엄지 정도의 두께와, 검지 정도 길이의 작은 병에는 투명한 액체가 찰랑이고 있었다.

       

       이게 그 눈물인가 뭔가인가. 어디다 쓰는 녀석인지는 몰라도 1성인 걸 보아 쓸데없는 잡템이 분명하다.

       

       “에잇.”

       

       일단 적당히 침대 구석에 던져주고 다시 마력초 더미를 헤집었다. 이번에 잡힌 것은 부드러운 천의 감촉.

       

       그대로 잡아 꺼내자, 비단을 연상시키는 얇고 부드러운 감촉의 망토가 끌려 나온다.

       

       아무런 무늬도 없이 그저 새까만 망토. 이게 4성짜리 투명 망토인가.

       

       이름만 들어도 좋아 보인다. 마침 소리를 먹는 발걸음이 있으니 궁합도 좋고.

       

       전력으로 펼치면 리디아조차 오러로 주변을 감지하거나, 눈으로 보는 중이 아니면 알아차리기 어렵다고 했던가.

       

       이젠 눈으로 보이지도 않을 테니 더더욱 알아차리기 힘들어지겠지.

       

       도망을 치건 기습을 하건, 내겐 유용할 수밖에 없는 장비다.

       

       “읏차.”

       

       어깨에 두르자, 조금 컸던 망토가 스르륵 줄어들면 내 몸집에 딱 맞는 사이즈가 되었다.

       

       근데 이거 어케 씀?

       

       대부분의 마도구는 마력을 불어넣으면 어떻게든 되는 법. 일단 쥐꼬리만 한 마력을 운용해 보았다.

       

       우웅-

       

       내 마력을 게걸스레 빨아들인 망토가 점차 희미해지더니, 주변 풍경에 완벽하게 녹아들었다.

       

       …내 몸은 그대로였지만.

       

       “이게 뭔?”

       

       투명 망토가 착용자를 투명하게 만들어 준다는 뜻이 아니라, 망토가 투명해진다는 뜻이었나? 그래 놓고 4성을 받아??

       

       순간 욕지거리가 가슴께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문득 마력초 더미에 반쯤 묻힌 거울을 보자 답답함이 싸악 사라졌다.

       

       거울에 비친 광경에는 내가 있어야 할 곳에 내가 없었다.

       

       내 몸이 내 눈에만 보이는 거였구만.

       

       혹시나 싶어 무기도 꺼내 휘둘러보았다. 내 몸에 가까운 것은 같이 투명해지지만 손에서 벗어나는 순간 다시 보인다.

       

       책상 같은 건 손에 대고 있어도 멀쩡한 걸 보아, 너무 큰 건 투명화가 불가능한 듯했고.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끄어억….”

       

       이거 마력을 너무 많이 잡아먹는다.

       

       본래 마도구는 실제 마법과 달리 복잡한 마법진과, 귀한 재료를 때려 박아 만든 것이기에 만드는 게 힘든 거지 사용하기는 편하다.

       

       마력 소모도 적고, 효과도 균일하니까.

       

       다만, 이 망토는 그렇게 적어진 소모로도 10초를 채 유지하지 못했다.

       

       그동안 꾸준히 마력초를 먹은 덕분인지 미약한 불꽃은 5분 가까이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음에도 말이다.

       

       결정적인 순간에만 살짝 쓰는 식으로 가야겠네.

       

       다음은 헤이스트 부츠. 대충 이름에서 효과는 짐작이 가지만…아쉽게도 지금 당장 확인해 볼 수는 없다.

       

       “응애….”

       

       마력 오링 직전인데 마도구를 어떻게 쓰겠는가.

       

       주변에 널린 마력초를 우걱우걱 씹어먹으며, 일단 다른 물건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수상할 정도로 존재감이 강한 투명 유리 케이스 같은 것 말이다.

       

       “이건 역시 그거겠지?”

       

       자고로 피규어를 샀다면 전시할 전시장도 사야 하는 법. 물론 난 강매당한 것이나 다름없는 신세라 상관없지만!

       

       그래도 이 케이스 자체는 정말 잘 만들었다.

       

       주문 제작이라도 한 것처럼 여신상 하나 들어가기 딱 좋은 크기. 티 없이 맑아 안쪽이 깔끔하게 들여다보이는 몸체. 생각보다 가벼운 무게까지.

       

       질감이나 촉감으로 보아 유리로 만든 것은 확실한데…평범한 유리로 만들지는 않았겠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윗부분을 유니콘 단검으로 살짝 긁어보았다. 평범한 유리라면 그대로 잘리거나 깨졌어야 하건만…….

       

       그륵.

       

       케이스의 표면은 멀쩡했다. 아니, 만져보면 약간의 흠집은 가긴 했으나, 육안으로 확인될 정도는 아니더라.

       

       “튼튼하네….”

       

       유리를 닮은 특수한 재질이거나, 유리에 강화 마법을 덕지덕지 바른 것이 분명하다.

       

       대체 얼마나 진심인 건가 싶어 헛웃음만 짓는 것도 잠시. 케이스의 옆면에서 작은 버튼을 하나 발견했다. 일단 눌러보았다.

       

       팟!

       

       케이스의 윗부분에서 뿜어지는 빛. 조명까지 세트로 달린 장식장이었나 보다.

       

       “여기 넣으면 확실히 멋있긴 하겠네.”

       

       고오급이라는 말이 괜히 붙은 건 아니라는 생각에 피식 웃으며 버튼을 한 번 더 눌렀다.

       

       파앗!

       

       하지만 조명이 꺼지기는커녕 색이 바뀌어 빨갛게 빛나기 시작했다.

       

       “…사용 설명서는 없나?”

       

       일단 버튼을 연달아 눌러 보았다. 그럴 때마다 파랑, 보라, 노랑, 분홍 등등. 온갖 색으로 바뀌는 조명.

       

       한참을 이리저리 만져보다 길게 꾸욱 누르자 그제야 조명이 꺼졌다.

       

       “진짜 쓸데없이 잘 만들어놨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사이에 회복된 마력으로 헤이스트 부츠를 사용해 보았다.

       

       딱 예상했던 대로의 효과다. 일정량의 마나를 소모해 약 30초간 모든 행동이 빨라진다.

       

       단, 사고방식까지 빨라지는 건 아니고 이것도 소모가 만만찮으니 연속으로 사용하는 건 무리일 듯하지만.

       

       중요할 때 잠깐 써야지, 평소에 펑펑 쓰면서 다니기는 무리가 있겠네.

       

       이걸로 모든 아이템을 확인했다. 이제 남은 건 쓸데없이 자애로운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는 22개의 눈동자뿐…!

       

       침을 꼴깍 삼키며 여신상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뜨는 알림창.

       

       띠링!

       

       

       

       [3성: 명작 –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여신의 조각상]을 합성하시겠습니까?

       

       

       

       그 알림창을 바라보며 잠시 고민했다.

       

       이거 그냥 11개 어치 신전에 팔면 골드를 쓸어 담을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러면 가챠를 몇 번이나 돌릴 수 있을지….

       

       어마어마한 유혹이다. 하지만 참았다.

       

       이번 일로 확실해졌다. 사랑의 여신은 가챠 결과에 어느 정도 간섭할 수 있다.

       

       카렌에게 하나 줬더니 협박하듯 11개를 퍼주지 않았던가. 까딱 잘못했다가는 앞으로 나오는 모든 가챠에 여신상만 나올 수도 있다. 아니면 마력초만 나오거나.

       

       굳이 여신의 심기를 건드릴 필요는 없겠지. 조오금 껄끄러울 뿐 원수진 사이는 아니니까.

       

       뭣보다 이 정도로 합성할 수 있으면 뭐가 어떻게 될지 좀 궁금하다.

       

       큰맘 먹고 고개를 끄덕였다.

       

       “합성한다.”

       

       화아아악!

       

       내 허락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바닥에 떨어진 여신상 중 하나가 하얗게 빛나며, 내 손에 들린 여신상에 덧씌워진다.

       

       띠링!

       

       합성 완료를 알리는 알람이 울렸지만, 굳이 읽어보는 대신 계속해서 합성을 진행했다.

       

       “합성한다. 합성한다. 합성한다!”

       

       정확히 10번. 모든 여신상을 하나로 합성하자 알림창의 소리가 달라졌다. 건조한 종소리가 아닌 팡파레를 울리는 것 같은 소리로.

       

       빰빠카빰-!

       

       

       

       [3성: 명작 –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여신의 조각상+9]를 합성하여 [3성: 명작 –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여신의 조각상+10]이 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3성: 명작 –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여신의 조각상]의 잠재력이 최대로 개방되었습니다!

       

       

       

       “캬!”

       

       10돌이 풀돌이었구만.

       

       …아니, 가챠 범위가 어마어마하게 넓은데 10돌이나 해야 풀돌이라고?

       

       미쳐버린 건가 싶은 마음이 가슴 한켠에서 몽글몽글 솟아올랐지만, 아무튼 그 귀한 풀돌을 해냈다는 것 자체가 좋은 일 아닌가.

       

       무엇이 달라졌나 일단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사실을 깨달았다.

       

       흰색 하나로 이루어진 몸체가 풀컬러판이 된 것도, 은은한 신성력을 뿜어내는 것도,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것도 아무래도 상관없다.

       

       분명 돌로 만들었을 조각상이 실리콘으로 만든 것처럼 보드라웠다는 게 문제였지!

       

       몰캉.

       

       “허어억…!

       

       세상에.

       

       말랑쫀득무저항따끈미니사랑의여신 이라니!!

       

       신앙심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리버스 1트럭으로 이번 픽업인 6뽑고 픽뚫로 릴리아도 뽑음

    키야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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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남녀역전 세계의 가챠 중독자
Score 8.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Gacha – Civilization’s Ultimate Game. Spin now for a shot at fortune. Spending that doesn’t disrupt your lifestyle? That’s virtually free-to-play. Keep spinning until you strike gold – success is guaranteed. … … Today, yet again, I’m at the gacha wheel. “Did I get a 5-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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