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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55

        

       개미.

       개미.

       개미.

         

       손톱보다도 작은 개미들.

         

       하지만 그 손톱보다도 작은 개미들의 숫자가 많다면 어떨까?

       벌레 많은 집에서 보일 정도를 뛰어넘고, 길거리에 지나가다 보이는 개미집 수준 역시 아득히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개미들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저거 재료 좀 어떻게 해봐!”

         

       “아 미친! 그냥 툭 치는 것 정도로는 어림도 없는데…?”

         

       “야! 마법으로…. 아니지, 저기에 마법 쓰면 큰일 나는데…! 사, 살충제! 교무실 가서 살충제 받아와!”

         

       “알겠습니다 선배!”

         

       많은 숫자는 그 자체로 폭력이다.

       그 법칙은 자그마한 벌레인 개미조차도 예외가 아니었다.

         

       도대체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개미들은 동아리들을 점령하였다. 그들은 마치 군데군데 큼지막한 얼룩이라도 생긴 것처럼, 혹은 새까만 페인트를 이곳저곳에 대충 뿌리기라도 한 것처럼 곳곳에 자리를 잡고는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기 시작했다.

         

       재료들을 갉아 먹기 시작한 것이다.

         

       마법이나 연금술에 사용하는 재료는 단순히 금속 같은 것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법의 역사는 곧 효율의 역사.

       과학이 효율적으로 양산을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듯이 마법 역시 효율을 중요시 여겨왔다.

       그 때문에 특정 생물에 마력을 과포화 상태로 주입 후 돌연변이가 일어난 부분을 자르고 가공하기도 했고, 여러 식물을 가공해서 액기스같은 것을 만들거나, 아티팩트 제작에 최적화된 양피지나 합금판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기도 했다.

       마법과 과학이 결합한 것도 이러한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한 방편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 덕분에 몇몇 재료의 경우 합성 재료로 대체하는 것에 성공하여 전통과 완전히 작별하기도 했고, 대체를 못 한다고 할지라도 효율을 증가시키는 것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무언가를 받아들이면 좋은 일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 법.

       어쩌면 지금 일어나는 상황은 마법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나쁜 점일지도 모른다….

         

       “헉, 헉! 선배! 살충제 받아왔습니다!”

         

       “어 그래…. 고생했는데…. 이미 늦은 것 같다….”

         

       “…예?”

         

       “봐라. 죄다 벌레 먹었잖아….”

         

       버그(Bug).

         

       그렇다.

         

       그들은 지금, 과학 쪽 재앙 중 가장 유명한 재앙, ‘버그’를 맞이하고 있었다….

         

       “하하하. 연금 애들이 우리보고 코드 짜는 노인들이라고 놀릴 때는 그냥 웃었는데…. 와. 실제로 버그도 보는구나. 하하하.”

         

       “부장님? 정신 차리세요!”

         

       “정신? 야. 너는 저걸 보고도 정신이 차려져? 우리 아티팩트 재료가 버그를 먹었잖아…!”

         

       “아니 저건 버그가 아니라…. 아니, 버그가 맞긴 하는데…!”

         

       바느질로 코드를 짜던 시절.

       인류는 실제 벌레가 나타나 회로를 엉망으로 만든 것을 시작으로 코드의 오류를 ‘버그(Bug)’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용어는 기술이 점점 발전해 바느질로 코드를 짜지 않게 되었을 때도, 인공지능으로 특이점을 보니 마니 할 정도로 기술이 발전한 지금에서도 변화하지 않은 채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이 되어왔다.

         

       그리고 지금.

       이 병아리 마법사들은 초창기 컴퓨터를 짜던 엔지니어들이 겪었던 일을, 과학계의 중대한 사건을 공유하게 되었다….

       시공을 초월해서 말이다….

         

       ‘저주…. 이건 카를 융의 저주가 분명해…!’

         

       이 끔찍한 광경에 부장은 분석 심리학의 창시자이자 이름을 떨쳤던 마법사였던 카를 융을 떠올렸다.

         

       마법과 주술에 심취하였던 카를 융은 말년에 ‘싱크로니시티(synchronicity)’라는 개념을 주장하였었는데, 세간의 사람들은 그것을 두고 ‘마법도 주술도 과학도 아니다. 그저 유사 과학에 지나지 않는 주장.’이라면서 강력하게 비난했었다. ‘정신병에 걸린 학자의 주장.’, ‘말년에 노망이 든 것이다.’라는 폭언까지 들었다고 했던가….

         

       이러한 세간의 반응에 카를 융은 강렬한 불쾌감을 표출했다고 하는데….

         

       어쩌면 이 카를 융의 저주가 이 자리에 현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시공을 초월해 컴퓨터 엔지니어가 겪었던 일을 똑같이 겪고 있지 않은가….

         

       ‘카를 융…. 도대체 무슨 원한이 있길래 까마득한 후배인 우리에게 이러한 시련을 주는 겁니까….’

         

       물론 이는 너무 큰 충격에 떠오른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달리 말한다면 이러한 망상으로 현실도피를 할 정도로 끔찍하고 끔찍하며- 아무튼 끔찍한 일이라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마법사들은 절망하고 좌절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재앙 앞에서 사람은 겸손해야 하는 존재일 뿐이거늘.

         

       이 무력한 학생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살충제를 칙칙 뿌려대면서 재료를 갉아 먹은 개미들에게 복수를 하는 것뿐이었다….

         

       그렇지만 이들의 좌절은 오래가지 않을지도 몰랐다.

         

       “안 돼…. 벌레는 불순물, 불순물이라고…! 변수를 통제해야 하는데…!”

         

       그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이들이 근처에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들의 정체는 바로 연금술사들.

         

       ‘에테르(Æther)’라 불리는 에너지를 기반으로 무생물을 변화시키는 능력자들이었다.

       마법사들이 과학과 결합하여 폭발적으로 발전했듯이 연금술사 역시 화학을 비롯한 과학들과 결합하여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이들은 현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 능력자로 자리 잡았으며, 문명의 발전에 커다란 일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그들 역시 이 재앙은 피해 갈 수 없었다.

         

       연금술사가 있는 동아리 역시 개미가 휩쓸었다.

       부실로 쳐들어온 개미들은 재료들을 닥치는 대로 물어뜯었고, 선반이나 솥 같은 데에 들어가며 그것들을 오염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실험기구 사이사이로 파고들며 고장을 유도하기도 했으며, 전선을 갉아 먹기도 했다.

         

       끔찍한 상황,

       그야말로 끔찍한 상황이다.

         

       연금술에서 변수란 피해야 하는 것.

       특히나 병아리나 다름없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치명적인 것이었다.

       1인분을 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 연금술사들처럼 변수를 통제하거나 이용하는 방법 따위는 알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저 개미를 놔둔다면 실험이고 뭐고 전부 망해버릴 수도 있었다.

         

       “선배님! 개미 떼가 나타났는데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뭘 어떻게 하긴! 당장 에테르를 끌어 올려서 저 개미들을 죽…. 아니지. 에테르로 살충제 만들자! 어, 그러니까…. 개미 살충 효과 있는 성분이 뭐였지? 프로폭서(Propoxur)였나? 디클로르보스(Dichlorvos)? 클로르피리포스(Chlorpyrifos)? 어…. 디클로르보스였던 것 같은데?”

         

       “선배님, 클로르피리포스랑 디클로르보스는 합성하면 안 됩니다! 그거 농약으로 분류되잖아요!”

         

       “아, 그렇지…. 고독성 농약…. 합성하면 화학물질관리법 위반이지…. 잠깐만. 잠깐만 진정하고 생각해보자…. 잠깐만…. 아! 피레트린(pyrethrin) 있지 않았어? 그거 뿌리자!”

         

       “예!”

         

       다만 이들이 마법사들보다 나은 것이 있다면 이들의 능력이 무생물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것.

         

       그 때문에 마법사들처럼 에너지를 함부로 투사했다가 연쇄작용이 일어나 문제가 일어날 것이 두려워 교무실까지 달려가서 살충제를 받는 끔찍할 정도로 비효율적인 행동을 하는 대신에, 살충 효과가 있는 물질을 뿌려서 개미를 퇴치할 수 있었다.

         

       그들은 제충국(除蟲菊)에서 추출한 피레트린(pyrethrin)을 합성해 뿌리기 시작했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동아리 안에는 원예부에서 받아온 제충국 샘플과 미리 추출해놓은 피레트린 샘플들이 많이 있었고, 그 덕분에 그 샘플을 토대로 즉석에서 합성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은 합성한 피레트린을 그야말로 아낌없이 뿌렸다.

       분말로 부실을 죄다 덮어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샘플을 토대로 피레트린 분말을 미친 듯이 양산하고.

       대기하고 있던 이들은 그 분말을 미친 듯이 뿌린다.

         

       아예 금속을 변화시켜서 삽으로 만들어서 퍼다가 나르고.

       엉성한 모습의 연막소독기 형태로 만든 다음에 피레트린을 투입, 연기 형태로 살포하기도 했으며.

       물에 타서 분무기에 담아 곳곳에 뿌리기도 했다.

         

       그렇게 연금술사는 순식간에 개미를 제압하는 것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렇게 개미가 제압되고 남은 것은 폐허….

         

       피레트린 가루로 범벅이 되어 있는 부실.

       곳곳에 널려있는 개미의 사체들.

       그리고 개미가 갉아먹은 재료들과 개미로 인해 오염된 실험기구들.

       거기에 개미가 틈새 안으로 들어가서 죽었기에 분해한 뒤 청소해야만 하는 기구들까지….

         

       “아….”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는 연금술사들은 전쟁의 허무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전쟁을 한 곳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남아나는 것은 폐허와 시체, 죽음들뿐….

         

       아.

       전쟁이란 이토록 허무하고 무용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반전(反戰)을 주장해야 하는 이유다….

         

       연금술사들은 멍하니 아까까지는 멀쩡했던-

       이제는 전쟁의 겁화가 휩쓸고 지나가 버린 비극의 현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 우리 이러지 말고 다른 곳도 도와주러 가보자!”

         

       선배 중 한 명이 크게 소리를 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그래요. 우리만 이럴 리가 없죠.”

         

       “우리는 제압을 완료했으니까…. 그래요. 도와주러 갑시다!”

         

       “만들어놓은 피레트린 분말도 많으니까!”

         

       “일단 원예부부터 가죠! 우리한테 제충국을 준 곳이잖아요!”

         

       “그렇지! 은혜는 갚아야지! 자! 피레트린 챙겨! 우리는 원예부로 간다!”

         

       와아아아-!

         

       연금술사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충국으로 개미에게 고통받는 이들을 구원해주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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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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