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65

       워낙 정황이 없던 터라 처음 만났을 때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녜스는 마룡을 쓰러뜨린 내가 마탑에 도착했을 당시, 나를 거두어 준 은인이었다.

        신분이 증명된 귀족 또는 탑 내부로부터의 추천이 있어야지만 입탑할 수 있었기에 후견인을 자청한 것이었다.

       

        ‘스승님. 오늘은 또 어쩐 일이십니까.’

        ‘까마귀들에게 습격받아 내려왔다. 명부는 홀로 지내기엔 너무 춥구나.’

        ‘명부요? 거긴 또 어딥니까? 상층이에요?’

        ‘크, 크흠. 그런 게 있다. 너는 몰라도 되니 코코아나 타 오거라.’

       

        기숙사 사감 자리를 맡기도 전부터 아는 사이였으니 어찌 보면 이곳에서 가장 오래 된 인연.

        하지만 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아녜스의 과거에 대해 들은 적이 없었다.

        본인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이야기하기를 꺼려했기 때문이다.

       

        ‘그보다 클락아, 구내식당에서 동기란 것들이 네 뒷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다. 이제 그 갤러리인지 뭔지에서는 손을 떼고 슬슬 등반을 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지금 중요한 순간이니까.’

        ‘네가 내 가르침을 받는다면 누구보다 높이 올라갈 수 있을거다. 탑의 모든 마법사들을 내려다보는 우월감을 느껴보고 싶지 않느냐?’

       

        ====

        [니들은 살면서 우월감 느낄 때가 언제임?]

       

        난 기숙사 사감 몰래 복도에서 딸칠 때마다 느낌

        특히 메릴랜드 관이 최고인 게 메릴린 동상이 로브 아래쪽 자세히 보면 은근 개꼴림

       

        — 관리자 : 이 글 지울 때

         ㄴ 아

         ㄴ 제발

        ====

       

        ‘지금 느끼고 있는데요’

       

        아는 거라고는 저주를 너무 많이 쓴 나머지 키가 줄어들어, 더는 등반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 정도.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아녜스의 모습은 아침마다 키가 크는 체조를 빼놓지 않으며 밤에도 열 시가 되기 전에 자야 하고.

        커피같이 쓴 것은 입에 대지도 못해 항상 코코아만 마시는 귀여운 스승님이었는데.

       

        눈앞에 있는 과거의 그녀에게서 그런 나약함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마법 살해자…… 이름을 밝혀라! 나는 미티어 학파의 루벤 발디니다!”

        “그 당당함과 담대함이 너희의 고결이지. 허나 네가 스스로의 불꽃으로 밝혔다 믿는 진리란 동굴벽의 그림자처럼 일렁이는 허상이나 다를 바 없느니라.”

       

        해주학파의 전신, 아이테르 학파의 창시자이자 마탑에 단 일곱 뿐인 최고위의 마법사.

        장차 칠현자의 자리에 오를 예정인 그녀의 마법은 내게 가르치려 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프리나의 저주조차 광대의 재롱처럼 보일 수준의, 마치 눈과 귀가 달린 재앙과도 같았다.

       

        “원소학파의 신비가 한 순간이라도 그런 춤사위에 실릴 정도로 흐트러졌던 적이 있느냐.”

        “뭣!? 내, 내 불꽃이……!”

        “너의 주먹에는 결함만이 가득하며 연기뿐이 남지 않은 불씨에는 천박함마저 감도는구나.”

       

        호오-.

        마치 촛불을 끄듯 작게 바람을 불자 루벤의 주먹에서 이글거리던 불꽃이 사그라 들었다.

        자신의 신비가 무력화되자 그는 충격을 받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 틈을 타 현자의 약관을 읊은 시엔이 앞으로 뛰쳐 나갔으나 아녜스에게는 닿지 못했다.

        그녀가 단검으로 자신의 팔뚝을 망설임 없이 찌르자 그대로 바닥을 구르며 검을 떨어뜨려 버린 것이었다.

       

        “만물의 완결, 그 아버지가 여기에…… 큭!”

       

        두 사람의 팔이 동시에 붉게 물들었다.

        그러나 고통스런 표정으로 몸을 일으킨 시엔과 달리 아녜스는 덤덤하게 단검을 뽑으며 말했다.

       

        “지킬 생각만 가득하고 살심이 부족하구나. 내 목을 치고자 했다면 네 손은 절대 검을 놓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

        “소용 없느니라. 이제 너의 무기는 약관의 무게를 전혀 모르는 이가 들 수 있을 정도로 가볍지 않으니까.”

       

        손가락을 타고 떨어진 피가 초목을 적시자 시엔의 검이 땅에 박힌 것처럼 꼼짝도 안 했다.

        과연 66층에 있는 모든 마법사를 두려움에 떨게 할 만큼 압도적인 실력.

        루벤과 시엔을 순식간에 제압한 아녜스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을 볼 때보다 약간은 호의가 깃든 시선이었으나, 봐줄 것 같진 않았다.

       

        “아이야, 너는 사냥꾼이로구나.”

        “…….”

        “무릇 사냥꾼은 홀로 다니는 법이 없지. 허나 이곳에 불을 놓으려는 저들이 너의 동료처럼 보이지는 않는구나.”

       

        불을 놓는다고?

        아녜스의 말을 듣고 담장 바깥을 보니 로브를 뒤집어쓴 수상한 마법사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플라멜 가문의 사주를 받은 연금술사들인가.

       

        이틀 전, 나와 뒷골목에서 마주쳤던 녀석들도 보였다.

        루벤의 마차를 본 기억이 떠올랐는지 그들은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 그 손에 꼭 쥐고 있는 공책은 그만 내려놓고 빠르게 끝내자꾸나. 너희를 해치운 뒤 저것들도 상대하려면 시간이 없을 테니.”

        “저희는 같은 편이 아닌데요. 아ㄴ…… 마법 살해자님과도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이미 얼굴을 보았지 않느냐. 그리고 복제체가 아니라 아직 모르는 것 같은데, 이곳에선 같은 학파 외엔 모두가 적이다.”

       

        작은 손이 피를 머금은 더러운 단검을 다시금 역수로 쥐었다.

        까마귀떼가 건물 곳곳에 내려 앉으며 하늘에서 불덩어리가 떨어지는 불야성의 밤에 어둠을 몰고 왔다.

        천지를 뒤흔드는 압도적인 마력 안에 깃든 원념과 비한이 느껴졌다.

        갈라지고 터진 입술과 초췌한 눈은 마탑의 모든 마법사를 적으로 돌린 채 이곳까지 올라온 저주술사의 말로를 보여주고 있었다.

       

        “즉, 내게 있어 모두가 적이지.”

        “…….”

       

        나는 창을 손에 쥔 채 망설였다.

        본래 아녜스는 나와 동고동락해왔던 소중한 인연.

        추운 겨울이면 한 침대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잠을 청하거나 먹을 것이 없던 시기 어둠의 숲에서 나무열매를 따먹은 적도 있었다.

        그녀의 키에 맞춰 주문제작한 얼음 정수기를 처음으로 사감실에 들였을 때 얼마나 기뻐했던가.

        아니, 기뻐했던 건 나 혼자였고 그녀는 한참이나 얼빠진 표정으로 정수기를 올려다봤지만.

       

        어쨌거나 지금의 아녜스와는 엄연히 다른 사람일지라도 싸울 적이 아님은 명백했다.

        오히려 그녀를 잘 설득한다면 아군으로 돌아서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복제체라고는 하나, 하늘 같은 스승을 공격한다는 것은 트라팔가 호수보다 투명하고 순수한 나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

       

        “자, 어디 확인해 보자꾸나. 너의 그 기이한 신비가 무엇인지 내 직접…… 갸하악!?”

       

        ……았지만 하늘을 뒤덮은 까마귀 새끼들 때문에 기껏 살려놓은 위치노트의 연결이 다시금 끊기자 창이 스스로 내 손을 떠나갔다.

        필중(必中), 필관(必貫), 그리고 필격(必擊)의 묘리가 실린 일격이었다.

       

       

       

        *

       

        콰아아앙——!!!

       

        적중한 창은 엄청난 굉음과 함께 날아가 뒤뜰에서 가장 거대한 나무에 틀어박혔다.

        창을 던진 직후, 저주 탓인지 머리에서 엄청난 고통이 몰려오며 손과 턱끝이 덜덜 떨려왔다.

       

        “클락, 괜찮아!?”

       

        시엔이 급히 다가왔지만 나는 그녀에게 오지 말라며 손을 내밀었다.

        나흘 째 잠을 자지 못해 더욱 날카롭게 연마된 기감이 말하고 있었다.

       

        목표를 꿰뚫지 못했다고.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지금은 이곳을 빠르게 벗어나는 게 최선이었다.

        살살이를 통해 창을 회수한 뒤, 부상당한 시엔을 데리고 마차에 몸을 실었다.

       

        창문을 보니 광신자 헬리야가 떨어뜨린 불덩어리가 부르크 하우스의 무도회장 쪽을 낙하하는 중이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강해지는 열기에 말라 비틀어진 초목이 불타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메테오의 피해 반경에서 벗어난 우리는 그대로 곧장 루벤의 저택으로 향했다.

        마차가 소음을 내며 멈추자마자 하인들이 달려왔다.

       

        “루벤 님, 무사하십니까? 부르크 하우스에서 테러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세상에, 영애께서는 상처가 심하십니다!”

        “우선 다들 안으로 드시지요. 치료사를 수배해 보겠습니다.”

        “마차에 실린 이 미술품들은 대체……?”

        “우욱……!”

       

        급한대로 시엔이 응급처치를 하는 동안 루벤이 나를 따로 불러냈다.

        붉은 카펫이 깔린 화려한 응접실 벽에는 어릴 적 아르투르의 것으로 보이는 사진이 액자에 걸려 있었다.

        그 옆에 마력으로 새로 못을 박을 자리를 표시하며, 루벤은 손을 주억거렸다.

        부르크 하우스에서 느꼈던 공포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지만 침착함만큼은 잃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탈출할 때 플라멜 가문의 연금술사들을 봤다. 자네 동료를 쫓고 있는 것처럼 보이던데 내 감이 맞나?”

        “아마 그럴 겁니다.”

        “조금 전 연락받은 바에 따르면 도시 외곽에 있던 급행의 운행 역시 중단되었다고 하더군.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자네와 일행들이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는 뜻이다.”

       

        그건 곤란하군.

        만약 급행을 타지 못하면 시엔과 나는 말 그대로 66층에 갇힌 셈이었다.

        시엔은 최소한 70층의 시련을 뚫을 여지라도 있지만 그것 역시 연금학파에서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을 터였다.

       

        “처음부터 자네가 이곳에 있을만한 마법 실력은 아니라고 생각했었지. 허나, 아직 늦진 않았다.”

        “그게 무슨 뜻이죠?”

        “바깥의 미티어 학파와 연락해 너희가 이곳에서 내려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마. 본래 가문 외의 사람에겐 허락되지 않는 절차라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1층까지는 갈 수 있을 거다.”

       

        과연 음습하고 치졸한 글레시아 학파와는 차원이 다른 고매함을 보여주는 인격자 다운 발언.

        자신을 이용한 것도 모자라 66층의 평화를 박살 내놨음에도 연금학파를 피해 살려주겠다는 뜻이었다.

       

        허나 문제는 그의 제안을 따르는 것은 일시적인 미봉책일 뿐이었다.

        악의의 층에서 벗어난다 해도 시엔의 복제체는 남아있기에 언젠가 저들에게 사로잡힐 것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저런 상태의 아녜스를 두고 떠나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고민하는 나를 보고 루벤이 한숨을 쉬며 설득에 나섰다.

       

        “제발 고민하지 마라, 클락. 부르크 하우스에 메테오가 떨어진 적은 마탑의 역사를 모두 뒤져봐도 한 번도 없다.” 

        “흐음…….”

        “지금까지 벌인 짓거리를 모아놓으면 자네가 이곳을 떠난 순간 마법 살해자가 하나 더 탄생하는 수준의 혼란을 불러오는 건 반쯤은 확정이다. 그러니 내 제안을…….”

        “그 절차란 거, 미티어 학파만 가지고 있는 건 아니죠?”

        “뭐?”

       

        나는 응접실의 샹들리에에 위치노트를 비추어 보며 말했다.

        악의의 층이 악명 높은 이유가 무엇인가.

        이곳에 올라왔던 과거의 망령들이 허구한 날 메테오가 불 마법이네 얼음 마법이네 싸우며 서로 대립하기 때문이다.

        지금에야 갤러리에서 도는 낡은 떡밥 수준의 중요성이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마법사의 수가 줄어드는 마탑의 특성상 해묵은 굴레를 쉽게 끊어낼 수가 없다.

       

        요컨대 유입은 없고 고인물들만 남은 게시판이 썩어 들어가는 것과 같은 원리였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파릇파릇한 유입이 잔뜩 생긴다면 이곳의 분위기도 바뀐다는 것이다.

        싸움의 장에서 상층으로 올라가기 위한 교두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장소로. 

       

        어차피 발만 딱 담그고 나와도 생성되는 복제체의 특성 상 방법이 그리 어렵지도 않다.

        이 높은 곳까지 마법사들을 올려보낼 수만 있으면 된다.

       

        “마침 급행이 열려 있으니 더할 나위 없군요. 어디 보자, 콘서트 장소는…… 플라멜 가문의 저택 위치가 어디 쯤이죠?”

        “내 말 못 들었나? 지금 치안부에서 모든 열차를 못 움직이게 막고 있다니까!”

        “하지만 이미 철로는 뚫려 있죠. 릴리벨 쪽을 노렸을 테니 대부분 66층에서 출발하는 하행선을 통제하고 있을 테고요. 돌아갈 때는 좀 비좁게 가겠지만 괜찮습니다. 내려보내 주신다는 호의는 감사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자네…… 정체가 뭐지?”

       

        이명을 묻는 건가?

        아직 없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정해 놓았다.

        나는 초전도체은발미소녀 계정으로 테라포밍 되어버린 ‘운드라 가문 전용 게시판’에 글을 올리며 말했다.

       

        “분탕의 왕이요.”

       

        루벤은 이해 못할 표정을 지었으나 개의치 않았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

[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

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