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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52

       

       

       

       

       

       

       끄으으….

       

       끙끙거리는 신음이 들린다. 

       횃불 하나 들지 않는 옥 안에서 우혁이 흘리는 소리였다.

       

       구양천이 우혁과 ‘이야기’를 시작한 지는 반 각이 채 흐르지 않았을 시간이지만.

       그동안 벌어진 일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일들의 연속이었다.

       

       “흐으…. 흐….”

       

       옥을 지키던 보초는 앞서 벌어진 잔혹한 폭력에 주저앉아 버렸다.

       

       아는 사이끼리 하는 몸싸움이라기엔 저토록 거칠 수 없다.

       뼈가 분질러지는 소리와 흘러내린 피 냄새로 공간이 가득했다.

       

       방을 간신히 비추던 등불은 언제 꺼졌는지 보이질 않았고.

       그 탓에 어둠뿐이 없는 광경이었으나 보초를 서던 이는 흐릿하게 보이는 모습들로도 겁에 질릴 수밖에 없었다.

       

       우드드득.

       

       침음 사이로 거친 소리가 들린다. 

       분질러진 뼈가 맞춰지는 소리였다.

       

       그걸 본 구양천의 눈에 흥미가 깃든다.

       

       신기한 광경이었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뼈가 맞춰지다니.

       

       ‘일부러 맞추기 쉽게 부수긴 했다지만. 성능 한 번 괜찮네.’

       

       외상은 물론이고 내상도 금방 낫는다.

       재생. 정말 이름 그대로의 권능이었다.

       

       ‘팔을 뽑으면 그것도 재생하려나.’

       

       유선이나 망은 가능했던 거 같은데. 우혁도 그게 가능할까 싶다.

       

       ‘궁금한데?’

       

       흠칫-!

       

       흥미롭게 쳐다보자 우혁이 뭔가 느꼈는지 몸을 떨었다.

       

       “끄으…쿨럭.”

       

       우혁이 거칠게 피를 토했다.

       다쳐서는 아니다. 내상이 낫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러다 안 나으면 곤란하니, 그건 빼고.’

       

       궁금하긴 했지만, 구태여 시도할 일은 아니다.

       

       ‘내 몸이었으면 해봤을 텐데.’

       

       몸 주인이 우혁이니 봐주도록 하자. 구양천이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후….”

       

       한참 몸을 떨던 우혁이 겨우 육체를 수습했는지 지친 표정으로 구양천을 쳐다본다.

       

       “…미안하다.”

       

       우혁이 처음 뱉은 말은 사과였다. 

       지금까지 실컷 처맞던 놈이 뱉은 말을 아니었다.

       

       그걸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패다 보면 속이 좀 후련할 줄 알았더니만.’

       

       오히려 갑갑하고 짜증이 더 나는 느낌이다.

       그래도 감정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어차피 이런 행동이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아서 일 것이다.

       

       우혁을 보며 물었다.

       

       “왜 그랬냐.”

       

       “…”

       

       “네가 아무리 미친놈이라지만, 이유 없이 그랬을 것 같지는 않아. 그러니까 설명해. 내가 납득할 수 있게.”

       

       이유가 있으리라는 확신보단.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바람에 가깝다. 우혁은 여기서 자신을 납득 시켜야 했다.

       

       “이유인가….”

       

       물음에 우혁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 해야 했을 이유. 그 이유를 떠올리기 위해선, 우혁의 과거를 들여다봐야 했-.

       

       “아, 회상 같은 건 하지 마.”

       

       으나, 구양천의 말에 우혁은 조심스레 눈을 떠야 했다.

       

       “시간 아까우니까 세 줄로 요약해. 나 바빠.”

       

       “…”

       

       귀찮다는 듯 말하자 우혁이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구양천을 쳐다본다.

       그 시선에 구양천이 눈을 찌푸렸다.

       

       “뭐 인마.”

       

       “보통 이럴 때는 그래도 기다려 주지 않아?”

       

       “네 인생사를 내가 뭐하러 궁금해해. 그냥 왜 그랬는지나 말하면 되지. 그것도 가능한 한 짧게.”

       

       “…”

       

       맞는 말 같은데 이상하게 긁히는 기분이었다.

       

       그리 생각하면서도 우혁은 이미 체념하고 있었다. 

       저놈을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임을 진즉 알고 있던 탓이다.

       

       아니, 오히려 그래서 편한 걸지도 모르겠다.

       우혁은 머쓱하게 웃으며 구양천에게 말했다.

       

       “세 줄은 좀 힘들 것 같은데.”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냥 적당히 짧게 하면….”

       

       “어릴 적 내 아비는 날 죽이려 했어.”

       

       “시작부터 지랄 맞은 얘기네. 그래, 시작해봐.”

       

       짜증을 내려다 슬쩍 자세를 고쳐잡았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우혁이 흘린 핏물로 바닥이 가득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것보다.

       

       “어미는 아비의 눈을 피해 다른 이와 마음을 통하고 있었고. 내 형은 동성애자였다.”

       

       “…”

       

       지금 나오는 말이 구양천은 더 불편했다.

       

       몰래 헛기침을 뱉는다. 

       예상보다 쉽지 않은 얘기였다.

       

       방금 뭘 들은 거지 싶을 만큼 말이다.

       

       “또한, 내 아비는 반역을 꿈꾸던 이였다. 그러한 사실들을 나는 눈치채고 있었지.”

       

       “눈치가 좀 빠른 편이었나 보네.”

       

       눈치가 있었다기보단 듣지 말아야 할 걸 들었을 따름이지만.

       그에 대해서 우혁은 구태여 말을 꺼내지 않았다.

       

       “어릴 때 나는, 알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걸 몰랐기에. 알아낸 사실에 대해 입을 가볍게 놀렸고. 그게 화근이 되었어.”

       

       어미의 간통도.

       형의 비밀도.

       

       아비의 깊은 야망에 관함도.

       그때의 자신을 원망한다. 참지 못했음에 대하여, 참아야 하는 것을 몰랐음에 대하여.

       

       우혁은 여전히 원망하고 있었다.

       

       “어미와 마음을 통하고 있던 이는 아비의 손에 죽임을 당했고. 형은 사람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 갇히게 되었지.”

       

       예정된 결말이었다. 

       들키지 않았으면 모를까, 아버지의 귀에 들어간 이상 이렇게 될 일이었다.

       

       전사들의 손에 이끌려 떠나던 형은 우혁을 원망했다.

       어쩌면 영원히 품고 살았을 비밀이었을 것이다.

       

       그걸 보며 우혁은 내뱉지 말아야 하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이미 때는 늦어있었다.

       

       “이런 비밀에 대해 내뱉은 나 또한, 가문과 떨어진 작은 처소에 박혀 살아야 했어.”

       

       아비는 겁을 먹었을 것이다.

       혹여라도 제 비밀에 대해서도 자신이 알게 될까. 

       

       그게 두려웠던 것 같다.

       진즉 그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그때는 이미 입을 다물고 있던 때였다.

       

       외로운 삶이 시작됐다.

       고요하면서도 시끄러울 때의 나날이다.

       

       아마.

       

       [나는 유리라고 해.]

       

       간신히 붙잡고 있을 무언가가 없었다면, 그때 우혁의 삶은 끝이었을 것이다.

       

       붙잡을 게 있었기에, 그래도 버틸 수 있다고.

       어떻게든 숨을 쉴 수 있겠다고. 그리 생각하며 살려 했으나.

       

       “문제가 생겼어.”

       

       “문제?”

       

       “응. 처소에 박혀서라도 간신히 버틸 수 있게 해주던 마지막 벽이 허물어졌거든.”

       

       “그게 무슨 알아먹지 못할 말인-”

       

       “내가, 아버지의 핏줄이 아니었다는 뜻이야.”

       

       “옘병.”

       

       구양천은 자신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

       어미가 다른 이와 마음을 통하고 있었다더니, 이게 이렇게 이어지네?

       

       “그 사실을 파악한 아버지는, 곧장 나를 죽이려고 했어.”

       

       벽이 허물어졌다.

       간신히 자식이라 참고 있던 게 사라지니, 아비는 망설임 없이 처리하고자 했다.

       

       아주 차가운 밤이자 너무나 시끄러운 밤이었다.

       

       지독한 소리 들이 계속 귀를 간지럽혔고 우혁은 그 소리를 피해 달아나게 됐다.

       

       다만, 어린아이의 뜀박질이 빨라 봐야 얼마나 빠르겠냐는 것이다.

       숙련된 전사들을 피해 온전히 도망칠 수는 없었다.

       

       그래, 누군가의 도움이 없었다면. 필히 그랬으리라.

       

       화살에 맞아 어깨에선 피가 흘렀다.

       어린 우혁이 고통을 참으며 쓰러져 있던 그 앞에.

       

       [아가씨 이 도련님 맞아?]

       

       백발의 사내가 전사들을 모조리 쓰러트린 채 서 있었다.

       

       달빛을 받는 연청색의 머리칼.

       거기에 푸른 눈동자까지.

       

       “어…그거. 혹시.”

       

       “맞아. 스승님이었어.”

       

       무당괴선 남궁형과 우혁의 첫 만남이 그러했다.

       

       그리고, 그런 남궁형 옆에는.

       

       […맞아요. 저 애예요.]

       

       남궁형의 머리칼보다 훨씬 하얀 백발을 가진 어린 여자아이가 있었다.

       

       “…”

       

       말을 듣던 구양천이 슬쩍 고개를 끄덕인다.

       

       ‘북해 사람이 중원까지 온 것도 모자라, 어떻게 무당파에 들어갔나 했더니.’

       

       북해에서 괴선이 애당초 데려온 것이었나.

       

       ‘그 아저씨는 북해에 뭐 하러 간 거지?’

       

       의문을 잠시 떠올리려 하는데. 이에 대한 답은 진즉 알고 있었다.

       

       ‘아. 뇌아(雷牙) 때문인가.’

       

       괴선이 당시 뭘 지니고 다녔는지 떠올리면 편한 얘기였다.

       

       당시 괴선은 뇌아를 소유 중이었고. 

       뇌아에 들어 있던 남궁명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인물이다.

       

       ‘…뇌아의 남궁명이 본체는 북해에 있다고 말했었으니.’

       

       그것 때문에 북해에 갔었다고 하면, 딱 들어맞는 얘기다.

       그리고. 

       그 덕분에 우혁이 목숨을 부지하게 됐다는 건가.

       

       전후 사정은 대충 알겠다.

       근데.

       

       “그 길로 도망쳐 중원에서 살았는데…. 그래서, 이 일은 왜 저지른 건데?”

       

       아직 중요한 걸 듣지 못했다.

       물음을 들은 우혁이 쓰게 웃으며 말을 잇길.

       

       “…그야 복수 때문에….”

       

       우혁이 이유랍시고 설명하는 말에 구양천이 냅다 주먹으로 머리를 후려쳤다.

       

       쾅-!

       

       “끅!”

       

       “잘 나가다가 구라를 치네. 뒤질래?”

       

       여기까지 와서 개소리를 하기에 참을 수가 없었다.

       복수? 우습잖았다. 우혁이 그런 것에 사무쳐 살 놈이 아님은 잘 안다.

       

       ‘나라면 모를까. 이놈은 그런 놈이 아니야.’

       

       뒤끝으로 범벅이 된 자신이라면 모를까. 우혁은 아니었다.

       

       “너, 대놓고 말에서도 중요한 걸 빼먹고 하고 있잖아. 참고 있는데 자꾸 지랄할래?”

       

       빠드득.

       구양천이 이를 까득 깨물며 우혁에게 말했다.

       

       “유리.”

       

       “…!”

       

       “걔 얘기는 왜 자꾸 빼?”

       

       소공녀에 대한 언급이 나오자 우혁의 눈이 커진다.

       

       우혁이 의도적으로 그녀에 관한 얘기를 안 하고 있다는 걸 구양천은 알고 있었다.

       

       녀석의 삶이 비참했고 안타까운 인생을 살았음을 잘 알겠다.

       그걸 태연히 설명하면서도 우혁은 본질을 숨겼다.

       

       남이 보면 잘 숨겼다 싶을 터이나.

       

       “나한테는 안 통해 이 새끼야.”  

       

       구양천에겐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그 짓을 가장 많이 해봤거든.’

       

       자신이 제일 많이 해봤고 잘하는 행동이었으니까.

       

       “복수? 지랄 똥 싸고 있네.”

       

       시답잖은 명분에 본심을 숨기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낮춘다. 

       구양천이 한평생 해온 짓이었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구양천은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런 병신같은 짓을, 우혁 또한 하고 있다는 게 열이 뻗쳤다. 

       이런 짓은 자신 혼자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세 줄로는 도저히 요약이 안 되겠다고? 웃기지 마. 세 줄도 필요 없어 병신아.”

       

       “너….”

       

       “그냥 까놓고 말해서, 여자 때문에 개짓거리 했다. 미안하다. 그거 한 줄이면 끝난다고.”

       

       “…”

       

       꺼내든 말에 우혁이 말을 잃는다.

       모든 걸 관통하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뭘 어떻게야. 답답하다 우혁아. 진짜 맞을래?”

       

       한 대 더 때릴까? 아까는 찝찝함만 있었는데. 

       지금 때리면 확실히 개운할 것 같았다.

       

       어떻게 알았냐고? 뭘 어떻게 알아.

       

       ‘하는 짓거리가 나랑 닮았잖아.’

       

       정확히는 전생에 하던 짓과 미묘하게 닮아 있었다.

       

       “너, 약혼녀 있다던 거. 그거 저 계집…. 아니, 소공녀 맞지?”

       

       “…!!”

       

       우혁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진다. 

       옘병 저렇게 반응할 거면서 숨기긴 뭘 숨기려 한 건지.

       

       “근데 정작 소공녀는 모르던 눈치던데…. 혹시 짝사랑이냐?”

       

       “…”

       

       “표정 징그러운 거 봐라. 진짠가 보네?”

       

       친구의 짝사랑이라니, 소름 끼친다.

       

       “그런 거 아니야.”

       

       “아니긴 지랄. 어떤 미친 새끼가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 구하겠다고 전쟁을 일으키겠어.”

       

       전생엔 몰랐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렇더라고.

       사내새끼란 본디, 단순하기 짝이 없는 생물체였다.

       

       이걸 곧이곧대로 표현하자면.

       

       “그 정도 이유면 충분하다는 거야.”

       

       대단한 명분이나 삶의 서사 따위가 아니라.

       그런 단순하고 무식한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얘기였다.

       

       “그러니까 이제 다시 물어볼 게 우혁아.” 

       

       구양천이 상체를 숙여 우혁과 눈을 맞췄다.

       두 번의 기회는 없다는 듯 구양천이 말한다.

       

       “왜 그랬어?”

       

       똑같은 물음이지만, 담긴 뜻이 다르다.

       

       더 이상의 거짓말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강렬한 위세가 뿜어져 나왔다.

       솔직히 대답해라. 그런 확실한 감정이 담겨 있는 말에, 우혁은 잠시 침묵을 거치고서야

       

       “…일공녀가 폭주하기 시작한 날. 그녀가 내게 말했어. 하지 않으면 이공녀를 죽이겠다고 말이야.”

       

       뒤늦은 진심을 들을 수 있었다.

       

       “죽인다고?”

       

       “빙궁의 혈족. 그들에게 걸려있다는 병을 건드릴 수 있다고 했어.”

       

       말을 듣고 눈을 찌푸렸다.

       

       ‘저 말은 빙정의 저주를 건들 수 있다는 뜻 같은데.’

       

       그건 아마, 망이 그녀에게 관여했기 때문일 것이고. 그렇다는 말은.

       

       ‘설마, 궁주에게 걸려있던 저주가 갑자기 악화한 것도?’

       

       그럴듯한 예상이었다. 

       문제는, 유선이 어째서 우혁에게 접근해 일을 저질렀냐는 것인데.

       

       ‘진짜, 왜 굳이?’

       

       하필 많고 많은 이들 중 어째서 우혁이었을까.

       

       ‘제 동생을 이용해 협박하면 먹힐 줄 알았던 건가.’

       

       나쁘지 않은 의도 같지만, 그렇다고 해도 굳이 우혁일 필요는 없다.

       앞에 세워둘 허수아비가 필요했다면. 우혁보단 다른 이가 나았을 테니까.

       

       ‘게다가 말이지.’

       

       일공자와 이공자를 감옥에 가둬뒀던 것도 걸렸다.

       

       궁주의 병세가 악화됐다.

       

       반역은 일어났고 앞서 아들 두 놈은 행방이 묘연하다.

       그중에서 그나마 곁에 있는 이는 이공녀였던 유리 뿐이다.

       

       그러면 말이지.

       

       ‘중원에 보낼 수 있는 이는 유리뿐이니 그녀를 보내게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인데.’

       

       이건 마치.

       

       ‘유리를 멀리 보냈어야 할 이유를 만든 것 같단 말이야.’

       

       어떻게든 유리를 북해 밖으로 내보내게끔.

       그렇게 수를 쓴 것 같이 보였다.

       

       한데 유선이 굳이 그랬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여기까지 생각하고서 구양천은 우혁에게 물었다.

       

       “야.”

       

       “응?”

       

       “너, 일공녀랑도 좀 아는 사이야?”

       

       이제는 죽어버려 일공녀라 부르긴 좀 이상하긴 하다만.

       

       유선과의 관계를 물으니, 우혁은 잠깐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내게 대답을 내놓았다.

       

       “어릴 때 조금?”

       

       “조금 더 구체적으로.”

       

       “구체적일 것도 없어. 그냥 이공녀와 함께 몇 번 봤던 것뿐이니까.”

       

       “그래? 뭔가 일이라거나 그런 건 없었고?”

       

       “…글쎄?”

       

       우혁은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걸 보고 구양천도 못내 고개를 끄덕였다.

       모른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래서, 그 협박을 못 이겨 반역도 일으키고 네 스승의 팔도 자르고 애 배에 칼침도 놨다는 거지?”

       

       “…”

       

       꾸밈없이 후려치는 말에 우혁의 눈이 떨린다. 처량한 꼴이 눈에 들어오나.

       

       “뭘 불쌍한 척을 해. 정신 안 차려?”

       

       사고 친 건 사고 친 것이니 좋게 볼 생각이 없었다.

       

       “…미안하다.”

       

       “사과는 때려치우고. 이유나 설명해.”

       

       아까부터 묻던 것이다. 

       

       쓸데없는 사과보다는 왜 그래야 했는지. 나는 그걸 듣는 게 더 중요했다.

       

       “…그때는, 그 수가 가장 맞을 거라고 생각 했어.”

       

       “그 이유는?”

       

       “스승님께선 일공녀를 막아서다 합공을 당하셨고. 일공녀는 그때 내게 스승님의 목숨과 이공녀의 목숨을 담보로 얘기를 꺼냈어.”

       

       적어도 괴선을 쓰러트린 게 우혁은 아니었구나. 그나마 다행인 부분이었다.

       

       “그러면,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핑계일 뿐이지만.”

       

       “맞아, 핑계지.”

       

       이는 남궁비아의 일도 마찬가지였다.

       이유를 듣고 있지만, 이런 건 듣지 않아도 실상 알고 있는 부분이다.

       

       도주로를 뒤틀어 남궁비아가 도망치기 쉽게 수습했고.

       그 과정에서 결국 도주에 실패할뻔하자 우혁이 나서서 일을 벌이려 했음도 알고 있었다.

       

       하나.

       

       “어차피 여기다 대단한 이유를 덧붙여도 의미 없다는 걸 너는 알고 있을 거야.”

       

       “…”

       

       “그래서 더 열 받는 거야. 뭐? 그냥 여기 남을 거라고? 죗값을 치르기 위해서 중원에는 안 돌아가?”

       

       콰악-! 구양천이 손을 휘둘러 우혁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우혁이 힘없이 끌려온다.

       

       “무슨 죗값? 북해에서 죽은 사람들이 아른거리기라도 해?”

       

       “…양천.”

       

       “우혁아 개지랄 좀 떨지 마. 네가 감옥에 박혀 평생 썩는다고 참회 되는 게 아니야. 그건 그냥 도망치는 거지 이 덜떨어진 놈아.”

       

       으르렁거리는 눈빛으로 구양천이 계속 우혁을 쏘아 붙인다.

       

       “참회하려거든 차라리 지금 목을 잘라 뒤져버려. 그게 맞는 거 아니냐?”

       

       “…”

       

       “왜? 미련이 남아? 뭐가 아른거려서 못 죽겠어? 뭐가 아른거릴까. 아 그래, 소공녀인가?”

       

       유리에 대해 언급하자 우혁의 눈에 힘이 들어간다.

       

       “그럼, 그 소공녀를 죽여버리면 네 미련도 끝이 나나?”

       

       “너–!”

       

       일순 우혁의 기운이 강해지기에 구양천이 주먹을 휘둘러 명치를 후려쳤다.

       

       뻐억-!

       “컥-!”

       

       “꼴에 여자는 소중해? 잘못도 잊고 화부터 낼 만큼?”

       

       그런 우혁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드는지 구양천의 인상이 악귀처럼 구겨진다.

       

       “나도 그랬어. 이 씨발 새끼야.”

       

       구양천이 잡고 있던 우혁을 벽면으로 던져버렸다.

       

       쾅-! 우혁이 벽에 등을 맞고 스르륵 떨어진다.

       

       “네가 누굴 건드렸는지 알아?”

       

       감정을 누르려 하지만, 자꾸만 새어 나오려 든다.

       

       “모르겠지. 넌 아직 모를 거야. 예전에 나도 그랬거든. 그래서 알게 해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 참아주는 거야.”

       

       열기가 흘러나와 옥 안을 채우기 시작한다.

       그걸 느끼며 구양천이 심장에 힘을 줬다. 

       기운이 나가는 걸 막기 위함이었다.

       

       “간신히 참고 있는 거라고. 널 지금 이 자리에서 안 죽이는 건 네가 내 친구라는 그 좆 같은 이유 하나 때문이야. 그래서 널 살려두는 거야.”

       살기를 누르고 또 눌렀다.

       

       “그럼 참회나 반성, 그리고 용서를 비는 건 나한테 해야지. 이름도 모르는 북해의 이들한테 할 게 아니고.”

       

       “…”

       

       “말을 들어도 못 하겠어? 그렇겠지. 너는 나 같은 못된 새끼가 아니니까.”

       

       잘 알고 있다.

       우혁이 그런 놈이 아니라는 것쯤은. 그래서 더 확실히 해야 했다.

       

       “그럼, 그냥 그러고 살아. 내가 그렇게 만들어줄 테니까.”

       

       “…그게 무슨….”

       

       “애초에 말이야. 네가 싫다고 해서 두고 갈 거였으면, 귀찮게 궁주랑 연극 따위 하지도 않았어.”

       

       뚜벅.

       

       구양천이 우혁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우혁아. 네 의견 따윈 나한테 하나도 안 중요해. 이제 와서 널 바꾸려는 귀찮은 짓은 못 하겠으니까. 그냥 간편하게 가려고.”

       

       다가간 다음 무릎을 굽혀 우혁과 시선을 맞췄다.

       

       “넌 어차피 이번엔 날 돕고 살아야 해. 그러니까 그냥 얌전히 따라와.”

       

       “양천아. 다시 말하지만…. 난 여기서 나가고 싶지 않-.”

       

       “안 따라오면, 유리를 죽일 거야.”

       

       “뭐?”

       

       말을 듣고 우혁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는다.

       그 시선이 너무나 날카로웠지만, 구양천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궁주에게서 널 빼 오는 데 딸려 들어온 조건이 있어. 그게 뭔지 알아?”

       

       여기까지 의도했다고 하면 거짓이다. 그냥 상황이 들어맞았을 뿐이다.

       

       “소공녀를 중원으로 데려가는 거야.”

       

       “…!”

       

       “그리고. 부탁받은 입장이니 나는 정말 그녀를 데려갈 생각이야.”

       

       간절한 우정 놀음이니, 우혁의 죄책감을 같이 감당한다느니, 그런 개 같은 짓은 못 하겠다.

       구양천은 자신의 식대로 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그걸 알면서도 여기 있고 싶으면 있어도 돼. 대신 계속 생각해. 이대로 내가 소공녀를 중원으로 데려가면, 앞으로 무슨 짓을 시킬지 몰라.”

       

       혹은, 없애버릴 수도 있다.

       말을 하면서도 자기혐오가 문득 올라온다.

       

       지금 우혁에게 하는 짓은, 전생에 천마가 자신에게 했던 짓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참아야 했다.

        어차피 더 추해져 봐야 떨어질 곳도 더 이상 없었다.

       

       그렇게 말을 전한 다음, 구양천은 다시금 몸을 일으켰다.

       

       “생각할 시간은 내일까지야. 알아서 해.”

       

       말을 끝으로 구양천은 우혁에게 시선을 끊은 뒤, 감옥 밖으로 등을 돌려 걸어갔다.

       걸어가며 구양천은 생각했다.

       

       ‘쉽지 않네.’

       

       그게 뭐가 됐든.

       일이란 게 하나 같이 쉽지 않다고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_ _ )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마 내일은 정기 휴재를 사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태풍으로 인해 병원을 미룬지라. 아마 그간 못잔 잠을 몰아서 잘 예정입니다.

    폭우와 엄청난 바람이 올 것이라는 데.

    부디 독자님들께서 무탈하시길 바라겠습니다.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_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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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FZ,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Under the Heavens, The Zenith's Childhood Friend,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Artist: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struggling meaninglessly, he acknowledged 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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