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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50

    <650 – 위기의 가능충(12)>

     

    집사 루브리오.

    그는 악몽을 보았다.

     

    ‘이것이… 정녕 골렘이 발휘할 수 있는 위력인가?’

     

    15중 종합결계가 일격에 박살 나고 동굴지형 전체가 무너졌다.

    그 저력은 불의 정령계에서 영주성을 뒤흔들던 최상급 불의 정령과 다르지 않았다.

     

    ‘최상급 정령 하나를 해치우기 위해 몇이나 되는 집사들이 희생을 했던가.’

     

    상급 불의정령만 해도 수많은 ‘목줄’을 사역하며 차마 보기가 두려울 정도의 공포와 절규를 양식으로 삼고, 어마어마한 힘을 키웠다.

    순수하게 사악한 힘만으로 쌓아올린 음에너지를 정령들의 잔혹한 성질도 모르고 순진하게 넘어간 재능 넘치는 순수한 계약자들의 마나로 정화하며 안정성을 키우는 행태는 얼마나 역겨웠던가.

     

    하급정령들의 화형지대.

    중급정령들의 망령지대.

    상급정령들의 농장지대.

     

    그들의 너머, 상급 정령이 최상급 정령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은 한 가지였다.

    자신들이 계약한 ‘순수한 계약자’를 타락시켜 정령의 모든 더러움으로 계약자의 순수를 오염시키고, 헤어 나올 길 없는 분노를 표출하는 타락한 계약자의 힘으로 정령체를 진화시키는 것.

    합일을 이루되 계약자는 정령의 사악함만을 거두고, 정령은 계약자의 순수한 재능과 힘을 앗아간다.

     

    그리하여 탄생한 최상급정령의 영지에는 인세에 절망한 계약자가 증오하고 원망하는 모든 이들의 영혼이 끌려온다.

    문자 그대로 인간세계의 영지 하나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갈아버리며 힘을 얻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 규모는 수많은 유령체가 뭉쳐서 탄생하는 존재, 힘의 시작과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고위 망령과 다름없다.

     

    ‘그런 정령을 <재미있으니까>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 세계에 창궐시키는 악룡과 기프트 아카데미가 옳을 리가 없지. 심지어 교장이 해방시키는 재앙은 주 1회. 작은 재앙이면 다행이지만 큰 재앙은 세계 전역에 영향을 미치기까지 하니까!’

     

    이러니 악룡과 아카데미에 맞서는 와이히엠하이 재단과 집사장이 잘못되었을 리가 없다.

    자신이 행하는 일이 정의라는 확신을 되새기며 집사 루브리오는 두려움을 떨쳐내었다.

     

    “오히려 잘됐다. 그 강함이 무엇에 비견되는 강함인지 알게 된다면, 하나뿐인 후보생도 더욱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지.”

     

    집사는 골렘들의 맹공을 피해 싱에게 접근했다.

    <기억조작>.

    그가 감독관 파시블 예프에게 시도했던 기능은 달리 사용하면 기억동조가 되기도 한다.

     

    동조마법에 의한 기억의 왜곡.

    이것이 그가 사용한 기억조작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원리는 오크노디가 사용한 동조마법과 유사했다.

    본디 알 리가 없었던 기억을 체험하는 것.

     

    <종말교단>의 교주 도비처럼 동조마법에 깊이 당한 자는 사람이 바뀌었다 싶을 정도로 변모한다.

    오크노디의 동조마법이 악의 없이 한 사람을 광신도로 만들었다면, 집사단의 동조마법은 인류의 모든 위협을 수집, 격리, 제거하는 사상에 동조하게 만든다.

     

    “알려주마. 네가 알던 세계가 얼마나 작고 하찮은 것이었는지. 지금까지의 너는 죽을 것이나, 진정으로 인류를 위한 집사가 되어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영광을 누리도록 해주마. 우리는 인류 최후의 보루. 너 또한 재단의 일원이 될 것이다!”

     

     

    * * *

     

     

    듣는 싱의 입장에서는 한없이 미친 소리였다.

    호위골렘들에게도 이는 미친 소리였다.

    ‘인격이 뒤흔들릴 정도의 기억동조’를 시도하려는 집사 루브리오의 의도는 호위골렘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위협 행위로 인지됐다.

    그가 조금만 더 약했다면.

    싱을 집사로 만들려는 욕심이 없었다면.

    단순히 기억을 구두로 전하고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할 기회를 제공하는 선에 그쳤다면.

    호위골렘들이 집사 루브리오를 습격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선의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고 언제나 선한 결과를 부르지는 않듯이, 집사 루브리오의 정의는 정의로운 행동으로 인지되지 못했다.

     

    [보호술식 조건로딩]

    [대상의 심신을 뒤흔들고 자아에 강한 영향을 미치는 모든 종류의 간섭을 저지할 것.]

     

    상급시험관 혈비객의 시험은 싱의 경지를 드높였으나, 그의 자아마저 바꾸지는 않았다.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은 이미 모두 레어그릴스 교수의 전투시뮬레이션에서 얻었고, 다음 경지는 존재만을 인지했을 뿐이며, 혈비객의 강함은 충격적일지언정 교수들을 떠올리면 수긍할만했다.

    당사자가 말하기를, 스스로가 교수급이라 자부하는 실력자였으니 교수급 강자에게 지는 것은 결코 수치가 아니었다.

    그러나 기억에 개입하는 집사의 접근은 골렘들에게 단번에 <위협>으로 인식되었다.

    인류를 위해 수많은 이면세계에 존재하는 반인류적인 존재들과의 투쟁에 몰두하게 만드는 기억과 여동생을 위해 복수에 일생을 매진한다는 사고방식은 물들기 쉬우니까.

     

    제 2의 여동생 오크노디를 위협하는 타 차원계의 악독한 존재들을 물리친다.

     

    덜컥 그런 생각에 빠지기라도 했다가는 싱의 인생은 크게 뒤틀릴 수 있다.

    정말로 재단의 집사가 되어도 무방한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싱에게는 집사의 의미심장한 말보다 더 마음에 걸리는 요소가 있었다.

     

    ‘저 집사복의 남자 또한 혈비객에게서 느꼈던 막막함과 비슷한 무위를 보이거늘, 도대체 이 골렘들은 얼마나 강한 거지?’

     

    루브리오가 오른손의 장갑을 벗고 손바닥을 펼칠 때마다 거대한 손들이 그의 뒤로 떠올라 손바닥을 마구 내지르며 골렘들을 밀쳐냈다.

    영역화의 깨달음이 깊어진 싱은 그 공격의 핵심이 되는 특화 기능이 <밀치기>이며 골렘들이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펼치던 영역 4단계마저 밀쳐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대체 얼마나 귀한 마정석을 박아놓은 것인지, 사람보다 골렘이 더 오래 힘을 전개했다.

     

    ‘이것은 내가 모르는 오크노디의 어둠의 실력. 정말 굉장하군.’

     

    전투시뮬레이션에서 혁명가와 겨룰 적이면 싱은 언제나 ‘덤’과도 겨뤄야만 했다.

    혁명가를 따르는 강력한 혁명동지들.

    본래 전투에선 그들을 저지해야 했을 오크노디나 디스트로이어가 없는 상태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니, 혁명가에게 접근하기까지도 벅찼다.

    심지어 어렵게 접근하더라도 그가 명계의 문을 여는 순간, 지옥도가 펼쳐졌다.

    눈앞의 골렘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무위를 펼치는 고위 망령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걸 보니 문득 새삼 오크노디가 대단하다고 느껴지는군. 반대로 보면 그 망령급의 괴물을 셋이나 전투골렘으로 만들었으니.’

     

    오크노디는 혁명가의 3배의 전투력.

    3혁명가의 강함을 지닌 셈이 아닌가.

     

    재단의 집사 루브리오.

    오크노디가 자신을 이용하여 골렘들을 파견해 제거하고자 했던 상대.

    그도 순순히 골렘들에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어둠의 램프>

     

    사악한 어둠이 뿜어져 나와 주변 일정반경 이내의 시야를 어둠 속으로 사라지게 만드는 기물.

    단순한 어둠도 아닌지 <마안>을 발휘해도 내부가 보이지 않을뿐더러, 심상찮은 밀도의 마나가 어둠을 바라보는 자의 머리에 <정보과다>로 인한 정신적 피로를 강제하였다.

    감으로도 인지할 수 없고, 눈으로 바라보기도 어려운 어둠 속에 숨어든 상대와의 겨루기는 전투의 승패를 뒤엎을 수 있는 여력이 있었다.

     

    <관통모드 ON>

    <대마력 사출개시>

     

    갑자기 티토소가의 조명대를 본딴 거대한 거울이 나타나더니 마구 빛을 뿜어내는 골렘들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크아아아악!!”

     

    어둠속성 특효의 빛속성 공격에 노출된 집사가 강제로 걷어지는 어둠의 저편에서 급히 또 다른 기물들을 꺼내 들었다.

     

    <포식의 자루>

    <죽음의 구슬>

    <영원한 수갑>

     

    자루를 여는 순간, 그를 위협하던 모든 빛이 자루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치 거울과 자루 사이에는 어떤 존재도 없는 것처럼 허무하게 빛이 사라지는 사이, 손바닥만 한 크기의 수정구슬이 집사의 손에 들렸다.

    그리고는 구슬과 집사의 손을 수갑 하나가 단단히 조여들었다.

    싱은 어둠이 다시 몰려들기 직전, 기프트 아카데미에서 습득한 마안의 분석능력을 이용해 구슬과 수갑의 효능을 어렴풋이 짐작했다.

     

    ‘구슬을 지니는 동안 입은 모든 피해를 구슬에 저장하고 천천히 피해를 정화하되, 정화가 끝나기 전에 구슬을 놓치면 몇 배의 피해를 입는 피해유보의 술식이군.’

    ‘저 수갑은 수갑이 채워진 두 존재의 시간을 <속박>하여 불변의 상태를 허락하지만, 하나가 죽거나 파괴되기 전에 수갑이 풀리면 둘 모두가 죽는 <고통연결>의 최상위술식 <운명연결>이 새겨져 있는가.’

     

    검술로는 이미 스스로 나아갈 길을 알았기에, 부족한 안목을 개선하는 강의 위주로 수강해왔던 싱은 기물에 담긴 진의를 빠르게 간파했다.

    하나하나가 +5강 보물을 가볍게 뛰어넘어 +10강 유물마저 웃돌고 국가 단위의 재보, +15강의 전설등급이나 다름없는 효능을 지녔다.

    전투골렘들의 강력한 공격을 강제로 흡수하고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만으로도 재단집사가 지닌 재보들의 강함을 알 수 있었다.

     

    “말도 안 된다!”

     

    그러나, 힘의 차이는 너무 컸다.

    재보로도 모든 충격을 다 흘리지 못할 정도로.

    구슬에는 빠르게 금이 가기 시작했다.

    수갑이 보장하는 <불변>의 보호가 빠르게 쇠락했다.

    10초.

    싱의 시간감각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구슬이 깨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그 정도에 불과했다.

    구슬이 깨진 직후, 수갑 또한 해제되었다.

    불변의 버프를 잃은 집사는 구슬파괴에 의해 수배로 강화된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사용자가 의식을 잃자, 빛을 집어삼키던 자루가 마치 귀 밑까지 찢어지는 악마적인 미소를 짓듯이 자루를 크게 벌리며 집사를 집어삼켰다.

     

    우지직 콰지직.

     

    그 끔찍한 최후에 싱은 할 말을 잃었다.

    혈비객과 다를 바 없는 강자가 심상치 않은 재보를 셋이나 다루고도 속수무책으로 쓰러졌으나, 하나같이 불길한 대가가 존재하는 재보들도 골렘만큼 섬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문득 싱은 집사 루브리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알려주마. 네가 알던 세계가 얼마나 작고 하찮은 것이었는지. 지금까지의 너는 죽을 것이나, 진정으로 인류를 위한 집사가 되어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영광을 누리도록 해주마. 우리는 인류 최후의 보루. 너 또한 재단의 일원이 될 것이다!

     

    위협을 수집, 격리, 제거한다.

    싱의 눈에 집사의 재보들은 누군가를 파멸시킬 강력한 위협이 깃든 수집품이었다.

    그리하여 격리되었다고 부를 수 있었다.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장비가 파괴되니 이를 제거라고도 부를 수 있었다.

     

    ‘과연 틀린 말은 아니군. 수집, 격리, 제거. 하지만… 재단의 재보에는 치명적인 문제도 공존하는군.’

     

    취급방법의 잘못됨과 착용자의 부주의함, 혹은 무능력함으로 인해 역으로 재보에게 집어삼켜져 끔찍한 최후를 맞이할 수 있다.

    적어도 집사 루브리오의 최후는 그랬다.

    저런 장비를 다루어서라도 맞서야 할 적은 무엇이고, 그 적은 또 오크노디와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재단은… 대체 무엇을 다루고 있는 거지? 너희는 무엇과 싸워왔던 거냐. 오크노디와 나를 어떤 길로 끌어들이려고 했던 거냐.’

     

    의구심은 많았으나, 벌어진 자루를 짓밟고 찢어 파괴하는 골렘들의 거친 손길 앞에서 상념은 사라졌다.

    재단의 계획이 무엇이든, 이는 오크노디의 골렘들의 손으로 파괴되었다.

     

    “…골렘들이여. 무너진 동굴 사이에 있을 인질을 구할 수 있겠는가?”

     

    골렘들은 자신들의 할 일은 끝났다는 것처럼 묵묵히 그의 주변에 기립했다.

    싱은 한 자루의 검으로 다 파내기도 막막할 정도로 쌓인 돌더미를 바라보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가 됐건 그가 이곳에 파견된 명목은 인질 구출이며, 오크노디가 구하려고 했던 인질이기도 하다.

     

    ‘저자라면 뭐든 알겠지. 재단의 비밀도. 오크노디의 비밀도. 그들이 어째서 서로 반목하게 되었는지, 이토록 무력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도.’

     

    싱은 많은 의문의 해답을 구하길 바라며 파시블 예프의 구출을 위해 무너진 동굴의 잔해를 휙휙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허접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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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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