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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5

       

       – 폐하의 윤허가 내려왔네.

       

       클라인이 가만히 수정구를 쳐다보았다.

       

       – 곧 크리스를 황궁으로 부르실 것이네.

       

       “…”

       

       클라인의 입은 닫혀 있었다.

       

       놀라운 소식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딱히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굳이 말을 해야 한다면.

       

       “이미 늦었네.”

       

       – …늦었다고 했는가?

       

       수정구에서 울리는 목소리가 진지해졌다.

       

       낮게 가라앉아 딱딱해진 목소리.

       

       간만에 듣는 어조에 클라인이 느끼고 있던 어색함이 사라졌다.

       

       그의 친우인 파라몬은 이런 말투가 더 어울렸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을 이런 식으로 말을 했었으니.

       

       – 자세히 설명해 보게. 혹시나 이단이라는 명목으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라면…

       

       “….”

       

       – 소드 마스터와 엘프의 분노를 마주해야 할 것이네.

       

       점점 더 심각해지는 분위기에 클라인이 멋쩍게 입을 열었다.

       

       그로서도 아직 어안이 벙벙했기 때문이다.

       

       “벌써 다 끝났네. 크리스가 일에 관여하기 시작하자마자 끝이나 버리더군.”

       

       크리스가 무언가 준비했던 기간을 빼놓고 보면 정말 짧은 시간이었다.

       

       해가지고 다시 뜨기도 전에 모든 일이 끝나 버렸으니까.

       

       “배신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였네. 솔직히 나도 얼떨떨하군.”

       

       – 크리스와 함께 다니면 자주 겪는 일이라네.

       

       담담한 어조를 들은 클라인이 다시 실소를 흘렸다.

       

       크리스의 이야기가 나오니 파라몬의 말투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 곧 크리스를 데리러 가겠네.

       

       “그건 좀 힘들 것 같군.”

       

       –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곧 성녀께서 태어나실 예정이네. 그것을 크리스가 준비했고…아마 같이 가야 할 것 같군.”

       

       순간 수정구에서 흘러나오던 소리가 멈췄다.

       

       그만큼 큰 소식이었다.

       

       – 지금 같은 시기에 아주 좋은 소식이로군. 

       

       “그리고 당사자는 지금 기절해서 쓰러져 있다네.”

       

       – 그것도 자주 있는 일이네.

       

       “….”

       

       몇 번의 실없는 대화가 오고 간 후 통신이 끊어졌다.

       

       두 사람의 공통된 생각이 하나 있었다.

       

       많은 것을 준비했지만 결국은 의미가 없었다는 것.

       

       파라몬이 크리스를 위해 준비한 일 조차 이미 필요가 없어졌다.

       

       베르테를 처단하기 전이었다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제국의 황제가 부른 사람을 이단으로 몰아 억류한다면 정치적인 문제가 생길 테니까.

       

       “직접 겪고도 믿을 수가 없군.”

       

       잠깐 멈춰 섰던 클라인이 두 손을 향해 고개를 내렸다.

       

       스윽 –

       

       행여나 흠집이라도 날까 소중하게 움직이는 손.

       

       먼지한톨 묻지 않은 새하얀 천이 성검을 문지르고 있었다.

       

       “성검을…”

       

       스윽 –

       

       “발로 밟다니…”

       

       어찌 이렇게 불경한 일이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어느누가 성물을 발로 밟느냔 말이다.

       

       그 위에서 춤까지 췄다는 사실은 아무도 믿어 주지 않을 것이다.

       

       “…”

       

       맨발로 성검 위에서 몸을 흔들던 크리스.

       

       클라인이 슬며시 검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스윽 –

       

       아주 미약한 스침.

       

       그 작은 동작에 손끝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헙!”

       

       클라인이 화들짝 놀라며 천을 움직여 성검을 문질렀다.

       

       아주 소중하게···.

       

       “스승님, 출발 준비가 끝났습니다.”

       

       이제 성녀를 맞이하러 가는 행렬이 시작 될 것이다.

       

       “성하께서는 어디 계시느냐?”

       

       한스의 손끝이 한 방향을 가리켰다.

       

       “훌륭한 준비군.”

       

       더없이 깔끔한 일 처리였다.

       

       그곳을 향해 걸어가는 클라인의 눈에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창백해진 얼굴로 가만히 누워 있는 크리스.

       

       시퍼런 눈빛을 흘렸던 사람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이 약한 모습이었다.

       

       “클라인경, 오셨소?”

       

       “이제 곧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교황이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하얀 옷과 잘 어울리는 미소였다.

       

       옷을 갈아입은 것은 교황 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같은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오직 하얀색만이 존재하는 옷.

       

       성녀를 맞이하러 가는 예복이었다.

       

       “헌데…세레나양께서는 무엇을 하는 것이오?”

       

       클라인이 움직이고 있는 세레나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커다란 판자위에 누워 있는 크리스의 옆으로 꽃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 역시도 저 행위가 궁금하여 물어보았었다.

       

       “…크리스를 위한 정성이라고 합니다.”

       

       “호오…”

       

       교황이 관심을 가지고 세레나가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바라보기를 한참.

       

       교황의 눈이 슬며시 움직이며 성검에게 닿았다.

       

       “크리스 경은 우리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소.”

       

       “성하의 말씀대로 입니다.”

       

       “은혜를 입었으니 우리 또한 정성을 표해야 하지 않겠소?”

       

       클라인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려 성녀의 탄생을 도운 인물이니 말이다.

       

       어쩌면 그 일 자체가 크리스에게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생각은 이렇소.”

       

       “말씀하소서.”

       

       “크리스 경이 우리와 함께하는 동안 성검을 지닌다면, 지친몸이 조금이라도 빨리 치료가 되지 않겠소?”

       

       흠칫.

       

       클라인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크리스의 발에 무참히 유린당하던 성검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하오나, 성검은 누군가가 지니기에는…”

       

       “무려 성녀의 계시에 나온 인물이 아니오? 충분하다고 생각하오만…”

       

       이 말에 어떻게 더 반대를 할 수 있을까.

       

       성녀의 계시에 나온 인물이며, 교단의 은인.

       

       이미 그 자체로 충분했다.

       

       “…알겠습니다.”

       

       성검이 크리스에게로 옮겨 갔다.

       

       검 끝이 발로 향한 채로 몸 위에 올려지는 성검.

       

       크리스의 양손이 가슴으로 모여 성검위에 얹혀졌다.

       

       “성검의 신성력이 크리스의 몸을 치유해 줄 것이네.”

       

       클라인의 말에 꽃을 정리하던 세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가 입에서 새어 나왔다.

       

       크리스를 제외하고는 말을 하는 일이 없던 세레나에게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사람들의 정성이 필요해요.”

       

       “정성 말인가?”

       

       “크리스는 항상 특별한 의식을 지내 왔어요. 치성을 드린다고 말하는…”

       

       세레나의 말에 주변을 서성이던 한스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제가 그 의식을 알고 있습니다!”

       

       “네가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엘프의 숲에서 하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직접 참여하기도 했고요.”

       

       교황을 비롯해 주변에 있던 신관들의 시선이 모여 들었다.

       

       “설명해 보거라.”

       

       “우선 음식을 차려야 합니다. 빨간 음식은 이쪽으로 하얀 음식은 저쪽으로 가야 합니다.”

       

       크리스와 함께 치성을 드린 적이 있던 세레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스의 말이 맞음을 증명했다.

       

       “그리고는 절이라는 특별한 의식을 진행합니다.”

       

       한스가 시범을 보이며 크리스를 향해 절을 올렸다.

       

       모두가 똑똑히 볼 수 있도록 천천히 진행되는 행위였다.

       

       “파라몬님께서 강조하신 것이 있습니다.”

       

       “라몬이 말이냐? 어서 말해보거라.”

       

       친우의 이름이 나오자 클라인의 표정이 변했다.

       

       그가 강조한 것이라면 상당히 중요한 사항일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검술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그 기본이 되는 동작입니다.”

       

       끄덕.

       

       끄덕.

       

       주변에 있던 성기사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클라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 의식에 사용되는 기본은 바로 절 입니다.”

       

       “호오…”

       

       “두 번을 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하셨습니다.”

       

       “두 번을 말이냐?”

       

       “파라몬님께선 행위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다 하셨으니, 다들 정성을 담아야 합니다.”

       

       모두가 결연한 얼굴로 몸을 움직여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꽃 사이에 누운 크리스의 주위를 둘러싼 것이다.

       

       “엘프의 숲에선 세계수님께 기도를 올렸으니, 저희는 주신과 일리아님께 기도를 올려야 함이 마땅합니다. 모두 의식을 진행 하도록 하겠습니다.”

       

       순간, 알루어드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어디론가 사라졌던 알루어드가 돌아온 것이다.

       

       “안 됩니다.”

       

       교황이 흥미로운 얼굴로 알루어드에게 되물었다.

       

       절대 이런 것으로 딴지를 걸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느냐?”

       

       “크리스님께서는…”

       

       알루어드가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쓰러지기 직전에 절을 하지 말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호오…”

       

       잠시 생각을 하던 알루어드가 말을 이었다.

       

       “저의 짧은 생각으로는… 크리스님께서는 아마 교단의 방식으로 신께 기도를 올리기를 바라셨을 겁니다.”

       

       “그렇군…”

       

       “과연… 알루어드경의 말이 맞는 듯 하오.”

       

       주변의 동조에 알루어드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크리스님께서는 성검위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길을 잃지 말라.’ 그것은 저희가 하던 대로 나아가라는 의미라고 생각됩니다.”

       

       논리정연한 말이었다.

       

       알루어드가 한 말들은 주변을 설득하기에 충분했다.

       

       교황마저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훌륭하구나.”

       

       “감사합니다. 교황이시여.”

       

       교황이 모두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교단의 은인에게 우리가 정성을 쏟는 것은 당연한 일이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크리스 경이 남긴말을 따라 잠깐 기도를 올리는 시간을 가지겠소.”

       

       교황이 고개를 숙이자 모두가 고개를 숙이며 두 손을 모았다.

       

       기도가 크리스를 향해 쏟아졌다.

       

       신께서 크리스와 함께 해 달라는 내용이 대다수였다.

       

       그리고 그사이로 세레나의 피리소리가 스며들었다.

       

       “…세레나양?”

       

       아주 구슬픈 피리 소리였다.

       

       누가 들어도 그 안에 무슨 감정이 담겨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모두가 숙연해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피리소리를 들으며 교황이 입을 열었다.

       

       “성녀를 모시러 가는 길에 크리스 경이 함께할 것이오.”

       

       그리고 이어지는 명령에 따라 성기사들이 움직였다.

       

       “출발하도록 하겠소.”

       

       그와 함께 들려지는 크리스.

       

       크리스가 누워 있던 넓은 판을 성기사들이 들어 올린 것이다.

       

       어깨 위에 짊어지며.

       

       “모두가 크리스경의 희생에 경건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오.”

       

       “성하의 말씀을 받드옵니다.”

       

       그리고 크리스의 뒤편.

       

       알루어드가 무언가를 들고 와 자리를 잡았다.

       

       “그것은 무엇이냐?”

       

       “크리스님께서는 신을 모실때 항상 방울을 흔들었습니다.”

       

       말을 하며 들어 올린 것은 제법 큰 종이었다.

       

       어린아이의 상체만한 크기.

       

       알루어드가 반대 손으로 채를 들어 올렸다.

       

       “혹시나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여 가지고 왔습니다.”

       

       “훌륭하구나.”

       

       이윽고 종소리가 울려 퍼지며 피리소리와 함께 어우러졌다.

       

       대앵 –

       

       크리스가 들었다면 옳다구나 했을 소리였다.

       

       행렬이 출발하며 하얀색의 물결이 만들어졌다.

       

       대앵 –

       

       모두가 엄숙한 표정으로 걷고 있었다.

       

       그리고 성기사에 의해 들려진 크리스의 몸이 움찔거렸다.

       

       “사…상여….차라리 절을…” 

       

       대앵 –

       

       희미한 크리스의 목소리가 종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내가 시체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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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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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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