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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54

        

         

       진성의 주언과 함께 힘이 끓어오른다.

       사람이라면 반드시 가지고 있는 생명력이 주언과 함께 요동친다.

       다만 그것은 마녀들이 사용하는 방법과 비교하면 너무나 원시적이며 형편없는 방식인지라.

         

       이것은 생명력 자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넘어 가공하고 정제하여 사용할 수 있는 마녀들의 방법이 아닌, 그러한 방식을 알기 이전 생명력이라는 힘을 깨달았던 이들이 원시적이나마 이 힘을 다루기 위해 고안해낸 방법.

       생명력을 다루기 위해 고심을 하였던 한 부족의 힘.

         

       ‘이 부족의 전사와 주술사의 구분이 바로, 이 생명력을 다루는 방법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니.’

         

       그 부족에선 말한다.

         

       짐승을 잡고 몸을 단련하라.

       짐승이 그러하듯 사냥감의 배를 찢어 부드러운 내장을 파헤쳐서 먹고 피를 마시면서 그들의 습성을 따라 하라.

       그렇게 생명력을 섭취하고 느끼며 그 존재를 깨닫고, 그 넘치는 생명력을 근육으로 바꾸어 다시 사냥에 나서도록 하라.

       이것이 바로 전사의 방법이다.

         

       몸 안에 맴도는 생명력을 느껴라.

       전사에 비하면 나약하기 그지없는 생명력을 느껴라.

       약에 취해 조상의 영혼과 연결이 되고, 그들의 인도에 따라 생명력을 활용하라.

       다 꺼진 불에서 피어오르는 미약한 연기처럼 몸에서 피어나는 생명력을 제물로 삼아 주술을 사용하라.

       이것이 바로 주술사의 방법이다.

         

       진성이 사용하는 것은 주술사의 방법.

       하지만 동시에 전사의 방법이기도 했다.

         

       ‘전사의 방법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나 결국에는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게 하는 것.’

         

       말은 괜찮아 보인다.

       짐승을 따라 하고, 짐승을 먹고, 근육을 기르라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짐승을 먹는’ 부분이었다.

         

       야생동물은 기생충 덩어리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말이다.

         

       기생충의 위험에서 벗어난 동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에 사는 고기는 어디에서 잡히는 것이든 기생충을 품고 있으며, 민물에 사는 것은 바다에 사는 것보다 훨씬 끔찍한 기생충이 가득해 날것으로 먹어서는 안 된다.

       뭍에 사는 것들 역시 마찬가지.

       육지 동물 역시 아예 부위별로 자리를 잡은 기생충들이 빼곡하며, 그 때문에 야생동물을 잡는다고 할지라도 함부로 먹어선 안 된다.

         

       현대의 청결한 환경?

         

       아무리 애를 써도 청결한 환경에서 기른 가축에게도 기생충이 나타난다.

       야생동물과 비교하면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수준이기는 했지만, 그런데도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기생충이 반드시 생겨난다.

         

       그렇기에 육류를 익혀서 먹고, 물을 끓여서 먹는 방법이 발전한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항상 함께하며 살아갔다.’

         

       그렇기에 기생충이란 생명을 따질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라 할 수 있었다.

       종류에 따라서는 적당한 도움을 주는 녀석들도 있었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과 함께 사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그 숫자가 많다면 더더욱 그러하겠지.

         

       아무리 자신의 집을 잃기 싫어하는 기생충이라고 할지라도 그 숫자가 늘어나게 된다면 결국에는 숙주를 죽음으로 몰고 가게 되는 것이 이치였으니까 말이다.

         

       작게 한 입을 먹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천 번, 만 번이 되면 거대한 짐승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드는 법.

         

       그 부족의 전사들 역시 그렇게 사라져갔다.

       익히지 않고 섭취한 내장에 잔뜩 들어있는 기생충들 덕분에 야생동물 이상의 기생충 덩어리가 되어가고, 그 기생충들이 생명력을 자극하며 생명력을 더 뚜렷하게 느낄 수는 있으되 예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로 영양을 빼앗기고 생명력이 쇠하게 되고, 그렇게 쇠한 생명력을 어떻게든 다시 사냥으로 빼앗아서 채우려고 하고, 그렇게 다시 내장을 날 것으로 섭취하면서 다시 기생충에 감염되고….

         

       악순환.

       전사들은 그러한 악순환 속에서 죽어 나갔다.

       훗날, 이 단련법이 완전히 어둠 속으로 파묻히기 전까지 말이다.

         

       ‘세상의 쓸모가 없는 것이 어디에 있으랴?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 얼핏 쓸모가 없어 보이는 것도 반드시 그 쓰임새가 있는 것이나 사람은 그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니.’

         

       그리고 그 단련법을 아프리카에서 박진성이 손에 넣게 된 것이다.

       비전과 맥, 그리고 이제는 사어나 다름없게 되어버린 부족의 말까지 함께 말이다.

       

       박진성에게 비전을 알려준 그 부족의 늙은 주술사가 말하기를 부족의 젊은이들이 아무도 주술사가 되지 않으려 한다고 하였던가.

       그래서 외국인이긴 하지만 자신처럼 주술을 업으로 삼고 있는 이, 박진성에게 그것을 흔쾌히 전수해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묻혀버렸던, 하지만 기적적으로 박진성에게 전수가 된 비전은 보물이 되었다.

         

       이렇게.

         

       꿈틀.

       스으으-

         

       몸 안에 자리 잡은 기생충들을 자극해서 생명력을 증폭시킬 수 있는 비전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증폭된 생명력은 그가 유적에서 발견한 다른 주술들과 조합하여 성질을 변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자면…. 그래.

         

       특정 곤충의 페로몬처럼 말이다.

         

         

         

        * * *

         

         

         

       퍼져나간다.

       옛적부터 좋은 제물로 취급되었던 생명력을 재료로 변화시킨 페로몬이 퍼져나간다.

       바람에 실려서 멀리, 넓은 공간으로 그렇게 퍼져나간다.

         

       그와 함께 박진성이 사용한 주술이 발동되어 곳곳의 흙더미가 들썩거리기 시작한다.

         

       꿈틀.

         

       새까만 흙더미가 꿈틀거린다.

       까만 흙 알갱이에 다리가 하나 둘 셋.

       왼쪽에 셋 오른쪽에 셋.

       둥그스름한 알갱이는 길어지고 칼집이 두 차례 새겨지니 마디가 셋으로 나뉜다.

         

       꿈틀.

         

       저 강렬한 집게 턱을 보라.

       낚싯바늘처럼 휘어진 저 두터운 집게 턱을 보라.

       저 끝에 걸리면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요, 저 집게에 잘리면 그 누구도 두 동강이 날 것처럼 생겼구나.

         

       꿈틀.

         

       보아라.

       저 숫자를.

       거대한 흙 속에서 나타난 저것들의 숫자를 보아라.

         

       사각.

       사각.

         

       풀이 잘려 나가고 나무껍질이 맥없이 부서진다.

       지나가던 곤충은 토막이 나고 동물 역시 화들짝 놀라서 도망을 치니.

         

       보아라.

         

       이것이 군대의 위용이니라.

         

         

         

        * * *

         

         

         

       서울은 평화로웠다.

         

       그리고 그 서울에 있는 서울 이능 특성화 고등학교 역시 평화로웠다.

         

       “제발 성공해라, 성공해라, 성공해라, 성공…아아악! 왜 안 되는 거야! 왜! 왜 설명서 대로 따라 했는데 금속의 성질이 바뀌지 않는거야아아악!”

         

       “코딩의 신이시여, 아티팩트의 신이시여, 마력의 신이시여, 회로의 신이시여, 제발. 제발. 제발 아티팩트가 제대로 작동하게 해주시옵소서…. 오, 작동한다! 제대로 작동한다! 작동…어? 이렇게 작동하면 안 되는데…? 아….”

         

       물론 그 평화 속에서도 괴성을 지르고 고통에 겨워하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거야 뭐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언제나 인류는 고통과 함께 해왔다.

       역사적으로 전 세계가 평화로웠던 적은 한 번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 고통 역시 끊임없이 이어져 왔었다.

         

       그러하니 평화 속에 괴로움이 존재하고 고통이 존재하는 것이야 이상해할 것이 없는 이야기겠지.

         

       물론 그 괴로움의 당사자에게는 그 ‘당연함’이 치가 떨리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내가 무슨 마법사야…. 나는 마법사가 아니야…. 나는 벌레…. 나는 벌레다…. 겨울잠을 자고 싶어 하는 벌레….”

         

       “어째서 내가 이렇게나 간절하게 비는데 신은 응답하지 않는 것이지? 종교를 다섯 번이나 바꿔가며 빌었는데도 어째서 나를 도와주지 않는 거야! 신은 죽었다. 신은 존재하지 않아…!”

         

       “미친. 야, 신이 있어도 너는 괘씸해서라도 안 도와줘. 뭔 종교를 다섯 번이나 바꿔? 게임 길드도 그 정도로 바꾸면 서버에서 박쥐 새끼라고 소문나겠다….”

         

       이러한 괴로움을 겪는 이들은 주로 동아리 소속의 연금술사와 마법사.

         

       그들은 문화제에 출품할 신물질이나 아티팩트 만드느라 눈이 반쯤 돌아가 있었다.

         

       그 때문인지 그들의 행동 역시 일반인보다는 광인, 혹은 광신도를 연상하는 모습이 되어 있기도 했다.

         

       아티팩트를 만드는 마법사들은 작동이 안 되면 도대체 어디를 고쳐야 하냐면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성을 질렀고, 작동이 잘 되면 도대체 왜 작동이 되는지를 모르겠다면서 엉엉 울기도 했다.

         

       연금술사?

       금속의 성질을 변화시키고 있는 이들은 대체 왜 완벽하게 한 것 같은데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냐면서 좌절하고 있기도 했고, 이게 다 실험기구가 최신형이 아니라서 생긴 문제라면서 우울해하기도 했으며, 실험 재료나 도구 둘 중 하나에 뭔가 비리가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면서 근거 없는 분노를 터뜨리고 있기도 했다.

         

       비슷한 듯하면서도 뭔가 다른 두 부류.

         

       “…이러고 있으면 뭐 하나. 해야지….”

         

       “아…. 회로도 다시 수정해야 하는데…. 어디를 고쳐야 하나….”

         

       하지만 결국 그 둘의 끝은 같았다.

         

       수용.

         

       실패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

         

       다만 이러한 수용을 몇 번이나 거쳤던 탓일까.

       그들의 움직임에는 힘이 없었다.

       의욕 역시 보이지 않았고.

         

       하지만 의욕이 없다고 해서 문화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다 때려치우고 경력에 크게 기록될만한 ‘서울 이능 특성화 고등학교 문화제 수상 기록’이라는 찬스를 포기하는 것도 선택할 수도 없었고.

         

       그러니 계속 실험을 이어갈 수밖에….

         

       그렇게 마법사와 연금술사는 움직였다.

       평소처럼 말이다.

         

       그런데….

         

       “어?”

         

       평소처럼 실험하고, 만들고, 실패하고, 좌절해야 하는 일상.

         

       그 일상에 변화가 일었다.

         

       “이거 뭐야?”

         

       부정적인 변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런 씹! 개미가 재료를 갉아 먹고 있잖아아아악!”

         

       …갑자기 개미가 나타나 그들의 연구를 박살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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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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