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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5

       타타노크 마을이 아직까지 남아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참 신기하단 말이지.

       

       그때 완전히 잿더미가 되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줄 알았거든.

       

       라이너스와 내가 마을 인근을 지날 때 이미 마왕군 놈들이 불을 지르던 중.

       

       뒤늦게 뛰어들어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는 했지만 불이 붙은 집까지 지켜낼 수는 없었다.

       

       초대장을 보며 그때의 기억을 회상하고 있으려니 올리시아가 식탁 너머로 기웃거렸다.

       

       “뭔가요, 그건?”

       

       “아, 이거. 마을 행사 초대장이야.”

       

       “무슨 마을 행사요?”

       

       “옛날에 전쟁 때 구해준 곳인데 이번에 나더러 꼭 와달래.”

       

       “그래요? 그럼 가야죠. 언제인가요?”

       

       “이번주 주말이다.”

       

       “오, 딱 좋네요. 제가 디안 님께서 입으실 멋진 옷을 준비해 놓을게요. 그리고 이참에 머리도 좀 자르시고요. 내일 퇴근하고 상점가 미용실에 들렀다 오세요.”

       

       “그래그래. 너 아니었으면 아주 거지꼴로 살았을뻔했다.”

       

       농담을 던지자 올리시아가 잘난 체하는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웃기는 녀석.

       

       

       # # # # #

       

       

       “수석교수님! 테니스 치러 가요!”

       

       다음날. 퇴근하는데 리나가 달려와 와락 팔짱을 꼈다.

       

       뒤에는 리나에게 억지로 끌려온 애나가 쭈삣거리며 서있다.

       

       “돈이 남아 도냐? 어차피 오늘도 질 게 뻔한데. 그리고 나 바빠. 머리 자르러 가야 하거든.”

       

       “어디 결혼식이라도 가세요?”

       

       “비슷한 거. 테니스는 내일 치자.”

       

       “호오, 그럼 미용실 같이 가요!”

       

       이건 또 뭔 소리야?

       

       리나가 다른 손으로 애나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어차피 애나도 머리를 좀 다듬어야 하니까. 이왕 가시는 거 저희도 가요.”

       

       “아니, 저, 저는… 괜찮은데….”

       

       “이게 뭐가 괜찮아. 얼른 따라와.”

       

       확실히 애나의 머리칼은 좀 덥수룩한 감이 있지. 말 말고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서 그런 듯.

       

       항상 깔끔하게 꾸미고 다니는 리나와는 완전 딴판이다.

       

       말 나온 김에, 리나랑 애나의 이름 말인데.

       

       원래 리나의 본명은 린더스인데 남자 같다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리나’라고 불러달라고 해서 그렇게 됐다.

       

       애나와 다른 특별한 뭔가 관계가 있어서 이름이 비슷한 건 아니다.

       

       “어머나! 세상에!”

       

       상점가에 위치한 미용실에 들어가자 원장이 호들갑을 떨면서 나를 맞이했다.

       

       “이게 누구야? 전투수석교수님 아니세요!?”

       

       “저 여기 처음인데요.”

       

       “처음이면 모르나요? 아카데미에 전투수석교수님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요. 머리 자르러 오셨어요?”

       

       “네.”

       

       “이쪽으로 오세요, 이쪽으로.”

       

       원장은 내 어깨를 밀며 가운데 의자에 앉혔다.

       

       내 좌우로 몇 개의 의자가 더 있었는데 거기 앉은 학생들이 곁눈질로 나를 힐끔거렸다.

       

       “애나 교수도 머리 자르러 왔어요.”

       

       “그러시구나. 교수님. 여기 앉으세요.”

       

       리나의 재촉에 애나는 머뭇거리며 내 옆자리에 앉았다.

       

       거기에는 다른 미용사가 담당하고 나에게는 원장이 직접 붙었다.

       

       “어떻게 잘라드릴까요?”

       

       “그냥 깔끔하게만 해주세요. 지금이랑 스타일은 똑같이요.”

       

       “지금도 좋지만 교수님 같은 미남에게는 이런 스타일을 추천드려요.”

       

       원장이 책자를 가져와 내게 펼쳐 보였다.

       

       거기에는 여러 종류의 헤어스타일이 실사에 가까운 정밀한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다.

       

       “이거 요즘 남학생들이 하는 머리 아닌가요? 저는 그냥 지금처럼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원장은 다소 실망한 기색으로 가위를 집어 들었다.

       

       “아니아니…. 그냥 조금만 아주 조금만요….”

       

       “이 정도는 잘라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 곧 여름이잖아요.”

       

       “아뇨아뇨아뇨….”

       

       그때 옆자리의 애나는 미용사와 머리 길이를 가지고 실랑이중이었다.

       

       미용사는 덥수룩한 애나의 머리를 확 치고 싶어했고 애나는 그런 극단적인 변화가 감당하기 어려운지 절대 싫다고 하고 있고.

       

       리나까지 가세한 격렬한 토의 끝에 결국 적당히 다듬어서 바짝 묶고 다니는 것으로.

       

       “그런데 교수님. 평소에 자주 좀 오세요.”

       

       소란을 들으며 낄끼 웃고 있으려니 내 머리를 만지며 원장이 말을 걸었다.

       

       “아니면 어디 시내의 다른 곳에서 머리를 자르시나요?”

       

       “그냥 집에서 면도칼로 자르는데요.”

       

       “네에? 정말이세요?”

       

       정말이다. 그냥 적당히 긴 머리칼을 면도칼로 쓱쓱 썰어낸다.

       

       올리시아는 난리난리인데 편한 걸 어떡하냐.

       

       이세계 빙의 때부터 굳어져 버린 습관이라고.

       

       입대해서 종전까지 이렇다 할 미용실에 갈 여력이 안 되니 그냥 대충 자르던 건데 이제는 이게 완전히 몸에 익어서 면도칼만으로도 어느 정도 멋을 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자아, 이 정도면 어떠신가요?”

       

       어느 정도 머리를 다듬은 원장의 말에 거울을 보니 확실히 깔끔하다.

       

       “좋네요.”

       

       “그럼 이제 머리를 감으실게요.”

       

       따뜻한 물로 머리를 정성스럽게 감기며 원장이 물었다.

       

       “물 온도 어떠세요?”

       

       “네. 무릉도원이네요.”

       

       머리를 모두 감은 원장이 처음 오셨으니 두피 안마를 해준다기에 그러라고 했다.

       

       머리에 냄새가 굉장히 좋은 기름을 발라 지그시 마사지를 해주는데 이게 의외로 굉장히 기분이 좋다.

       

       “좋으시죠?”

       

       “좋네요….”

       

        규칙적으로 두피를 누르는 손이 어찌나 사람을 노곤하게 만드는지 나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 # # # #

       

       

       “어휴, 좋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계곡물에서 나오자 온몸이 상쾌해지는 게 좀 살 것 같다.

       

       “야, 라이너스. 너도 오라니까?”

       

       “나는 괜찮다.”

       

       계곡 저쪽에서는 라이너스가 긴장한 눈빛으로 계곡의 초입을 감시중이었다.

       

       “아직 별다른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겠지. 벌써 이틀이나 쉬지 않고 달렸잖아. 그러니 너도 와서 씻어. 안 그러면 내일 아침 즈음에는 쓰러질지도 몰라.”

       

       “글쎄….”

       

       “그리고 좀 씻어서 냄새를 지워야 추적을 피하기 쉽지.”

       

       그 논리가 합당했는지 라이너스는 천천히 경사면을 내려와 옷을 벗고 계곡으로 들어왔다.

       

       그 사이 나는 옷을 입고 라이너스가 서있던 곳으로 올라가 우리가 도망쳐 온 곳을 내다봤다.

       

       “따로 불빛 안 보이고 오러 같은 것도 안 느껴지고. 아마 우리가 죽었다 생각해서 돌아간 것 같은데?”

       

       “그래줬으면 좋겠군.”

       

       계곡에 들어간 라이너스가 몸에 물을 끼얹으며 대답했다.

       

       “무사히 대대 본부까지 돌아가야 할 텐데….”

       

       우리는 지금 소대가 전멸하고 둘만 살아남아 열심히 튀는 중이다.

       

       군단에서 적진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소대 하나를 차출해 정찰을 내보내기로 했는데 그게 하필 우리 소대.

       

       우리 소대장은 막 임관에 이번에 처음으로 전선에 배치된 신참인데 진급에 눈이 먼 미친놈이었다.

       

       참고로 저번 소대장은 보급품 빼돌리는 거 내가 대대에 찔러서 보직해임당했다.

       

       원래 그냥 봐주려고 했는데 오거 선봉대를 상대로 돌격을 지시하는 꼴을 보고 아무래도 계속 저놈 밑에 있었다간 마왕은커녕 도중에 개죽음 당하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이후 새로운 소대장이 왔는데 이놈은 더 미친놈.

       

       저번놈은 그냥 무능했다면 이번놈은 무능한데 욕심까지 많은 놈이었다.

       

       소대장은 정찰임무를 나가기 전에 군장검사를 하면서 우리에게 이번 기회에 큰 공을 세우자고 공공연하게 선언.

       

       군단에서 그어준 전진한계선보다 더 안쪽으로 침투해 들어간 것도 모자라 마왕군 대대 숙영지를 발견하고는 야간기습을 하자는 정신나간 명령을 내리게 된다.

       

       그 결과는 소대 전멸.

       

       전투력 70% 미만 어쩌고 하는 그 전멸이 아니다. 말 그대로 싹 다 죽어버린 거다.

       

       그렇게 나와 라이너스만 어찌어찌 살아남아 머나먼 대대본부로 후퇴하고 있다.

       

       미친 소대장 새끼가. 뒤지더라도 전진한계선 근처에서 뒤졌으면 아마 오늘 즈음에는 대대본부에 도착했을 텐데.

       

       어찌나 깊게 적진을 파고 들었는지 아무리 달리고 달려도 대대본부가 나올 기미가 안 보인다.

       

       대충 지형으로 봐서는 하루에서 이틀은 더 가야 할 것 같은데.

       

       오늘은 좀 쉬도록 하자.

       

       어차피 고작 병사 둘 잡겠다고 여기까지 추격할 리는 없고 이후 계속 뛰려면 오늘은 자야만 한다.

       

       “네 생각이 옳다, 디안. 그럼 내가 먼저 불침번을 서지.”

       

       움푹 파인 곳을 찾아 나뭇가지며 낙엽을 잔뜩 깔고 있으려니 라이너스가 먼저 계곡의 경사면을 기어 올라갔다.

       

       “그래. 그럼 이따가 깨워라.”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머리에 땅을 대자마자 그대로 골아 떯어졌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디안, 디안!”

       

       라이너스가 나를 격하게 흔들어 깨웠다.

       

       “왜 그러냐….”

       

       “저쪽에서 민가가 공격을 받고 있다!”

       

       “엥?”

       

       라이너스를 따라 경사면을 올라가 머리를 내미니 과연 멀지 않은 곳에 작은 마을 하나가 불길에 휩싸여 있는 게 보였다.

       

       아까는 불빛이 없어서 보이지 않았던 마을이다.

       

       “저것 봐라. 마왕군이야.”

       

       라이너스가 손을 들어 마을의 귀퉁이를 가리켰다.

       

       과연 대가리에 뿔을 단 놈들이 횃불을 들고 마을을 돌아다니는 게 보인다.

       

       그리고 그들을 피해 도망치는 사람들의 비명도.

       

       “아직까지 피난을 안 가고 용케 남아 있었네.”

       

       “도와주자, 디안.”

       

       “우리가? 무슨 수로 도와주냐? 우리는 둘이고 저것들은 최소 소대급으로 보이는데.”

       

       “하지만 저대로 놔두면 모두 죽고 말 거다.”

       

       그건 맞는 말이긴 한데….

       

       잠시 갈등하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참지 않으면 라이너스와 나는 마왕을 죽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라이너스. 네 마음은 잘 알겠지만….”

       

       “으아아아아아아아앙!!”

       

       그때 찢어지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여섯 살 남짓 되어 보이는 꼬마가 갓난아기를 등에 업고 달리다 넘어진 것이었다.

       

       “디안!”

       

       그것을 본 라이너스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마왕을 죽이자고 했지? 하지만 지금 저것을 그냥 지나친다면 나는 마왕을 죽인 후에도 평생 후회 속에 살 것 같다!”

       

       “씨발, 모르겠다!”

       

       바닥에 떨어진 갓난아기를 온몸으로 감싸는 꼬마를 본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가자, 라이너스! 저 뿔쟁이 새끼들을 다 족쳐 버리자고!”

       

       “교수님?!”

       

       막 경사면을 뛰어 내려가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흔들었다.

       

       눈을 뜨니 미용실 원장이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예?”

       

       “꿈을 꾸셨어요? 라이너스인가 뿔쟁이 뭐라고 하셨는데…?”

       

       “제가요?”

       

       옆을 돌아보니 애나와 리나를 비롯한 미용실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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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Quietly 은퇴한 조력캐는 조용히 살고 싶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causing chaos with my knowledge of the original work, I assisted the protagonist.

I successfully completed the story and now planned to retire and live peacefully.

However, it seems the protagonist still needs my help.

An academy professor? That’s nothing much.

But why is the state of the academy so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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