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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5

       * * *

       

       

       

       아나스타샤와 러시아 장관들이 물러난 이후, 유제프 피우수트스키는 내각을 소집했다.

       

       이 골치 아픈 일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겨우 다 털어놓았지만. 내각에서도 차리나의 제안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러시아 차리나가 그런 말을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리나가 오만하지 않습니까?”

       “차라리 독일과 손잡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예. 이참에 러시아로 확장하시죠. 어차피 이빨 빠진 놈들입니다.”

       “하지만 영국이 걸리는데.”

       “영국이야 바다 건너에 있고 지금 오스트리아와 발트에서도 군대를 빼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자기들 몫까지 해주면 묵인하겠죠. 차리나도 그래서 던져보는 거 아닙니까?”

       

       

       러시아로 확장.

       

       지금 내각에서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그래. 유제프 피우수트스키도 적어도 지금의 러시아가 5년 전의 상태라면. 내전기가 쭉 유지되었다면 해볼 만하다고 여겼을 터다.

       

       하지만 말이다.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확장을 외치면서 호전적인 성격을 드러낼 때가 아니다.

       

       

       “지금의 러시아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대전쟁에서 독일에게 밀리긴 했어도 내전의 경험도 있고, 콘스탄티노플도 수복했다.

       

       젊지만, 배포 있고, 전장에서 직접 활약한 차리나가 꽉 쥐고 있는 러시아다.

       

       더군다나 인구수로만 봐도 러시아는 꽤 큰 상대고. 러시아의 땅은 넓어서 한 번 전쟁을 하면 이쪽이 힘이 빠지고 만다.

       

       점령지가 늘어나면 감당할 수 있는가?

       

       공산 독일을 믿을 수 있는가? 보급은 충분한가? 다양한 문제가 생긴다.

       

       더군다나 지금 공산 독일은 이렇다 할 군대가 없다.

       

       물론 때가 되면 군비를 증강하겠지만.

       

       뭐가 되었든 폴란드는 전장이 되고 말 거다.

       

       이가 갈리기는 해도 결국 차리나가 직접 새로운 관계를 맺고 싶다고 찾아온 것만으로도 폴란드 체면을 생각해준 거라 봐야 한다.

       

       폴란드로. 한때 러시아령이었던 지역으로 친히 관계개선으로 행차하러 와도 될 정도로 러시아 정부는 차리나가 꽉 쥐고 있다는 증거고. 단결한 러시아를 상대로 폴란드가 얼마나 진출할 수 있을까?

       

       

       “차리나가 이런 말을 하더군. 예카테린부르크보다는 베를린이 더 가깝지 않냐고. 내전 때를 생각해보면 러시아의 전쟁수행능력을 꺾기 위해서는 우랄까지 가야 하네. 아니, 넘어야 할 수도 있겠지.”

       

       

       도무지 거기까지 상상이 안 된다.

       

       그 과정에서 외압이 없다고 볼 수도 없고.

       

       실제로 전쟁지분을 생각하면 폴란드군이 나서야 할 터인데. 점령지에 주둔시키면 또 뒤통수가 위험하고.

       

       독일이 폴란드를 집어삼키지 않는단 보장이 없다.

       

       그때 가서 영국과 프랑스가 도와줄까? 아닐 것 같은데.

       

       

       “그렇긴 하지만.”

       “저렇게 당당하게 폴란드 땅으로 온 것만 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가. 어디 해볼 테면 해보라고.”

       

       

       차리나는 불나방처럼 폴란드로 들어왔으나, 본인의 가치를 잘 알고 있을 거다.

       

       여기서 차리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거나, 차리나의 제안을 거부한다면, 그 여파는 지금 피우수트스키가 감당해야 한다.

       

       

       “우리의 독립을 확실히 보장하겠다고 합니까?”

       “그렇다더군.”

       

       

       차리나 본인이 직접 말했으면, 믿을 만하겠지.

       

       차리나의 말대로 러시아의 땅은 그렇게 잃고도 아직도 많다.

       

       폴란드인의 반러 감정도 아는 거 같고. 굳이 다시 점령하려면 큰 피를 볼 곳에 군대를 밀어 넣지 않을 거다.

       

       

       “그럼 받아들이실 겁니까.”

       “고민이 참 많군.”

       

       

       유제프 피우수트스키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그게 문제다. 유제프 피우수트스키도 전장에서 수없이 활약해온 인물이다.

       

       지금 이 상황이 못마땅한 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자기들 것도 아니면서 영국 관할인 리투아니아를 선심 쓰듯 넘겨주겠다는 것도 그렇고. 차라리 정말 러시아와 한판 할까 라는 생각도 없는 건 아니지만. 음.

       

       

       “러시아가 우릴 공격할 생각이 없다면 그냥 중립으로 있는 게 좋지 않습니까? 상호방위조약이라니. 러시아군이 독일과 싸우겠다고 이 땅으로 들어오면 또 무슨 짓을 하겠습니까?”

       “으으음.”

       

       

       러시아와 전쟁은 해서는 안 된다.

       

       이건 내각에서도 분하지만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지금 당장 러시아가 가진 정예만 해도, 폴란드군의 몇 배는 되지 않겠나.

       

       하지만, 상호방위조약은 맺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공산 독일을 막겠다고 러시아군이 폴란드로 들어오겠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국민들 감정은 어떻게 되겠나.

       

       러시아군은 믿을 수 있는 것인가?

       

       내각이 구성된 부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장 요제프 피우수트스키의 폴란드도 얼마 후면 선거도 다시 하고 대통령을 선출하게 될 텐데. 영향을 받지는 않을까.

       

       내각의 고민이 길어지는 밤.

       

       바르샤바의 한 건물에서는 폴란드의 민족주의자, 우익세력들이 모였다.

       

       당연히 이들은 내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들어 알고 있었고, 분노했다.

       

       어떻게 잡은 독립인데. 다시 러시아놈들에게 휘둘릴 수 없다.

       

       

       “내각에서는 차리나의 의견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군.”

       “어떻게 저걸 받아들입니까? 말도 안 됩니다.”

       “계획한 대로 진행해야지.”

       

       

       이들이 목표로 잡은 것은 제2의 사라예보. 아니, 그보다 더 큰 것을 일으키는 것.

       

       이미 폴란드 내에서 폴란드 민족주의자들을 후원하는 독일 공산당으로부터도 차리나를 없앨 폭약까지 받았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계집이 잘도 여기까지 왔으나 그 뿐이다.

       

       차리나를 없애기만 하면 결국 폴란드와 러시아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 것이고 독일은 폴란드를 도울 것이다.

       

       오스트리아는 약소국이 되었으니, 러시아를 돕지 못할 테고. 독일의 지원 아래에 러시아와 결전을 하면 될 것이다.

       

       

       “폭탄은 많지 않다. 일을 확실히 해야 하니, 오로지 차리나만 노린다.”

       “예!”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래. 이 모든 건 폴란드를 위한 일이었다.

       

       

       * * *

       

       

       유제프 피우수트스키가 어떤 선택을 할까.

       

       아마 내 제안을 적당히 조율해서 생각해보겠지.

       

       적어도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본인은 말이다.

       

       이렇게 확신하는 건 내가 저 몽상가 같은 쑨원이나 끝까지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이루어질 거라고 꿈에 부푼 공산주의 아이돌 레닌이나 다를 바 없겠지.

       

       실제로 함께 온 장관들도 걱정이 많아 보였다.

       

       

       “아니, 이왕이면 좀 제대로 된 곳을 안내해 줘야지. 이런 2층 여관이라뇨. 도무지 전러시아의 차르이자 성녀, 동로마 황제께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운게른은 일단 명색이 군주한테 허름한 여관을 숙소로 내준 것이 마땅치 않아 하는 기색이다.

       

       뭐 허름하다고 해도 제대로 갖출 건 다 갖춘 나름 고급여관인데.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있던 임시정부 청사의 침실보다는 낫다고.

       

       

       “현재 폴란드 내부에는 반러 감정을 가진 우익과 민족주의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 중 광신도 같은 자들도 많다고 하니, 일부러 그랬겠죠.”

       

       

       당장, 이 여관까지 안내한 폴란드 군인들도 ‘안전상’ 이 여관으로 안내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즉, 혹시라도 테러 같은 것이 일어날 때를 대비한 거겠지.

       

       괜히 좋은 곳으로 보내버리면 반대로 유동 인구 때문에 군인들이 방비하기 힘들거나 그럴 수도 있으니.

       

       뭐 그것 외에 다른 이유를 달자면, 러시아인에게 좋은 곳을 내어주기 싫다는 반러감정도 뒤섞여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내가 내민 제안이 러시아군을 다시 폴란드로 정당하게 들이게 할 수도 있는 일이니까.

       

       거기에 대한 사소한 반항심이라는 거다.

       

       

       “리투아니아나 라트비아를 준다니요. 거긴 지금 영국 관할이 아닙니까?”

       “진짜 줄 리가 없겠죠. 우리는 ‘지지’만 한다고 했습니다. 그게 영국의 영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죠. 영국도 폴란드-리투아니아 재건을 묵인할 경우에 지지한다는 겁니다. 저놈들 성격이라면 지금 쯤, 영국군이 빠진 리투아니아를 정말 한번 쳐볼까 고민 중일지도 모르고요.”

       “그 말인 즉, 영국이 폴란드가 리투아니아나 라트비아를 먹는 것을 용인하지 않겠다 하면.”

       “영국과의 마찰은 러시아에 해가 됩니다. 그럼 저희도 발 빼면 될 뿐이죠. 피우수트스키가 꿈이라도 꾸게 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결국 말장난이라는 거지.

       

       열강들이 잘하는 혐성짓이라는 거 아닌가.

       

       만일 받아들여서 리투아니아로 진출하겠다. 이러면 좀 웃길 거 같다.

       

       폴란드 성격을 생각하면 진짜 해버릴 거 같거든.

       

       그때 영국은 용인할 수 없다 이러면 우리도 뒤로 빠지면 된다.

       

       그쯤 되면 폴란드도 독일로 갈아탈 수도 없을 테니 손가락만 쪽쪽 빨겠지.

       

       만일 영국이 봐줘서 폴리투로 진화한다면, 독일을 더 오래 붙잡을 수 있겠지.

       

       러시아는 뭐가 되어도 나쁘지 않다.

       

       어차피 전장이 되는 건 폴란드잖아? 폴란드 더 커지나, 작아지나, 더 잘 막나 덜 막나의 차이일 뿐.

       

       중요한 건 러시아를 치고 싶을 폴란드가 고기방패 역할을 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할 뿐이다.

       

       

       “저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도 생각해야 합니다.”

       “유제프 피우수트스키는 바보가 아닙니다. 스스로 오스트리아 휘하에서 폴란드군을 이끌며 기어이 러시아군을 격파하고 지금은 영국의 도움으로 폴란드의 지도자로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대외관계나 국제관계에 대해 잘 알겠죠. 그러지 않았으면 그 브리튼 해적 놈들이 선택하지 않았을 겁니다.”

       

       

       영국놈들이 말이 안 통하는 작자를 폴란드 총통으로 두지는 않았을 거다.

       

       좀 말이 통하고, 독일을 견제할 수 있도록. 그럴 만한 카리스마와 능력을 가진 인물을 총통으로 둔 거일 터.

       

       

       “그러면 받아들일 거라는 뜻이군요.”

       

       

       그냥 단순하게 보면 그렇기는 한데.

       

       솔직히 지금 폴란드가 뭐 우리를 거부할 처지는 아니잖아. 정확히는 총통인 피우수트스키지만 말이야.

       

       

       “예. 아마 적당히 자존심이나 부리다가 받아들이겠다고 할 겁니다. 우리도 적당히 여기에 맞춰서 대등한 관계로 봐주겠다. 기타 교역이라든가 등등. 러시아의 이익에 해만 되지 않으면 폴란드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겠다 이 정도면 되겠죠.”

       

       

       적당히 알아서 받아들이면 이쪽도 적절히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하는 거지.

       

       

       “만일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위험합니다. 여긴 적진이 아닙니까?”

       “네. 솔직히 저도 그쪽 가능성을 아주 안 보고 있는 건 아닙니다.”

       

       

       나는 어디 까지나 ‘그럴 수도 있다.’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큰일입니다. 호위병력도 거의 없지 않습니까?”

       

       

       운게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중장급이 저런 얼굴을 하니 좀 재미있는데. 나도 그냥 질러본 거다.

       

       흠, 이거 진짜 내가 잘못 선택한 건가. 그냥 장관급만 보낼 걸 그랬나.

       

       아니다.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지금 내 권위가 하늘을 찌를 때,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해야지.

       

       어차피 지르고 보는 것이다.

       

       이미 몇 번이나 나도 죽을 뻔한 고비를 넘나들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진주만 공습이라는 싸대기를 후려쳐서 미국을 감동시켜 금수조치를 풀려고 한 일본처럼, 내 행동에 감명을 받은 유제프 피우수트스키씨가 대뜸 내 제안을 받아들였으면~하는 생각도 없는 건 아니다.

       

       내 행동 하나하나가 결국 러시아의 위신에 달려있으니.

       

       여기서도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하여 나는 당당하게 말한다.

       

       

       “저희가 이러고 왔으니 일단 믿음은 먼저 보였습니다. 죽을지도 모르는 자리에 왔으니까요. 그러니 기다려 봅시다.”

       

       

       정말 도박이긴 하다.

       

       만일 내가 여기서 어떠한 일을 당하면, 그때는 그대로 끝이고.

       

       그 망한 세상에서는 하루하루가 목숨을 건 상황이었다.

       

       피폭당해 죽지도 못한 산망자가 돌아다니고, 법이 사실상 무너져 무법지대가 되어버린 세상이니까.

       

       그리고. 지금은 이제 잘 시간이다.

       

       다 큰 어른들이 차리나와 한 방에 있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일단은 뭐. 다들 잘 시간 아닙니까. 설마 다들 뜬눈으로 저와 함께 밤을 새울 생각은 아니시겠죠.”

       “크흠. 폐하의 안위가 걱정되어 말입니다.”

       

       

       뭐 그 마음을 내가 왜 모르겠나.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다 모여있으면 좀 그렇다고.

       

       폴란드 애들이 어떻게 보겠냐. 우리가 무서워서 다 모여있는 거 아니냐. 그런 말 나오지 않을까.

       

       

       “이럴 때일수록 당당해야 합니다. 우리가 밤새우면서 겁쟁이처럼 있으면 저들이 어떻게 보겠습니까? 아, 러시아 차리나도 별거 아니네. 이러겠죠. 절 겁쟁이로 만들지 마세요.”

       

       

       이래 보여도 타이틀 상으로는 성녀에, 대칸에, 차르에, 동로마 황제라고.

       

       그런 몸이 한때 점령지 국가에 겁먹고 있는 건 말이 안 되지.

       

       

       “예. 알겠습니다.”

       

       

       그제야 다들 돌아갔다.

       

       차리나의 권위가 손상되는 것은 보기 싫은 모양이다.

       

       그들이 돌아가고 나서야 나는 두 발을 쭉 필 수 있었다.

       

       

       “이제야 돌아갔네.”

       

       

       나는 이렇게 생각하거든?

       

       이 무렵 폴란드 민족주의자나 우익, 광신도 무리가 과연, 잠재적 적국의 황제인 차리나가 왔는데 가만히 둘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주인공 원래 세상은 So Long 엔딩이 났다고 보시면 됩니다.

    베를린을 향해 달리는 후사르기병대(기갑)을 생각해봤는데, 그럼 공산독일이 너무 약해 보일 거 같아 이건 좀 고민입니다.

    후사르 뽕 있으신 분들에겐 죄송한 말씀이지만, 폴란드가 폴리투로 진화할 지는 모르겠네요.

    의외로 TS대역 반응이 좋아. 작가의 플라스 연재 작품이 완결 나면 다른 TS대역도 준비해볼까 합니다.

    후보로는 고려 무신 정권 최우의 딸, 일본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딸, 조선 고종 때 배경으로 뭔가 써보고 싶네요.

    그 외에 서양 쪽도 좀 생각 중입니다.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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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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