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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5

        

         

       “같은 거 아니야?”

       “달라요!”

       “어쨌든 염소 대용으로 쓸 수 있는 거 아냐?”

       “상징 자체가 다르다고요! 아니, 이거 얼마 전에 교양에서 듣지 않았어요?!”

       “얼마 전에?”

       “기억 안 나요?! ‘생활과 상징 2’에서 ‘바포메트(Bafometz)와 영지주의’를 강의했잖아요! 거기서 바포메트의 지역별 명칭 및 상징의 차이와, 염소와 산양에 대한 상징의 차이와 변화 과정에 대해서도 배웠잖아요!”

         

       짜증 섞인 엘라의 외침.

         

       “아~기억 안 나, 기억 안 나. 어차피 상징 그런 거 배워봤자 난 쓸 곳도 없는데. 너랑 이세린은 너무 잔소리가 심하다니까.”

         

       그녀의 외침에 돌아온 것은 교양 교수가 들으면 복장이 터질만한 말이었다.

         

       엘라는 그녀의 상상 이상의 말에 말문이 턱 막혀버렸다.

         

       “…아.”

         

       여기서 뭘 더 말할 수 있을까.

       자기는 그런 거 기억 안 하고, 외울 생각도 없다는데.

         

       그녀가 여기서 염소와 산양의 차이점과 그 상징성에 대한 설명을 아무리 쉽게 푼다고 한들, 저 사람 모양 짐승은 그대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릴 것이다.

         

       엘라는 설명하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에 이아린을 일으키고는 등을 떠밀었다.

         

       “어?”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문을 열고 그녀를 집 밖으로 보냈고, 쾅 소리가 나게 문을 닫고는 단단하게 걸어 잠갔다. 그리곤 좀비처럼 비척비척 걸어가 소파에 드러눕고는, 자신의 눈앞에서 두통의 원인을 제거했다는 것에 깊은 만족을 느꼈다.

         

       쾅쾅쾅!

         

       “토끼야! 문 좀 열어봐!”

         

       엘라는 문밖에서 들리는 소음을 무시하고 헤드폰을 썼다.

         

       그녀는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러시아로 유학을 왔을 때부터 꾸준히 자장가로 사용했던 노래, 코사크의 자장가([Казачья колыбельная)가 작지도 크지도 않은 소리로 귓가에 속삭여졌고,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그녀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몸에 힘이 빠지고.

       들숨과 날숨이 규칙적으로 변하고.

       여러 잡념과 상념이 사라지고 머리가 하얗게 변한다.

         

       몸이 무거워지는 느낌과 함께 세상에서 괴리되기 시작한다.

         

       그녀는 잠에 빠졌다.

         

         

         

         

        * * *

         

         

         

         

       잘 자라, 나의 예쁜 아가(Спи, младенец мой прекрасный,)

       자장-자장(Баюшки-баю.)

         

       동화를 들려주마(Стану сказывать я сказки,)

       노래를 들려주마(Песенку спою;)

       그러니 눈을 감고 잠에 들거라(Ты ж дремли, закрывши глазки,)

       자장-자장(Баюшки-баю.)

         

       나의 천사, 평온하게, 달콤하게(мой ангел, тихо, сладко,)

       자장-자장(Баюшки-баю.)

         

       난 온종일 기도를 올리며(Стану целый день молиться,)

       밤이면 너의 운명을 점치게 될 거야(По ночам гадать;).

         

       나의 천사, 달콤하게(мой ангел, сладко,)

       자장-자장(Баюшки-баю.)

         

       난 온종일 기도를 올리며(Стану целый день молиться,)

       밤이면 너의 운명을 점치게 될 거야(По ночам гадать;).

         

       자장-자장(Баюшки-баю.)

       자장-자장(Баюшки-баю.)

         

         

       

        * * *

         

         

         

       엘라가 눈을 떴을 때는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것도 그냥 어두컴컴한 것이 아닌, 차가운 냉기를 품은 어둠이었다.

         

       ‘아…. 내가 난로를 안 켜고 잤구나….’

         

       그녀는 숨을 쉴 때마다 폐부를 시원하게 훑고 지나가는 냉기를 느끼며 살짝 입김을 불어 보았다. 하아- 하는 소리와 함께 불어지는 입김에는 형체가 있었고, 강화된 신체로 입김이 하얀 모양새를 띠다가 사라지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

         

       ‘너무 추운데….’

         

       그녀는 일어나서 난로를 켜야겠다는 생각으로 몸을 일으켜 일어나려고 했다.

         

       물컹.

         

       하지만 그녀가 소파 아래로 발을 내딛는 순간 뭔가 물컹거리는 감촉이 느껴졌고, 그것이 묘하게 따뜻하고 탄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게 뭐지….’

         

       그녀는 잠에서 덜 깬 상태로 하품을 하며 자신이 밟고 있는 것을 쳐다보았고….

         

       “꺄악!”

         

       비명을 지르고야 말았다.

         

       사람.

       기상천외한 자세로 누워 있는 사람이 있었다!

         

       엘라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신의 사역마(Familiar spirit)를 불렀다.

         

       “이그니스 파투스(ignis fatuus)!”

         

       그러자 그녀의 앞에 자그마한 불씨가 생겨났고, 그것은 자신이 전구라도 되는 것처럼 구체의 형태의 빛으로 변했다. 하얀빛으로 이루어진 축구공 크기의 그것은 자신을 불렀냐는 듯 둥실둥실 허공에 떠서 엘라 주변을 맴돌았다.

         

       엘라는 사역마 덕분에 소파 주변이 밝혀지자 고개를 내려 자신이 밟고 있는 무언가를 확인했고, 이윽고 잠에서 깨자마자 느꼈던 경악과 공포가 짜증으로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밟고 있는 것은 이아린이었다.

       이아린은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추운 날씨에 맨바닥에서, 세상 편안한 자세와 표정으로 잠을 자고 있었다. 게다가 도대체 무슨 꿈을 꾸는지 멋들어진 자세를 취하며 누워 있었는데, 그 모습이 엘라의 눈에는 참 얄미워 보였다.

         

       엘라는 자신에게 애교를 부리는 사역마를 슬쩍 손으로 밀어내고, 이아린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일어나봐요.”

       “응?”

         

       엘라는 그녀를 반쯤 깨운 뒤 상체를 일으켜주었고.

         

       짜아아악!

         

       무방비 상태가 된 이아린의 등짝을 후려쳤다.

         

       “앗 따가!”

       “내가! 못살아!”

         

       짝!

         

       “따가워! 잠깐! 엘라! 잠깐만!”

       “얼마나 놀란 줄! 알아요?!”

         

       짜아악!

         

       “악!”

       “그리고 여긴 또! 어떻게 들어왔어요!”

       “그만! 그만!”

       “게다가 무슨! 진짜 짐승도 아니고! 맨바닥에서 잠은 왜 자는데! 말을 해봐요! 말을!”

         

       짜악!

         

       엘라는 한참이나 이아린의 등짝을 후려친 후에야 진정할 수 있었고, 새빨갛게 변해버린 제 손바닥과 손자국은 찾아볼 수도 없이 깔끔한 이아린의 등짝을 번갈아 보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무인은 사기야…. 어떻게 자국도 남지 않을 수가 있나요…. 때린 사람이 더 아프다니…. 말이 안 돼요….”

       “그러니까 그만하라니깐.”

         

       소파로 올라온 이아린은 실실 웃으며 한 손으로는 엘라의 손을 주물러주었고, 남은 한 손으로는 허공에 떠다니는 그녀의 사역마를 쓰다듬었다. 엘라는 제 주인도 아닌데 얌전히 몸을 맡기고 애교를 부리는 사역마가 짜증 나는지 슬쩍 쏘아보았고, 이아린은 약을 올리기라도 하는 듯 빛 덩어리를 계속해서 쓰다듬었다.

         

       “우리 위습이. 귀여워, 귀여워.”

         

       그 모습에 울컥 짜증이 솟았다가도 순식간에 사그라지는 것은 왜일까.

         

       엘라는 이아린이 말을 죽어라 안 듣는 고양이 같다는 생각을 하며 한숨을 쉬며 물었다.

         

       “그래서…. 프라우 리.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요?”

         

       그녀의 물음에 이아린은 오히려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응? 저번에 언제든 놀러 오라면서 열쇠 줬잖아.”

       “네? 제가요? 언제?”

       “언제더라? 곰이 보드카 들고 왔을 때 있잖아.”

       “…아.”

         

       곰이 보드카를 가져왔을 때.

         

       그 문장 하나로 엘라는 어떻게 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이아린은 보드카를 들고 있는 곰과 함께 손잡고 엘라의 집에 찾아왔었다. 그녀는 곰이 보드카라는 걸 가져왔는데 너도 같이 먹어보는 게 어떻냐는 말과 함께 그녀의 집에서 술판을 벌였고, 엘라는 호기심에 보드카를 한 잔 얻어먹었다.

       그리고…. 그녀는 ‘블랙아웃(Blackout)’이라는 것을 겪을 수 있었다.

         

       그렇다.

       엘라는 보드카 한 잔을 마시고는 필름이 끊겨버렸다.

         

       “…한 모금 마시고 기억이 없는데. 혹시 제가 그때 뭘 했나요?”

         

       그때는 그냥 얌전히 곯아떨어졌을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엘라는 슬쩍 이아린에게 물었다.

         

       “술주정이라는 거 난생처음 봤는데. 술 함부로 먹으면 안 되겠더라. 응?”

         

       하지만 돌아온 것은 명확한 답 대신에 귀엽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며 실실 웃는 이아린의 모습.

         

       엘라는 소리를 빽 질렀다.

         

       “말해요!”

       “싫어.”

       “내가 무슨 짓을 했는데?!”

       “아, 싫다니까~”

       “말해줘요!”

       “그럼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말해줄게.”

         

       이아린은 잘됐다는 듯 말했다.

         

       “염소 좀 구해줘!”

       “아, 저는 염소 안 기른다고요! 산양이라고!”

       “그러니까 염소. 산양 말고, 염소 말이야.”

       “…네?”

       “어쨌든 나보다 동물에 대한 지식은 많을 거잖아~ 그러니까 염소 좀 같이 구하러 가자.”

         

       그 제안에 엘라는 잠시 고민을 했다.

         

       이 사람 모양 짐승과 함께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것이냐.

       아니면 그냥 궁금한 걸 참고 쫓아버릴 것이냐.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알았어요. 생각나는 곳이 있으니 그곳에 가면 되겠죠. 대신에 빠짐없이 말해줘야 해요.”

         

       궁금한 것을 평생 알지 못하느니 잠시 번거로운 것이 훨씬 나았다.

         

       엘라는 옷을 대충 입고 이아린과 함께 밖으로 나섰다.

         

       시간 끌 것 없이 바로 염소를 구해주고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

         

         

         

        * * *

         

         

         

       “염소 구해줘서 고마워! 게다가 맡아주기까지! 토끼야, 진짜 고마워!”

       “감사 인사는 됐고…. 제가 뭔 짓을 했는지나 말해주세요….”

         

       엘라는 농장에서 구한 생후 7개월 된 염소를 끌어안고 있는 이아린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 한숨은 이아린에게 끌려다니며 받은 정신적 피로 때문이기도 했으며, 농장을 두 곳이나 들러야 했던 데에서 오는 육체적인 피로이기도 했다.

         

       ‘아, 다크서클 생기겠네. 돌아가면 팩 해야겠다….’

         

       엘라는 빨리 궁금증을 풀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아린은 에너지가 남아돌다 못해 넘치는지 그녀를 끌고 카페로 갔다.

         

       염소를 구해준 게 고마우니까 먹을 걸 사주겠다는 이유였다.

         

       이아린은 그녀에게 피곤할 때는 단 걸 먹는 게 좋다며 케이크를 먹였고, 피부에는 과일이 좋다면서 주스를 사서 먹였으며, 집 안 풍경이 휑했다면서 카페에서 팔고 있는 마스코트 인형을 사서 손에 쥐여주었다.

       엘라는 얼떨결에 두 팔로 끌어안아야 할 크기의 뱁새 인형을 받았고, 그것을 꼭 끌어안은 채 그녀의 수다에 한참이나 어울려야만 했다. 게다가 어찌나 에피소드가 많은지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케이크를 다 먹을 때쯤이 되자 술을 먹었을 때의 이야기가 흘러나와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래서 나한테 그러는 거야. 집은 넓은데 너무 춥다, 독일에서는 스승님하고 있었는데 혼자니까 좀 외롭다. 그래서 내가, 응. 내가 종종 놀러 올 테니까 열쇠를 달라고 했지. 그렇게 된 거야.”

       “…으아아아….”

         

       엘라는 술을 먹었을 때의 이야기를 들으며 부끄러움이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얼굴이 새빨갛게 변해버렸고, 그녀는 눈동자 색처럼 빨갛게 변해버린 얼굴을 숨기고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안타깝게도 손 역시 아까 등짝을 후려치느라 빨갛게 변해버린 터라 색 자체의 변화는 없었다.

         

       엘라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해 주제를 돌리려고 애썼고, 이아린은 그것을 받아주면서 둘의 대화는 또 한참이나 이어졌다.

         

       그렇게 둘은 카페가 닫기 직전까지 신나게 떠들었고, 둘은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혼자서는 위험하잖아. 내가 집까지 데려다줄게.”

         

       이아린은 자신이 데려왔으니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며 그녀를 집까지 배웅해주겠다고 했고, 엘라는 뱁새 인형을 끌어안은 채 이아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밤길을 함께했다.

         

       그렇게 한참을 걷던 도중.

         

       “어? 타로점?”

         

       길가에 세워져 있는 노상 점집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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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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