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65

       

       

       “작가님, 저게 뭐에요···?”

       

       [대, 대박···. 멋진 장면이다···!]

       

       “그런 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빨리 대답하세요! 저게 뭐냐고!”

       

       

       나도 모르게 작가님을 향해 거칠게 소리쳤다.

       

       분명히 작가님은 말했다. 주인공이 이기지 못할 거라고.

       

       그래서 호랑이를 어떻게든 떼어놓자마자 황급히 달려왔는데···.

       

       내 눈에 보이는 광경은 작가님의 말과는 사뭇 달랐다.

       

       유시우가 빌런에게 한순간에 당하기는커녕, 빌런이 당황하며 쏟아내는 공격을 모두 피해내고 있었다.

       

       

       “저게 뭐냐고! 이기지 못할 거라고 했잖아!”

       

       [그러게요? 생각보다 시우가 강하네요!]

       

       “···뭐?”

       

       [한대도 못 때리고 그냥 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이러면 조금 기대해도 좋을 것 같아요!]

       

       

       작가님이 모든 걸 알고 있는 건 아니다.

       

       그건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그야, 잊을 만하면 사고를 치고 다니는 게 바로 작가님이니까.

       

       그렇지만 내가 알고 있는 작가님은 생각보다 멍청하지 않아.

       

       물론 멍청한 행동을 자주 하기는 하지만, 주인공에게는 관심을 상당히 많이 쏟고 있다.

       

       소설의 핵심 인물이니까. 주인공이니까.

       

       작가님이 유시우에 관해서 모를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도출되는 결론은 하나.

       

       주인공을 살리기 위해 땜빵으로 집어넣은 설정이, 생각보다 강했다.

       

       그것 외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아, 아하. 작가님, 말씀하시지.”

       

       [네?]

       

       “유시우에게 설정을 집어넣으신 거죠? 도대체 뭘 집어넣으셨길래 저렇게···.”

       

       [그런 거 안 했는데요.]

       

       “···방금, 뭐라고 하셨죠?”

       

       [설정 같은 거 집어넣은 적 없어요.]

       

       

       틀렸다.

       

       틀려버렸다.

       

       내가 유일하게 유추할 수 있는 추론이 틀려버렸다.

       

       ···뭐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맴돌았다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 순간에도 유시우는 천천히 빌런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수많은 공격을 모두 회피하고, 때로는 쳐내면서.

       

       그럴 리가 없잖아.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유시우는 저렇게 강하지 않아.

       

       도로시. 순간 도로시를 떠올렸지만 부정했다. 도로시의 강화를 받아도 마찬가지다.

       

       이미 한번 보았다. 그 강화는 부작용도 부작용이고, 저 정도로 강해지지 않았어.

       

       애초에 저건 공격을 유시우가 피하는 게 아니라 공격이 유시우를 피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아닌가.

       

       강화로 이루어진 무언가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분명 무언가가 더 있을 텐데···!

       

       

       [으음, 변수가 생각보다 컸던 걸까요···.]

       

       “···변수?”

       

       [그게, 주인공은 수정이 안 먹히더라고요. 어차피 크게 수정할 생각도 없긴 했지만, 좀 불편하긴 했어요.]

       

       

       작가님이 스리슬쩍 흘린 한마디.

       

       그 한마디를 듣자마자 사고가 정지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들은 거지?

       

       작가님이 가볍게 흘린 이야기에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세상이 무너지고 재조립되는 기분.

       

       내가 여태껏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게 사실은 당연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된 기분.

       

       

       “···유시우는, 수정이 안 된다?”

       

       [네. 으음,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여태껏 그런 적은 없었거든요.]

       

       

       멍하니 빌런과 싸우고 있는 유시우를 바라보았다.

       

       이길 수 없는 게 뻔한 싸움이고, 반쯤 정신을 놓은 것 같아 보였지만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

       

       상정하지 못한 사태에 당황한 용 수인이 다급히 진심을 다한 공격을 해도 마찬가지.

       

       끊임없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다가가지도 못하고 졌을 텐데···. 뭐, 이것도 멋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역시 주인공이라면 역경을 이겨내는···!]

       

       

       작가님이 멋있는 장면을 봤다며 신나게 떠들어대기 시작했지만, 도무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보이는 건 유시우 하나.

       

       두 눈을 감고, 휘청거리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 보였지만 쓰러지지 않는다.

       

       세상을 제멋대로 주물럭거리는 작가님이 있는 세상 속.

       

       이 세상 속에서 모두가 작가님의 영향을 받는다.

       

       평생 착실하게 살아온 사람이 가볍게 건드린 설정 하나에 빌런이 되고, 빌런이 가볍게 건드린 설정 하나에 사실은 착했지만 사연을 가지게 되는 세상에서.

       

       어린아이가 가지고 노는 인형극 같은 세상 속에서. 모두가 인형인 이 세상 속에서 오직 나만이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작가님이 이길 수 없을 거라 단언한 적을 향해 나아가는 그의 모습을 두 눈에서 떼어낼 수가 없었다.

       

       위험하다. 이길 수 없을 게 분명하다.

       

       지금 당장 도와주어야만 했다.

       

       작가님은 주인공이 활약하는 장면이라며 즐거워하고 있지만, 이기지 못할 게 분명해.

       

       상태가 위험해 보였다. 주인공이라고 무적은 아니야. 죽어버릴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도무지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정말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게 사실인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에.

       

       그리고 그런 나의 망설임을 날려버리는 모습이 두 눈에 담겼다.

       

       

       “···때렸어.”

       

       [정말이네요! 와아, 좋은 장면을 하나 얻었어요!]

       

       

       공격을 가했다.

       

       도무지 이길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음에도.

       

       작가님이 공격은커녕 다가가지도 못하고 졌을 거라는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건 이것대로 좋다며 좋아하는 작가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웃었다.

       

       

       “아, 아하. 아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까, 깜짝이야. 왜 그렇게 웃으세요? ···멋있긴 했지만, 재밌는 장면인가?]

       

       “아, 아하하! 아하하하하!”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도저히 웃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오직 하나.

       

       단 하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은 나 하나뿐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인형들일 뿐.

       

       어린아이가 휘두르는 장난 같은 힘에 끌려다니는, 운명이라는 실에 이끌리는 인형.

       

       주인공이라고 다르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주인공이기에 인형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인형들과는 차별화된 존재라고는 생각했지만 애착 인형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틀렸어. 전부 틀렸어.

       

       인형 따위가 아니야. 그런 놈들과는 비교할 수 없어.

       

       작가님은 말했다.

       

       다가가지도 못하고 질 거라고.

       

       유시우는 움직였다.

       

       빌런에게 다가가, 검을 휘둘렀다.

       

       휘청거리는 발걸음. 피투성이가 된 몸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유시우는 움직였다. 작가님이 연결한 운명이라는 실에 끌려 억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아아, 대단하네요, 유시우는.”

       

       [그렇죠? 역시 주인공은 이런 맛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이 전개도 나쁜 것 같지는 않아요!]

       

       

       입가의 웃음기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찾아버렸으니까. 이 인형뿐인 세상 속에서, 사람을.

       

       

       

       ***

       

       

       

       “미, 미친 거 아냐···? 얘, 얘 뭐야···?!”

       

       

       머리를 얻어맞아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외쳤다.

       

       분명 약하기 그지없는 애송이였는데.

       

       옆에 있던 여자의 강화를 받아도 충분히 처치할 수 있는 애송이였는데.

       

       한순간, 목숨의 위협을 느꼈다.

       

       만약 이 녀석이 1초만 더 버텼으면 나는···!

       

       

       “감히, 감히···! 기분이 좋아 잠깐 놀아주려고 했더니···!”

       

       

       피투성이가 된 채 누워있는 애송이를 바라보았다.

       

       이런 녀석에게, 고작 이런 녀석에게 진심으로 죽을 거라고 생각해버렸다.

       

       실전 경험도 없고, 아직 아카데미를 다니고 있는 이런 애송이에게.

       

       

       “···위험해.”

       

       

       아직 성장하지도 못한 녀석에게 죽을 뻔했다.

       

       살려둘 수는 없었다.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영웅병에 걸린 애송이가 언젠가 또 방해하러 올지 몰랐으니까.

       

       만약 조금이라도 더 성장한 상황에서 다시 한번 만난다면?

       

       지금은 방심했기에 위험했던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도 있었지만, 미르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만 했다. 이 녀석은 위험하다고.

       

       살려뒀다가 성장한 이후에 다시 한번 만난다면 그때는 정말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미르는 겸허히 인정하기로 했다.

       

       

       “···운이 좋았어. 네가 아니라, 내가.”

       

       

       지금껏 아라크네에게 방해받았던 것이 사실은 지금 운 좋게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섬뜩해진 마음을 진정시키며, 미르는 손에 바람을 응축시켰다.

       

       저 위험한 녀석을 죽여버리기 위해서.

       

       성장하면 위험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나의 공격마저 훤히 보인다는 듯 회피한 걸로 보아, 기습도 통하지 않겠지.

       

       그때 가서는 늦어. 지금 처치해야만 해.

       

       

       “죽···!”

       

       “···뭐 하는 거야, 인형 주제에.”

       

       “?!”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에 다급히 능력을 풀어 주변을 공격하려고 했다.

       

       하지만 머리를 얻어맞았기 때문일까. 잠깐의 틈이 생겼고, 상대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꺄, 꺄아아아악···!”

       

       “네가 죽이려던 게 누군지 알기나 해? 너 따위가 건드릴 사람이 아니라고.”

       

       “끄흑, 큭···! 너, 너···!”

       

       

       기습이었고, 잠깐의 틈이 생겼다지만 순식간에 오른팔이 잘려 나갔다.

       

       이게, 이게 무슨···!

       

       팔이 잘려 나가 잘 모이지 않는 바람을 억지로 유지하며 급습한 적을 바라보았다.

       

       갈기갈기 찢겨나간 복장. 그리고 주변에 보이는 실.

       

       도무지 전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실이라는 도구에, 손쉽게 정체를 유추해낼 수 있었다.

       

       

       “그 실···! 너구나, 아라크네! 분명 랑이 막으러 갔을 텐데!”

       

       “랑? ···아, 그 녀석? 몰라, 죽었겠지. 관심 없어.”

       

       

       아라크네는 내게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녀의 시선은 오로지 방금 쓰러진 녀석에게로 향해있었다.

       

       치명상을 입었다고 나를 무시하다니.

       

       여태껏 겪어보지 못한 모욕감에 짜증이 일었다.

       

       

       “나를, 무시하지···!”

       

       “무시한 적 없어, 위버멘쉬. 너는 위험하니까.”

       

       

       순식간에 실이 내 몸을 향해 날아들고, 능력을 사용해 반격하려던 찰나.

       

       또다시 세상이 휘청거리며 바람이 이상한 방향을 향해 나아갔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 운명은 여기까지라고.

       

       평생을 목표로 했던 물건을 얻었다는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잠깐 여유를 부렸다는 치명적인 실수.

       

       그 실수 하나에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

       

       

       “···컥.”

       

       “인형 주제에 사람을 상처입히면 안 되는데. 너는 선을 넘었어.”

       

       

       흐려지는 시야 사이로, 애니가 다급히 무언가를 들고 달려오는 게 보였다.

       

       미안, 애니.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었는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 님, 오늘도 좋은 밤 되시길 바랍니다.
    다음화 보기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