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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55

       

       

       

       

       

       밤이 흘러 정오가 되었다.

       어느덧 중원으로 가겠다고 말한 때가 된 것이다.

       

       나는 시간이 됐음을 느끼며 마련된 침소에서 눈을 떴다.

       

       후우우우-.

       

       참았던 숨을 뱉어내니 호흡과 함께 기운이 딸려 나온다.

       계속해서 돌던 기운이 갈무리 되며 심장에 스며들었다.

       

       “음.”

       

       묘한 느낌이다.

       내기와 비슷하면서 어딘가 다른 듯한 느낌이랄까.

       

       기분이 나쁘다면 맞지 않으니, 어색하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미묘해.’

       

       참 미묘하다.

       

       당장 몇 시간 전 궁주와 함께 지하로 가서 얻어낸 주술을 사용하는 힘.

       궁주는 ‘고리’라 표현했고. 나 또한 그 이름이 알맞다고 생각했다.

       

       심장에는 정말 고리가 묶여 있었다.

       

       그 안쪽, 중단전에 내기가 모여있는 것과 달리, 고리는 심장 바깥에 묶여 느릿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나는 지하에서 얻어낸 연공법으로 고리를 만들어냈는데, 이를 계속해서 파악하다 보니, 놀랍게도 고리의 개수 또한 늘어났다.

       

       한 개였던 고리가 두 개가 된 것이다.

       

       ‘이게 무슨 차이지?’

       

       어째서 하루아침에 두 개가 되었을까.

       그냥 적당히 숨만 쉬었을 따름인데.

       

       ‘도통 모르겠네.’

       

       고개를 갸웃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옆에 놓인 책을 움켜잡았다.

       

       궁주가 내게 준 주술에 관한 책이다.

       

       아, 정확히는 처음 받았던 연공법이 아니라, 그 이후의 책이라 했던가.

       

       원래는 줄 수 없다며 완강히 거부하던 것이었으나, 내가 고리를 하나 채워냈음을 보여주니 선물이라며 준 책이었다.

       

       ‘주면서 뭐라고 했더라.’

       

       아마, 찬란한 재능을 위한 투자라 했던 것 같다.

       

       참으로 낯간지러운 말이었다.

       

       ‘찬란한 재능은 개뿔이.’

       

       어이가 없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이게 재능있으면 뭐 하냐고.’

       

       궁주의 반응을 보자니, 아무래도 주술 쪽에 없잖아 재능이 있는 모양이다만.

       

       만약 재능이 있다고 해도, 하등 쓸모없어 보이는 재능이지 않은가. 무공 익히기도 바빠죽겠는데, 이제 와서 주술에 매달릴 시간은 없었다.

       

       ‘그냥 좀 써먹을 만하지 않을까 해서 배워본 거니까.’

       

       이후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깊게 익힌들 경지를 늘리는 데에는 도움이 되질 않을 것 같으니, 조금 귀찮아진 부분이었다.

       

       ‘별로 어렵진 않으니까 익혀보긴 할 텐데.’

       

       그다지 집중해서 써먹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럴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누구한테 배우느냐도 문제고 말이야.’

       

       무공이야 패존에게 굴려지고 있고, 가끔 아버지에게 가르침도 받고 있으니 괜찮겠으나.

       주술에 관련해선 애매하기 짝이 없었다.

       

       빙궁에서 조금 더 있겠다면 얘기가 달랐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중원으로 돌아갈 때였다.

       

       ‘그럼, 신의에게라도 물어봐야 하나?’

       

       굳이 묻고자 하면 당장은 그 방법뿐이리라.

       내가 아는 이들 중 주술을 언급한 이는 그뿐이었으니까.

       

       거기까지 생각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려면 우선….’

       

       돌아가고 봐야겠지.

       그리 떠올리며 문을 나섰다. 

       

       

       

       

       

       ******************

       

       

       

       

       천천히 걸어 도착한 곳은 궁 뒤편에 있는 공터다.

       

       후우우우-!

       

       바람이 스치며 머리칼이 휘날린다.

       여전히 바깥 공기는 차가웠으나, 그 사이 미세하게 향기가 떠 있었다.

       

       궁주는 이를 희망이라 불렀고, 이에 나는 무슨 헛소리냐며 속으로 생각했었다.

       

       뭔가 감성적인 말 같기는 한데. 언제나 그렇듯 나랑은 영 맞지 않는 듯했다.

       그나마 그 말 속에서 알 수 있는 건.

       

       ‘냉기가 차츰 줄어들고 있다는 것.’

       

       열기가 익숙하기에 오히려 확연히 와닿는 부분이다.

       북해의 한파는 점차 멎어가고 있었다.

       

       지역의 특성상 추운 건 어쩔 수 없다지만, 저주로 인한 한파는 사라졌으니. 어쩌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에서도 계절을 보게 될지 모르겠다.

       

       추위에 죽어버린 나무를 보며 떠올린다.

       

       ‘단풍도 지려나?’

       

       이상하게 계절만 떠올리면 그런 생각이 들고는 했다. 

       

       내가 가을을 좋아했나? 

       별로 그렇진 않았던 것 같은데.

       

       근래 들어 가을을 자주 떠올리고는 했다.

       

       “공자님-!”

       

       차츰 걷다 보니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저 멀리, 당소열이 열심히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걸 보고 나도 모르게 걸음이 조금 빨라진다.

       도착했을 땐 이미 모일 사람이 대부분 모여있었다.

       

       “어쩐 일로 늦지 않았구나.”

       

       날 보자마자 패존이 면박을 줬다.

       그걸 듣고 헛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누가 들으면 매일 늦는 줄 압니다.”

       

       다른 건 몰라도 성질이 급해서 늦지는 않는데 말이야.

       아닌가?

       

       “흐음.”

       

       대충 대답을 내놓으니 패존이 날 이리저리 살핀다. 

       그러자 고개를 까딱이며 말하길.

       

       “뭔가 또 변했구나.”

       

       “…”

       

       “한창 클 나이는 지난 것 같은데, 뭘 자꾸 변하는지 원.”

       하여튼 눈치가 더럽게 빨랐다.

       

       ‘고리를 채운 것도 티가 나는 건가.’

       

       말을 뱉은 패존은 별 상관이 없는지 시선을 거둬냈다.

       사흘 전, 백급 마물과의 사투 이후 패존에게 한 가지 사실을 고백했다.

       

       바로 마도천흡공에 관한 일이다.

       

       회귀나 천마에 관함은 함구한 채, 마석 같은 것에서 기운을 흡수할 수 있어 변화가 빠르다는 식으로 언급했다.

       

       이거라도 말을 해야 패존의 궁금증이 조금은 사그라들 것이라 생각했고.

       다행히 실제로도 그랬다.

       

       말을 들은 패존은 어디서 그런 걸 구했는지 따윈 궁금해하지 않았다.

       

       이를 듣고 처음 한 얘기가 뭔 줄 아는가.

       

       [적어도 기운이 부족해서 빌빌거리진 않겠구나.]

       

       였고. 그다음 말은.

       

       [그래서, 어떤 원리로 쓰는 것이냐?]

       

       였다.

       

       ‘미친 인간….’

       

       한 번쯤은 어디서 얻었는지 물어볼 만도 한데.

       눈을 반짝이며 원리부터 물어보다니, 진짜 어처구니가 없더라.

       

       그게 당황스럽긴 했어도 결국, 내 갑작스러운 변화에 관해선 이를 토대로 이해하게 된 것 같았다.

       

       “공자님, 식사는요?”

       

       옆으로 총총 다가온 당소열이 물었다.

       

       “너는 나 볼 때마다 밥 얘기부터 하더라?”

       

       “그만큼 잘 안 챙겨 드시니까 그렇죠. 드셨어요?”

       

       “…”

       

       안 먹었다.

       그래서 할 말이 없었다.

       

       “거봐요.”

       

       “…이따 먹으려고 했어.”

       

       “또 눈 피한다. 거짓말이죠?”

       

       “…”

       

       끙.

       

       쉽지 않은 잔소리였다. 

       도망쳐야 한다. 시선을 옮겨 멍하니 서있는 남궁비아에게 보냈다.

       

       잠을 영 못 잤는지 그녀는 하품을 크게 하고 있었다.

       

       익숙한 모습이다.

       

       하품을 하다 나와 눈을 마주치곤 남궁비아가 손을 흔든다.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었지만, 그걸 보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됐다.

       

       한숨을 감추며 주변을 둘러봤다.

       다 모인 건가 싶었으나, 아직 오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그때였다.

       

       ‘왔다.’

       

       생각하기 무섭게 뒤편에서 다수의 인기척이 느껴진다. 

       

       고개를 돌리니, 입구 쪽에서 여러 이들이 오고 있었다. 

       궁주를 포함한 인원들이었다.

       

       그리고.

       뒤편에 전사들에게 연행하듯 끌려오는 놈도 보였다.

       

       “꼬라지 봐라.”

       

       봐도 봐도 마음에 안 든다.

       

       “와중에 때린 곳은 흔적도 없이 나았네.”

       

       그래도 힘을 좀 줘서 팼는데, 얼굴은 물론이고 몸도 성히 다 나았다.

       

       그게 가장 마음에 안 들었다. 

       좀 절뚝이고 이래야 마음도 느슨해지고 그러는 것이거늘.

       

       쯧.

       

       혀를 짧게 차고 자세를 고쳐잡았다. 

       그래도 꼴에 예는 갖춰야 했기 때문이다.

       

       “궁주님을 뵙습니다.”

       

       궁주가 다가옴에 따라 살짝 고개를 숙였다.

       밤중에 봤던 것과 달리, 궁주의 표정은 그리 맑아 보이진 않았다.

       

       “그래, 긴 밤 편안하셨소.”

       

       “밤에 같이 계셔놓고 그걸 여쭈시면 좀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공자께서 방금 내놓은 답변이 더 이상하다고 생각지 않으시오?”

       

       그런가? 다시 생각해보니 이상하기는 했다.

       어차피 오해할 사람도 없을 텐데 상관없지 않을까 싶었는데.

       

       “…밤이요?”

       

       “밤…?”

       

       뒤에서 두 여인이 속삭이는 소리에 급히 손을 내저었다.

       

       “하하. 수련을 도와주신 거 말입니다.”

       

       다급한 모습에 궁주가 슬쩍 내 뒤를 살핀다.

       

       “생각보다 눈치를 좀 보는 편이셨나 보오.”

       

       “눈치라니요. 제가 언제 그런 걸 봤다고.”

       

       “흠. 그렇군.”

       

       대답에 궁주가 고개를 끄덕인다. 

       표현과 달리 얼굴에서 전혀 알아듣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전음이 들려왔다. 궁주의 전음이었다.

       

       -쥐여드린 책 말이오. 가능하면 고리의 개수가 두 개 이상이 됐을 때 보는 게 좋을 거요.

       

       설명하듯 이어지는 말에 눈을 키웠다. 

       내 표정을 본 궁주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인다.

       

       -놀랄만하오. 고리의 개수가 는다는 건 예상치 못한 말이었을 테니까. 이를 계속 수련하다 보면 언젠가는 고리는 한 개에서 두 개로 늘어날 것이오. 공자의 재능을 보면, 아마 늦어도 반년 안에는….

       

       -오기 전에 마침 두 개로 만들고 오는 길인데, 그럼 지금부터 봐도 문제없다는 말씀이시겠군요.

       

       -지랄.

       

       -예?

       

       응?

       

       -궁주님…? 방금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오. 나도 모르게 하품을 좀 했소.

       

       아닌데, 하품 소리가 전혀 아니었는데? 방금 욕한 것 같은데…?

       

       ‘…잘못 들었나?’

       

       설마 궁주가 욕을 했겠나 싶었다. 

       그래, 잘못 들었겠지.

       

       분명 그럴 것이다.

       

       ‘뭔가 읽는 데 불편하다 싶더니, 고리의 차이였나.’

       

       글 하나 읽는데 뭐 그딴 조건이 필요한가 싶지만, 우선은 궁주의 말을 믿는 게 맞겠지.

       

       -가르침을 내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요긴하게 쓰겠습니다.

       

       -…부디 그래 주시길 바라오….

       

       대화를 나눌수록 궁주의 표정이 썩어가는 것 같았지만 무시했다.

       

       안 그래도 몸도 안 좋은 양반이 낮부터 나와서 그런 것 같았다.

       

       궁주는 굳은 표정으로 뒤로 손짓했고.

       그걸 기점으로 전사들이 움직여 데려온 놈을 이리 끌고 왔다.

       

       손발이 전부 수갑으로 묶인 우혁이었다.

       이리로 다가온 우혁과 눈이 마주친다.

       

       “…”

       

       “…”

       

       별다른 대화를 나누진 않았다. 치고 받은 시점이라 조금 어색했다.

       

       시선을 회수하곤 수갑을 쳐다봤다.

       

       딱 봐도 보여주기식 포박이다.

       한철을 쓴 것도 아닌지라, 우혁이 조금만 힘을 줘도 풀 수 있는 정도다.

       

       심지어 내기도 금하지 않은 상태였으니. 튀라고 내버려 둔 수준이었다.

       이를 보곤 궁주를 힐끔 쳐다봤다.

       

       ‘도망치길 바랐나.’

       

       혹 그럴까 싶었다. 

       궁주는 우혁이 도망치길 바란 건 아닐까?

       

       살려주려는 의도보다 도망을 치게 둬야.

       

       ‘죽일 명분이 더 생기니까.’

       

       그래서 그런 건 아닐까 싶었다.

       

       ‘나라면 그랬을 거야.’

       

       죽일 놈이 있다면 없던 명분도 만들어 낸다.

       분명 나라면 그런 방식을 썼을 것 같았다.

       

       하물며 우혁을 보는 궁주의 시선은 더없이 차가웠으니, 충분히 생각할만한 일이었다.

       

       “…공자께서 언급한 일을 받아들여, 계약의 따라 죄인을 넘기겠소.”

       

       궁주의 언급을 듣고 전사들이 우혁의 수갑을 풀기 시작했다.

       

       철걱-! 쿵-!

       

       그리 깊게 묶지도 않았는지, 푸는 데는 불과 몇 초가 걸리지 않았다.

       그걸 보는 와중에 나는 궁주의 말에 집중했다.

       

       ‘계약.’

       

       궁주는 말에 있어 나와 한 대화를 계약이라 언급해 힘을 실었고.

       우혁은 죄인이라 칭하며 내게 넘긴다는 말을 했다.

       

       ‘필요에 의한 명분.’

       

       우혁의 뿌리는 북해에 있으나 그가 살아온 곳은 중원인 만큼.

       그곳으로 후송해 죄인을 수습한다.

       

       그런 뜻을 담아 뱉은 것이리라.

       

       이는 장군이라 불리는 궁의 고위 전사들을 이해시키기 위함인지, 아니면, 궁주 스스로 납득하기 위한 말인지는 모를 일이었으나,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었다.

       

       “감사드립니다.”

       

       목적을 달성했다.

       

       그 외의 일들은 신경 쓰지 않는 게 속이 편했다.

       

       대화를 이어가는 와중, 우혁은 고개를 숙여 시선을 낮추고 있었다.

       처량하기 짝이 없는 꼴이나, 이 또한 놈이 감당해야 할 일이다.

       

       “하여, 이제 본 궁주가 언급한 조건 또한 이행해 주시길 바라오.”

       

       궁주의 말과 함께 누군가 걸어 나온다.

       우혁과 마찬가지로 표정이 썩 좋지 않은 여인이다.

       

       유선이 죽으며 빙궁의 일공녀가 된 유리였다.

       유리는 천천히 다가와 내게 특유의 예를 갖추었다.

       

       “…은인을 뵙습니다.”

       

       말을 뱉으면서 표정이 좋지 않다. 

       

       명목상 중원으로 유학을 떠나는 것이다만, 전쟁의 여파를 피해 나약한 딸을 피난시키는 것이라는 걸 유리가 모를 리 없다.

       

       ‘그나마 믿을만한 혈족이니까.’

       

       궁주로선 나름의 선택 같기도 했지만.

       

       ‘…근데 말이지.’

       

       가라앉은 유리의 표정 속에서 묘한 기색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설렘? 왠지 모르게 유리의 얼굴엔 그런 게 담겨 있더라.

       

       ‘…뭐지.’

       

       왜 은근히 좋아하는 것 같을까.

       그 이유를 찾자니 절로 우혁에게 눈이 간다.

       

       ‘설마?’

       

       어쨌든 저놈이랑 가는 거니까 좋아하는 걸까? 

       

       그건 아니어야 했다.

       그렇다면 자식 농사가 망해도 너무 망한 것이지 않은가.

       

       제 집안 말아먹을 뻔한 놈을 좋게 보진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저건 좀 너무하지 않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게 뭘까 싶다가도.

       

       ‘얼굴인가? 역시 얼굴인 걸까.’

       

       우혁의 잘난 얼굴을 보고 있자니 망할 놈의 짜증이 밀려온다.

       

       나도 모르게 저 정도면 그럴 만하지 않나 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튀어나오려는 욕을 참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저놈도 얌전히 있는 거 보니, 통하긴 한 모양이야.’

       

       그렇게 처맞으면서도 가지 않겠다고 개소리를 하더니, 유리를 이용해 협박하니 우혁은 아무 말 없이 서 있기라도 했다.

       

       하여, 보면 참 할 말이 많이 생기지만, 지금은 참기로 했다.

       

       ‘됐다. 일단은 가고 생각하자.’

       

       슬슬 인원도 다 온 것 같으니, 출발 준비를 할까 싶던 찰나.

       

       “한데, 구 공자.”

       

       궁주가 내게 말을 물어왔다.

       

       “예?”

       

       “저 인원을 데리고 출발해도 되는 상황이오?”

       

       “무슨…. 아.”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뒤를 보니 이해가 갔다.

       

       병자가 너무 많았다.

       

       남궁비아도 내상이 다 낫지 않았고. 괴선도 그랬다.

       

       “공자께서 원한다면, 치료를 위해 더 머무르는 것도 가능하오만.”

       

       “그건 괜찮습니다.”

       

       궁주의 배려는 거절했다. 

       말마따나 괴선은 모르겠고 남궁비아가 걱정되기야 했지만.

       

       ‘중원으로 가서 신의를 찾는 게 더 나은 상태고. 게다가….’

       

       우혁을 쳐다봤다.

       

       ‘시험해볼 것도 있고.’

       

       마침 확인할 것도 있으니, 이게 가장 나으리라.

       

       내 대답을 들은 궁주가 못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하면, 준비한 마차를 우선….”

       

       “그것도 필요 없습니다.”

       

       마차라니, 이제 그런 느려터진 건 속 터져서 못 탄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이제 내려와.”

       

       동시에 말을 뱉으니.

       

       화아아아-!! 

       

       어디선가 진동이 이르고는 일순 하늘이 검게 물든다.

       무언가가 태양을 가리며 바닥에 널찍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걸 보며 어어 없다는 듯 웃었다.

       

       ‘저 새끼 또 지랄이네.’

       

       눈에 보이는 수작질이 우스웠다.

       

       하나.

       

       “뭐야…?”

       

       “이게 무슨-!”

       

       이런 수작질이 다른 이들에겐 위기였는지 일순 버벅거리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 순간.

       

       후우우우우욱—-!!!!

       

       쿠우우웅—!!!!

       

       어마어마한 거체가 지면으로 떨어졌다.

       

       풍압에 밀려 몇몇 인원이 뒤로 날아가는 게 보일 지경.

       나는 즉시 내기를 돌려 흙먼지를 치워내야 했다.

       

       ‘옘병할, 제발 얌전히 좀 떨어지라니까.’

       

       예전에도 경고했건만, 덩치가 커지니 더 말을 안 들어먹는 느낌이다.

       

       즉시 이 쪽팔린 상황을 만들어낸 놈을 노려봤다. 

       

       크르르르르….

       

       원래보다 두 배는 더 커진 똘똘이가 거칠게 울음소리를 흘린다.

       

       “히이익…!”

       

       “마, 마물이–!?”

       

       적색 마물보다 훨씬 거대한 몸뚱인지라, 전사들이 다급히 무기를 꺼내든다.

       

       그걸 보고 손을 휘둘러 녀석의 머리를 후려쳤다.

       

       콰앙-!

       내기를 담아 치니 소리가 유달리 크다.

       

       크르르릉–!!!

       

       큰 머리통이 타격에 맞아 흔들렸다.

       

       “제발 조용히 좀 나타나랬잖아. 나 쪽팔리게 해서 죽게 할 생각이냐?”

       

       크르르르….

       

       “멋있지 않았냐고? 진짜 죽을래 너?”

       

       누굴 닮아서 자꾸 이 지랄인 걸까.

       멋있긴 뭐가 멋있어.

       

       심지어는 덩치는 산만해져서 조금만 움직여도 내기가 쭉쭉 빨리는 느낌이다.

       

       ‘억울하네, 이놈이 움직이는데 왜 내 내기가 빨려 나가?’

       

       밥은 밥대로 처먹고 말은 드럽게 안 듣는데, 기운까지 축내다니.

       

       ‘진짜 버려버릴까 보다.’

       

       크릉….

       

       열 받아서 끙끙거리니,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건지 똘똘이 놈이 얌전히 머리를 숙인다.

       열불나게 하는 것과 달리 이런 건 또 눈치가 빨랐다.

       

       “허허….”

       

       똘똘이를 쳐다보던 궁주가 너털웃음을 흘린다.

       어지간히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마물을…키우시나 보오.”

       

       간신히 뱉은 반응이 저것이었다.

       

       “키우는 거 아닙니다. 얘가 들러붙은 거지요.”

       

       크르르릉.

       

       “가만히 있어. 뭘 잘했다고 또 삐죽여 삐죽이긴.”

       

       크릉….

       

       주눅이 들었는지 똘똘이의 표정이 시무룩해진다.

       

       그걸 본 당소열이 슬쩍 손을 뻗어 똘똘이를 쓰다듬었고. 괴선은 흥미롭다는 눈으로 살펴보고 있었다.

       

       “굳이 일찍 출발할 필요 없다더니…. 이런 게 있었군.”

       

       와중에 상황에 놀란 건 유리도 마찬가지인지, 커진 눈으로 똘똘이를 보며 내게 물어왔다.

       

       “…저번보다 커진 거…아닌 가요?”

       

       “한창 클 때라서.”

       

       “그게 그….”

       

       그래도 너무 커진 거 아니냐.

       그런 말을 뱉으려다 유리가 입을 다물었다. 

       

       물어봤자 의미 없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더 있어봤자 지칠 것 같다. 

       내가 한껏 피곤해진 얼굴로 손을 휘저었다.

       

       “…타세요들. 이제 그만 집에 가게.”

       

       말에 똘똘이가 상체를 숙였고.

       다들 머뭇거리며 녀석의 등에 타기 시작했다.

       

       인원이 많아지긴 했으나, 내 예상대로 덩치와 기운이 늘어난 똘똘이는 인원을 더 태워도 그다지 무리가 없어 보였다.

       

       -구 공자.

       

       이후 마지막에 올라타려던 나를 궁주가 멈춰 세웠다. 걸음을 멈추고 궁주를 바라봤다.

       그러자.

       

       -북해를 구해주어 고맙소. 해드릴 수 있는 일이 적어 그 또한 죄스러울 따름이오.

       

       궁주는 진심이라는 듯 내게 말했고.

       나는 말을 듣고 멋쩍게 웃어야 했다.

       

       구했다는 말 자체가 참 껄끄럽다.

       

       ‘구하려 한 적 없으니까.’

       

       결과적으로 잘 구한 것 같지도 않으며, 얻은 게 되레 많은 시점이다.

       

       과정에서 협박을 통해 우혁까지 빼내 왔으니, 내게 남은 건 뿌듯함보다는 죄책감이리라.

       

       그걸 궁주가 모를 리 없을 텐데. 

       그는 뚜렷한 눈으로 말을 덧붙일 뿐이었다.

       

       -부디, 가시는 길 무탈하시길 바라오.

       

       -…감사합니다.

       

       -또한. 일공녀를 잘 부탁드리오.

       

       아마 마지막 말이 전부이자 진심이지 않았을까.

       

       -예.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이 정도면 그냥 말로 하면 될 걸 구태여 전음으로 하다니, 아비라는 작자들은 하나같이 속내를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그냥 말하면 안 되나?’

       

       말로 했다면, 유리가 싫어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말이다.

       다만, 그렇게 떠올리면서도 정작 나도 별반 다를 거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걸 느끼며 찝찝한 속내를 감춘 뒤, 정면을 보며 말했다.

       

       “…이제 가자.”

       

       후우욱.

       

       심장에서 기운이 빠져나가며 똘똘이의 몸이 점차 떠오른다.

       이제는 좀 돌아가겠구나. 

       

       여기까지 오니 그제야 실감이 난다.

       그때. 똘똘이 놈이 내게 물었다.

       

       크르르릉.

       

       “얼마나 빠르게 가면 되냐고?”

       

       크르릉.

       

       이놈 봐라?

       

       어딘가 자신감이 넘치는 기색이다. 

       

       좀 컸다고 잘난 척이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이에 웃음을 머금고 내뱉었다.

       

       “최대한 빨리 가봐. 어디 얼마나 빠른지 보…!”

       

       화아아아악—-!!!!

       

       말이 끝나기 무섭게 풍압이 몰아치며 시야가 급변했다.

       

       어디 한 번 해보라는 듯 뱉은 말이었지만, 내 예상보다 똘똘이의 속도는 빨랐고.

       

       나는 불과 며칠 만에 하남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_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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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FZ,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Under the Heavens, The Zenith's Childhood Friend,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Artist: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struggling meaninglessly, he acknowledged 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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