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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52

    <652 – 위기의 가능충(14)>

     

    이해할 수 없다.

    아니, 받아들일 수 없다.

     

    “재단이 그렇게 선한 존재라면 힘을 얻은 지금은 잔혹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조직의 체질을 개선할 수도 있지 않은가?”

    “이면계의 위협은 여전합니다. 그것도 해가 갈수록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죠. 평화를 곧 죽음으로 여기는 미치광이 초월종이 존재하니 말입니다.”

    “…그 미치광이가 설마 기프트 아카데미의 <교장>을 말하는 건가?”

     

    파시블 예프가 이제야 말이 통한다며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마왕이 다루는 <암흑마나>를 인간들이 다루는 일은 지극히 힘듭니다. 수많은 마인과 폭주자들이 탄생하고, 마왕군의 수족과 다를 바 없는 나날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재단의 전신이라 불리던 <결사>가 마왕군에서 독립할 수 있었죠.”

    “결사?”

    “얼마 전까지 대륙의 삼대거악이라 불리던 조직과 수뇌를 기억하십니까?”

     

    삼대거악.

    동방에서 왔다고 한들 그 존재를 어찌 모를까.

     

    “제국의 혁명가. 만신의 대리인. 재단의 이사장.”

    “재단의 전신은 결사였습니다. 그 말인즉, 결사 또한 제국의 삼대거악 중 하나였다는 뜻이죠. 제국에도 이면계의 계약자는 있었고, 결사는 적을 가리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이력 하나는 화려하군. 해온 짓과는 어째 괴리감이 들 정도로.”

    “유감스럽게도 결사는 암흑마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존재. 강력한 존재의 힘을 빌리는 이면계약자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암흑마나를 가까이 하고, 조금씩 오염이 되어 잔혹한 수를 부리는 이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결사의 고수일수록 암흑마나에 노출되는 빈도와 수준은 더 심해지죠.”

    “…동방에도 비슷한 개념은 있다. 마에 물든 마귀와 오니들을 베다 보면 검사 또한 마와 악에 물드는 비극을 경고하는 이야기는 어느 마을에건 하나씩은 반드시 민담으로 전해져 내려오지.”

     

    동방제국의 방침은 간단했다.

    쓰고, 버린다.

    검사들이 자유롭게 성장할 토대로 수많은 검법을 뿌리고 많은 검문을 탄생시켰다.

    악과 마의 권속들을 해치우는 것은 지역검문의 사명이자 떠돌이 검객들의 밥벌이수단.

    그런 이들이 타락하거든 베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제국에서 자체적으로 육성하는 참수부대다.

     

    “이렇게 보면 재단이 해왔던 짓이 내 고향 가문의 검문이나 검객들이 하던 일과 다를 바 없었군.”

    “호오. 듣고 보니 그도 그렇군요. 재단이나 오크노디 님께서 일찍이 싱 님을 눈여겨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사명이 아닌 의무이자 밥벌이였다고 한들, 해오던 일이 같은 동업자라면 조직에 들어오기는 더욱 쉽게 보였겠지.

    싱은 불어오는 바람이 제 옷을 할퀴는 감각조차도 어딘지 모르게 쓰리게 느꼈다.

     

    “결사는 음지의 조직으로서 노력했으나, 재단은 그 결실이 부족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이사장>이 결사를 집어삼켰지요.”

    “제일 와이히엠하이. 오크노디의 부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인간…”

    “그렇습니다. 이사장님이 결사를 재단으로 탈바꿈한 이래로 재단은 급격히 영향력을 확대하고 이면계약자들을 쥐잡듯이 죽여왔습니다. 수비에 급급하던 처지에서 역으로 이면계의 침공에 나설 정도로 말입니다. 하지만 세계는 갈수록 더 위태로워지고 있습니다.”

     

    원인이야 불 보듯 뻔했다.

     

    “교장 때문입니까?”

    “그렇지요. 만족이란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지고, 지루하고, 권태롭게 변하지요. 부와 자산, 권력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된 <교장>은 이제 싫증이 난 세계를 보다 즐겁게 바꾸고자 수시로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결말이 찾아오겠죠.”

     

    세계에서 가장 강한 존재.

    현존하는 유일한 드래곤.

    악룡 오모시로이.

    그 존재가 세상에 싫증을 느끼고 더 이상의 즐거움이 없으리라 확신하는 순간.

    바로 그 순간이 세상의 종말이다.

     

    “재단은 그리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적정수준의 악인’들을 교장의 유희에 써먹고자 다양한 사건을 일으키기도 해왔다고 합니다. 전임감독관의 기록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조나 교수가 하는 일은 그런 것들과는 영 딴판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일선에서 물러나 후대, 아가씨 도련님 육성에 나서는 이유는 상급 이상의 정령들이 <진화>에 이용할 재능 있고 순수한 인재들이 타락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거두어 타락의 가능성을 확인, 저지하기 위함이라는 목적도 있습니다.”

    “그것이 오크노디가 불행한 삶을 살아온 이유인가? 불행에 처하면 타락하는지, 재능의 한계를 맞이하면 정령의 유혹에 넘어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하하. 들켰군요? 지령의 본질이 그런 시험에 있기는 합니다. 충분한 성장기회를 주되, 성장이 끝나거든 빠르게 가혹한 지령을 주어 어려운 처지에 몰아넣는 이유가 그 때문이지요.”

     

    싱은 납득할 수 없었다.

     

    “어려운 처지에 놓이지 않으면 불온한 생각을 품을 이유도 없다. 너희의 시험이 더 많은 타락한 자, 이면계약자들을 만든다고는 생각하지 않는가?”

    “생각하지 않습니다.”

     

    놀라우리만치 단호한 대답이었다.

     

    “인간은 쉽게 흔들리고 꺾입니다. 재단의 지원이라는 든든한 후원을 얻고도 그렇죠. 부와 권력을 누리지 못하고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 사람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설령 <암흑마나>조차도 거침없이 받아들이죠.”

    “…재단이 암흑마나의 사용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정령계약을 하느니, 차라리 암흑마나에 빠지도록 만들려는 건가?”

    “직관이 좋으시군요. 기프트 아카데미에서의 배움이 헛되지 않으셨나 봅니다!”

     

    정령계약은 ‘순수한 자’를 필요로 한다.

    암흑마나에 물든 ‘타락한 자’는 계약자로서의 유용함이 줄어든다.

    그릇된 마음을 품더라도 재단의 하수인으로 머무르느냐, 이면계 정령들의 하수인으로 전락하느냐는 인류에게 끼치는 해악의 범주가 달라지게 된다.

     

    “인간의 나약함조차도 인류의 미래를 위해, 재단에 쓰일 수 있도록 안배한 이사장님의 원대한 설계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지금 날 재단에 들어오라고 꼬시는 거냐?”

    “아닙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가 재단에 품은 생각과 재단에 동참하는 이유일 뿐이지요. 더욱이 재단의 후계자인 오크노디 님의 생각이 어떨지는 저보다는 아가씨의 벗인 싱 님이 더 잘 알지 않습니까?”

     

    모른다.

    오크노디의 생각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본인 외에는 아무도 없을 거다.

    싱은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종잡을 수 없는 행적.

    방심할 수 없는 행동.

    그럼에도 이따금 보여주는 엉뚱하고 하찮은 집착들.

    음식에 대한 집착.

    수집에 대한 집착.

    인재에 대한 집착.

    그런 집착 속에 무언가를 끊임없이 탐해도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느껴졌다.

    싱이 여동생의 복수를 위해 칼에 아무리 많은 피를 물들도록 해도 좀처럼 달래지지 않는 공허함처럼.

     

    “모르겠다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크노디 님에게는 계획이 있을 겁니다. 집사1부의 접근을 차단하고 이렇게 골렘을 보내어 저를 구하고 싱 님에게 재단의 기원과 목적을 들려주도록 만든 것만 보아도 그 심계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합니다.”

     

    이제야 재단의 경쟁구도, 이사장과 오크노디의 대립이 무엇에서부터 기인하였는지가 명확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외계의 괴물들을 제거하기 위한 도구로 차출되는 것을 막고 이런 위협에 노출되었음을 알리기 위해 기회를 베풀었던 것.

    너무 약했기에 빠르게 돌아간 이들과 달리, 충분한 자격이 있는 싱만이 진실을 알게 되었다.

     

    분하지만 기뻤다.

    기쁘지만 분했다.

     

    진실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동료였기에.

    골렘만도 못한 나약한 전력이 수치스러웠기에.

     

    결국은 힘이다.

    영역 4단계를 깨우쳐 집사 루브리오나 전투골렘, 혈비객과 동등한 수준에 올라서지 않고서는 끌려다니는 처지를 넘어설 수 없다.

     

    “정 고민이 된다면 트로이 왕국의 수집품 테마파크를 이용해보심은 어떻습니까?”

    “오크노디가 만든 그 시설을?”

    “그곳을 이용한 강자들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소식은 이미 유명합니다. 오크노디 님에게 충성을 바친 북부대공 유다와 북부군 장교들, 고참병들이 대거 경지상승을 이루었다는 소문이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도 있죠.”

    “…”

    “무얼 고민하십니까? 기회란 올 때 잡지 않으면 다시는 잡을 수 없습니다. 오크노디 님과의 친분을 내세우면 분명 큰 힘을 얻을 겁니다. 재단에서도 테마파크를 심각하게 여기는지 간부회의를 앞당기겠다는 소식도 들어올 정도입니다.”

     

    인류의 위협을 수집하며 강력해진 집사1부의 외부집사단과 중간계에만 머무르며 상대적으로 실력격차가 생긴 집사2부, 3부의 내부집사단과 관리집사단.

    어긋났던 힘의 균형이 오크노디의 테마파크에 의해 강제로 맞추어졌다.

    재단의 후계자로서 오크노디는 자신의 부친에게 맞서 제대로 대적할 준비를 해오고 있었다.

     

    ‘나 또한 오크노디의 사람이라면 테마파크를 찾아가거든 기꺼이 힘을 늘릴 수단을 제공받겠지.’

     

    싱은 결론을 내렸다.

     

    “…아니. 거길 사용하는 건 추후로 미루지.”

    “호오. 위급한 처지임에도 성장의 기회를 미루려는 이유가 있습니까?”

    “진정한 성장은 깨달음에서 비롯되는 것. 어설프게 문을 열었다간 <정식으로 문을 넘어서는 법>을 평생 터득하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오크노디와의 약속.

    그것은 졸업시즌이 되거든 아카데미를 떠나 함께 동방제국에 복수하는 것.

    월반을 한 오크노디지만 4학년도 월반해서 바로 졸업하지는 못하겠지.

    아직 2년의 시간이 남았다.

    그동안 더 강해지면 된다.

    수집품에 의지하는 것은 동방제국으로 떠나는 마지막 날이라도 늦지 않는다.

     

    성장속도 1000% 버프가 있기에 가능한 사치스러운, 동시에 현명한 결단이었다.

     

    수집에 의한 상승효과로 강해진 자는 깨달음을 얻는 속도가 느리고, 스펙상승을 초월해서 진정한 경지상승을 이루지는 못할 테니까.

    영역 4단계를 깨우치지 못한 자신이 혈비객에게 일방적으로 유린당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건 힘이 조금 세지고 몸이 빨라진다고 당해낼 수 있는 얄팍한 수가 아니었다.

     

    “역시, 아가씨께서 사람을 제대로 보셨군요. 당신은 아주 높이 올라갈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런 당신이라면 믿고 제안할 수 있겠군요.”

    “…뭘 말입니까?”

    “일정이 앞당겨진 재단의 간부회의. 그곳에 저와 함께 동행하지 않겠습니까?”

    “!!”

    “저로서는 아가씨가 기대하는 신진고수와의 친분을 만들고 싶고, 당신도 재단의 내밀한 사정에 궁금함이 많은 것처럼 보이더군요. 호위 신분으로 저를 따른다면 간부회의에 입장하여 견문을 넓힐 절호의 기회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집사 루브리오만한 존재가 몇이나 더 있을지 알 수 없는 위험천만한 간부회의.

    그렇지만 위험을 감수하거든 오크노디와 재단에 대한 더욱 심층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가겠습니다.”

     

    싱은 기꺼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자, 그럼 이쪽의 컨셉북에서 어떤 미소녀가 좋은지 골라주십시오.”

    “…컨셉북? 미소녀?”

    “하하. 재미로 골라보는 겁니다.”

     

    이게 무슨 헛소리냐는 싱의 지극히 당연한 반응에 파시블 예프는 대충 얼버무렸다.

    무언가 수상함을 느꼈으나, 싱은 그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도전하여 누릴 수 있는 정보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저야 뭐든 가능한데 남들의 눈이 엄격한 탓에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자, 어서 골라보시죠.”

     

    설명을 들을수록 수상한 느낌은 점점 더해졌으나, 싱은 끝내 하나를 고르고야 말았다.

    그는 자신과 동행할 재단의 메이드나 호위동료라도 되겠거니 생각했다.

    그 추측이 아주 틀린 건 아니었다.

    카테고리에 나온 복장을 입은 호위메이드가 있기는 했으니까.

     

    “뭐 하십니까? 얼른 입지 않고.”

    “…이걸, 내가 입는 거였다고?”

    “저 파시블 예프는 인간시절부터 극한의 가능충으로 유명했던 자. 하지만 그 수비범위는 ‘여성’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남색가로 이름을 알리며 괜한 의심을 사지 않으려면 호위로 동행하는 당신이 여성을 흉내 내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내가 재단의 비열한 속임수에 당했구나!

    싱은 어질어질한 마음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새로운 코스튬이 개방된 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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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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