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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50

   나나 예술 교단의 사도 같은 인간들만 봐서 그렇지.

   

   

   사실 신의 사도라는 건 쉽게 볼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어지간한 종교단체의 수장보다도 더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 사도인 걸.

   

   

   허락받은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면 결코 만날 수 없지.

   

   

   마법의 사도도 그렇다.

   

   

   비중에 어울리지 않는 자존심과 길어봐야 10분도 되지 않는 출현시간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공이 들어간 외견을 제외한다면 아무것도 아닌 그녀는 평범한 방식으로는 만날 수 없다.

   

   

   높은 지위와 평판을 지니고서 공식적으로 만남을 청하던가, 입구부터 다 때려 부수고 들어가 강제로 대면을 하던가, 잠입액션을 해서 얼굴을 마주하던가, 이것조차 아니라면 싸늘하게 식은 시체를 구경해야하지.

   

   

   참고로 나는 사건이 터졌을 때 슬그머니 납치를 해서 던전으로 뛰어들 계획을 세웠다.

   

   

   눈에 띄기 좋아하는 여자는 맨 앞에 서 있을 테니 그 때 뒤에서 급습. 그녀를 끌어안은 채 그대로 던전에 돌입할 생각이었지.

   

   

   지금도 이 계획의 근간은 바뀌지 않았다만 칼과 에린이 생기면서 마법의 사도에게 한 마디를 해줄 수 있게 됐다.

   

   

   어차피 결과는 납치겠지만 그래도 이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을 거야.

   

   

   “니아. 부탁할게.”

   – 응! 맡겨둬!

   

   

   칼의 부탁을 받고서 하늘로 날아오른 요정은 광장을 돌아다니며 시선을 끌어모았다.

   

   

   처음에는 요정을 보고서도 갸우뚱거리던 사람들이었지만, 몇몇 아이들에게 다가간 요정이 미소와 함께 여러 짓궂은 장난을 선사하자 모두들 그녀가 동화 속의 존재란 걸 알게 됐다.

   

   

   점차 몰려드는 관심이 즐거운 듯 한참 동안이나 이리저리 날아다니던 요정은 칼이 부르고 나서야 아쉽다는 티를 내며 돌아왔다.

   

   

   – 좀 더 놀고 싶었는데.

   “하하. 이제 시작이잖아.”

   – 그런가?

   

   

   칼이 웃음을 지으며 목검을 꺼내들자 요정이 활짝 웃으며 그의 머리 위에 자리를 잡았다.

   

   

   에린이 까마귀에게 받은 미적감각을 활용해 구현한 검무 위로 요정이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춤을 춘다.

   

   

   한 사람의 기사와 하나의 요정이 만들어내는 동화의 광경은 인간이 만들어낸 구조물만이 자리한 광장에 꽃내음을 선사한다.

   

   

   <저기 있군.>

   

   

   다른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둘의 춤을 구경하던 나는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서 스르르 인파 사이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여러 마법사들 사이에서 눈을 빛내는 여자의 손목을 잡아챘다.

   

   

   움찔하며 보랏빛 머리칼을 떤 그녀는 입꼬리를 떨며 고갤 돌렸다.

   

   

   “꼬마야. 내가…”

   

   

   그녀의 시선이 내게 닿은 순간 두건을 살짝 들어 내 얼굴을 보여줬다.

   

   

   “…예술 교단의 여자아이?”

   

   

   눈썰미가 좋네. 보자마자 동일인이란 걸 알아차리다니 말야. 내 외모가 너무 독보적이라 착각하는 게 불가능한 거려나.

   

   

   “안녕. 패배자의 졸개.”

   “뭐?”

   “네 발치에서 일어나는 일을 왜 몰라? 어디 튀어나온 것도 없는 통나무처럼 보이는데 뭐에 가리는 건지.”

   

   

   가슴과 둔부를 번갈아보며 비웃음을 흘렸더니 마법의 사도가 얼굴을 일으러트리며 손을 뻗었다.

   

   

   움직임이 느려터졌네. 의자에 앉아서 공부만 줄창하니 이 꼴이 나지.

   

   

   마법의 신 그 작자는 왜 우리 조이를 내버려두고 이딴 게으른 년을 선택한건가 몰라.

   

   

   가뿐히 사도의 손을 피한 난 베에하고 혀를 내밀어 준 후 웃음과 함께 인파 사이로 숨어들었다.

   

   

   *

   

   

   마법의 신을 모시는 사도이며 마도 제국에서 황제 다음으로 존중받는 위치에 있는 마법사 네베라는 오늘 점심 무렵에 만난 여자아이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그 아이가 누군지는 알았다.

   

   

   최근 예술 교단의 장신구에 빠짐없이 그려져 있던 아름다운 여자아이.

   

   

   교단의 사도가 여신을 본따 그렸다는 말이 정설로 퍼질 만큼 어여쁜 아이는 요정만큼이나 신비한 매력을 선사했다.

   

   

   자신이 무언가에 홀린 게 아닐까 생각하며 눈을 크게 떴던 네베라였지만 그 여자아이는 다음 한 마디로 모든 신비함을 깨부쉈다.

   

   

   ‘안녕. 패배자의 졸개.’

   

   

   패배자.

   

   

   이 말이 무얼 의미하는지 네베라는 금새 눈치챘다.

   

   

   과거 신화의 시대 당시 마법의 신이란 지위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에르기누스라는 대마법사에게 당했던 자신의 신을 모욕하는 단어란 걸 말이다.

   

   

   모를 수가 없었다.

   

   

   요정의 숲이 복원되고 에르기누스라는 과거의 존재가 어둠의 신이 된 그 순간부터 마법의 신은 굴욕을 되갚아 줄 시간이 왔노라고 이야기했으니까.

   

   

   한 사람의 마법사로서, 그리고 마법의 신을 모시는 신자로서, 네베라는 마법의 신의 권위를 바로 잡고자 했다.

   

   

   그래봐야 에르기누스보다 못한 존재 아니냐는 말이 다시는 나오지 못하게 만들고 싶었다.

   

   

   스스로를 독실한 신도로 여기는 네베라다.

   

   

   마법의 신이 복수를 바라지 않았더라도 네베라는 홀로 에르기누스를 찾아가 ‘과거의 굴욕을 되갚아주겠노라’ 선언했겠지.

   

   

   그런 그녀이기에 오르골의 선율처럼 고운 목소리로 내뱉어진 패배자란 단어를 잊을 수 없었다.

   

   

   다만 머리를 사로잡은 분노와는 별개로 네베라는 방금 있었던 일에 위화감을 느꼈다.

   

   

   그 꼬맹이는 왜 날 모욕하러 온 거지?

   

   

   전후의 상황을 보아선 요정을 다루는 기사와 여신의 가호를 받은 여인도 꼬맹이와 일행인 듯 했는데, 그렇게 시선을 끌어서 날 불러내서 한다는 일이 단순히 모욕을 하는 거라고?

   

   

   너무 비효율적이야.

   

   

   ‘네 발치에서 일어나는 일을 왜 몰라?’

   

   

   발치라는 건 이 도시를 의미하는 거겠지.

   

   

   내가 이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른다고?

   

   

   습관적으로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던 네베라는 고개를 젓고서 몸을 일으켰다.

   

   

   “비서님. 지금 교회에 있는 사람들 다 데리고 와주세요. 당장 확인해야 할 게 있어요.”

   

   

   그녀의 전속비서는 고압적인 그녀의 명령에도 말 한 마디 더하지 않고 즉시 고갤 숙였다.

   

   

   “아. 잠시만요. 나가기 전에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제가 그렇게 통나무 같아요?”

   

   

   망설임 끝에 나온 물음을 들은 비서는 차마 그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달싹였다.

   

   

   “그. 사도님.”

   “아니에요. 헛소리를 했네요. 빨리 가서 다른 사람들 데리고 오세요. 방금 전 질문은 잊고요.”

   “사도님께선 충분히 매력적인 여성이라고.”

   “닥치고 빨리 움직여요! 당장!”

   

   

   네베라는 교회의 사람들에게 도시 여러 곳을 조사해보고 이상한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보고하라고 명령했다.

   

   

   도시를 지키는 여러 마법에 대해 아는 이들은 네베라가 무얼 걱정하는지 모르겠다 그랬지만 네베라는 자신의 권위로 그 모든 의견을 찍어 눌렀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다른 마법사들은 네베라의 걱정이 옳았다는 걸 깨달았다.

   

   

   도시의 지하에 위태로운 기운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기운의 존재에 놀란 마법사들은 기운에 대해 분석을 하는 한편 네베라의 선견지명을 칭찬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네베라의 표정은 썩어 들어갔다.

   

   

   도시의 모든 곳에 관여하는 나조차도 눈치채지 못한 걸 어떻게 그 여자아이가 알아차린 거지?

   

   

   …생각해보면 교단의 그림 속 아이에 관한 소문이 있었지.

   

   

   예술 교단의 장신구에 그려진 아이이지만 정작 그 아이는 여신이 아닌 위대한 주신을 모시는 성기사라고.

   

   

   분명 이름이… 루시 알른이라고 했던가.

   

   

   베네딕 알른의 딸.

   

   

   수많은 괴소문을 만들어낸 망나니.

   

   

   최근에는 성녀님께 감화되어 비교적 괜찮아졌다 그랬었지.

   

   

   만약 그 아이가 일부러 내게 말을 전한 거라면 성녀님을 경유해 주신의 뜻이 전해진거라 봐도 무방한가.

   

   

   쯧. 아니꼽지만 고맙게 여겨야겠네. 그 아이가 아니었더라면 우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저 기운의 주인에게 당했을테니까.

   

   

   물론 이것과는 별개로 마법의 신을 패배자라 부른 대가는 치르게 해줄 거야.

   

   

   바로잡지 않으면 또 다시 나의 신께서 굴욕을 겪게 된다고.

   

   

   “던전이 출현하겠네요. 기운의 총량으로 보면 던전의 난이도는…”

   “최소 A급입니다. 저희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듯 하고요.”

   “제국 기사단에 지원을 요청하세요. 이 근방의 귀족들에게도요. 제국 기사단 분들은 밍기적대길 좋아하시니 이틀 동안은 이 근방의 전력으로 버텨야죠. 주신 교회 쪽에 연락은?”

   “지원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제분께 듣기로 현 교회의 상황이 혼란스러운지라.”

   “교황이 악신 아그라의 유혹에 넘어갔다던가요.”

   “예. 믿기 힘든 이야기입니다만.”

   “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성녀님께서 그리 말씀하셨다면 진실일 겁니다. 그 분은 타인을 해하기 위해 거짓을 말할 분이 아니에요.”

   

   

   교회의 도움을 구하기 힘들다면 다른 쪽에라도 손을 뻗어봐야겠네.

   

   

   최우선은 제국 기사단이 도착할 때까지 던전 내부의 마물을 정리하면서 버티는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폭주가 일어나는 것만큼은 막아야해.

   

   

   던전의 문을 넘어 마물이 나오기 시작하면 이 도시는.

   

   

   먼 과거 마물로 이루어진 파도로 휩쓸려 사라진 마을을 떠올리며 두 손을 꼭 쥔 네베라는 자신의 목숨을 내걸 각오를 했다.

   

   

   드높고 자비로우신 마법의 신이시여. 부디 제게 용기와 지혜를 주소서.

   

   

   재앙을 대비하며 밤을 지새운 다음 날 오후.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요정이 날아다니며 감탄을 선사하던 광장은 자취를 감췄고, 그 자리에는 끝이 어딘지 보이지도 않는 거대한 구멍이 자리를 잡았다.

   

   

   “던전이 지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이전의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반나절이면 충분할 겁니다.”

   “반나절이라. 너무 빠르네요.”

   “던전에 들어갈 인원을 미리 편성해둬야 할 겁니다. 우선은 탐색을 맡을 이들을 지원받아야겠네요.”

   

   

   네베라는 잠시나마 말을 삼켰다가 애써 담담한 체를 했다.

   

   

   “죽으러 가는 이들이군요.”

   “명예로운 죽음이 되게 해야지요.”

   

   

   자신이 맨 앞에 서겠다는 말을 애써 삼킨 네베라는 탐색을 맡을 이들에게 무얼 약속해야할지 고민했다.

   

   

   “후흐흫.”

   

   

   그 때였다. 구멍의 옆에서 여자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새의 지저귐처럼 귓가에 박히는 목소리에 고갤 돌린 네베라는 두건을 벗은 여자아이가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발을 앞으로 내미는 걸 봤다.

   

   

   대지의 사랑을 따라 여자아이가 허공으로.

   

   

   “안 돼!”

   

   

   반사적으로 튀어나간 네베라는 여자아이의 손을 붙잡고 두 사람의 몸을 띄우기 위해 마법을 사용하려 했다.

   

   

   허나 마법은 발동되지 않았다.

   

   

   네베라가 모르는 무언가가 그녀의 마력을 가로 막고 있었다.

   

   

   “잡았다.”

   

   

   뒤 편에서 들려오는 여러 사람들의 외침 속에서 네베라는 여자아이의 장난스러운 웃음을 마주했다.

   

   

   “…너 뭐야?”

   “개허접페도주신이 너무너무너~무 좋아하는 귀여운 여자애.”

   

   

   놀랍게도 그녀의 웃음 너머에선 따스한 신성이 느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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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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