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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55

    <655 – 무책임한 쾌락(3)>

     

    이불 밖은 위험하다고 은거 중인 핑크베리 교수는 싱이 문짝을 두들겨도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았다.

     

    “씨잉. 이게 다 인싸노디 때문이야!”

     

    제국령 981년 3분기.

    981기 1학년 2학기.

    핑크베리 교수는 <변장술의 기초와 이해> 강의 중간고사로 <무도회에 입문하자> 중간고사 시험이 열리는 가면무도회에 참석해서 정체를 들키지 않고 미션리스트의 미션을 수행하도록 시켰다.

    정체를 들키지 않고 다른 교수의 시험장에서 분탕을 치다 돌아오는 임무는 변장술을 시험하기에는 딱이지만 들키면 민폐 소리 듣기에도 딱이었다.

     

    ‘모기 물린 것도 서러운데 암만 봐도 오크노디가 모기술사로 의심되고 얄미워서 골탕 먹이려고 준 시험인데, 역으로 내가 골탕 먹었잖아!’

     

    잔뜩 골탕 먹이려던 의도와 다르게 정작 오크노디는 핑크베리 교수로 변장하고는 더러운 인싸의 사회성을 적극 발휘하였다.

     

    “연회장에 초청된 전 세계 각국의 귀부인들이나 인싸 교수들 사이에 내 이름이 싹 퍼져서 교직원 식당도 못 가고 외출하기도 무섭잖아!”

     

    핑크베리는 분통을 터뜨렸다.

    어딜 가도 무도회장에서 드링크나 종류별로 하나씩 쪽쪽 빨아 마시고 다니던 채신머리없는 음료 도둑 취급이나 받을 처지였다.

    화룡점정은 따로 있었다.

    핑크노디 교수로 변장한 오크노디와 단둘이 대화를 나누었던 디스트로이어 교수.

    그가 했던 대화가 화근이었다.

     

    -디스트로이어 교수님의 왜곡된 성벽에 대한 고백을 받았어요…

    -…뭐어? 너 지금 나 가지고 놀리는 거 아니야?

    -정말이에요! 교수님은 어린이를 사랑한다고, 정확히는 피폐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사랑한다고 들었어요. 뭐라고 해야 할지 너무 당혹스러워서…

     

    어린이를 사랑한다니.

    그건 누가 생각해도… 내 얘기가 아닌가!!

    144cm의 작은 키.

    피폐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도 내 얘기다.

    드래곤교장의 장난에 휘말려서 매주 한 번씩 불려나가 교장으로 변신하고 고학년 교육을 대신하는 핑크베리 교수.

    사랑스러움이야 외모가 예쁘니 자동적으로 충족되는 조건이니 말 다했다.

    그냥 대놓고 면전에서 고백받은 꼴이나 다름없다.

     

    “으으아아으으으으아아아!!”

     

    팡팡팡.

    혹여나 문을 열었더니 디스트로이어 교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같은 상황에 처할까 무서워서 핑크베리 교수는 언제나 주먹으로 쿠션을 내리치기 바빴다.

    그랬던 핑크베리 교수가 유독 식당에 부식으로 나온 어린이쿠키가 탐이 나서 큰 맘 먹고 직원식당에 갔던 날이 있었다.

     

    “디스트로이어 교수가 중상을 입었대!”

    “아카데미 복귀도 못 하셨다던데?”

    “벌써 한 학기나 지나갔잖아. 솔직히 이 정도면 돌아가시지 않았을까?”

    “하긴 영웅의 시체는 이용 가치도 높으니 엄한 놈들에게 이용당하지 않으려면 죽은 사실도 시체가 안장된 묘지 위치도 전부 숨겨야겠지.”

    “…!”

     

    그 좋다던 어린이쿠키가 바닥에 떨어져서 또각 부러지고 두 동강이 나는 줄도 몰랐다.

    핑크베리 교수는 넋 나간 얼굴로 집무실에 돌아왔다.

     

    “디스트로이어가 죽었어…?”

     

    그 사람 작년에 나한테 고백했잖아.

    그런데 왜 죽어…?

    문득, 핑크베리 교수의 시선이 방에 쌓인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로 향했다.

     

    ━━━

    [남심 알아보는 방법]

    [남자가 갑자기 고백하는 이유]

    [고백받은 여자가 대처하는 방법은?]

    [이 남자가 왜 이럴까]

    [연애 초보 필독서]

    ━━━

     

    질겁하며 칩거생활을 시작했지만 막상 곱씹어보니 막상 싫지만은 않았던 복잡한 여심!

    그런 여심을 드러내고 애써 만날 용기를 보이기도 전에 불귀의 객이 되었다는 소식이 연애개론서를 통해 재해석되었다.

     

    -실연의 상처를 입은 사람은 자신을 역경에 빠뜨립니다. 힘든 일로 몸이 딴생각 못 하도록 만들어 마음의 상처를 잊으려는 심리이죠.

    -평화의 시대에는 별 탈 없이 몸을 혹사할 뿐이지만, 그렇지 못한 시대에는 주의해야 합니다. 전장에서 명을 달리할 위험이 크니까요.

     

    디스트로이어 교수가 내 거절에 상처 입어서 위험을 자초하다가 죽었구나!

    말도 안 되는 엄청난 크기의 죄책감이 엄습했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일까?

    그냥 조금만 용기를 내면 됐는데!

    고백받은 것도 놀라서 달아났을 뿐, 그렇게 싫지만은 않았다고 말하면 그만이었는데.

    우우, 난 쓰레기야.

    인간도 아니야.

    민트초코, 와사비, 씨위드 같은 년이야!

     

    똑똑.

     

    “계십니까?”

     

    싱이 핑크베리 교수의 집무실을 방문한 것은 이토록 핑크베리가 후회와 피폐 속에 자신의 정신을 갉아먹던 도중이었다.

    죄책감에 빠져 땅을 파다가 잠들기를 반복하는 핑크베리 교수는 누군가 자신을 찾아온다는 사실조차 인지할 정신이 없었다.

    설령 들을 수 있었다고 한들, 그녀는 제대로 된 방문자가 찾아왔다고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디스트로이어가 죽어서 슬프다고? 그거 안됐군. 4학년 대타강의에 나가서 그 우울함을 달래보게!

     

    누가 뭐라고 하건 간에 지 강의 짬처리는 꼭 시켜야겠다는 오모시로이 교장의 못되처먹은 성질머리!

    화가 난 핑크베리 교수가 대놓고 집무실에 틀어박혀서 외출하지 않자, 오모시로이 교장은 한술 더 떴다.

     

    -배달이요.

    -으, 음식이 없는데요.

    -그야 교편을 배달하러 왔으니까 그렇지!! 핑크베리 교수. 강의를 나가지 않으면 집무실에 정령계 차원문을 열어버리겠다!!

    -꺄아아아아악!!!

     

    식당까지 가기도 무서워서 아카데미 내 배달서비스를 시켰다가 교장의 침공에 당한 이후로 생긴 극도의 인간불신!

    결국 싱은 핑크베리 교수의 집무실까지 찾아오고도 목적했던 상담기회를 얻을 수 없었다.

     

     

    * * *

     

     

    핑크베리 교수가 수강생들을 만나주지 않는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나.

    싱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 채 돌아섰다.

     

    ‘이런 일을 상담할 수 있는 사람은 변장술 교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쉬운 마음에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터덜터덜 걷던 싱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플라톤 교수의 조각상에 창틀로 위장하며 스르륵 혀를 내미는 나무뱀, 군모를 쓴 그림자들이 부산히 움직이는 기괴한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게 다 뭐지.

    선배의 함정영역에라도 발을 들였나?

    긴장하며 검에 손을 올렸으나, 괴이한 현상과 함께 나타난 사람을 보고는 긴장이 풀렸다.

     

    총총.

     

    오크노디만큼은 아니어도 144cm의 작은 키.

    핑크색의 트윈테일이라는 이색적인 헤어스타일.

    작지만 눈빛만큼은 강한 성격 나쁜 교수가 나타났다.

     

    ‘소문과 하나도 다르지 않군.’

     

    성격이 얼마나 나쁘면 학생들을 저리 겁을 주면서 돌아다닐까.

    하지만 싱에게는 반갑기만 했다.

    교수님이 집무실에 없어서 만나지 못했구나!

     

    “핑크베리 교수님. 꼭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싱?”

    “저를 아십니까?”

    “앗, 그게… 들었어. 981기 수강생한테.”

    “그렇군요. 혹시 제 동기들을 조교로 두셨습니까?”

    “아니? 그런데 갑자기 왜?”

    “실은 동기들 몰래 교수님께 상담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물론 싱은 깨닫지 못했지만, 그가 지금 마주친 사람은 오크노디였다.

    기껏 안에 핑크베리 교수가 들어있다고 둘러댈 호위골렘을 넷이나 만들었지만, 장기외출을 다녀온 골렘이 망가지지 않았는지 살펴보는 일을 다른 골렘에게 맡기며 호위골렘이 죄 비어버렸다.

    그 틈을 틈타 다른 교수들이 우르르 오크노디를 감시하고 접근할 틈을 노리고 있으니, 교내에서 이동 시에 핑크베리 교수 행세를 하고 다니는 것은 무사한 아카데미 생활을 위한 필수조건이었다.

     

    “먼데?”

     

    핑크베리 교수로 변장한 오크노디.

    일명 핑크노디는 호기심을 보였다.

    싱이 외출하고 오더니 부쩍 강해진 느낌이 들기는 했는데, 심마라도 빠졌나?

    심마는 심기체의 불균형에서 비롯된다.

    깨달음을 뒷받침할 능력치가 안 되는데 억지로 경지를 올리려고 깨달음을 구현하려 애를 써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현상.

    그런 이유라면 싱이 교수님께 상담을 청하려는 심정도 이해는 갔다.

    그런데 왜 굳이 ‘변장술 교수’여야만 했을까?

     

    “변장에 대한 상담입니다.”

    “아! 심리적인 문제구나?”

     

    능력치가 부족하면 운동을 하라고 초죽음을 겪을 던전에 집어던져주면 되지만, 심이 아닌 기의 문제라면 분명 다양한 경험으로 마나를 늘리는 것이 도움이 되기는 한다.

     

    “그럼 무슨 변장이 하고 싶니? 살인마 같지 않은 친절한 이웃? 후배들에게 무섭게 보이지 않는 선배? 큰뿔풍뎅이를 채집하기 쉬운 고동나무?”

    “전부 아닙니다. 누구도 제 남자 모습을 알아볼 수 없는 빡센 여장을 원합니다.”

     

    부식으로 나온 어린이쿠키가 핑크노디의 손에서 툭 떨어졌다.

    싱이… 여장이라고?

    여장코스튬을 개방했다고?!

    사시사철 검객코스튬만 입는 그 싱이?

    싱에게 이런 취미가 있었다니!!

     

    “잘 왔어!! 오늘 코스튬세트 10개만 맞춰보자!!”

     

    싱은 굴욕과 동시에 묘한 든든함을 느꼈다.

    마치 이 분야의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는 느낌!

    역시 변장술 교수답게 딱히 뭘 시작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새어 나오는 기세만으로도 안정감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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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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