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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52

   가슴을 벌리면서 표효하네.

   

   

   현재 있는 위치에서 한 걸음 앞으로.

   

   

   그러고서 속으로 3.5초를 세고서 방패를 앞으로 내밀면 몇 배로 커진 저 놈의 팔이 나를 향해 날아들고.

   

   

   채앵! 또 다시 울리는 청량한 울림.

   

   

   중심이 무너지며 생긴 괴물의 빈틈.

   

   

   그 틈을 노려 바닥부터 그의 몸을 기어 올라가는 얼음.

   

   

   “크아아악!”

   “괴물처럼 생겼는데 속은 허접이네♡ 겨우 그 정도도 못 참아?♡”

   

   

   붉은 색으로 점멸하는 눈동자가 날 포착하고 그 직후 괴물의 몸 이곳저곳에 뻗어나와있던 발톱들이 내게로 날아들었다.

   

   

   이 패턴을 대비해 일부러 방향을 틀어두었기에 네베라는 걱정할 필요 없다.

   

   

   방패를 앞으로 치켜든 채 앞으로 내달린다.

   

   

   괴물의 인근에 도달한 순간 한 걸음 뒤로 훌쩍 물러나 두 번의 할퀴기를 회피.

   

   

   훤히 드러난 머리를 내리찍어 주고서 뒤로 물러선다.

   

   

   오래토록 지하에 틀어박혀 있었기 때문일까. 괴물은 내가 여태 상대했던 그 어떤 적보다도 지성이 부족했다.

   

   

   게임 속 지식이 너무 완벽히 적용되어서 오히려 어색할 정도로.

   

   

   이대로 간다면.

   

   

   아니. 말은 아끼자. 괜한 헛소리를 내뱉어봐야 좋은 일은.

   

   

   <이런 식이라면 쉬이 승리하겠구나.>

   ‘아악! 할아버지!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요!’

   <…사실이잖으냐?>

   ‘사실이어도 해선 안 되는 말이 있어요!’

   

   

   당황해서 할아버지를 다그쳤지만 그런다고 내뱉은 말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플래그는 세워졌고, 개같은 병신께선 신이 나서 그 플래그를 회수하러 왔다. 어둑한 동굴에 불온한 기운이 흘러넘친다.

   

   

   “오오오! 아그라시여!”

   

   

   괴물의 육신이 부푼다. 외견만 따자면 좀 커진 정도에 불과하다만 붉은 빛 눈동자에 새겨진 이지와 그의 주변에서 넘실거리는 위압감은 보스가 확실히 강화되었단 걸 알려줬다.

   

   

   “으에엑♡ 역겨운 냄새♡”

   

   

   주변에 신성을 흩뿌려 아그라의 기운을 중화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본래 존재하지 않았던 2페이즈가 시작되며 생겨났을 변화를.

   

   

   “동굴에서 혼자 위로를 얼마나 한 거야?♡”

   

   

   비아냥거려 보지만 붉은 색 사이에 새겨진 이성은 흐려질 기색이 없다.

   

   

   눈을 감았다 뜬 순간 괴물의 형상이 사라진다.

   

   

   옆에서 느껴지는 섬짓한 감각.

   

   

   직감을 따라 방패를 내밀자 처음으로 충격이 전해지며 내 몸이 허공으로 떠오른다.

   

   

   괴물은 그런 나를 붙잡기 위해 발톱을 쏘아대며 달려들었지만 난 신성으로 이루어진 벽을 세워 접근을 가로막은 후 바닥에 착지했다.

   

   

   “나약하구나! 꼬마야!”

   

   

   요정들을 못 깨우는 게 귀찮아지는 상황이 올 줄이야.

   

   

   감정적인 걸 보면 얼마 안 가서 눈이 돌아갈 것 같긴 한데. 그 때까지 버틸 수가.

   

   

   “너도 마찬가지다! 패배자의 졸개!”

   

   

   아. 제기랄.

   

   

   네베라가 서 있던 바닥에서 무엇인가 솟아오른다.

   

   

   폭음이 울린다.

   

   

   “괜찮아요!”

   

   

   회색의 연기 사이로 네베라가 보인다. 그녀의 앞을 지킨 마력방벽은 금이 갔을 뿐 자신의 주인을 제대로 지켜냈다.

   

   

   “앞을 봐요!”

   

   

   다만 그 방벽이 시선이 팔린 나까지 지켜주진 못했다.

   

   

   둔탁한 충격.

   

   

   어디론가 날아가는 몸.

   

   

   괴물의 웃음소리와 네베라의 비명소리.

   

   

   할아버지의 고함.

   

   

   허공에서 중심을 잡아 착지한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상처를 회복시켰다.

   

   

   라샤를 상대하며 죽어라 구른 보람이 있네.

   

   

   갑작스러운 상황이 찾아와도 몸이 먼저 반응하잖아.

   

   

   하아. 근데 이거 좀 곤란해졌네.

   

   

   이제부터 저 놈은 네베라를 집중적으로 노릴테고 그 때마다 내 신경은 네베라한테 쏠릴 거야.

   

   

   그렇다고 네베라를 아예 외면하기도 힘들어. 집중적으로 괴물이 네베라를 노린다면 위험해질 테니까.

   

   

   어떻게 하면 좋지? 저 녀석의 이성이 날아갈 때마다 어떻게 버텨야.

   

   

   – 도와드릴까요?

   

   

   귓가에 속삭여지는 목소리를 따라 고갤 돌리자 자그마한 요정이 내 어깨 위에 자리 잡은 것이 보였다.

   

   

   “닭장?”

   – 후후. 이젠 여왕이라고도 안 해주시는 건가요? 슬프네요.

   

   

   요정여왕은 눈가를 부비는 체를 했지만 정작 입가에 새겨진 미소는 감추지 않았다.

   

   

   – 너무 그렇게 노려보지 말아주세요. 전 당신을 도와드리러 온 거라구요?

   

   

   그녀가 박수를 친 순간 내 머리 위에 잠들어있던 요정들이 하나 둘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와 동시에 괴물이 달려들었지만 방금 전과는 상황이 달랐다.

   

   

   – 우왁!? 저건 뭐야?!

   – 징그러워!

   – 오지 맛!

   

   

   요정들의 시야와 내 시야가 겹친다. 모니터 너머에서 보던 3인칭의 정경.

   

   

   그 속에선 나는 지독할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잠시 동안 잃어버렸던 청아한 소리가 다시금 동굴을 가득 채운다.

   

   

   당혹이 서린 괴물의 얼굴을 보며 혀를 살짝 내밀었다.

   

   

   조금 봐줬다고 네가 뭐라도 된 것 같았어?

   

   

   전~혀 아냐.

   

   

   처음부터 지금까지 넌 계에속 허접한 좆밥 보스였다고.

   

   

   손에 잔뜩 힘을 담아 메이스를 휘두르자 괴물의 거체가 저 멀리로 날아가 처박힌다.

   

   

   비산하는 먼지를 보다 옆으로 고갤 돌리자 반짝이는 여왕의 눈동자가 보였다.

   

   

   – 하아아. 정말 반할 것 같네요.

   “그새 찐따한테 질렸어? 어둠의 신이면서 밤일은 못 하나 봐?”

   – 어머나. 그 부분에 대해선 자랑할 게 잔뜩…

   

   

   싸늘한 눈으로 가만 노려봤더니 여왕이 헛기침을 내뱉었다.

   

   

   – 영애. 당신의 족적을 지켜보는 게 여신님 뿐일거라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전 언제나 당신을 응원하고 있답니다.

   “…소름끼치네. 너 같은 소아성애자가 그렇게 많다고?”

   – 네에.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멋진 광경을 보여달라 말하며 요정여왕이 자취를 감췄다.

   

   

   진즉부터 내가 돌아왔단 걸 알고 있었구나.

   

   

   여태 개입하지 않은 건 그냥 내가 바라지 않아서였나.

   

   

   요정여왕이란 여자가 왜 저리 속이 검은 건지, 어둠의 영향을 받아서 저렇게 된 게 맞나 몰라.

   

   

   어깨를 으쓱인 나는 옆을 향해 메이스를 휘둘렀다.

   

   

   그러자 괴물이 메이스에 날아든 것처럼 얼굴을 처박더니 앞으로 굴렀다.

   

   

   “아핳!♡ 방청소하는 거야?♡ 그래봐야 네 역겨운 냄새는 안 없어질 것 같은데?♡”

   

   

   평범한 사람의 시야 바깥에서 기습을 노리는 것도.

   

   

   날 벗어나 다른 이를 노리려 하는 것도.

   

   

   구석에 숨어 음습한 계획을 짜는 것도.

   

   

   모두 다 무의미했다.

   

   

   굳이 집중하지 않으려 해도 자연스레 몸이 반응한다.

   

   

   모니터 너머에서 보냈던 세월이 혼에 새겨진 듯 자연스레 움직인다.

   

   

   좀 빨라지고, 질겨졌고, 여러 패턴을 함께 사용할 수 있게 됐지만, 결국 네가 하는 짓거리는 똑같잖아.

   

   

   그렇다면 날 곤란하게 만들 수는 없어.

   

   

   재차 괴물의 머리를 내리 찍어준 후 바닥을 나뒹구는 놈을 향해 다가선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날 괴롭히다 죽이겠노라 외치던 짐승은 어디로 간 건지 괴물이 뒷걸음질을 친다.

   

   

   “풉♡ 이런 여자애한테 쫀 거야?♡ 정말 근성이 없네~♡”

   

   

   자신의 수족이 허무하게 죽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아그라의 기운이 내 주변으로 넘실거리며 다가왔지만 그 모든 어둠은 어느 순간 흩어져버렸다.

   

   

   악신이 지닌 어둠이 정화의 권능 앞에 사그라드는 것이다.

   

   

   동굴에 자리하던 어둠이 걷힌다.

   

   

   빛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던 지하에 밝다는 단어가 스며든다.

   

   

   한 가운데에 선 내가 태양이 되어 세상을 비춘다.

   

   

   캬하핳! 정말 개허접해. 너보다 네 사도가 더 권능을 잘 다루는 거 아냐?

   

   

   이젠 서로 역할을 바꿔야 할 것 같아. 교황의 목줄에 붙잡혀서 사는 쪽이 너한테 어울려.

   

   

   걱정 마. 조금 있으면 둘 다 같은 곳에서 질질 짜게 될 테니까.

   

   

   마무리를 하기 위해 괴물의 앞에 선 순간 벌벌 떨던 괴물이 갑자기 자신의 목을 붙잡았다.

   

   

   “끝을 위하여.”

   

   

   이번에는 내가 플래그를 세워버렸네. 다급히 뒤로 내달린 나는 눈을 끔뻑이는 네베라를 안아 들고서 반중력 스크롤과 함께 폭발 스크롤을 찢었다.

   

   

   “자. 잠깐! 그 두 스크롤을 섞으면!”

   “이 꽉 깨물어. 네 피와 침으로 날 더럽히면 죽기 직전까지 괴롭혀 줄 테니까.”

   

   

   중력이 사라져 허공으로 떠오른 몸 아래에서 폭발이 일어나면 어떻게 되냐고?

   

   

   사출되지!

   

   

   주인을 잃어버린 던전이 붕괴되며 떨어지는 여러 잔해 사이로 날아오른다.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졌기를 바라며 아래를 내려다보자 미친 듯이 부풀어 오르는 촉수 비스무리한 것들이 보인다.

   

   

   

   

   으악! 진짜 더럽게 징그럽네! 저기에 붙잡히면 청소년 관람불가 쪽으로 게임오버당할 것 같아!

   

   

   실제로는 저것들 사이에서 찌그러지고 끝이겠지만 어느 쪽이건 마음에 드는 결말은 아냐!

   

   

   “따까리! 가속!”

   “이젠 저도 몰라요!”

   

   

   네베라가 펼친 마법이 아래에서부터 강풍을 일으켜 우리를 위로 이끈다.

   

   현직 마법사가 다르긴 다르네! 벌써 저 위에 빛이 보이잖아!

   

   

   얼마 지나지 않아 지상의 풍경을 마주하고 속으로 네베라를 칭찬하던 나는 멈춤을 모르고위로 위로 솟구치는 내 몸에 놀라 눈을 끔뻑였다.

   

   

   “죽으려면 혼자 죽으라고 몇 번 말해! 이런 집착 소름끼친다니까!? 이 변태 레즈년아!”

   “당신이 시킨 일이잖아요! 그리고 전 변태도 아니고 남자를 좋아한다고요!”

   

   

   도시 한 가운데에 난 구멍이 자그마해졌을 무렵 우리의 비행은 끝났다.

   

   

   이젠 낙하의 시간이었다.

   

   

   “꺄아아아악!”

   – 우와아아아!

   – 빨라!

   – 더 빨리! 더 빨리!

   

   

   비명을 지르느라 마법을 쓸 생각도 못하는 네베라와 신이 나선 웃음을 흘리는 요정들을 번갈아보던 난 헛웃음을 흘리며 아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폭주한 괴물의 육신이 구멍을 뚫고 튀어나와 있었다.

   

   

   하아. 진짜 더럽게 질기네.

   

   

   스런 루트에서는 2분이면 사라지는 잡몹 주제에.

   

   

   <어떤 의미로는 잘 된 일이지 않으냐? 네가 바라던 대로 화려하게 되었으니까.>

   ‘그러게요. 나쁘진 않네요.’

   

   

   원래부터 소란을 피울 생각이었으니까.

   

   

   화려하게 끝내는 것도 괜찮은 마무리겠지.

   

   

   끌어안고 있었던 네베라를 허공에 던져준 후 메이스를 치켜들었다.

   

   

   내가 최초로 행했던 기적.

   

   

   할아버지와 함께 도달했던 영웅담.

   

   

   한 성기사가 메이스를 드니 그 곳에 하나의 태양이 떠올랐노라.

   

   

   “그만 뒈져어어어!”

   

   

   주신의 기적이 대지에 희망을 선사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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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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